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장군의 옷을 벗긴 한장의 사진

353
등록 : 2001-04-03 00:00 수정 :

크게 작게

1992년 5월17일의 야만적인 진압, 군부의 정체를 의심하게 만들다

타이에서는 다른 전문적인 직종과 비교해 신문기자들의 임금이 악질적으로 열악하다. 그에 비해 또 더 낮은 악질 중 악질 임금이 사진기자들 몫이다. 24살 먹은 사진기자 나라랏 디시아붓은 고단한 몸을 끌고 사회변혁의 현장으로 뛰어갔다. 1992년 5월17일이었다. 몇달 동안이나 계속된 시위, 중산층 시민들이 주축을 이루었던 그 시위는 새로 임명된 총리 수친다 크라프라윤 장군의 사임을 촉구하고 있었다.

수친다 장군은 1년 전, 언론이 ‘뷔페 내각’이라 부를 만큼 장관들이 마음껏 국가를 노략질했던 찻차이 춘하반 장군 정부를 쫓아내는 쿠데타에 성공한 뒤, 수백만명의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결코 총리직에 오르지 않겠다고 맹세 또 맹세를 했던 인물이다.

그 ‘우연’이 한번쯤 더 있을까


사진/1992년 5월17일, 세명의 경찰간부들이 비무장 시위자를 바리케이드용으로 세워놓은 불자동차 뒤로 몰고 가 곤봉으로 타격하는 순간(왼쪽). 이 사진을 찍은 당시 <더 네이션>기자 나라랏 디시아붓(오른쪽).
당시 나라랏도 여느 사진기자들과 마찬가지로 현장으로 달려가 정부청사와 총리공관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같은 시간 현장에는 경찰과 군인들이 투입되었다. 그리고 갑자기 군·경의 야만적인 진압이 시작되었고, 현장에 있던 나라랏은 생애 처음으로 인간이 저지르는 ‘폭력’을 카메라에 담게 되었다. 세명의 경찰간부들이 비무장 시위자를 바리케이드용으로 세워놓은 불자동차 뒤로 몰고 가 곤봉으로 타격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이 사진은 곧 타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자신문 가운데 하나인 <네이션>의 1면을 메웠고 시민들은 군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말하자면 그 무렵 모든 텔레비전과 라디오는 군과 정부 소유였고, 그들은 “얼마나 적은 사람들이 현장에 모였는지”를 알리는 데 여념이 없었다. 물론 신문들도 사업적인 장애나 물리적인 박해를 받지 않을까 고민만 하고 있던 때였다. “그건 특종이 아니다. 현실이 내 눈 앞에서 벌어졌을 뿐이었다. 당시 수많은 사진기자들이 곳곳에 흩어져 취재를 하고 있었는데, 뭘….” 거의 9년이 지난 며칠 전, 나라랏은 처음으로 그 사진에 대해 말을 꺼냈다. 그 사진을 놓고 말들이 많았던 탓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모양이다. 그 사진을 놓쳤던 사진기자들은 대수롭지 않게 말들 해왔다. “특종은 무슨… 그저 우연한 기회가 그에게 갔던 것뿐인데.” 그러나 그 ‘우연’은 타이사회를 격분시켰다.

신문이 기능을 잃었던 당시, 시민들은 팩스를 통해 그 사진을 이웃에 전송했고 복사기로 전단을 만들어 거리에 뿌렸다. 그리고 이어서 며칠간 계속된 군인들의 총격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사망했지만 이미 역사의 흐름을 돌릴 수는 없었다. 그 발포를 명령했던 수친다 장군은 텔레비전 앞에 나서 사임을 선언했다.

당시 매일 시위 현장으로 출퇴근했던 시민 솜삭(은행원)은 아직도 그 사진을 기억하고 있다. “현학적으로 나불거렸던 어떤 기사들보다도 그 단 한장의 사진이 시민들에게 군부의 정체가 무엇이며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했다.”

나라랏의 그 사진은 그해 타이기자협회로부터 대상, 국제적으로 유명한 언론인보호운동(CPJ)으로부터 자유상을 수상하면서 사회변혁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뿐만 아니라, 시민들은 그의 사진에 가장 명예스러운 훈장을 달아주며 화답했다.

이른바 ‘부르짖는 자유’란 제목으로 티셔츠에 새겨진 그의 사진은 시민들 사이에 동지애의 표상처럼 여겨졌다. “참 기뻤다. 내 사진보다는 당시 회사가 결단을 내렸던 사실이….” 돌이켜보면 모든 언론이 죽었던 그 시절, 오직 3개의 신문만이 위험을 무릅쓰고 윤전기를 돌리고 있었으니.

나라랏이 감동했던 그 신문 <네이션>. 그러나 그는 지금 경쟁지인 <방콕포스트>에서 일하고 있다. 사진기자로서보다는 그의 말마따나 컴퓨터나 만지작거리는 사진조종사로서. “세상이 변해도 사진기자는 똑같이 고달프고….” 나라랏은 이제 여섯달 된 딸아이에게 모든 정성을 쏟고 있다.

특종은 가고 없고, 먹고 사는 일은 고달파도, 그의 눈에는 아직 버릴 수 없는 작은 희망이 망울져 있다. “정치변혁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데 작은 톱니가 되었던 그 시절 그 감동이 내 가슴 어딘가엔 살아 있겠지. 남들이 우연이라고 하는 그 우연이 한번쯤은 생에 더 있으리라고 보면서….”

프라윗 로자나프룩(Pravit Rojanapruk)/ <더 네이션> 기자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