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신문의 한계에 환멸을 느끼고 프리랜서를 선택하게 만든 ‘오슬로협정’ 사전보도
1993년, 8월 중순이면 대게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철인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안개가 자욱했고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아침나절에 가 타전한 기사 속에 인용된 아즈미 수이비 박사라는 이름을 발견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그가 자기 집으로 와서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나는 라말라로 그를 찾아갔다.
두 시간쯤 지나 그의 집을 나섰지만 여전히 자욱한 안개가 내 눈을 문질러댔고, 나는 이게 거대한 특종인지 또는 화술의 명수에게 말려든 건지 갈피를 잡지 못해 짙은 안갯길을 한참 걸었다. 여기저기를 헤매며 마음을 가다듬은 나는 신문사로 돌아와 결심했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그의 신원을 밝히지 않고 작성한 그날 밤의 기사가 바로 훗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의 평화협정을 가리키는 이른바 ‘오슬로협정’을 사전에 터트린 세계적인 ‘특종’이 되고 말았다.
팔레스타인 기자로 라빈 총리 첫 인터뷰
그렇다고 이게 잠결에 떨어진 특종은 아니었다. 이미 두어달 전부터 뭔가 일어나고 있다는 수상한 ‘냄새’를 맡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취재를 하고 있던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 특종이 있기 두달 전 나는 팔레스타인 기자로서는 최초로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를 인터뷰하는 개가를 올렸고, 그 인터뷰 도중 물밑에서 뭔가가 크게 움직이고 있다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왜 당신은 모든 이들이 인정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대화를 기피하고 있는가?” 인터뷰가 시작된 지 30분이 지나는 동안에도 담배를 빼물지 않았던 이 골초 신사는 내가 던진 이 단순한 질문에 한참 머뭇거리더니 보좌관을 둘러보며 물었다. “이런 질문을 멋지게 받아넘길 수 있는 길이 뭐지?” 보좌관은 말없이 담배를 권했고 라빈 총리는 두어번 연기를 길게 내 뿜고는 어물쩍 넘어갔다.
이 단순한 질문에 노련한 정치가가 말을 풀어가지 못하다니? 나는 직감적으로 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포착했고, 그 직감을 따라 백방으로 뛰며 그 ‘뭔가’를 추적하고 있었다.
당시, 내 기사가 나가고 3주 뒤,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과 라빈 이스라엘 총리가 백악관에서 만날 때까지만 해도 테러리스터 집단으로 낙인찍힌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조직원들이나 심지어 그들에게 동정적인 마음을 표현한 이들까지도 ‘감방행’이라는 공식이 철저하게 적용되던 시절이었다.
어쨌든 내가 일했던 <알쿠드스신문>은 안개가 걷힌 다음날 내 기사를 초라하게 처리했다. “신빙성도 뉴스가치도 별로 없는데다, 이런 기사들은 어차피 이스라엘군의 검열에 걸릴 게 뻔하지 않나….” 편집국장은 단호했다.
당시 보도되지 못했던 내 기사에는 추후 현실로 드러날 ‘이스라엘군의 가자 서안지구 철수’와 ‘팔레스타인 시민의 예루살렘 선거권 인정’ 같은 중대한 사안들이 모조리 담겨 있었다. 나는 크게 낙담했다. 그렇더라도 이 중대한 뉴스를 묵힐 수는 없다는 생각에 나는 주변의 외신기자들에게 모든 취재 정보를 공개했다. 그 다음 날 나의 취재노트는 세계 각국에 머릿기사로 타전되어 나갔다.
그제야 우리 신문은 내 기사의 중대성을 깨달은 셈이고, 칭찬 대신 즉각 불평을 해대기 시작했다. “왜 외신들에게 정보를 흘리느냐?” 우리 신문이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다른 매체를 통해서라도 시민들의 알 권리에 복무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 기자로서 나의 의지였다.
두달 사이에 벌어진 이 특종의 연속 속에서 나는 우리 팔레스타인 언론의 이기심에 큰 분노를 느꼈다. 이스라엘의 검열을 핑계 삼아 스스로 내부 검열을 강화해온 일이나, 시민들의 알 권리를 무시한 채 뉴스의 독점만을 고집하는 반민중적인 태도, 이 모두는 팔레스타인 언론의 자화상이었다.
결국 그 특종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자유로운 기사작성’, ‘검열 없는 신문사’라는, 적어도 글을 쓰는 기자로서 포기할 수 없는 이 두 가지의 조건을 찾아 길을 나섰다. 그리고 닿은 곳이 ‘프리랜서 칼럼니스트’였다. 그로부터 나는 국내외의 매체들 가운데 그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곳에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있다. 말하자면 나는 특종 대신 검열로부터의 자유를 선택한 셈이다. 나는 그 시절 이런 특종들을 통해 내가 갈 길을 찾았다고 말할 수 있다.
다오우드 쿠탑(Daoud Kuttab)/ 전 <알쿠드스 신문> 기자·칼럼니스트


사진/“두달 사이에 벌어진 특종의 연속 속에서 나는 우리 팔레스타인 언론의 이기심에 큰 분노를 느꼈다.” 필자가 처음 보도했던 1993년 오슬로협정 모습.(SYG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