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찔러보기’에 러시아 ‘맞불작전’으로 맞선 외교관 맞추방 사태의 전말
러시아에 2001년 3월 마지막주는 국가 자존심이 여지없이 꺾인 주로 기록될 것이다. 그간 미국을 능가하는 우주공간 체류기술을 자랑하며 인류 위에 군림했던 미르호가 추락했다. 우주 전문가는 물론 일반인들 모두가 얘기했듯 미르호의 추락은 옛소련, 러시아의 자존심의 추락으로 여겨졌다. 바로 이 즈음에 미 국무부는 미국 내 러시아 외교관 4명을 스파이 혐의로 추방하고 추가로 총 50여명을 추방할 것이라 발표했다.
손 보지 않으면 안될 상황?
언론들은 한결같이 이 사태로 옛소련 붕괴 이후 지난 15년간 다져온 미-러관계가 과거 냉전상태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표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 국무부의 조처에 대해 러시아는 세르게이 이바노프 전 국가안보회의 서기가 공언했듯 “똑같은 조치로 맞대응할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 발언 직후 미국의 조처와 똑같이 4명의 미국 외교관에 대한 추방령이 떨어졌다. 당시 현지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이미 연방보안국은 70여명의 추방대상자 명단을 확보해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외무부는 50명에 대해 7월1일까지는 추가로 추방시킬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외교관 맞추방 파문이 일어나게 된 직접적인 배경은 미국의 전 연방수사국 요원이었던 로버트 핸슨의 간첩활동이 드러나면서부터이다. 그는 지난 15년 동안 옛소련과 러시아에 미국의 중요국가기밀을 제공해온 것으로 밝혀졌고 그런 정보중에는 미국이 옛소련 말기 워싱턴의 러시아 대사관 지하에 첩보용 갱도를 구축하려했다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었다. 핸슨 사건에 러시아 외교관이 직접 관련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외교관을 추방하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당연한 조처처럼 보여졌다. 그러나 지난달 중순에 체포돼 5월에야 청문회가 개최될 예정인 핸슨 사건의 전모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미국이 왜 하필 지금 이 시기에 파문을 확대하고 나섰는지는 의문이었다. 이에 대해 대내외 관측통들은 “정치적 의도가 크게 작용했다”는 해석을 내린다. 러시아는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 계획과 나토의 확산 움직임에 적극적인 반대로 일관해오면서 미국이 규정한 이른바 ‘불량배 국가들’ 즉, 이란·이라크·북한·리비아 등과 외교관계를 돈독히 하고 심지어 이들 국가들에 대한 무기판매 등 군사적 협력까지도 진행시켜옴으로써 미국을 자극해왔다. 부시의 입장에서는 러시아가 어떻게든 ‘손보지 않으면 안 될’ 대상이 된 것이 아니었느냐는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미국의 대량외교관 방출 조처가 ‘괘씸죄’의 발동이라는 해석 외에 부시 행정부가 클린턴과는 달리 러시아의 잠재력을 우습게 보았기 때문에 그런 무모한 조처를 쉽게 단행할 수 있었다는 평가도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3월 마지막주 주간 <블라스치>는 이같은 논조의 논평에서 부시 행정부가 클린턴 행정부의 대러시아 정책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은 “클린턴이 너무 러시아를 띄워줬던 것”이라고 요약했다. 다시 말해 부시는 클린턴이 마치 동등한 전통 우방국의 정상을 만나듯 옐친과 만나왔고 서방선진7개국회담과 같은 고급 클럽의 회원으로 초대, 보잘것없는 러시아를 우쭐하게 만들었는데 그 결과가 러시아의 오만을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분석과 함께 이 논평은 미국의 외교관 추방 조처는 러시아가 과연 새로운 미국의 강성 조치들에 어떤 식으로 나오는지를 판가름하는 일종의 테스트였다고 정리했다. 왜 미국 대사 관저를 폐쇄했나
러시아쪽의 강경파들 또한 만만치 않았다. 곧바로 ‘동수’의 외교관 맞추방 조치가 발표된 뒤, <코메르산트 데일리>와 같은 현지 일부 언론에서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논평이 등장했다. 이 신문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 내 거주하고 있는 러시아 외교인력은 190명이고 러시아 내 미국 외교인력은 1100명이기 때문에 동수의 인원을 추방할 것이 아니라 “비율적”으로 더 많은 수의 미국 외교관이 추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 정부가 외교관 단순 맞추방이 아닌 일종의 ‘러시아식’ 강경조처를 모색할 수도 있다는 보도도 나와 주목을 끌었다. ‘러시아식’이란 현재 상주중인 러시아 내 미국 공관과 그 식솔들을 적절히 영토 안에서 괴롭히는 방안인데, 이것이 그들을 단순히 추방하는 것보다 더 미국 정부쪽에 고통을 더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를테면 <인테르팍스> 통신은 86년 외교관 추방사태가 벌어졌을 때 옛소련은 자국 내 미 공관의 러시아인 직원 수를 현저하게 삭감하여 소련 내 공관의 단순 행정 및 기술적인 문제에 공백을 초래하게 함으로써 미국을 당황하게 한 적이 있음을 상기시켰다. 만약 유사한 조처를 이번에도 활용한다면 미 대사관 내의 화장실 청소를 대사나 혹은 고위 외교관이 직접해야 하는 해프닝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러시아 외무부는 맞추방 발표 직후 이번 사태와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어보이는 다른 조처를 발표했는데 그것은 모스크바구 아르바트가에 있는 미 대사의 관저를 회수한 것이다. 미 대사의 관저 회수 문제는 옛소련 붕괴 당시로 거슬러올라간다. 미국과 러시아는 소련 붕괴 직후 연 임대료 72만5천루블(2만5천달러 상당)에 20년간 모스크바의 한 가옥을 대사의 관저로 사용케 한다는 계약을 맺은 바 있다. 그 이후 러시아 정부는 폭등하는 인플레율과 루블화의 실제가치 변동 등을 이유로 지난 93년부터 계약을 재검토, 실경제상황에 맞게 재계약을 체결할 것을 미국쪽에 계속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미국은 이렇다 할 만족할 만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오히려 러시아가 미국에 지고 있는 채무를 상환하는 셈잡고 이 관저를 미국 정부재산으로 구매할 것을 제의해왔다. 이렇게 애매모호하게 미결로 남아 있던 사안이 때마침 외교관 맞추방건과 맞물려 러시아 외무당국의 ‘미국 괴롭히기’ 수단으로 전환된 셈이었다. 외교관 맞추방 사태가 엉뚱하게 미 대사관저 몰수 조치로 확대되는 듯한 분위기에서 <시보드냐>는 이것이 동수의 외교관 추방보다 오히려 더 효과적인 조치가 아니냐고 짤막하게 덧붙였다.
사태의 후속조처가 이어지지 않는 가운데 이제 파문은 조용히 가라앉고 있다. 영국의 <가디언> 등 유럽쪽 외신들이 사건 초기에 “항간에서 얘기되고 있는 신냉전으로의 회귀설은 별로 신빙성이 없다”고 진단한 바대로 지금은 첨예한 고비를 넘겼다. 현지 언론 또한 이번 사태를 최종 정리하면서 미국이 애초부터 러시아와의 신냉전을 치르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외교관 추방 조처를 취한 것은 아니라는 방향으로 정리하고 있다. 물론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 미국 내 강경파의 정서를 고려한다면 이같은 극한상황이 도출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외교관 맞추방 사건이 오히려 양국간의 곪은 상처를 터트리는 효과를 가져옴으로써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상처 치유의 길로 나설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유력하다. 사태의 원인을 미국 새행정부가 갖고 있는 내부문제의 여파로 고려하고 있는 국가두마 국제문제위원장 드미트리 로고진의 입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부시가 그간 자신이 천명·추진해온 대외정책의 굵직한 사안들이 잘 처리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내 여론 환기를 목적으로 러시아를 한번 찔러본 것이라고 가볍게 평가함으로써 이번 사태가 악화될 가능성을 부인했다.
본 게임은 이제 시작이다
사태의 원인을 별것 아닌 것으로 취급하는 평가 이면에는 한때 국가두마 부대변인 블라디미르 루킨이 적절하게 언급했듯이 미국으로서는 외교관의 일대일 맞추방은 산술적으로도 전혀 유리할 것이 없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이를테면 언어구사능력면만 가지고서도 미국 외교관들 중에서 러시아 전문가의 숫자가 러시아의 미국 전문가보다 현저히 적은 상황에서 맞추방까지 하면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정보를 얻을 통로가 너무 협소해진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미-러 양국이 G8 회담 이전에 정상간의 대화채널을 열지 못할 경우 사태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미국은 과거 클린턴 때와는 달리 러시아가 싫어하는 행위를 전혀 꺼려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최근 미 국무부가 일리야스 아흐마도프 체첸특사를 정중히 영접한 사실이나 루이스 프리 연방수사국 국장과 미 군부 고위관계자가 독립국가연합 회원국 중 러시아와 가장 관계가 꺼림칙한 그루지야를 방문, 미국과의 긴밀한 상호협력을 확인한 사실 등이 대표적인 ‘러시아 신경건드리기’ 조처들이다. 결국 이번 해프닝은 양국간의 주도권 잡기를 보여준 것에 불과하며, 사실 본 게임은 이제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박현봉 통신원 parkhb_spb@yahoo.com

사진/신냉전시대는 올 것인가. 미 국무부가 러시아 외교관 추방 방침을 발표하자 러시아는 맞추방 조치로 응수했다.(SYGMA)

사진/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로버트 핸슨.(SYGMA)
외교관 맞추방 파문이 일어나게 된 직접적인 배경은 미국의 전 연방수사국 요원이었던 로버트 핸슨의 간첩활동이 드러나면서부터이다. 그는 지난 15년 동안 옛소련과 러시아에 미국의 중요국가기밀을 제공해온 것으로 밝혀졌고 그런 정보중에는 미국이 옛소련 말기 워싱턴의 러시아 대사관 지하에 첩보용 갱도를 구축하려했다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었다. 핸슨 사건에 러시아 외교관이 직접 관련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외교관을 추방하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당연한 조처처럼 보여졌다. 그러나 지난달 중순에 체포돼 5월에야 청문회가 개최될 예정인 핸슨 사건의 전모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미국이 왜 하필 지금 이 시기에 파문을 확대하고 나섰는지는 의문이었다. 이에 대해 대내외 관측통들은 “정치적 의도가 크게 작용했다”는 해석을 내린다. 러시아는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 계획과 나토의 확산 움직임에 적극적인 반대로 일관해오면서 미국이 규정한 이른바 ‘불량배 국가들’ 즉, 이란·이라크·북한·리비아 등과 외교관계를 돈독히 하고 심지어 이들 국가들에 대한 무기판매 등 군사적 협력까지도 진행시켜옴으로써 미국을 자극해왔다. 부시의 입장에서는 러시아가 어떻게든 ‘손보지 않으면 안 될’ 대상이 된 것이 아니었느냐는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미국의 대량외교관 방출 조처가 ‘괘씸죄’의 발동이라는 해석 외에 부시 행정부가 클린턴과는 달리 러시아의 잠재력을 우습게 보았기 때문에 그런 무모한 조처를 쉽게 단행할 수 있었다는 평가도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3월 마지막주 주간 <블라스치>는 이같은 논조의 논평에서 부시 행정부가 클린턴 행정부의 대러시아 정책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은 “클린턴이 너무 러시아를 띄워줬던 것”이라고 요약했다. 다시 말해 부시는 클린턴이 마치 동등한 전통 우방국의 정상을 만나듯 옐친과 만나왔고 서방선진7개국회담과 같은 고급 클럽의 회원으로 초대, 보잘것없는 러시아를 우쭐하게 만들었는데 그 결과가 러시아의 오만을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분석과 함께 이 논평은 미국의 외교관 추방 조처는 러시아가 과연 새로운 미국의 강성 조치들에 어떤 식으로 나오는지를 판가름하는 일종의 테스트였다고 정리했다. 왜 미국 대사 관저를 폐쇄했나

사진/러시아 외무부를 방문한 제임스 콜린스 러시아 주재 미국대사.(AFP연합)

사진/핸슨의 집을 수색하고 있는 FBI.(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