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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서구 노동자의 삶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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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4-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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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에 130시간을 일하는 조건으로 당신을 고용합니다. 이 계약서에 서명하세요. 하지만 당신이 190시간을 일해야 한다는 것은 아시겠죠.”

<불안정 노동 반대, 35시간제 찬성>(le travail jetable non, les 35heures oui)(람세이출판사)의 저자인 제랄드 필로슈는 노동법 위반이 판치는 프랑스의 노동 현실을 한마디로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파리에서 오랫동안 노동감독관으로 일해왔으며 노동조합 활동가, 사회주의자, <68∼98, 끝이 없는 역사>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이 책에서 파리 곳곳으로 독자들을 안내하면서 호텔, 레스토랑, 상점, 금속, 화학업종 등 중소기업의 노동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의 생생한 기록은 독자들에게 일종의 사회적 공포감마저 느끼게 한다. 초과노동, 작업장에서 절단된 손, 직업병, 스트레스, 해고위협, 노동조합의 무력화 시도들, 사무직 노동자들의 위기의식, 실직…. 노동운동이 발달한 선진 서구사회 노동자의 삶은 후진국의 그것과 무척 다를 것이라는 ‘환상’이 여지없이 깨지는 순간이다.

저자는 또 여권신장과 더불어 직장에서의 성차별도 줄었을 것이라는 일반적 견해와 반대로 프랑스 사회에 엄연히 남녀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는 유럽여성 10분의 1이 직장 내에서 성희롱의 희생자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92년 성희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가해자가 1년의 징역과 10만프랑의 벌금형에 해당하는 법적 제재를 받게 되었지만 이것의 구체적 적용이 이루어지지 않아 여전히 수많은 여성이 고통받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남성의 한달 평균 수입이 1만3783프랑(92년 통계)인 반면 여성은 9975프랑으로 현저히 낮으며 교육과 승진의 기회도 적다는 점을 덧붙이면서 여성이 노동자로서, 여성으로서 받는 이중의 고통에 대해 연대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는 1892년 노동감독관 제도가 생긴 이래 현재 1245명의 노동감독관이 120만개 사영기업을 관리하고 있다. 마르틴 오브리 노동부 장관은 노동감독관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공교육 무상실시를 선포한 줄 페리가 교사들의 헌신을 고무하기 위해 “공화국의 기병”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에 비유해 노동감독관도 노동자의 권리를 방어하는 “공화국의 군인”이 되어야 한다고 그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저자는 노동감독관의 활동은 철저히 노사의 역학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나마 부족한 노동감독관의 수마저도 감축하려는 시도가 빈번하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지난 수년간 노동자의 권리가 후퇴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95년 의회에 제출된 파브르의 보고서에 따르면 100만건의 노동법 위반 사례가 노동감독에 의해 적발돼 신고되었지만 이 가운데 2만7천건에 대한 재판만이 열렸으며 단지 1만3천건에 해당하는 7천명이 고소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노동자의 권리가 침해되는 이러한 현실이 자본가의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임을 지적하는 것으로 이 책의 결론을 맺으면서 95년 11, 12월 항공, 지하철 등 총 연대파업 이후 이탈리아의 <라 레퓌블리카>가 “유럽은 화산이다. 용암이 터져나간다면 그것은 파리를 선택할 것이다”는 말로 노동자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파리=신순예 통신원 soonye.sin@libertysurf.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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