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언제나 ‘신입’ 사원 먼저 ‘바비인형’이다. 노동위원회는 지난 11월 초 중국 선전경제특구에 자리한 신위플라스틱 공장에 대한 실태조사 내용을 담은 ‘불행한 인형’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내놨다. 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바비인형과 텔레비전 시리즈로 인기를 모은 ‘토머스와 친구들’에 등장하는 기차 인형 등이다. 생산한 장난감은 세계 최대 완구업체인 매텔과 월마트, 맥도널드 등에 납품됐다. 노동위원회는 신위 공장 노동자들의 고용상태에 주목했다. 이 공장에서 일하는 5천여 노동자의 95%는 비정규직이다. 고용 계약 기간은 짧게는 하루에서 열흘, 한 달씩이며, 최대 고용 계약 기간도 석 달에 불과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정규직 노동자 860만 명’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친숙한 내용이다. 보고서의 지적을 보자. “노동자들은 언제나 ‘신입’ 사원이다. 따라서 아무런 법적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다. 중국 노동법상 임시직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근로계약을 지속적으로 갱신해 정규직에게 적용되는 법적 권리를 일부러 피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 행위다. 초단기 근로계약을 맺은 신위 공장 노동자들은 의료보험과 상해연금, 유급휴가와 출산휴가 등 법이 보장하는 어떤 혜택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고, 해고수당이나 퇴직금 따위도 있을 리 만무하다.” 신위 공장이 가장 바쁘게 돌아가는 건 여름철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해 장난감 생산량을 대폭 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면 방학을 맞은 인근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대거 노동자로 변신한다. 노동위원회는 “지난여름에도 이 공장에선 1천여 명의 청소년을 고용했다”고 밝혔다. 방학을 마친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가는 9월은 비수기의 시작이다. 지난 9월 말 현재 이 공장에선 하루 평균 10명의 노동자를 해고하고 있단다. 노동위원회는 보고서에서 “매텔은 자사 대표 상품인 바비인형의 상표권 보호를 위해 세계 각지에서 한 달에 한 번꼴로 소송을 벌이고 있지만, 정작 바비인형을 만들어내는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선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주여, 저희를 긍휼히 여기소서. 이러다 과로사하겠나이다.” 노동위원회가 11월 하순 내놓은 두 번째 보고서는 예기치 않은 파장을 불렀다. 미 뉴욕을 대표하는 교회인 성 패트릭 성당과 트리니티 교회에서 판매하는 십자가 등 ‘성물’이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고통받는 중국 노동자들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것이란 폭로 때문이었다. 법정 초과근무시간의 5배 넘어 [%%IMAGE5%%] 논란을 부른 공장은 중국 광둥성 동관 지역에 있다. 이 공장 노동자의 대부분은 여성으로, 15~16살 청소년도 다수 포함돼 있다는 게 노동위원회의 지적이다. 이들의 하루 평균 노동 시간은 14~15시간, 아침 8시에 시작해 밤 10시~11시30분에 일을 마치는 게 일상이다. 일이 몰릴 때면 하루 18~19시간씩 일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럴 때면 새벽 2~3시까지 일한 뒤에도 이른 아침에 다시 고된 일과를 시작해야 한다. 납품 기한이 다가오면 ‘밤샘 노동’도 필수다. 아침 8시에 시작된 일과가 이튿날 아침 6시~9시30분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정해진 휴일은 없다. 일주일에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휴일 없이 몇 달을 보내기도 한다. 노동위원회는 “노동자들의 일주일 평균 노동 시간은 100시간을 훌쩍 넘고,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강제 초과근무”라며 “이 공장의 초과근무 시간은 중국의 법정 초과근무 시간의 5배가 넘는다”고 지적했다. 초과근무는 강제 조항이며, 초과근무를 하지 않을 경우 하루치 품삯이 벌금으로 부과된다. 노동위원회는 이 공장의 한 여성노동자의 증언을 따 이렇게 전했다. “지난 4월25일은 납품 기한이었다. 그날 새벽 3시까지 일을 계속했다. 꼬박 16시간 반을 쉬지 않고 십자가를 만들었다. 자정 무렵부터 배가 고팠지만 야식도 주지 않았다. 모두 너무 피곤해서 잠을 자러 갔다. 막 잠자리에 들었나 싶었는데 벌써 아침 8시가 됐는지, 공장 간부들이 깨우기 시작했다. 납품하는 날에는 제품 상자를 실어야 한다. 20kg이나 되는 상자를 쉼없이 트럭에 실었다. 한 300상자쯤 실었던 것 같다. 온몸이 떨어져나갈 것 같았다. 곁에 있던 동료가 ‘이러다 과로로 죽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미 교계에서 “십자가의 원산지는 몰랐지만, 이탈리아 등지에서 주문 생산해온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당혹스러워한 것은 당연했다. 특히 가톨릭계에선 최근에도 “문제의 공장에서 생산했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반박 성명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노동위원회의 확인 결과 성 패트릭 성당에서 판매하는 십자가는 이 공장 노동자들이 생산한 것과 일치했다. 노동위원회는 “성당에서 판매하는 십자가에는 원산지 표시가 없었지만, 이를 납품한 중개업체가 중국 쪽 공장에서 제품을 수입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일당 2.12달러, 십자가 29.95달러 노동위원회에 따르면, 성 패트릭 성당에서 판매하는 십자가는 1개당 29.95달러다. 미 ‘크리스천소매상협회’가 지난해 미국 일대 2055개 매장에서 판매한 십자가 등 성물은 모두 46억3천만달러어치에 이른다. 신위 공장 노동자들의 평균 일당은 하루 8시간 노동 기준으로 2.12달러에 불과하다. “월마트에서 판매하는 크리스마스 장식품 대부분이 열악한 노동 조건 아래서 신음하는 중국 노동자들이 생산한 것이다.” 노동위원회가 12월12일 기자회견을 열어 공개한 58쪽 분량의 최신 보고서는 앞선 두 보고서의 ‘종합판’이라 할 만하다. 이 단체 찰스 커내건 사무국장은 이날 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월마트는 싼값에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팔면서 ‘이런 게 명절 분위기 아니냐’고 떠들어댔다. 하지만 끔찍한 노동 조건과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급료를 받아가며 장시간 노동을 하는 중국 어린이와 청소년을 착취한 대가로 ‘명절 분위기’에 젖어들 미국인은 없을 게다. 월마트에서 판매하는 물품의 70%가량을 생산하는 중국의 어린 노동자들에게 비참한 삶을 강요하면서 싼값에 물건을 공급한다면 월마트는 스크루지나 다름없다.” 노동위원회가 고발한 현장은 중국 광둥성 광저우의 후안야 공장이다. 이 공장 8천여 노동자들의 평균 노동 시간은 하루 12~15시간, 일주일 평균 노동 시간은 84시간에 이른다. 여러 달째 휴일 없이 일하는 것도 앞선 사례와 마찬가지였다. 이 공장의 노동자 절반가량은 일주일에 105시간씩 일을 했다. 일요일 휴무를 선택한 노동자는 하루 임금의 2.5배를 감봉당한다. 초과근로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인 게다. 그만두면 한 달치 임금 포기해야 열악한 임금 상황도 비슷하다. 노동자들이 공장 밖으로 빼내 노동위원회에 전달한 임금 자료를 보면, 이 공장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은 시간당 49센트다. 초과근로 수당이 포함된 액수다. 노동위원회는 “이 공장에서 법정 최저임금(시급 55센트)을 채워 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8% 남짓에 그쳤다”고 전했다. 참기 힘들면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원하는 때에 맘대로 그만둘 수도 없다. 회사 쪽에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고 퇴사하면, 한 달치 임금을 포기해야 한다는 조항이 근로계약서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중국 노동자들을 혹사해 만든 장식품으로 미국인들이 싼값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고, 그들의 피땀으로 만든 선물용 장난감을 헐값에 샀다. 육체적으로 혹사당하고, 경제적으로 착취당한 중국 노동자들의 아픔으로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것은 ‘성탄’의 의미에 정면으로 반하는 짓이다.” 노동위원회의 보고서가 나온 직후 바이런 도건(민주당·노스다코타주) 상원의원은 워싱턴에서 성명을 내어 “외국 노동자들을 착취한 덕에 가격이 떨어진 물품을 미국인이 구매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라며 “이런 행태를 근절하기 위한 입법 활동을 즉각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7년에 기본적인 노동권을 유린한 업체에서 생산한 물품의 수입·판매를 미국에서 금지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법안이 미 상원(1월)과 하원(4월)에 각각 제출됐지만, 지금까지 처리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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