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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욕망이 낳은 재앙, 구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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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4-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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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天災)가 아니라 인재(人災)… 이윤만 추구하는 국제무역질서가 확산 부추겨

사진/예방접종을 허용하지 않고 오로지 ‘소각전략’에만 집중하는 유럽연합. 그 이유는 수출과 관련된 이해 때문이다.(GAMMA)
“구제역은 일반적으로 수의사의 치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 병은 발병 8일에서 14일이 지나면 ‘항체’가 생겨 가축 스스로에 의해 극복되기 때문이다.” 베를린 국립도서관에서 1859년판 <농업사전>을 펼치면 만나게 되는 문구이다.

이미 150년 전에 극복 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구제역이 현재 전 유럽에 재앙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다. 영국에서는 이미 100만 마리의 가축이 도살되었거나 도살될 예정이다. 4월 들어 그 기세가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장기적으로 영국 전체 가축의 절반수준인 3천만 마리가 도살될 것이라고까지 점쳐지고 있다. 구제역은 이어 프랑스, 아일랜드, 그리고 네덜란드로 확산되었고, 전 유럽국가에서 구제역과의 전쟁이 선포된 상태이다.

수출 위해 예방접종 금지


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가축들의 대규모 ‘화형식’과 이 장작더미 사이로 솟아오르는 시커먼 연기는 중세시대 공개 화형식을 연상시키면서 광우병의 악몽이 사라지지 않은 유럽인들의 안방을 강타하였다. 독일에서도 현재까지 총 5건의 의사 구제역이 발생하여, 2천여 마리의 가축이 도살, 소각됐다.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채 자신의 축사를 ‘사수’하고 있는 독일 농부들은 혹시 이웃집 농부가 가축을 이동시키거나 외부인과 접촉하여 바이러스를 불러오지 않을까 ‘스파이’가 되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는 보도도 접할 수 있다. 구제역이 앞으로 얼마나 더 확산되고 또 어떻게 퇴치될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명확한 답변을 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한편 영국의 신문들은 구제역의 근원지를 찾아나선 듯하다. 이번 구제역 바이러스와 유사한 형태의 바이러스가 1990년 인도에서 첫 발견되었다거나 또는 영국 북부 한 중국음식점이 중국으로부터 불법으로 육류를 수입하였다며, 이 유통과정에서 바이러스가 전파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아일랜드 농무장관은 ‘영국은 유럽의 문둥병자’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하면서 영국의 책임을 강하게 성토하였다. 마치 구제역이라는 재앙을 물리치기 위한 제사에 바쳐질 희생양을 찾고 있는 듯하다. 과연 이번 구제역 파동은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천재지변인 것일까.

1992년 유럽연합 내에서는 구제역을 비롯한 가축 전염병에 대한 커다란 정책변화가 일어났다. 유럽에서 1966년 이후 매년 대대적으로 실시해온 가축전염병 예방접종이 전면 금지된 것이다. 유럽구제역 법령 제14항에서 “구제역은 사라진 것으로 간주한다”고 밝히며, 지난 10년간 유럽연합의 농업정책의 근간이 된 ‘무전염병 시대’를 자신있게 선언하고 있다. 또 제2항에 “구제역에 대한 예방과 이 전염병에 걸리거나 또는 의심되는 가축에 대한 어떠한 치료도 금지한다”라고 명시하여, 구제역 발생지의 반경 10km 이내에 대한 ‘응급 예방’을 제외한 일체의 예방접종을 불허하고 있다. 예방접종 대신에 채택된 ‘소각전략’ (Eradications-Strategy)은 발병시 ‘도살’을 통해 바이러스를 ‘소멸’할 것을 그 대체해법으로 내놓고 있다. 이는 전염병이 발생할 경우, 주변 가축을 모두 몰살함으로써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예방접종이 실시된 1966년 이후 80년대에 이르기까지 전염병은 자취를 감춘 듯 보였고, 여기서 ‘무전염병’ 신화가 탄생된다. 흔히 ‘산업국가’로 여겨지는 유럽연합은 미국에 이어 세계 낙농업시장에서 두 번째로 큰 수출국가로, 낙농수출과 관련된 이해는 유럽연합 최대의 관심사라 할 수 있다. 또한 92년 WTO의 ‘예방접종된 육류 및 가축의 수입금지’ 조치는 유럽연합의 이러한 ‘소각전략’의 근본 배경으로 설명될 수 있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이 주도한 이 조치는, 구제역에 감염된 가축과 예방접종된 가축을 현재 수의학 기술로는 구별해낼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독일에 의사 구제역이 발생한 이후, 해당 주(州)정부 농무장관들은 ‘예방접종’ 허가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으나, 유럽연합 집행위는 매년 400억달러에 달하는 육류수출시장이 위협받는다며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이미 세계 50여개 나라에서 유럽산 육류수입이 금지된 상태이기는 하나 이는 일시적인 것으로, 만일 유럽 내 한 국가, 한 주(州)에서라도 예방접종이 이루어진다면 이번 금지조치가 수년간 지속될 것이라는 판단을 그 근거로 들었다. 경제적 이해가 모든 것에 앞선다는 것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유럽산 고기 경쟁력 위해 산 채로 운송

사진/의사구제역이 발생한 독일 블랜더 마을. 독일에서도 현재까지 2천여 마리의 가축이 소각됐다.
‘무전염병 신화’는 이미 ‘돼지 흑사병’으로 커다란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다. 93년부터 96년까지 돼지 흑사병으로 독일에서만 120만 마리의 돼지가 도살되었다. 당시에도 농부들은 도살장으로 통하는 고속도로를 차단하면서 ‘예방접종’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유럽연합의 소각위주 정책에는 변화가 없었다. 사람들은 점점 잔인한 가축의 대량도살 장면에 익숙해져 갔고, 이를 전염병에 대한 당연한 조처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일시적인 소비감소가 있었지만 이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자신들이 정성들여 기른 가축을 강제로 잃고 턱없이 모자라는 액수의 보상금만을 손에 든 소규모 농장의 농민들은 농촌을 떠나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살아남은 농장들은 점점 거대해져 갔으며 이른바 ‘규모의 경제’를 과시하고 있다. 이처럼 ‘소각전략’은 (경제적 손실을 제쳐두고라도) 농민들을 정신적 공황에 빠뜨리고, 이들을 사회로부터 점차 격리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예를 최근의 광우병 파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 1월 독일 남부 뮌헨 인근의 한 마을 축사에서 광우병에 감염된 소 ‘한 마리’가 발견되자, 소각전략에 의해 마을 전체의 소 1천마리의 대량 도살이 결정되었다. 지역의 수의사들은 경찰의 보호 아래 ‘독약’을 소들에게 주사하였고 이에 흥분한 농부들이 도살장 앞에서 “살인자, 살인자”를 외치며 대량 도살을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동일시하며 격렬히 항의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들 수의사들은 ‘죄의식’에 사로잡혔고, 급기야 신부들이 도살현장에서 수의사들을 위로하는 가운데 도살작업이 진행될 수 있었다. 최근 신문들은 실의에 빠진 영국 농부들의 자살소식을 전하고 있다. 농부들에게 가축, 특히 소 사육은 경제적 의미 이상의 것이며, 소가 생명과도 같은 존재라는 점에는 동서양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소각전략’과 함께 ‘봉쇄전략’은 전염병 대처방안의 다른 한축을 구성하고 있다. 지난 2월 영국의 1차 구제역 발생 이후 유럽연합 내 국경 검문이 강화되었고, 모든 가축의 이동은 지역 수의사들의 엄격한 통제하에서 이뤄지고 있다. 심지어 독일 연방군은 군대의 이동을 통한 바이러스 전파를 우려하여 잠정적으로 모든 군사훈련을 중단하였다. 농민들도 자신들의 소와 돼지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마을로 통하는 길을 봉쇄하고, 축사 주변에는 방벽을 세워 놓았다. 그러나 바람에 의한 바이러스의 이동문제는 제쳐놓더라도 산업화되고 분업화된 유럽 낙농업 산업의 구조적인 특성으로 인해 봉쇄전략의 효과 또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매년 약 2500만 마리의 가축들이 유럽연합 내에서 이동되고 있고, 동유럽에서 북아프리카와 중동까지 가축들은 ‘살아 있는 채로’ 운반되고 있다. 이는 소비지에서 직접 도살되는 신선하고 맛좋은 유럽산 고기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네덜란드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뒤 정부의 공식확인과 조치가 이루어지기 전 일주일 동안에 20만 마리의 가축이 독일로 수송되었다. 이후 독일 정부는 구제역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이 20만 마리를 색출, 소각하는 작업에 나서고 있지만 이는 유럽연합 내 봉쇄정책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끊임없는 무역분쟁

2000년 돼지고기 주요 수출국 중 하나인 한국에서 구제역이 발생하여 각국이 수입금지조처를 내린 사건은 유럽연합에 반사이익을 가져다주었다. 국제 돼지고기 가격이 크게 상승하였고, 여기에 당시의 ‘유로’화 약세 효과가 가세해 유럽연합 농가들은 큰 수익을 올리게 된 것이다. 반면 유럽에서의 이번 광우병 파동은 유럽산 쇠고기 소비량의 절감과 아르헨티나산 쇠고기의 대체수입을 가져왔다. 그러나 지난 3월14일 유럽연합은 아르헨티나산 쇠고기에 구제역 위험이 존재한다면서 수입을 금지시켰고, 이에 아르헨티나는 유럽산 모든 육류에 대한 수입금지로 답하였다. 이번 구제역 파동은 끝없이 경제적 이득만을 추구하는 세계무역질서가 낳은, 극복되지 못한 인재인지 모른다.

베를린=강정수 통신원 jskang@web.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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