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길에 들어선 제국은 거대한 군사력을 세계 곳곳에 퍼뜨려놓은 채 전전긍긍하고 있네
▣ 김창진 성공회대 교수·사회과학부
이라크 침공 5주년을 며칠 앞둔 지난 3월11일,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돌연 이라크전쟁 수행을 책임지는 중부군 사령관 윌리엄 팰런 제독의 사임을 발표했다. 백악관과 팰런 제독 자신은 ‘정책 목표’에는 서로 이견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란 문제에 대해 부시 행정부와 다른 외교적 대응을 강조한 현지 사령관의 발언이 그를 사임으로 몰고 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팰런은 재임 중 강경파인 부하 장군 페트레이어스와도 불화를 빚어왔는데, 그는 군부 내 딕 체니 부통령 라인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저녁, 체니 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전략방위구상(SDI) 선포 25주년 기념식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개발과 확산의 위협을 지적하면서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의 당위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도전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IMAGE4%%] △ 윌리엄 팰런(왼쪽) 전 미중부군 사령관이 2007년 9월14일 맥딜 공군기지를 방문한 딕 체니 부통령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체니 부통령이 주도하던 대이란 강경정책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던 팰런 전 사령관이 지난 3월11일 돌연 사임하면서, 미 행정부 강경파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사진/ 미해군 제공) 1920년대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반기 우연히 같은 날 일어난 이 두 가지 일은 얼핏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아메리카 제국의 지배 엘리트 안에서 발생한 정치적 균열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주목할 만하다. 미국 상층 엘리트의 강경파와 온건파가 ‘세계를 달리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제국의 전쟁을 수행하는 현지 사령관을 통해 폭로됐기 때문이다. 또한 자국과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는 ‘소국’ 북한을 재차 끌어들여 우주 식민화의 야심을 정당화하는 체니의 발언은, 과거 ‘별들의 전쟁’ 전략이 소련을 패망으로 이끄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허구적 신화를 재현하겠다는 의지의 확인이다. 제국이 취하는 전략이 자기 동맹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감, 최고 지도부의 정책 노선이 자국의 고립을 더욱 심화할지 모른다는 회의, 그리고 정책 결정자와 현장 집행자들 사이에서 은연중 퍼져나가는 그런 불안과 회의를 은폐하기 위해 더욱 무모한 전략을 밀고 나가는 강경파의 노선. 역사상 많은 제국들의 쇠퇴와 몰락의 시기에 나타났던 모습이다. 황혼의 태양이 한낮의 그것보다 더욱 황홀하게 빛을 발하지만 이미 기울고 있는 자신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듯이, 내리막길에 들어선 제국은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군사력을 세계 곳곳에 퍼뜨려놓은 채 전전긍긍한다. 다만 제국은 그런 사실을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거나 애써 외면하려고 할 뿐이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세계를 지배하던 제국 영국이 몰락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인도를 비롯한 주요 식민지들이 독립한 1940년대 중반이다. 그러나 그 나라의 관리들이 ‘대영제국’에 대한 확신을 상실한 것은 이미 1920년대부터였다. 그때는 1차 대전의 승전국인 영국이 전무후무할 정도로 관할 영토와 주민 수를 늘려 외견상 세계 최대의 제국을 건설하던 시기였다. 인도담당 장관 에드윈 몬터규는 영국의 전세계 병합에 관해 언급했고, 식민장관 리오 에이머리는 남극대륙 전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제국의 영웅이던 T. E. 로렌스(아라비아의 로렌스)와 해리 필비 등은 이미 전시와 전후에 독립을 향한 아랍 세계의 대의를 인정하고 본국의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실론섬 관리로 파견된,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의 남편 레너드 울프는 ‘특정한 문명과 생활양식을 지닌 국민이 전적으로 다른 문명과 생활양식에 자신의 통치를 강요하려는 행위의 불합리함’을 확신하고 전쟁 전에 사임했다. 식민지 현장에서 모순투성이의 제국 정책을 집행하는 자리에 있던 그는, 제국 관리가 할 수 있는 것 가운데 최상의 것은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거나 약탈하는 것, 또는 막사를 태워버리는 것, 콜레라나 역병, 혹은 천연두를 예방하는 일’이라고 결론지었다. 한 세기가 넘도록 든든하게 제국을 받쳐온 영국인들의 확신에 결정적 위기가 초래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에 승리하기 위해 치렀던 혹독한 대가 탓이었다. 사망자 수는 영국의 섬들에서만 75만 명에 달했는데, 이는 모든 성인 남성의 7%를 차지하는 수치였다. 경제적으로는 1920년대 중반까지 중앙정부의 총지출 중 절반 정도를 전시에 10배로 늘어난 국채에 대한 이자로 지불했다(닐 퍼거슨, <제국>). 벌써 눈앞에 다가온 몰락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제국의 심장부에서는 ‘제국 박람회’라는 화려한 행사로 신민들을 유혹했지만, 승리의 영광 뒤에 따라온 제국의 해체라는 불길한 그림자는 더욱 짙어져만 갔다. 1930년대에 이르자 영국인은 점차 자신들의 제국에 대해 경멸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2차 대전 중인 1942년, 싱가포르에서 13만 명의 ‘대영제국’ 병력이 그 절반도 안 되는 일본 군국주의 군대에 항복해 노예 신세로 떨어지는 운명에 처했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신화는 ‘야만적인’ 아시아인의 군홧발에 처참하게 짓뭉개졌다. 몰락 한켠 더 화려했던 ‘제국 박람회’ 2001년 9·11 사태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스스로 벌인 전쟁의 수렁에 빠져 있는 중에, 이란에 대한 무력 대응이 운위되는 미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제왕적 대통령이 공화국의 의회를 압도하고, 전쟁을 선호하는 국방부의 영향력이 외교를 우선시하는 국무부를 압도하고 있는 이 나라는, 그저 시간이 좀 지나면 무마되기 마련인 또 한 번의 베트남전 증후군을 앓고 있을 뿐인가?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은 너무나 막강해서 그 정도의 곤경과 타격은 조만간 거뜬히 극복하고도 남을 것인가? 우리는 알 수 없다. 어떤 전문가도 가까운 미래의 사태를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없다. 다만, 미국이 인류 역사상 ‘유일한 예외’가 될 것이라는 견해는, 제국의 역사적 궤적을 우리에게 ‘알려진 그대로’ 인식한다면, 대단히 비합리적인 기대라는 것은 말할 수 있다.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19세기 프랑스인 토크빌의 말을 다시 인용하자면, <미국의 민주주의> 1권 말미에서 그는 “미국인들은 러시아인들과 함께, 세계를 지배하도록 하늘의 계시를 받은 듯하다”고 썼다. 그의 예언은 20세기 냉전 시기에 정확히 현실화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같은 책의 2권에서 그는 “아메리카와 같은 민주적인 사회 상태는 전제정치의 확립에 특별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거듭해 지적했다. 포괄적이고 절대적인 권력의 수립 가능성과 일상에 매몰된 수동적인 시민의 태도를 근거로 한 그의 주장은, 21세기에 접어든 미국 사회에 대한 하나의 중대한 경고로 읽힐 수 있다. 미국인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건국의 시조들은 토크빌보다 앞서 그의 예측에 대한 근거를 들고 있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위싱턴은 “지나치게 비대한 군대는 특히 공화국의 자유에 적대적”이라고 경고했고, 미국 헌법 초안을 기초한 제임스 매디슨은 “공공의 자유를 침해하는 모든 적 가운데 전쟁은 아마도 가장 가공할 만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인류 역사상 ‘유일한 예외’? 그러나 ‘이기적인 국가이익을 보편적 선(善)으로 위장하는 데 특출한 재능을 가진 앵글로-색슨적 위선’(E. H. 카) 탓에, 미국의 현대 지도자들은 토크빌이 그토록 예찬했던 민주주의를 구조적으로 무너뜨리는 결과를 조장했다. 우드로 윌슨식 ‘인도주의적 제국주의’의 환상을 좇으며 ‘공화국’에서 ‘제국’으로 넘어간 미국은, 자신이 모델로 삼고 싶어하는 로마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황제에게 원로원이 한낱 공화정의 전통을 상기하는 유물에 불과했듯이, 제왕적 대통령에게 의회는, 비록 헌법적으로는 전쟁 선포권을 가졌으나, 전쟁을 사후 추인하는 장식물로 전락했다. 하지만 미국의 지도자들이 명심할 것은, 로마제국 말기 많은 황제들이 결국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제국 군대의 쿠데타에 비명횡사했다는 역사의 기록이다.
[%%IMAGE4%%] △ 윌리엄 팰런(왼쪽) 전 미중부군 사령관이 2007년 9월14일 맥딜 공군기지를 방문한 딕 체니 부통령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체니 부통령이 주도하던 대이란 강경정책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던 팰런 전 사령관이 지난 3월11일 돌연 사임하면서, 미 행정부 강경파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사진/ 미해군 제공) 1920년대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반기 우연히 같은 날 일어난 이 두 가지 일은 얼핏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아메리카 제국의 지배 엘리트 안에서 발생한 정치적 균열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주목할 만하다. 미국 상층 엘리트의 강경파와 온건파가 ‘세계를 달리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제국의 전쟁을 수행하는 현지 사령관을 통해 폭로됐기 때문이다. 또한 자국과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는 ‘소국’ 북한을 재차 끌어들여 우주 식민화의 야심을 정당화하는 체니의 발언은, 과거 ‘별들의 전쟁’ 전략이 소련을 패망으로 이끄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허구적 신화를 재현하겠다는 의지의 확인이다. 제국이 취하는 전략이 자기 동맹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감, 최고 지도부의 정책 노선이 자국의 고립을 더욱 심화할지 모른다는 회의, 그리고 정책 결정자와 현장 집행자들 사이에서 은연중 퍼져나가는 그런 불안과 회의를 은폐하기 위해 더욱 무모한 전략을 밀고 나가는 강경파의 노선. 역사상 많은 제국들의 쇠퇴와 몰락의 시기에 나타났던 모습이다. 황혼의 태양이 한낮의 그것보다 더욱 황홀하게 빛을 발하지만 이미 기울고 있는 자신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듯이, 내리막길에 들어선 제국은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군사력을 세계 곳곳에 퍼뜨려놓은 채 전전긍긍한다. 다만 제국은 그런 사실을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거나 애써 외면하려고 할 뿐이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세계를 지배하던 제국 영국이 몰락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인도를 비롯한 주요 식민지들이 독립한 1940년대 중반이다. 그러나 그 나라의 관리들이 ‘대영제국’에 대한 확신을 상실한 것은 이미 1920년대부터였다. 그때는 1차 대전의 승전국인 영국이 전무후무할 정도로 관할 영토와 주민 수를 늘려 외견상 세계 최대의 제국을 건설하던 시기였다. 인도담당 장관 에드윈 몬터규는 영국의 전세계 병합에 관해 언급했고, 식민장관 리오 에이머리는 남극대륙 전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제국의 영웅이던 T. E. 로렌스(아라비아의 로렌스)와 해리 필비 등은 이미 전시와 전후에 독립을 향한 아랍 세계의 대의를 인정하고 본국의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실론섬 관리로 파견된,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의 남편 레너드 울프는 ‘특정한 문명과 생활양식을 지닌 국민이 전적으로 다른 문명과 생활양식에 자신의 통치를 강요하려는 행위의 불합리함’을 확신하고 전쟁 전에 사임했다. 식민지 현장에서 모순투성이의 제국 정책을 집행하는 자리에 있던 그는, 제국 관리가 할 수 있는 것 가운데 최상의 것은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거나 약탈하는 것, 또는 막사를 태워버리는 것, 콜레라나 역병, 혹은 천연두를 예방하는 일’이라고 결론지었다. 한 세기가 넘도록 든든하게 제국을 받쳐온 영국인들의 확신에 결정적 위기가 초래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에 승리하기 위해 치렀던 혹독한 대가 탓이었다. 사망자 수는 영국의 섬들에서만 75만 명에 달했는데, 이는 모든 성인 남성의 7%를 차지하는 수치였다. 경제적으로는 1920년대 중반까지 중앙정부의 총지출 중 절반 정도를 전시에 10배로 늘어난 국채에 대한 이자로 지불했다(닐 퍼거슨, <제국>). 벌써 눈앞에 다가온 몰락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제국의 심장부에서는 ‘제국 박람회’라는 화려한 행사로 신민들을 유혹했지만, 승리의 영광 뒤에 따라온 제국의 해체라는 불길한 그림자는 더욱 짙어져만 갔다. 1930년대에 이르자 영국인은 점차 자신들의 제국에 대해 경멸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2차 대전 중인 1942년, 싱가포르에서 13만 명의 ‘대영제국’ 병력이 그 절반도 안 되는 일본 군국주의 군대에 항복해 노예 신세로 떨어지는 운명에 처했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신화는 ‘야만적인’ 아시아인의 군홧발에 처참하게 짓뭉개졌다. 몰락 한켠 더 화려했던 ‘제국 박람회’ 2001년 9·11 사태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스스로 벌인 전쟁의 수렁에 빠져 있는 중에, 이란에 대한 무력 대응이 운위되는 미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제왕적 대통령이 공화국의 의회를 압도하고, 전쟁을 선호하는 국방부의 영향력이 외교를 우선시하는 국무부를 압도하고 있는 이 나라는, 그저 시간이 좀 지나면 무마되기 마련인 또 한 번의 베트남전 증후군을 앓고 있을 뿐인가?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은 너무나 막강해서 그 정도의 곤경과 타격은 조만간 거뜬히 극복하고도 남을 것인가? 우리는 알 수 없다. 어떤 전문가도 가까운 미래의 사태를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없다. 다만, 미국이 인류 역사상 ‘유일한 예외’가 될 것이라는 견해는, 제국의 역사적 궤적을 우리에게 ‘알려진 그대로’ 인식한다면, 대단히 비합리적인 기대라는 것은 말할 수 있다.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19세기 프랑스인 토크빌의 말을 다시 인용하자면, <미국의 민주주의> 1권 말미에서 그는 “미국인들은 러시아인들과 함께, 세계를 지배하도록 하늘의 계시를 받은 듯하다”고 썼다. 그의 예언은 20세기 냉전 시기에 정확히 현실화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같은 책의 2권에서 그는 “아메리카와 같은 민주적인 사회 상태는 전제정치의 확립에 특별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거듭해 지적했다. 포괄적이고 절대적인 권력의 수립 가능성과 일상에 매몰된 수동적인 시민의 태도를 근거로 한 그의 주장은, 21세기에 접어든 미국 사회에 대한 하나의 중대한 경고로 읽힐 수 있다. 미국인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건국의 시조들은 토크빌보다 앞서 그의 예측에 대한 근거를 들고 있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위싱턴은 “지나치게 비대한 군대는 특히 공화국의 자유에 적대적”이라고 경고했고, 미국 헌법 초안을 기초한 제임스 매디슨은 “공공의 자유를 침해하는 모든 적 가운데 전쟁은 아마도 가장 가공할 만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인류 역사상 ‘유일한 예외’? 그러나 ‘이기적인 국가이익을 보편적 선(善)으로 위장하는 데 특출한 재능을 가진 앵글로-색슨적 위선’(E. H. 카) 탓에, 미국의 현대 지도자들은 토크빌이 그토록 예찬했던 민주주의를 구조적으로 무너뜨리는 결과를 조장했다. 우드로 윌슨식 ‘인도주의적 제국주의’의 환상을 좇으며 ‘공화국’에서 ‘제국’으로 넘어간 미국은, 자신이 모델로 삼고 싶어하는 로마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황제에게 원로원이 한낱 공화정의 전통을 상기하는 유물에 불과했듯이, 제왕적 대통령에게 의회는, 비록 헌법적으로는 전쟁 선포권을 가졌으나, 전쟁을 사후 추인하는 장식물로 전락했다. 하지만 미국의 지도자들이 명심할 것은, 로마제국 말기 많은 황제들이 결국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제국 군대의 쿠데타에 비명횡사했다는 역사의 기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