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재판 회부를 놓고 정부 내 이견대립… 극단적으로 자존심 강한 그가 법정에 선다면
90년대 발칸을 주무르며 스스로를 ‘세르비아의 호메이니’라 불렀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59)가 드디어 체포됐다. 이로써 세르비아는 다시 역사의 새로운 한장을 넘겼다. 권력남용과 부패, 정적암살 기도 등 그에게 걸린 죄목만으로도 최장 15년 징역형이 가능하다. 게다가 헤이그 전범재판소 법정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1999년 코소보전쟁 당시 그가 주도한 인종청소 혐의 탓이다. 그가 헤이그법정에 서게 되면, 보스니아 내전에서의 범죄행위도 덧붙여질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헤이그법정에 설 가능성은 현재로선 크지 않다. 코슈투니차 유고연방대통령이 밀로셰비치의 헤이그행을 반대하는 상황이다. 밀로셰비치 체포 이후 세르비아의 기상도는 긴장상태다. 밀로셰비치가 지닌 정치지분 때문이다. 세르비아에는 극단적 민족주의 성향의 유권자들이 30%쯤 있다. 일단 경제가 제대로 안 풀린다면, 바로 이들 때문에 정치불안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씻을 수 없는 죄악, 발칸전쟁증후군
밀로셰비치가 벨그라드 중앙교도소에 갇힌 4월1일은 세르비아에서도 만우절로 여기는 날이다. 그래서 벨그라드 시민들 가운데 일부는 밀로셰비치 체포 소식을 듣고도 만우절 농담쯤으로 곧이 듣지 않으려는 이들도 있었다는 소식이다. 지난 13년 동안 세르비아인들의 정치정서에 밀로셰비치가 절대권력자로 군림해온 탓이다. 실제로 밀로셰비치는 스스로를 “세르비아의 호메이니”로 부르기도 했다. 90년대 내내 발칸에서 그가 주도한 피가 피를 부르는 잇단 전쟁은 세르비아의 호메이니에게 ‘발칸의 도살자’라는 악명을 안겨 주었다. 극단적 세르비아민족주의에 바탕을 두고, 세르비아계가 유고연방 탈퇴를 바라는 크로아티아-보스니아-코소보인들을 상대로 잇따라 치른 90년대 발칸전쟁은 모두 합쳐 20만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필자가 보기에, 밀로셰비치는 이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의 정신세계에 지울 수 없는 전쟁의 상처를 남겨놓았다. 이름하여 발칸전쟁증후군이다. 올해 들어 새삼 논란이 벌어졌던 열화우라늄탄 피해 후유증과는 다른 차원의 후유증이다. 필자가 지난 99년 6월과 12월, 그리고 2000년 6월 코소보에 갔을 때마다 겪고 느낀 일이지만, 코소보 청소년들은 나름대로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끔찍한 기억들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코소보전쟁 1년 뒤 코소보 서부 산간마을, 교실이라곤 하나밖에 없어 3부제를 하는 학교에서 만난 시골아이들. 그들은 맑은 눈망울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선생님과 둘러앉아 코소보전쟁 때 겪은 체험들을 말하는 순간 아이들은 감정에 북받쳐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그 시골 아이들에게 밀로셰비치는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새겨져 있지 못할 것이다.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에서 만난 20대 택시 운전기사, 몬테네그로의 난민수용소에서 만난 어린아이들도 밀로셰비치를 향해 거침없이 욕을 해댔다. 그들에게 밀로셰비치는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의 어린 삶을 바꾸어버린 존재로 다가섰을 것이다. 그렇게 철권을 휘둘렀던 밀로셰비치에게 따르는 혐의는 권력남용과 부패, 그리고 정적 암살기도 등이다. 이런 범죄들이 유죄로 판결날 경우 15년 징역형까지 예상이 가능하다. 구체적으로 세르비아남부 보르 광산에서 나는 금괴를 스위스로 밀반출해 그 매각대금을 그리스와 사이프러스 비밀계좌를 통해 관리하면서, 1억9700만도이치마르크와 17억디나르에 이르는 공금을 빼돌린 혐의다. 전 관세청장 미할리 케르테스, 전 부총리 콜라 사이노비치, 전 부총리 조반 제비치, 전 비밀경찰 총수 라데 마르코비치 등 4명의 측근들은 밀로셰비치 체포에 앞서 수감됐다. 특히 비밀경찰 총수 마르코비치는 지난 99년 야당정치인 부크 드라스코비치를 교통사고를 가장해 죽이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같은 차에 타고 있던 4명의 측근이 죽었지만, 드리스코비치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한때 밀로셰비치 편이었다가 비판자로 돌아선 신문편집인 슬라브코 쿠루비야 암살사건(1999년)에는 밀로셰비치도 가담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밖에 지난해 9월의 대선의 결과를 조작한 혐의와 관련, 5명의 연방선관위원들이 법정에 설 예정이다. ‘밀로셰비치 향수’ 떠오를 수도
지난 3월 하순 세르비아의 조란 진지치 총리가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부시 행정부는 밀로셰비치를 3월31일까지 체포하지 않을 경우 이미 지출하기로 미 의회에서 결의한 1억달러의 대 세르비아 원조를 내줄 수 없다고 못박았다. 뿐만 아니라,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의 금융원조를 봉쇄하겠다는 압력을 가한 바 있다. 이같은 압력은 진지치 총리를 겨냥한 것이라기보다는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 유고연방대통령을 겨냥한 것이었다. 진지치는 진작부터 밀로셰비치를 국제전범재판소에 세워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온 반면, 코슈투니차는 ‘헤이그는 정치법정’이라며 밀로셰비치를 넘겨줄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해왔다. 따라서 이번 밀로셰비치 체포는 진지치-코슈투니차 둘의 타협의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 당장 시급한 세르비아경제 재건을 위해 경제원조가 필요한 만큼 밀로셰비치를 체포는 하되, 헤이그법정에 세우지는 않는다는 타협안이다. 코슈투니차가 보수적인 민족주의자라면, 진지치 총리는 실용주의자다. 부시 행정부는 밀로셰비치를 헤이그에 넘기는 데 협조하지 않을 경우 추가적인 경제지원에 제동을 걸겠다는 입장이다. IMF에서 지원할 것으로 거론되는 2억6천만달러의 지불도 미국이 압력을 가하면 틀어지게 마련이다.
밀로셰비치라는 정치적 장애물을 제거한 벨그라드정권에 장밋빛 내일이 확실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경제다. 밀로셰비치 구속이란 미끼를 달았던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경제원조 약발이 떨어지고, 사회주의적 경제구조를 돈줄을 대는 서방국가들이 요구하는 글로벌경제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공기업 구조조정이 강행될 경우 실업률은 올라가고 불만도 따라 높아갈 것이다. 서방경제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만큼 세르비아경제도 장기적으로 그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런 경제불안으로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가면, 극단적 민족주의세력들이 이를 미국과 서유럽 탓이라 선전하면서 반미, 반서방 정서를 부추길 것이다. 그럴 경우 마치 우리의 ‘박정희 향수’ 같은 복고풍의 ‘밀로셰비치 향수’가 벨그라드정권을 옥죄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비록 민중혁명으로 나락의 신세가 됐지만, 밀로셰비치는 나름의 일정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다. 이름하여 강성 세르비아민족주의(Serbian Ultranationalism)다. 지난 12·23총선에서 유권자의 30%는 밀로셰비치의 사회당, 보이슬라브 세세이의 세르비아급진당, 그리고 세르비아통합당에 지지표를 던졌다.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 유고연방대통령과 정치적 노선을 같이하는 18개 정당연합 세르비아민주야당(DOS)이 250석 가운데 176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었지만, 30%의 유권자는 크게 보아 여전히 밀로셰비치 편이라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이 선거결과는 밀로셰비치의 헤이그 전범재판소 회부와 관련해 최근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나온 반대 31%와 일치한다(찬성 56%). 이번 밀로셰비치 연행과정에서 그의 집앞에 몰려든 300여명 지지자들은 극단적 세르비아민족주의자 집단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 가운데는 보스니아내전 그리고 코소보전쟁 당시 ‘흰 독수리’, ‘호랑이’ 등 민병대원으로 인종청소와 약탈 강간에 가담한 자들도 있다.
“내가 아니라 세르비아인들을 위해서다”
필자가 보는 밀로셰비치의 최후는 자살이다. 그는 심리학적으로 극단적으로 자존심이 강한 사람(egomaniacs)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밀로셰비치가 법정에서 자신의 명예에 걸린 이런저런 죄목을 놓고 입씨름을 하는 구차한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함께 구속된 측근들이 “그의 지시를 받아 나는 집행했을 따름이요”라는 식으로 떠넘기는 모습을 보는 것도 그로서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일 것이다. 법정에 선다면, 그는 자신의 권력남용 부패혐의를 부인하면서 “서방의 경제제재를 이겨내고자 편법으로 그렇게 한 것”이라 주장할 것이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르비아인들을 위해 그런 편법을 저질렀다”고 강변할 것이다. 밀로셰비치가 인내심을 갖고 법정투쟁을 벌일 것인지, 아니면 필자의 추측대로 자결쪽을 택할 것인지 두고볼 일이다.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사진/유고연방의회. (SYGMA)
필자가 보기에, 밀로셰비치는 이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의 정신세계에 지울 수 없는 전쟁의 상처를 남겨놓았다. 이름하여 발칸전쟁증후군이다. 올해 들어 새삼 논란이 벌어졌던 열화우라늄탄 피해 후유증과는 다른 차원의 후유증이다. 필자가 지난 99년 6월과 12월, 그리고 2000년 6월 코소보에 갔을 때마다 겪고 느낀 일이지만, 코소보 청소년들은 나름대로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끔찍한 기억들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코소보전쟁 1년 뒤 코소보 서부 산간마을, 교실이라곤 하나밖에 없어 3부제를 하는 학교에서 만난 시골아이들. 그들은 맑은 눈망울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선생님과 둘러앉아 코소보전쟁 때 겪은 체험들을 말하는 순간 아이들은 감정에 북받쳐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그 시골 아이들에게 밀로셰비치는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새겨져 있지 못할 것이다.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에서 만난 20대 택시 운전기사, 몬테네그로의 난민수용소에서 만난 어린아이들도 밀로셰비치를 향해 거침없이 욕을 해댔다. 그들에게 밀로셰비치는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의 어린 삶을 바꾸어버린 존재로 다가섰을 것이다. 그렇게 철권을 휘둘렀던 밀로셰비치에게 따르는 혐의는 권력남용과 부패, 그리고 정적 암살기도 등이다. 이런 범죄들이 유죄로 판결날 경우 15년 징역형까지 예상이 가능하다. 구체적으로 세르비아남부 보르 광산에서 나는 금괴를 스위스로 밀반출해 그 매각대금을 그리스와 사이프러스 비밀계좌를 통해 관리하면서, 1억9700만도이치마르크와 17억디나르에 이르는 공금을 빼돌린 혐의다. 전 관세청장 미할리 케르테스, 전 부총리 콜라 사이노비치, 전 부총리 조반 제비치, 전 비밀경찰 총수 라데 마르코비치 등 4명의 측근들은 밀로셰비치 체포에 앞서 수감됐다. 특히 비밀경찰 총수 마르코비치는 지난 99년 야당정치인 부크 드라스코비치를 교통사고를 가장해 죽이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같은 차에 타고 있던 4명의 측근이 죽었지만, 드리스코비치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한때 밀로셰비치 편이었다가 비판자로 돌아선 신문편집인 슬라브코 쿠루비야 암살사건(1999년)에는 밀로셰비치도 가담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밖에 지난해 9월의 대선의 결과를 조작한 혐의와 관련, 5명의 연방선관위원들이 법정에 설 예정이다. ‘밀로셰비치 향수’ 떠오를 수도

사진/지난 총선에서 유권자의 30%는 극우 민족주의당에 표를 던졌다. 승용차로 연행되고 있는 밀로셰비치. 그가 헤이그법정에 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