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들이 수상하다. 그 동선이 심상치 않다.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총총히 움직인다. 자신들이 바라지 않던 선거 결과 탓이다. ‘별 중의 별’ 쁘렘 띤술라논다 장군이 다시 나섰다. 국왕의 입 노릇을 하는 추밀원장에다 군인들의 정신적 지주인 쁘렘 장군은 12월23일 밤, 선거가 끝나자마자 반한 실라파아차 찻타이당 총재와 수윗 쿤끼띠 쁘애빤딘당 총재를 집으로 불렀다. 2006년 9월19일 쿠데타의 막후 조정자로 의심받아온 쁘렘 장군이 만난 두 당 총재는 단독정부 구성에 실패한 제1당 피플파워당(PPP)과 제2당 민주당(DP) 사이에서 새 정부 선택권을 지닌 인물들이다. 비밀스런 만남이었고, 무슨 말이 오고갔는지 아는 이가 없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수상스런 ‘별들의 속삭임’ 같은 날 밤, 9·19 쿠데타를 주도한 현 부총리 손티 분야랏까린 장군도 급히 쁘렘 장군 집을 찾았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12월26일, 쁘렘 장군은 자신의 집에서 총리인 수라윳 출라논 장군과 손티 장군, 합참의장 분스랑 니엠쁘라딧 장군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쁘렘 장군은 ‘화합’을 강조했다고 한다. 공식적으로는. 같은 날 저녁, 육군본부에서 별들이 또 모였다. 손티 장군과 그 후임 육군참모총장 아누뽕 빠오진다 장군이 군 지휘관들을 불러모았다. 출라촘끄라오 왕립사관학교 동창 모임이라고 했다. 공식적으로는. 이어 12월28일, 다시 군 최고지휘관들이 쁘렘 장군 집으로 몰려들 것이다. 이건 해마다 공식적으로 벌어지는 신년 하례식이지만, 시절이 시절인 만큼 군의 충성과 단결을 과시하며, 어떤 형태로든 정치판을 향해 ‘경고장’을 날릴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군부가 원치 않았던 선거 결과와 그에 따른 군부 움직임을 놓고 타이 사회에서는 벌써부터 말들이 많다. 정치·군사 전문가들은 저마다 군부와 PPP가 구성할 새 정부 사이의 마찰을 예견하면서 또 다른 쿠데타 가능성을 입에 올리고 있다. 실제로 지난 1932년 입헌군주제 도입 이후 지금까지 스무 번도 넘는 크고 작은 군사 쿠데타로 얼룩져온 타이 현대사를 보면 그 가능성은 늘 열려 있는 셈이다. 게다가 PPP와 군부 쪽에서도 이미 힘겨루기가 시작된 기운이다. [%%IMAGE5%%] 선거 결과가 나오자마자 PPP 총재이며 차기 총리로 유력한 사막 순다라웻은 “쿠데타는 죽었다”고 외쳤다. 그러나 군부 쪽도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았다. “새 정부가 군대를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 정직하게 말해, 우리는 권력이 PPP로 가더라도 결코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국방장관 분라웃 솜타스 장군은 가슴에 담긴 말을 뱉어냈다. “만약 새 정부가 나를 해임한다면 받아들일 것이다. 새 정부는 법에 따라 그렇게 할 수 있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군을 동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육군참모총장 아누뽕 장군은 좀더 ‘기술적’인 엄포를 날렸다. “우리는 PPP가 새 정부를 구성할 좋은 기회를 맞고 있지만, 그렇다고 민주당이 아직 기회를 잃었다고 평가하지는 않는다.” 합참의장 분스랑 장군은 선거 결과를 군이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경고를 띄운 셈이다. 분스랑 장군의 말은 쁘렘 장군이 군 최고지도자들과 정당 총재들을 만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흘려들을 수 없다. 그동안 정치 분석가들은 9·19 쿠데타를 정치성 없는 군인들의 상황- 군주의 입장을 대변하는- 에 밀린 ‘울며 겨자 먹기’식 도발로 보았다. 따라서 정치적 입장과 의제 설정을 놓고 볼 때 쿠데타 주동자들을 별로 영리하지 못한 이들로 판단해왔다. 실제로 9·19 쿠데타는 이전 쿠데타들과 달리 주동 군인들의 정치적 야망이 드러나지 않는 좀 별난 경우였다. 쿠데타를 주도한 손티 장군은 처음부터 스스로 “총리 자격도 없고 의지도 없다”는 말을 줄기차게 강조해왔고, 결국 2007년 9월 말 육군참모총장에서 정년퇴임한 뒤 현 과도정부에서 부총리를 하면서 내일이 없는 길을 가고 있다. 비록 손티 장군이 지난여름 정년을 앞두고 정치적 야망을 드러내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결국 혁명기구인 국가안보평의회(CNS) 의장직까지 사임하면서 순조롭게 ‘빠져나가는’ 모양을 취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후임 육군참모총장으로 유력했던 강경파 사쁘랑 장군을 한직인 국방부 상임 부비서로 돌리고 대신 온건파로 알려진 아누뽕 장군을 임명하는 한편, 국가안보평의회 의장에는 공군참모총장 찰릿 장군을 임명하면서 쿠데타 주동세력들의 힘을 분산시켰다. 영리한 군인들의 두 가지 안전장치 말하자면, 지난 15개월 동안 쿠데타 세력들은 아무것도 한 일 없이 쿠데타 원죄에서 벗어날 궁리만 한 것처럼 비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군인들은 ‘혁명과업’으로 내걸었던 부정부패 척결도 사회통합도 모조리 실패했다. 부정부패 핵심으로 지목해온 탁신 친나왓 전 총리와 그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단 한 명의 공직자나 정치가도 법정에 세우지 못했다. 그 사이, 사회통합도 물 건너갔다. ‘반탁신’ 대 ‘친탁신’으로 갈라진 정치구조는 더 악질로 변했고, 북부-북동부와 남부로 나뉜 사회구조는 더 깊이 파였고, 남부 무슬림 분리주의 분쟁은 해결불능 상태로 빠져들었다. [%%IMAGE6%%] 그러나 드러난 현상과 달리 군인들은 매우 이기적이고 영리했다. 적어도 군부와 자신들의 이문을 챙기는 지점에서만은 매우 정교했다. 군부는 지난 15개월 동안 두 가지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하나는 국가보안법(ISA)으로, 군이 국가 안보를 내걸고 사회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이 법에 따라 군은 시민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치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군사전문가인 수라찻 출라롱콘대학 교수의 말마따나 “국가보안법으로 군은 국가 안의 국가가 된 셈”이다. 다른 하나는 재산조사위원회(ASC)다. 이는 탁신 전 총리를 타격 목표로 하여 설치한 조직인데, 추후 예상되는 탁신의 정치적 복귀에 제동을 걸 수 있는 효과적인 장치다. PPP 총재인 사막은 차기 정부를 구성하면 이 재산조사위원회를 폐기하겠다고 주장해온 터라, 군과 정치가 직접적인 충돌을 일으킬 지점으로 보인다. 군은 이미 재산조사위원회를 보호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맞받아쳤다. 아무도 점검할 수 없는 증액 예산 이렇듯 군부는 지난 15개월 동안 자신들을 위한 안전장치 확보뿐만 아니라 군 예산의 대폭 증액을 통해 실질적으로 빛나는 이문을 남겼다. 2006년 860억밧(약 26억달러)이던 군 예산을 쿠데타 뒤인 2007년 무려 33%나 증액한 1150억밧(약 34억달러)으로, 그리고 다시 2008년 예산에서 24.3% 증액한 1430억밧(약 43억달러)으로 올렸다. 군부는 9·19 쿠데타를 일으킨 뒤 곧장 비상자금으로 1억5260만밧(약 460만달러)을 끌어다 쓰기도 했다. 계엄령 아래 군이 집행한 이 자금은 아무도 점검할 수 없는 금역이었다. 덧붙여 군부는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1.5%를 차지하는 군 예산을 2008~2018 회계연도의 첫 5년 동안 GDP 1.8%로, 그리고 나머지 5년 동안 2%로 상향하도록 차기 정부에 요구한 상태다. 돈줄이 트인 군부는 2007년 9월 우크라이나에서 말썽 많은 경장갑차(BTR-3E1) 96대, 이스라엘에서 자동화기 그리고 중국에서 지대지 미사일 구매를 결정했고, 이어 10월에는 스웨덴에서 전투기(Saab Gripen) 12대와 조기경보기(AWE) 2대를 11억달러에 구입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군사전문가들은 타이 군이 구입한 무기들이 대부분 불필요한 것으로 진단해왔다. 특히 12월 초 푸미폰 국왕이 잠수함에 의문을 제기했던 것처럼. [%%IMAGE7%%] 결국 9·19 쿠데타로 군은 1997년 경제위기 때부터 거의 동결됐던 예산을 마음껏 늘려 충분한 재원을 확보했고, 국가보안법으로 정치 개입의 길을 트며 생존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게다가 1992년 쿠데타 이후 더 이상 쿠데타가 없을 것이라던 모든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15년 만에 다시 잠자던 쿠데타 ‘전통’을 일으켜세움으로써 군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정치판을 다시 뒤엎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군이 정치판을 향한 강력한 경고장을 띄워놓았다는 뜻이다. 따라서 군과 PPP 정부 사이에 상당 기간 긴장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지만, 사회통합이라는 시급한 과제를 안고 있는 PPP 정부가 보복을 통해 군을 자극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구나 쿠데타 주도세력들은 이미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둔 채, 2008년을 기점으로 모두 정년퇴직을 하면서 9·19 쿠데타의 책임선상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나는 구조를 만들어놓았다. 돈만 넘친다면야… 이런 상황들을 놓고 볼 때, 현재 방콕의 군사·정치 전문가들 사이에 나도는 제2 쿠데타 발발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진다. 그리고 9·19 쿠데타에서 보았듯이 21세기판 타이 군사 쿠데타는 20세기 그것들과 달리 정치적 야망을 좇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군인들이 권력을 넘어선 금력의 정체, 그 자본주의 정치철학에 눈을 뜬 탓이다. 돈만 넘친다면 목숨 걸고 뛰쳐나가야 하는 쿠데타 같은 짓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게 바로 타이 정치가 넘어야 할 21세기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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