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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키스까지 간섭하는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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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4-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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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 맹신도들이 훼손시킨 반영국 민족운동의 뿌리, 자유주의 지식인 등의 도전에 직면

인도에 부족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논쟁’이다. 나라 전체가 결코 지루한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요즘 인도 정치판의 논쟁거리는 세 가지다. 하나는 미국의 다국적기업 엔론이 추진하고 있는 마하라슈트라의 발전소 프로젝트고, 둘은 세계무역기구(WTO)에 휘둘린 수입제한 철폐며, 나머지 하나는 주로 외국 텔레비전 광고들의 성도덕에 대한 것이다.

엔론 발전소계획은 원유가격을 미국 국내기준으로 책정한데다 달러로 계산을 뽑았으니 결국 마하슈트라의 평균 전기생산단가를 3배나 초과해버렸다. 결국 모든 이익을 미국에 갖다바치는 꼴이 되고 말았다. WTO의 협박 앞에 수입제한 철폐로 보답한 현실은 어떤가. 말할 것도 없이 값싼 수입품의 침투는 대다수 영세농민들을 무덤으로 몰아가고 있다.

바지파이가 이끄는 분파 민족주의자들


사진/파키스탄의 핵실험을 규탄하는 인도인들. 광신적인 힌두 민족주의자들에 의한 정치·경제적 농간 역시 핵만큼 무서운 존재이다.(SYGMA)
마지막은 광고이야기. 남녀가 신체의 일부를 드러낸 익살스런 광고를 ‘인도의 문화’를 해친다는 이유로 금지시킨 것이다. 영화에서도 남녀의 키스를 “인도답지 못하다”고 금지했다. 이건 참 희한한 일이다. 카마수트라(힌두교 성전(性典))를 창조해낸 나라에서, 게다가 정교한 성행위를 조각해 놓은 유적을 자부심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이거야말로 인도답지 않은 일이다. 이 논쟁거리들의 진원지는 사회의 감시관을 자임한 인도판 민족주의다.

민족주의, 이 말이 무슨 감투라도 되는 양 내남없이 뒤집어쓰길 원하다보니 이제는 아예 반시민적인 정책을 창조하는 이들까지도 민족주의자를 자처할 지경에 이르렀다. 민족주의라는 명제가 인도에서 이처럼 ‘유쾌한’ 까닭은 150년간의 영국 식민지배 아래서 민중운동의 뿌리로부터 출발했다는 역사적 배경을 지닌 탓이다.

말하자면 인도의 자유운동(Freedom Movement)이 오늘날의 정치철학과 사상에 진수를 제공한 셈인데, 이건 식민지배의 잔재를 청산하고 평등과 자유를 기초로 근대적인 국가를 건설한다는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유운동은 ‘근대화’와 ‘해방’이라는 속알맹이가 사라진 채, 맹신적 민족주의자들에게 사로잡혀 협소한 개념으로 둔갑해버렸다.

발호하는 인도 민족주의의 해악 가운데서도 해악은 단연, 바지파이 총리가 이끄는 힌두 분파주의자 바라티야 자나타당(BJP) 같이 민족주의에 종교적 색깔을 입히는 흐름들이다. 이 힌두 민족주의자들은 1천년 이상 외국인- 말할 것도 없이 회교도- 으로부터 인도의 역사가 유린당하며 고통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럴까? 역사를 뒤집어봐도 외국인 회교도의 침략이 인도사회에 끼친 폐단은 오히려 현재 광신적인 힌두 민족주의자들에 의한 정치·경제적 농간보다 덜 심각했던 편이다. 오랜 기간을 통해 인도에 정착했던 이들은 오히려 문화전파와 교류라는 역사의 순기능적 역할을 담당했다.

물론 오늘날 맹신적인 힌두 민족주의자들은 두개의 다른 경향으로부터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다. 첫째는 자유운동의 사회개념을 추종하는 자유주의 지식인 부류와 학계 그리고 중도좌파 정당들이다. 이들은 자유와 권리의 개념에 기초해 모든 종류의 맹신주의와 다수결주의를 거부하고 있다.

둘째는 좀더 급진적으로 민족국가와 민족주의, 특히 무제한의 주권에 의문부호를 다는 경향이다. 보편구제설(인류는 모두 구제받는다는 신학의 한 관점)적 자유와 권리를 추구하는 이들로 아직은 비주류이긴 해도 노동운동 부문과 도시빈민 그리고 산림원주민들 사이에서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두 경향은 인권, 평화, 반핵, 재활경제, 자원재생, 반군사주의, 평등외교, 여권신장, 약탈 경제반대, 반어린이노동을 비롯해 많은 부문에서 접점을 찾아냈다. 이런 접점의 결과는 민족정체성의 의미를 탐색하고 동시에 맹신적인 민족주의를 거부하는 이중적인 성격을 드러내면서 새로운 대안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아직 두 경향 모두 전쟁에서 승리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맹신적 힌두 민족주의자들이 살포하는 독점적인 ‘사상일치’를 차단하는 일에서만큼은 뚜렷한 승전보를 올리고 있다. 일이 이쯤되다보니, 그동안 늘 공격적으로 사회의 논쟁을 주도해왔던 맹신적 힌두 민족주의자들이 요즘은 늘 방어적인 입장에서 논쟁에 지친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이건 변화의 기류다. 변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인도에서 논쟁말고도 모든 게 넉넉해질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다.

프라풀 비드와이(Praful Bidwai)/ 전 <타임 오브 인디아> 편집장·핵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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