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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이스라엘 흙도둑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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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4-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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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언론까지 인정하게 만든 니콜라스 기자의 국경취재, 레바논 언론의 기념비적인 사건

“알 말즈 계곡이 분명해. 이건 레바논 땅인데, 그렇다면….”

니콜라스 브랜퍼드 기자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자신이 서 있는 언덕 아래서 흙을 퍼담는 불도저와 트럭들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스라엘이 점령한 남부 레바논을 취재하는 브랜퍼드의 안내를 맡았던 노르웨이 평화유지군 대원이 말했다. “비옥한 레바논 흙을 이스라엘로 퍼가서 농장을 만드는 중이지요.”

놀란 브랜퍼드가 거듭 되묻자 “이스라엘이 어디다 농장을 짓고 있는지도 보여줄 수 있어요?”라며 노르웨이 병사는 잔뜩 호기심이 올라 대답했다.


아직도 훔쳐간 흙은 반환되지 않고…

사진/<더 데일리 스타>가 98년 1면에 보도했던 이스라엘 흙도둑질 기자(왼쪽)와 신종미사일 실험기사. 이스라엘 당국은 옹색한 변명과 함께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사실이었다. 국경 너머 이스라엘 쪽에 짙은 초콜릿색 흙으로 뒤덮인 메툴라의 언덕배기들이 주변의 본디 밝은 색 이스라엘 토양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현장을 촬영한 뒤, 베이루트 길을 재촉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니콜라스의 얼굴에는 지금도 가벼운 긴장이 묻어난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략이 20년째로 접어들던 1998년의 일이었다.

브랜퍼드는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이스라엘이 훔쳐간 레바논 흙을 증언해줄 만한 이들을 찾아냈고, 즉각 레바논 주재 유엔군과 접촉했다. “듣도 보도 못한 일이지만 즉시 조사해 보겠소.” 유엔군 대변인 티몰 곡셀은 황당해 하며 자리를 떴다.

다음 날 아침, 레바논의 가장 영향력 있는 영자신문인 <데일리 스타>는 증거용 사진과 함께 브랜퍼드 기자의 기사를 1면에 깔았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자 외무부를 비롯한 레바논 정부의 반응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의회에서는 나비 벨리의장 성명을 통해 ‘흙도둑놈’ 이스라엘을 몰아붙였다. 사태가 이쯤되자, 레바논 현지 신문들도 모두 가세했고, 그로부터 며칠 뒤, 이스라엘 언론들도 일제히 자신들의 흙도둑질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스라엘 정부는 발뺌했다. “근거없는 모략이다.” 그러나 유엔군은 자체 조사를 통해 이스라엘의 흙도둑질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이때부터 브랜퍼드의 기사는 미국과 유럽 전역을 비롯해 국제사회로 퍼져나가며 큰 파문을 일으켰다. 남의 나라 흙을 훔쳐가는 이 희대의 도둑질에 국제사회가 비난을 퍼붓자 이스라엘은 그제야 마지못해 옹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정부나 군당국은 몰랐다. 이스라엘의 한 사업가가 저지른 일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 이스라엘 정부의 발표를 듣고 세상 사람들은 모두 배를 잡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 철옹성 같은 이스라엘 국경 초소를 어떻게 산더미 같은 흙을 실은 트럭들이 군대의 허락없이 지나갈 수 있단 말인가?

당시 현장을 추적했던 브랜퍼드의 말을 들어보자. “그 강력한 이스라엘군을 이스라엘 정부 스스로 무시해도 유분수지. 그 흙들은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 군사지역 내에서 훔쳐간 것들이고 운송 자체도 군인들이 담당했다.” 우스운 꼴이 되고만 이스라엘은 흙도둑질을 멈췄으나 아직도 훔쳐간 흙은 반환하지 않은 채 사과나무를 심어놓고 있다. 대신 레바논에는 수많은 물웅덩이들만 흉칙하게 남아 있다.

이 흙도둑질 ‘특종’은 20년이 넘었던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략기간중에 가장 멋지게 이스라엘을 혼쭐낸 레바논 언론의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다. 브랜퍼드는 이 특종을 잡기 두달 전에도 이미 ‘이스라엘의 신무기 개발에 실험용 재물이 되고 있는 레바논인들’이라는 세계적인 특종을 터뜨린 바 있어,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미운 털이 심하게 박힌 기자다.

흙도둑질 특종이 감각이었다면, 신종미사일 실험 특종은 철저한 탐색의 결과였다. 브랜퍼드는 두달 동안, 남부 레바논에 살다시피하면서 나무와 계곡 같은 장애물을 피해가는 이스라엘군의 ‘이상한’ 무기를 추적했다. “당시 그 새로운 무기가 대탱크미사일이긴 한데, 세 가지 다른 형태의 위력과 피해를 나타내고 있다는 특성에 주목했다.” 브랜퍼드는 피해자들을 인터뷰하고 레바논군과 유엔군이 수집한 잔해들을 조사하면서 이스라엘군이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심증을 굳혔다. 그리고 무기시장 진출 이전에 레바논인들을 대상으로 실전 실험을 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철저한 탐색으로 찾아낸 신종미사일 실험

1998년 8월 브랜퍼드의 기사가 나간 뒤 국제사회는 동요했고 이스라엘 군당국은 입을 닫았다. 이스라엘의 무기제조회사도 발뺌했다. “그런 무기는 없다.” 그러나 다음 날, 니콜라스는 폴란드 정부가 이 신형미사일 구매에 관심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제2탄을 날렸다. “어제 이스라엘 정부의 무기제조회사 라파엘이 없다고 했던 그 미사일을 어떻게 폴란드에 팔 생각인지?”

그 신형미사일이 바로 유명한 질(사정거리 2.5km)이고 스파이크(4.5km)고 댄디(7km)였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네달 뒤 이 무기들에 대한 비밀을 해제한 이스라엘 정부가 “없다”고 잡아뗐던 그 미사일들을 국제무기시장에 스스로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브랜퍼드의 특종들은 이스라엘 침략자들에 대해 총 대신 펜으로 저항한 빛나는 전투로 많은 시민들 사이에 알려져 있다.

림 핫다드(Reem Haddad)/ <데일리 스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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