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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신공항이 라디오를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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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4-1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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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정부 전파방해 이유로 라디오방송국 대거 폐쇄… 언론과 야당 “언론탄압일 뿐이다”

사진/라디오송신탑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이메투스산의 전경.
지난 3월27일 밤 그리스 정부는 66개의 라디오방송국에 팩스로 정부방침을 담은 공문을 발송했다. 내용은 ‘방송국 폐쇄’였다. <람시FM방송국>의 경영자인 요르고스 라니오스에 따르면 이날 밤 7시에 정부에서 방송을 중단시키겠다는 공문을 팩스로 받았고 약 세 시간 뒤에 방송이 중단됐다고 한다. 이날 밤 경찰은 이들 라디오방송국과 송신탑을 잇는 전기선을 완전히 절단했다. 그리고 진압경찰을 동원하여 라디오송신탑들이 들어서 있는 이메투스산의 입구를 봉쇄했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 이날 밤의 조처로 1987년 상업방송의 자유화조치 이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FM라디오방송국들이 하룻밤 만에 94개에서 28개로 줄어들고 말았다.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범죄”

언론협회와 야당의 항의를 무시하면서 라디오방송국들을 폐쇄한 정부는 바로 전날 문을 연 아테네 베니젤로스공항의 관제탑과 항공기간의 교신에 장애를 일으킬 우려가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라디오방송국을 폐쇄했다고 설명했다. 정부 대변인이자 공보부 장관인 디미트리스 레파스는 다음 날 언론 브리핑을 통해 “라디오방송국 폐쇄조치에는 합당한 기술적인 이유가 있으며 28개의 합법적인 방송국들은 국가방송위원회(ESR)의 공정한 심사를 거쳐서 계속 방송을 할 수 있게 허가를 준 상태”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폐쇄당한 라디오방송국의 경영자들과 야당의 주장인 ‘정치적인 음모설’을 해명하기라도 하듯, “28개 주파수가 선정된 것은 기술적이고 과학적인 연구의 결과이며 ‘정치적인 결정’과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언론탄압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공공의 이익(항공기의 안전)이 무엇보다도 우선한다”고 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정부의 이같은 조치는 하루아침에 갑자기 자신들의 라디오방송국을 폐쇄당한 언론인들과 야당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다. 그리스 최대 야당인 신민주당의 당수 코스타스 카라만리스는 이날 성명을 통해 정부의 처사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며 비난하고 나섰다. 또한 신민주당 소속으로 전 아테네 시장이며 화려한 경력의 정치인인 밀티아디스 에버트 의원은 필자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정부의 조치를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범죄”라고 강력한 어조로 비난했다. 그는 “누구도 방송이나 언론을 통제할 수 없으며 더구나 정부의 개입과 통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방송과 언론의 자유는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며 만약 불가피한 경우가 생긴다면 정부가 아니라 민간에서 선출된 조직을 통한 개입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밝혔다.

금전적인 이유도 깔려 있나

사진/라디오송신탑들이 집중된 이메투스산으로 가는 길목을 경찰들이 차단하고 있다.
정부가 내세운 이유인 폐쇄된 방송국의 라디오주파수들이 신공항관제탑과 항공기에 미치는 해악에 대해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그는 “현재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아테네산업대학의 전자학과 교수들에 의해서 진행중이며 그 결과가 나오는 대로 다시 새로운 방침을 세우겠다는 약속을 총리와의 면담에서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라디오방송국 폐쇄조치가 결정되기 전 정부관계자들에 의한 심도있는 연구는 전혀 진행된 바 없었으며 단지 이들의 개인적인 판단에 의해 결정된 측면이 크다”며 정부의 가벼운 정책결정을 강력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러나 라디오방송국 폐쇄의 정치적 음모설에 대한 질문에는 명확한 답변을 회피했다.

그러나 폐쇄된 FM라디오방송국의 경영자들은 이번 조치를 정치적인 음모로 규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친정부적인 라디오방송국에는 인가를 내주고 관계가 멀다든지 아니면 반정부적인 방송국들에는 불허방침과 함께 폐쇄결정을 내렸다고 보고 있다. 그 배경에는 약 1천개 가까이 되는 라디오방송국에서 단지 28개 방송국만이 정부의 용인 아래 지금도 계속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점을 들었다. 즉 선정기준의 투명성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리스 최대 일간지인 <에레프테리아>의 칼럼니스트인 데스피나 토마자니는 “라디오방송국 폐쇄조치의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엄청난 금전적인 이유’가 깔려 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사실 그동안 라디오방송국들은 광고를 통해서 엄청난 수익을 올려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광고수익의 나눠먹기식 구조로 100개 가까이나 되는 라디오방송국들이 유지되는 것에 대해 대형 라디오방송사들이 불만을 터뜨린 것도 사실이다. 이번 ‘방송국 정리’에서 살아남은 <플래시FM방송국>의 한 아나운서는 “87년 방송민영화 이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상업방송국들이 이번 신공항건설을 계기로 정리된 것은 오래 전에 벌써 이뤄졌어야 할 일이었다”면서 정부의 방침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살아남은 라디오방송들은 대부분이 TV방송사에서 직접 경영하거나 아니면 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대규모 방송국들이지만, 폐쇄된 방송국들은 대부분 소규모 영세방송국들이다. 그러나 그중 몇개의 방송국들은 시설면에서 최첨단 수준이면서도 방송주파수를 뺏긴 경우도 있다. <람시FM방송국>이 그중 하나다. 하루아침에 방송주파수와 수많은 청취자들을 잃어버리고 일거리를 뺏긴 <람시FM방송국>의 경영인인 요르고스 비니오스는 정부의 처사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막대한 자본을 유럽의 한 그룹에서 끌어들여 방송설비의 첨단화에 투자한 상태에서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는 현재 의회로 법원으로 매일 잃어버린 방송주파수를 되찾기 위해 뛰어다닌다. 그는 “그리스 정부를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상태이며 유럽법정에도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끝까지 빼앗긴 방송주파수를 되찾기 위해 싸울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에 덧붙여 “이미 방송국 인가를 오래 전에 신청해놓은 상태였고 방송국의 기술적인 수준이나 프로그램의 수준, 그리고 높은 청취율(일주일에 100만명)로 인해 방송중단이라는 사태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갑자기 실업자가 된 40명의 방송직원들의 앞날도 걱정이고 더욱 가슴 아픈 것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청취자들과의 단절”이라고 심경을 털어놓았다.

아테네 시민들의 반응도 다양하다. 여류시인인 엘레나 스테렝가리는 “대중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다. 이것이 라디오였기 때문에 시민들이 크게 반응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라디오방송국 폐쇄가 신공항의 레이더운용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라디오안테나들이 아테네 시내의 주거공간에서 전파를 발생시켜 많은 시민들의 건강을 해치는 것도 하나의 해악이라는 지적도 덧붙였다. 현재 라디오방송 주파수들이 일으키는 신공항관제탑과 항공기 사이의 교신장애에 대한 기술적인 문제는 학계나 정부관계자들 사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지금도 계속 연구되고 있는 문제다. 아테네 법대 학생인 밀로스 니콜라카키는 “이번의 사태가 진정으로 신공항 운영에 따른 항공기안전과 관련된 문제라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국가권력에 의한 ‘언론의 탄압’으로서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방송국 대표 집단행동에 무마책 내놓고…

<골드FM라디오>의 경우에 주파수를 잃으면서 그 방편으로 모색한 것이 인터넷방송으로의 전환이다. 주로 60∼70년대의 흘러간 팝송을 내보내는 이 라디오채널이 국가공권력에 의해 문을 닫아야 했던 것도 아이러니다. <람시FM방송국>의 경우도 주로 음악과 토크쇼 등의 오락성프로그램이 주를 이루었으며 뉴스프로그램이라고 해봐야 정치적인 논평없이 내보내는 소식전달 정도의 수준이었다. 소수의 방송채널을 뺀 대부분의 채널들도 스포츠뉴스나 중계, 대중음악, 클래식음악을 내보내는 정도의 상업방송들이었다.

주파수를 잃은 66개 방송국의 대표자들은 집단적으로 국가를 상대로 법적인 투쟁을 준비중이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66개 방송국 대표자들의 집단행동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35개의 방송국으로 인가 수를 늘린다는 무마책도 언론을 통해서 흘리는 중이다. 이들 방송관계자들은 행여나 하는 심정으로 현재 정부에 대한 극단적인 공세는 자제하는 편이다. <람시FM방송국>의 비니오스는 “현재로서는 유럽연합을 통해 정부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는 방법과 정부의 양보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법적인 대응도 몇년씩 걸린다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대응수단은 되지 못한다”고 앞으로의 대책을 밝혔다.

최근에 일어난 라디오방송국 폐쇄사태가 항공기안전과 관련된 문제인지 아니면 또다른 배경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조만간 전파전문가들의 연구에 의해서 이에 대한 논란이 정리될 예정이지만, 정부가 신공항청사의 건설을 시작했던 4년 전부터 전파방해 문제에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다가 갑자기 신공항청사가 문을 열자마자 라디오방송국들을 폐쇄시킨 데 대해서는 ‘언론에 대한 정부의 통제’라는 의혹을 살 만하며 이에 대한 물질적인 손실은 정부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시민들의 반응이다.

아테네= 하영식 통신원 youngsig@otenet.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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