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 인종청소’ 명령한 특급정보 입수… 그런 학살자에게 명예학위를 수여한 충북대학교
“하비비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에 크게 공헌했기에….”
지난 3월 초 한국의 충북대학교는 하비비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했다. 하비비가 그럴듯하게 보였거나 또는 한국의 한 대학이 매우 정치적이었거나, 어쨌든 느닷없이 하비비에게 명예학위를 수여한다는 소식을 들은 인도네시아 시민들은 이걸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참 곤혹스러웠다. 분명한 건 인도네시아 시민사회가 이 일로 인해 아시아 민주화운동을 선도했던 한국의 국제정치 이해력에 깊은 회의를 느꼈다는 사실이다.
수하르토와의 밀약과 ‘물량주의 정치’
자신의 삶 대부분을 인도네시아가 아닌 독일에 바친 하비비, 그는 독재자 수하르토가 지명한 ‘방탄조끼’에 지나지 않는 인물이란 게 인도네시아 시민들의 확고한 인식이다.
민주발전, 인권신장, 이건 하비비가 낚아채 갈 성질의 것도 아니고 그의 공적도 물론 아니다. 반대로 그는 인도네시아의 민주화와 인권을 짓밟은 범법자다. 충북대학교는 학위 수여 이전에 인도네시아에 대한 공부를 더 하는 일이 필요했다.
흔히 하비비에 대한 외눈박이 평가로 “그가 정치적 숨통을 열었다”고들 한다. 가령 정치범 석방이니, 언론자유, 정당결성 자유, 또 동티모르 독립 기회 부여 같은 말들로. 그러나 우리 <템포> 특별 취재팀은 최근 하비비를 추적 보도하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확인했다. “수하르토가 사임하기 세달 전에 이미 하비비는 정권 이양을 위한 ‘설계도’ 같은 것을 암시했다. 수하르토 진영이 만든 이 설계도에 따르면 정권을 하비비에게 넘겨주고 대신 신변안전을 확보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증언은 하비비의 절친한 친구로부터 캐낸 것인데, 그 동안 세간에서 추측만 해오던 것을 확인한 셈이다.
그 결과 대통령에 임명된 하비비는 수하르토와 그의 가족 그리고 측근들을 보호하라고 명령했다. 족벌체제와 부패구조 개혁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를 “수하르토는 나의 정치적 스승이다”는 말로 용기있게 맞받아치며.
정치범 석방, 이건 하비비가 정치적 술수를 부렸던 가장 대표적인 사안이다. 수하르토가 쫓겨난 마당에 그가 가두었던 정치범들을 더이상 묶어둘 명분이 없었던 것인데, 이걸 하비비는 철저하게 이용해 먹었다. 회교를 정치적 기반으로 삼았던 하비비는 가장 먼저 회교와 관련된 이들을 석방함으로써 회교쪽의 환심을 끌고자 했고, 그 다음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들 그리고 끝으로 사상범들을 풀었다.
감질나게, 마치 시혜를 베풀기라도 하듯 정치범들을 정치적 환경에 따라 석방했던 그의 행실을 두고 인도네시아 시민 가운데 누구도 ‘인권신장’이라고 말하는 이가 없다.
언론자유와 정당결성의 자유, 이건 당시 시민들의 폭발적인 요구였고 그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이 두 사안을 오히려 지나칠 만큼 화끈하게 풀어헤쳤다. 언론자유, 우리는 이걸 언론기업의 자유라고 표현하지 언론의 자유라고 말하지 않는다. 언론과 정당의 자유를 거대물량주의로 희석시키는 ‘물량주의 정치’ 이건 하비비의 생존전략이었을 뿐이다.
그의 정치적 기반이 ‘수하르토의 알’이라고 불렀던 골카르당을 제외하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이 골카르당의 생존을 위해 정당결성의 자유를 활용했다는 말이다.
동티모르 독립, 하비비 최대의 코미디
독점과 부패와 족벌의 상징이었던 그 골카르당은 바로 수하르토 30년 독재의 발판이었고, 여전히 수하르토의 잔재가 남아 있던 지방에서는 정치적 변화를 체감하지 못한 채 또는 위협 아래 1999년 총선에서 골카르당을 제2당으로 안착시키며 하비비의 생존을 보장해 주었다.
인도네시아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은 누구를 위한 자유였던가” 하는 질문에 먼저 대답해야 한다. 동티모르의 독립, 이건 하비비 최대의 코미디가 숨겨진 부분이다. 계산착오가 그를 진보적인 정치인이거나 또는 적어도 통 큰 정치인으로 만들어버린 국제적인 코미디가 되었다는 말이다. 하비비는 동티모르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를 제의하면서 두개의 잇속을 노렸다. 하나는 인권유린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을 피해보자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 결과로 좀더 확고하게 동티모르를 인도네시아에 합병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후자에서 발생하고 말았다. 하비비는 인도네시아군이 돈을 쏟아부어 훈련시킨 동티모르의 반독립분자들에 대한 지난친 기대 하나로 승부수를 띄웠던 셈인데, 주로 범죄자들을 중심으로 조직했던 이 반독립민병대들이 자신들의 땅인 동티모르를 불태우고 형제들을 죽이고 협박하면서 역효과를 내고 말았다. 이들이 동티모르 집집마다 인도네시아 국기를 걸도록 어르는 동안 결국 주민들은 국민투표에서 독립찬성쪽에 몰표를 던져버렸다.
최근 <템포>가 입수한 특급비밀 정보들을 간추려보면 하비비 코미디의 전모가 드러난다. 동티모르 국민투표 2주일 전, 정치안보조정 장관실은 하비비에게 특비문서를 통해 동티모르 국민투표에서 친인도네시아합병파가 패배할 것이라는 현지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했다.
국민투표 1주일 전, 이번에는 군 정보부가 하비비에게 보고서를 전달했다. “국민투표 예상 결과 독립찬성파와 반대파가 60:40 정도로 드러나고 있음.”
이틀 뒤, 하비비는 정치안보조정장관 페이살 탄 장군과 국방장관 겸 최고사령관 위란토 장군과 극비리에 만났다. “여론조사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여기서 하비비는 인도네시아군에 “어떤 방식도 좋다”는 전제와 함께 동티모르의 친독립계를 박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즉각 막대한 돈이 동티모르의 반독립민병대로 풀려나갔다. 한 퇴역 정보장교는 <템포> 취재팀에 당시의 충격적인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다. “위란토 장군은 동티모르 수성작전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이스마일 사푸트라 중위에게 위조지폐를 만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동티모르인들은 78.5%라는 압도적인 수치로 자신들의 독립을 선택하고 말았다. 하비비가 그렇게 공들인 동티모르의 인도네시아 합병 유지는 실패로 돌아갔고, 즉각 동티모르에서는 하비비의 제2차 작전이 전개되었다. 만약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테러의 확산으로 현지 주민들과 기자들을 모조리 축출한다는 하비비의 계획이 현실로 드러났다.
두개의 얼굴로 두개의 역할을…
인도네시아군의 군복을 입은 반독립민병대원들은 교회든 학교든 사회시설이든 닥치는 대로 불질렀고 보이는 대로 누구에게든 총질을 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이들이 반독립민병대로부터 학살당하면서 공황 상태에 빠진 동티모르 주민들은 다투어 인도네시아 영토인 서티모르로 피신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하비비는 동티모르 독립 과정에서 두개의 얼굴로 두개의 역할을 했다. 국제적으로는 민주주의자의 얼굴로 미소를 흘렸고 국내적으로는 냉혈한의 얼굴로 동티모르인들에 대한 대량학살을 주도했다. 당시 동티모르의 인종학살을 주도했던 군 지휘관들은 여전히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면서 어떤 법적 제재도 받지 않았다. 이건 결론적으로 말해 하비비가 학살의 중심에 섰던 탓이다.
현 와히드 대통령 정부에서도 하비비를 비롯한 관련 군지휘관들을 손보지 못하는 까닭은 와히드의 취약한 정치적 기반 탓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도네시아의 형법체계가 지닌 모순 탓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의 형법은 살인, 강간, 고문 같은 전통적인 범죄 행위만을 다룰 뿐, 국제사회에서 보편성을 지닌 인종학살이니 평화파괴니 인권유린 같은 개념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전범과 인권 유린자에 대한 제한없는 기소를 염두에 둔다면, 동티모르 학살의 책임자는 당시 위란토 최고사령관과 페이살 탄 정치안보조정장관 그리고 지난 3월 초 한국의 충북대학교로부터 인도네시아의 민주발전과 인권신장에 기여한 공로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하비비 전 대통령임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한국과 인도네시아 시민들의 보편적인 정서를 반영하지 못한 하비비에 대한 학위 수여는 두 사회가 지향하는 공동발전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하면서 동시에 인도네시아 시민사회를 무시한 매우 불쾌한 행위였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세상에 어떤 대학이 전쟁범죄자에게, 인종학살자에게 명예학위를 수여한단 말인가. 그 대학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겠다는 뜻인가.”
아흐마드 토우픽(Ahmad Taufik)/ 시사주간지 <템포> 기자

수하르토와의 밀약과 ‘물량주의 정치’

사진/하비비는 국제적으로는 민주주의자의 얼굴로 미소를 흘렸다.(GAMMA)

사진/하비비는 국내적으로는 냉혈한의 얼굴로 동티모르인들에 대한 대량학살을 주도했다.(SYG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