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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히스패닉, 심상치 않은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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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4-1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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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2000년 센서스가 보여준 놀라운 인구증가… 흑인과 보이지 않는 갈등관계 형성

사진/뉴욕 빈민가의 히스패닉들. 히스패닉 인구의 증가로 저임금 단순노무직을 놓고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GAMMA)
10년마다 센서스를 해오고 있는 미국에서 2000년에 조사한 결과가 최근 뉴저지주, 위스콘신주 등 몇몇 주를 선두로 발표되기 시작했다. 미국 전체의 인구분포를 확인할 수 있는 이 센서스의 결과를 보면 미국사회가 인종적으로나 민족적으로 더욱 다양해져서, 여러 색깔의 조각으로 이루어진 ‘퀼트’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90년대부터 수직상승

우선, 아시아계의 약진이 두드러져 거의 1200만명에 육박하게 되었다. 펜실베이니아주에서는 83%가 증가했으며, 전통적으로 아시아계가 적었던 아칸소주나 사우스다코다주마저 각각 110%, 105%나 급증했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사실은 히스패닉 인구가 마침내 흑인인구를 따라잡고 있다는 것이다. 즉, 미국 내에서 흑인을 누르고 히스패닉이 조만간 최대의 소수인종(minority)으로 부상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조사결과에 의하면, 1990년 흑인이 3천만명인 반면, 히스패닉은 2240만명이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2000년 현재 흑인으로만 자신의 정체성을 표시한 사람들이 3470만명인데 비해 히스패닉은 3530만명이 된 것이다. 그러나 타인종에서 자신을 흑인으로도 표시한 사람들의 숫자를 더하면 흑인의 총인구는 3640만명으로, 히스패닉보다 많아지게 된다. 이런 식의 이상한(?) 계산법이 나오는 이유는 이번 2000년 센서스에서는 1990년 센서스와 달리 응답자들에게 하나 이상의 인종 및 민족(race and ethnicity)에 자신의 정체성을 표시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새로이 들어오는 이민자들과 흑인과 백인, 백인과 아시아인 등 타인종간의 결혼이 증가하는 현실을 반영한 조치일 것이다. 예를 들어, 이번 센서스에서는 자신을 하나 이상의 인종으로 표시한 미국인들이 약 68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2.4%에 해당된다.


히스패닉(Hispanic), 혹은 라티노(Latino)로 불리는 이들은 멕시코나 쿠바 과테말라, 페루, 베네수엘라 등의 중남미 국가에서 온,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가톨릭을 믿는 사람들이다. 세계화가 진행된 1990년대부터 이들의 이주가 더욱 증가해서, 이제 단순노무직이나 사무 및 서비스직에서 이들이 없다면 영업을 하기가 곤란할 정도로 최저임금에도 만족해하는 가장 밑바닥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흑인들과 경쟁을 벌이고, 보이지 않는 갈등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새삼스럽지만 미국은 ‘이민의 나라’이다. 1970년대만도 400만명의 이민이 합법적으로 미국으로 건너왔으며, 1980년대에는 무려 600만명 이상이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기 위해 미국으로 몰려들었다. 거기에다 정확히 계산할 수 없는 불법이민들까지 고려한다면, 미국은 엄청난 인구를 빨아들이는 거대한 진공청소기 같은 국가이다. 어찌됐든 이러한 이민 행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히스패닉이었으며, 다음으로는 아시아인들이었다. 이러한 추세의 결과가 바로 2000년 센서스로 나타난 것이다.

1960년 인구통계에 의하면 히스패닉은 300만명가량 되었다. 그러니 당시는 무시할 만한 숫자였다. 그러나 1970년 조사결과는 900만명으로 3배나 증가했음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1990년 인구조사에서는 2천만명 이상으로 나타났다. 2000년 센서스에서 가장 중요한 결과는 히스패닉이 흑인을 수적으로 압도하여 이른 시일 내에 미국에서 제1의 소수민족으로 자리잡게 되리라는 점이다. 흑인들이 지금부터라도 자신들의 인구를 늘리기 위해 자녀 한명 더 갖기 운동을 벌인다 하더라도, 이들의 자연증가율은 결코 수평적 공간이동에 의한 히스패닉의 기하급수적 증가를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로에 선 흑인 공동체

사진/흑인공동체는 기로에 서 있다. 히스패닉과 단합하여 백인주류사회에 저항할 것인가, 아니면 경쟁관계를 유지할 것인가. (GAMMA)
히스패닉은 이제 특정지역을 가리지 않고 미국 전역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자면, 전통적으로 압도적인 백인지역이었던 펜실베이니아주의 랭커스터 카운티(Lancaster county)- 우리에게는 자신들의 종교적 전통과 문화를 끈질기게 고집하고 있는 아미시(Amish) 마을이 자리잡고 있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는 이미 히스패닉이 전체 인구의 1/3에 육박한다. 뉴욕시의 경우만 하더라도 1990년대에 최대의 소수인종이 흑인에서 히스패닉으로 바뀌었다. 많은 대도시의 경우, 공중전화를 비롯한 공공장소에서 영어와 스페인어를 공용어인 양 나란히 표시해 놓고 있다. 이미 흑인들과 히스패닉은 노동시장에서 저임금 자리를 놓고 서로 다투거나, 정치적 갈등을 빚고 있다.

조만간 미국사회에서 히스패닉이 가장 큰 소수민족으로 자리잡게 된다는 것은 미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며, 미국사회의 변화를 예고하는 지표가 될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특정집단의 수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20세기 이후 이른바 대중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는 곳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직접 민주주의가 불가능해진 20세기에서 유일하게 효율적인 대안은 대의제로서 의회민주주의였다. 그 결과 모든 사람들이 대통령이건 시골의 촌부이건,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나 무지렁이 노인이나 동일한 한표를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미국사회에서 각 인종간, 민족간 구성원의 숫자는 단순한 통계를 넘어 어떻게 부와 권력, 나아가 특권을 나눠 가질 것인가 등을 의미하게 된다.

여태껏 흑인들은 미국사회 최대의 소수인종이었다. 그리고 1960년대 민권운동 이후, 적어도 법적으로는, 모든 면에서 백인들과 동등한 지위와 위치를 차지해오고 있다. 소수민족으로서 최대한의 몫을 당연한 권리인 양 누려왔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2000년 센서스는 이제 이러한 상태를 더이상 유지하기 힘들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어찌됐든 센서스 조사결과는 여러 사회정책에 즉각적으로 반영될 것이다. 또한 약 2천억달러에 달하는 연방예산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며 주의회, 카운티 위원회, 교육위원회 등에도 인구변화가 반영될 것이다.

이제 흑인 공동체는 기로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히스패닉과 단합하여 백인들로 구성된 주류사회에 계속적인 개혁을 요구할 것인지, 혹은 히스패닉을 경쟁상대로 생각하여 ‘전부 아니면 전무’식으로 이전투구를 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할 시점이다. 만약 흑인과 히스패닉이 단합하여 미국사회에 계속적인 개혁을 요구한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정치적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아시아인까지도 합류하게 된다면 대연합을 형성하여 백인 주류사회에 충분한 도전세력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설령 흑인들이 히스패닉을 자신들의 우호세력으로 간주하고 접근한다손 치더라도 히스패닉들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미지수라는 점이다. 히스패닉들이 단합된 모습을 보인 적은 별로 많지 않다. 왜냐하면, 이들이 서로 다른 정치체제를 지닌 국가들로부터 미국으로 이민을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로 이주해온 히스패닉들은 미국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살아남느라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는 적응하기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백인세력, ‘이이제이’ 즐길까

아마도 백인 보수세력은 이러한 센서스 결과를 환영할지도 모른다. 소수민족끼리 자연스럽게 경쟁관계가 되었기 때문에, 그동안 백인이 흑인들의 주요 표적이 되었던 상황에서 뒤로 물러나 서로 싸우는 모습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중국의 한족들이 전통적으로 즐겨 사용하던 ‘이이제이’(以夷除夷)의 형국이라고나 할까. 백인들은 흑인과 히스패닉을 서로 저울질하거나 싸움붙일 수 있는 유리한 고지에 올라섰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천년, 새로운 세기를 맞이한 미국사회는 바야흐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히스패닉의 부상이라는 새로운 사회현상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이것을 어떻게 현실에 반영할 것인지는 부시 행정부가 담당할 어려운 과제일 것이다. 흑인들은 센서스 결과에 당황하면서도 자신의 몫을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반면, 히스패닉들은 자신들의 부상에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요즘처럼 미국경제가 주춤하고, 온라인 회사들이 여기저기서 인원을 줄여나가고, 미국민들의 소비가 줄어드는 경기후퇴의 조짐을 보일 때일수록, 저임금 자리를 놓고 싸우게 될 두 세력이 어떻게 새로운 현실을 타개해 나가게 될지는 미국인들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 사는 우리에게도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김덕호/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에모리대 사학과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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