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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생존을 위한 이민자들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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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4-1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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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각국의 이민자들로 북적대는 상파울루… 한국 의류상 착취에 볼리비아인들 불만 터뜨려

사진/상파울루에서 수공예품을 팔고 있는 페루 출신 노점상. 근래 10여년 사이에 5만평 이상의 페루인들이 브라질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열대의 나라 브라질의 겨울은 매우 짧다. 6월에서 7월 사이, 영상 15도 정도까지 온도가 내려가는데 대개 실내에 난방시설이 없기 때문에 제법 춥다고 느끼게 된다. 두달이 채 안 되는 겨울이 되면 일년 내내 비슷하게 더운 날씨에 민소매, 짧은 바지차림이 지겨웠던 브라질 아가씨들은 긴 코트, 긴 부츠에 털장갑, 털모자까지 동원해 겨울 패션을 한껏 즐긴다.

최근 몇년 사이 겨울철 옷차림 중에서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페루의 안데스 지방이 산지인 털실로 짠 스웨터와 같은 질감의 재료로 만드는 가방, 모자 따위이다. 상파울루 시내 어디에 가도 겨울철에는 페루산 털실 제품, 은으로 만든 목걸이, 귀걸이 등 여성용 장신구와 담뱃대, 라이터 주머니 같은 수공예품을 길거리에 늘어놓고 파는 페루인 노점상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볼리비아→페루


근래 10여년 사이에 5만명 이상의 페루인들이 브라질, 그중에서도 특히 상파울루시에 와서 정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상파울루 구시가지의 일부인 ‘25 지 마르소’ 도매상 거리는 같은 남미의 페루, 볼리비아, 에콰도르, 파라과이, 아시아의 중국과 한국, 아프리카의 옛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앙골라, 모잠비크 등지에서 온 이민들이 북적대는 인종 집합소다. 이 거리에 모이는 노점상이 약 4천여명이고 이중 절반 이상이 외국 이민자라고 추산된다. 페루에서 오는 노점상들은 고향에서 직접 물건을 들고 오기도 하지만 점차 현지생산을 하는 추세에 있다. 보통 대여섯명씩, 많게는 열명이 시내의 허름한 호텔이나 아파트 방 하나에 세들어 살면서 숙소 안에 가내수공업 규모의 작업소를 차려놓고 페루에서 가져온 색색가지 돌과 은붙이로 팔찌, 목걸이, 귀걸이들을 1개당 0.02센트의 수공비를 들여 만든다. 25 지 마르소 거리의 한 페루상인은 “우리가 만드는 상품은 세밀한 손길이 많이 가는 고급 수공예품이다. 중국에서 들여오는 물건들하고는 질적으로 다르다”라고 설명한다.

페루 출신 노점상으로 출발해 큰돈을 모아 유명해진 사람도 있다. ‘안데스 센트럴’이라는 상점의 주인 다리오 후안카요가 그 예이다. 브라질과 페루, 볼리비아를 돌아다니며 공부하기 싫어하는 대학생들을 상대로 학사 졸업논문을 밀매하던 그는 페루에서 만든 냉장고 문에 붙이는 자석 장식품이 브라질에서 만든 것이나 중국산보다 예쁘고 값이 싸서 주부들에게 인기가 좋다는 것을 발견했다. 몇번의 보따리장사 여행으로 돈을 모았을 때 마침 외환위기가 닥쳐 브라질 헤알화의 가치가 절반으로 내려가자 후안카요는 이재에 밝은 사업가답게 결단을 내려 현지 생산을 추진했다. 냉장고 자석 외에 브라질에서 잘 팔릴 만한 페루 수공예품 아이템을 들여와 시 변두리에 무허가 공장을 차리고 대량생산을 시작하여 이제는 상당한 재력을 쌓았고 아직도 무허가지만 작업실도 여러 개로 늘렸다. 페루 사람들 사이에서 그의 별명은 ‘냉장고 자석장식품의 왕’이다.

브라질에 와서 노점상을 하는 많은 페루인들은 대부분 쿠스코 지방 출신이다. 십여년이 넘게 계속됐던 페루의 내전이 90년대 후반부터 가라앉고 쿠스코가 관광도시로 개발되면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공예품 산업이 급속도로 번창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수공예품 시장이 국내 소비로는 한계에 다다르자 브라질로 수출의 활로를 개척한 것이다.

페루 사람들 전에는 볼리비아 사람들이, 볼리비아인 이전에는 한국인 이민자들이 있었다. 1963년에 치차렝가호를 타고 온 100여 세대가 처음으로 브라질 이민의 길을 연 이래 현재는 약 4만명 정도의 한국인들이 상파울루시에 살고 있다. 전쟁 직후의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피난민들로 인해 인구는 늘어나고 취업이 어렵던 60년대 한국 정부는 인구문제와 실업난도 해소하고 외국 이민자들이 송금하는 외화를 획득하는 것을 목적으로, 브라질 정부와 손을 잡고 이민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브라질로 온 초기 한국 이민들은 한국쪽의 기대와도, 브라질 정부에서 바라던 바와도 다른 길을 걸었다. 그들은 한국에 다시 돌아갈 생각으로 떠난 이민이 아니었기에 고향의 가족에게 보내는 송금이 없었다. 또 대부분 중산층 도시 배경을 갖고 있던 한국인 이민자들은 브라질 정부가 원했던 농장 경영을 할 조건을 갖추지 못했고 농업 이민으로 삶의 터전을 다지려는 의지도 없었다.

‘바느질집’에서 의류시장으로 진출한 한국인

사진/한국 이민자들은 볼리비아인들을 싼값에 고용하며 유대인과 이탈리아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던 봉제시장에 진출했다.
따라서 몇 차례에 걸친 한국인 농업 이민은 시행착오로 판단됐고 브라질 정부는 한국인 이민한테 문을 닫았다. 농장을 떠난 한국인들은 대도시 상파울루에 와서 행상으로부터 시작해 한 세대 전 이민자들인 유대인과 이탈리아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던 봉제시장에 진출했다.

70년대 초반부터는 파라과이를 통해서 불법으로 입국한 한국인 이민자들이 이 대열에 합류했다. 한국인들이 가족 노동력을 총동원해 낮밤을 가리지 않고 재봉틀을 돌리고 바느질을 해대던 시절과 브라질의 서민 의류소비시장이 크게 늘어나던 시기가 맞아떨어지면서 많은 한국인 이민들은 단시일 안에 소규모 경영 자본을 손에 쥐었다. 마침내 1982년에 브라질 정부가 불법이민자들에게 사면령을 내리자 당시 ‘한국인촌’으로 불리던 시 중심가 빈촌의 무허가 작업실을 떠나 지금의 의류도매상 거리인 봉헤치로와 브라스 등지에다 가게를 열기 시작했다.

80년대는 볼리비아경제가 계속 불황을 겪고 라 파스와 엘 알토에서 봉제업에 종사하던 인력들이 대거 브라질로 이주한 시기였다. 현재 약 15만명의 볼리비아인들이 브라질 의류시장에 제품을 대는 ‘바느질집’을 하면서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서 하루 16시간 노동으로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상파울루시 도매의류업계에서 40% 정도의 업소가 한국인 소유이다보니 한국인 가게에서 하청을 받는 볼리비아 바느질집이 많다.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불법체류 상황을 이용해 싼값에 노동력을 갈취했던 한국인들에 대한 원성이 한처럼 뿌리깊게 박혀 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브라질로 이주한 1세대 이민들인 한국인과 볼리비아인 사이의 이런 불미스런 관계는 브라질 언론매체에서도 심심하면 한번씩 다루는 주제이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해 11월 헤코르지 TV채널의 한 프로그램에서 볼리비아 이민자들을 다루었다. 인터뷰에 나온 볼리비아 사람들은, 한국인들은 영주권이 없어 권리 주장을 못하는 자신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옷 한벌 값으로 몇센트에 불과한 돈밖에 지불하지 않았던 나쁜 놈들이라고 입을 모아 성토했다. 이런 프로그램에는 꼭 양념처럼 포르투갈어를 잘 못하는 한국인의 인터뷰를 등장시켜 귀에 거슬리는 서툰 외국인 억양으로 “볼리비아, 일 안 해요, 게을러요, 우리 한국, 일 많이 해요, 부지런해요” 어쩌고저쩌고 말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98년 브라질 정부가 다시 내린 사면령으로 많은 볼리비아인들도 합법적인 체류 자격과 노동권을 갖고 의류제품시장에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한 신문 인터뷰에서 볼리비아 봉제업자는 “브라질 사람들로부터 하청받는 일이 제일 좋다. 브라질인들은 가격도 잘 쳐주고 우리를 사람 대접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국인들을 증오한다. 제일 지독한 건 먼저 온 볼리비아인들인데 그들은 말이 통한답시고 새로 온 이민자들에게 접근해 지능적으로 이용한다”며 허탈해 했다.

최근 상파울루의 브라질인 노점상들은 속절없이 늘어가는 외국인 노점상들에게 더이상 생업의 터전을 빼앗길 수 없다면서 정부당국에 외국인들의 영업을 제한해달라고 촉구했다. 노점상협회의 비아나 노르게이라 회장 명의로 상파울루 시정부에 제출한 청원서에 따르면 98년에서 99년 사이에 등록된 시내의 노점상은 2만2천명이고 그중 외국인 노점상들의 숫자는 2%에 불과했다. 최근의 통계자료는 없으나 현재 가장 많은 노점상들이 모이는 25 지 마르소 거리에서 노점상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인 것으로 보고 있다.

노점상 협회에서는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한국인과 중국인들이라면서 “이들은 같은 나라 사람들로부터 싼값에 물건을 들여오는 것 같다. 가격경쟁으로 도저히 당할 수가 없다. 새벽부터 나와서 남의 자리를 차지하기 일쑤고 노점상들 사이에 있는 규범이라는 걸 존중하지 않는다”고 분개했다.

규제보다는 조직화·합법화 필요

외국인 이민자들은 왜 이렇게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인간 한계의 노동조건을 견뎌야 하는 브라질 이민을 선택하는 것일까. 최근 <세상은 넓고도 희한한 곳-안데스에서 상파울루까지>라는 책을 통해 페루와 남미 이웃나라 이민자들의 생활을 그려보인 알비노 루이스 라조는 그 자신이 페루에서 브라질로 온 이민자이다. 그는 어찌됐든간에 이민을 통해서 한 세대만 고생하면 적어도 자식들에게는 고향땅에서 줄 수 있는 것보다 나은 생활조건을 마련해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루이스 라조는 이민자들이 누구도 원하지 않는, 품값 싸고 위험하고 힘든 노동에 종사하기 때문에 결코 본국인들이 선호하는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민은 브라질경제가 그만한 흡수력을 갖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인력의 유입이라는 것이다. 그는 불법외국인 노동자가 계속 들어오는 나라의 정부는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이민의 흐름을 막기보다는 경제성장에 보탬이 되도록 이를 합법화·조직화하고, 장기적으로는 문화의 다원성을 키워주도록 하는 현명한 대응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상파울루=오진영 통신원 ohnong@ig.com.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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