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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가해자의 피해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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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4-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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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 교과서는 잡초처럼 질긴 풀뿌리 민족주의의 결정판… 국제연대로 채택과정 감시하자

1962년 도쿄에서 태어난 고마고메는 도쿄대학에서 일본사 교육학을 전공했다. 일본제국주의의 지배 방식을 꾸준히 연구해오면서 일본사회의 우익화에 저항해온 운동가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식민지제국 일본의 문화통합>(이와나미 발행)등이 있다.

“아시아의 모든 국가들은 민족주의를 강화시킨 역사교육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이런 현상을 인정하더라도,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이라는 결코 지울 수 없는 가해자의 역사를 은폐시킨 교과서를 교육현장에 투입하려는 일본의 기운은 분명 심상찮은 구석이 있다.

효과적 대응 호락호락하지 않다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앞장선 문제의 역사 교과서들은 주변국들의 반발 속에서 이미 일본 정부의 검정절차를 무난히 통과해버렸다. 1982년에도 일본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가해상을 모호하게 기술했던 교과서가 외교문제로 비화된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주로 정부의 검정방침을 비판하는 역사학자·교육관계자들과 문부성 사이의 대립이었다면, 이번에는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지지하는 이들이 문제의 교과서를 교육현장으로 들여오기 위해 ‘풀뿌리운동’을 펴고 있는 것이 서로 다른 점이다. 이들의 ‘풀뿌리 민족주의’ 경향은 역사 교과서의 왜곡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최근 일본사회 전체로 급격히 파급되고 있는 보수화와 우경화의 상징이 됨으로써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 가고 있다.

1997년에 결성한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은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배우려는 시민들을 ‘자학사관’이라 몰아붙이며 ‘힘나는’ 역사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이들은 역사를 ‘자기 몸에 좋은 음료수’ 정도로 여기며 오직 유익한 이야깃거리로 만드는 활동을 펴고 있다. 물론 모든 역사가 현재의 바람이나 욕망에 따라 다시 꾸며진 이야기라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여기엔 반드시 상대방에 대한 성찰을 필요로 한다는 의무가 담겨 있다. 침략과 식민지배의 가해성을 애매하게 만들어버리는 자기 중심적인 이야기가 결국은 대립하는 쌍방의 역사 사이에 객관성을 잃게 만들어 끊임없는 싸움거리를 제공해온 것이 일본 역사기술의 근본적인 문제였다.

사진/야스쿠니 신사에 모인 관동군 출신들. ‘가해자의 피해망상’은 패배감에 젖은 일본인 자신들의 자화상에서부터 출발했다.(박승화 기자)
최근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왜곡된 현상을 볼 때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자기 중심적인 모순을 지적하는 일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을 찾는 일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게 고민거리다. 말하자면 가해자의 역사를 은폐시킴과 동시에 스스로 부조리한 죄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피해자의 심정’을 강조하는 이들의 전략이 상당한 호소력을 지니며 사회 전반으로 파급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 ‘가해자의 피해망상’을 차단하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뜻이다.

민족주의의 탈을 쓴 가해자의 피해망상이 통할 수 있는 현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는 어디서부터 왔는가? 이건 공교롭게도 패배감에 젖은 일본인 자신들의 자화상에서부터 출발했다. 한국전쟁의 참상을 발판삼아 전후 부흥을 이룩한 일본사회는 1970년대 고도경제성장에 이어 1980년대 거품경제의 환상을 만끽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거품이 사라지면서 정치적 패배감이 팽창했고 결국 ‘더 좋은 삶’을 생각할 수 있던 시대는 끝나 버렸다.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동안 가려져왔던 문제들이 표출되기 시작했고 이에 맞서 형식적인 관리체제가 강화되었다. 사회 각 부문은 조직의 명령계통을 위배하는 자를 축출했고, 학교는 학교대로 침략전쟁의 상징이었던 히노마루(국기)와 기미가요(국가)에 저항하는 교육자들을 전출시키며 불이익을 줬다. 이처럼 상명하복의 제도가 강화되는 것과 동시에 변혁을 위한 노력들은 빛을 잃어갔고, 막연한 불안감과 피해의식이 시민들 사이에 확산돼 나갔다.

문부성과의 투쟁, 그 아픈 패배의 기억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힘나는’ 역사교육의 주장은 패배감에 젖어있던 시민들 사이에 마치 신흥종교처럼 파고들기 시작했다. 따라서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전략인 사회심리전에 대항하는 일이, 반대자들의 입장에서는 근본적인 어려움으로 대두되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제도적 장애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건 문부성의 검정권한과 기능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문제이기도 한데, 문부성에 ‘불합격판정’을 요구한다는 일 자체가 또다른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처럼 문제의 교과서가 교육현장에서 사용되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입장을 지닌 자들은 그런 요구 자체가 오히려 문부성의 권한을 강화시킬 소지가 있다는 점을 주목해 왔다.

좋은 예로, 1965년 진보적인 역사학자 이에나가 사부로는 자신이 집필한 역사 교과서에 대한 문부성의 검정에 불복해 법정투쟁을 시작했는데, 시민의 사상과 가치관에 대한 정부의 부당한 개입을 성토하며 30년 넘게 끌었던 이 재판에서 이에나가가 패배하자 오히려 문부성의 검정 권한 자체가 강화되는 역효과만 초래한 뼈아픈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문부성이 비록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처럼 극단적이지는 않더라도 실제로 침략전쟁에서 일본의 가해 책임을 모호하게 서술하도록 요구해온 주체였고, 그게 바로 1982년 교과서파동의 본질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가해자의 피해망상’과 ‘제도’의 조화로움, 이게 바로 현재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는 일본판 민족주의의 두 바퀴라는 뜻이다.

일본군의 ‘성노예’에 관한 기술을 예로 들면, 1994년판 고등학교용 일본사 교과서 7종과 1977년판 중학교용 7종 모두에 성노예에 관한 기술이 등장했으나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지지자들이 집요하게 전국적인 캠페인을 벌인 결과 2002년 중학교용 교과서로 제출된 책 가운데 성노예를 다룬 책은 3종으로 줄어들었고 그 내용도 모호하게 바뀌어버렸다. 이 조화로운 ‘변화’의 배후에는 문부성의 ‘지도’가 있었던 것으로 전문가들은 믿고 있다. 어쨌든 이제 문제의 교과서들은 모조리 검정을 통과했고, 그 지지자들은 거대한 교과서 시장에 뛰어들어 온갖 재주를 부리며 채택을 종용하고 있다. 이들은 교과서를 채택할 권리를 지닌 사람들에게 다른 교과서를 비방하는 직·간접적인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교과서를 채택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부정을 감시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들에 대한 감시는 일본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연대를 통해 전면적으로 벌여야만 효과를 거둘 수 있고, 지금이 바로 가장 절실한 시점이다.

필자는 이 짧은 글이 디딤돌이 되어 한국과 일본사회 내부에서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반대하는 이들 사이에 연대투쟁이 펼쳐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반세기 가까이 아시아의 내정을 간섭(식민지배)해온 사실을 긍정하는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지지자들이 자신들에 대한 감시를 내정간섭이라고 비난하더라도, 역사 그 자체가 내정의 틀을 넘어서 있는 한 역사교육에 관한 내정간섭이라는 비난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목하며, 일본의 폐쇄적인 풀뿌리 민족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인의 연대가 필요한 시점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참고: 히노마루와 기미가요의 강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연대를 위해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인터넷 기획에 뜻있는 한국인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http://www1.jca.apc.org/anti-hinokimi/index.html(한국어 페이지로 열람 가능함).

고마고메 다케시(Komagome Takeshi)/ 교토대학 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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