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파타스타 국회연설 참관기… 아쉬움과 기쁨이 섞인 시민들의 환송을 받으며 퇴장
3월28일 11시20분. 스키마스크를 쓰고 꽃무늬가 새겨진 첼탈족 전통의상을 입고 에스테르 여성사령관이 연단에 올랐다. 그는 먼저 첼탈어로 인사를 건네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했다. 첫 번째 연설자로 나선 그는 그동안 사파티스타들이 요구해온 세 가지 화해 제스처인 △일곱개 군사기지 폐쇄 △사파티스타 관련 구속자 전원 석방 △원주민 권리와 문화에 관한 법률의 국회인준에 대해 정부가 기울이고 있는 노력을 인정하고 그 가운데 하나인 군사 기지 폐쇄 요구가 실제 이행되고 있다며 “평화의 제스처에 전투 태세로 답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의 화해 제스처에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연방의회에서 터져나온 기립박수 소리
에스테르는 부사령관 마르코스가 연단에 서지 않은 이유에 대해 “그가 우리 사령관들의 명령을 듣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해명하면서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의 정규군과 비정규군을 지휘하는 부사령관 마르코스”에게 “연방군이 철수한 지역에 어떠한 군사행동도 하지 말 것과 현 위치인 치아파스 산악지역을 고수할 것”을 명령했다. 또한 “군대에 명령을 내리면서 원주민 민중에 순종하는” 사령관으로서 평화협상 대표인 페르난두 야네스(일명 ‘헤르만 사령관’)에게 정부 평화협상 대표인 루이스 알바레스와 접촉하고 연방국회 산하 초당적 기구인 ‘평화와 화해를 위한 위원회’(COCOPA)와 만날 준비를 하라고 요청했다.
순간, 연방의회 하원 대회의장에 자리잡고 있던 연방의회 의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힘찬 기립박수로 원주민 사령관이 전하는 평화협상의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에 경의를 표했다. 사파티스타 대표단 23명은 오전 9시30분 멕시코시티 체류기간 동안 머물고 있는 멕시코 국립 인류학 및 역사학 대학(ENAH)을 출발해 10시35분 산 라사로 입법궁전의 정문으로 당당히 걸어들어왔다. 게릴라의 국회연설은 멕시코 의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며, 권력을 장악한 경우가 아닌 이상 세계 역사에서도 아주 드문 일에 속한다. 이 역사적인 연설의 장소인 연방국회 대회의장에는 100여명의 국회의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연방의회는 총 628석(하원 500석, 상원 128석)으로 전 집권당 제도혁명당(PRI·하원 211석, 상원 60석)과 현 집권당 국민행동당(PAN·하원 206석, 상원 46석)이 대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의석은 민주혁명당(PRD), 노동당(PT), 녹색당(PVEM) 등이 점하고 있는데 집권 국민행동당 의원들이 출석 보이콧을 선언했으며 보수적인 의원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연설회 도중 국민행동당은 비난여론을 의식한 듯 자기당 하원의원 25명이 참석하고 있다며 보도자료를 급히 배포했다. 여성사령관에 뒤이어 다빗 사령관이 초칠족 전통복장을 입고 연단에 올랐다. 그는 원주민 권리들을 보장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인준되는 것은 “이 나라에 원래 터를 잡고 살아온 원주민들에게 이 나라가 진 역사적인 빚을 더는 것”이라며 이 법안의 역사적 의미를 환기시켰다. 세베데오 사령관은 나직한 목소리로 원주민들이 권리를 주장하면 감옥에 가두고, 저항하면 살해하는 불합리한 멕시코 현행 법률의 문제점을 지적했으며, 타초 사령관은 힘찬 목소리로 모든 멕시코 민중이 함께 만든 원주민 권리 법안을 반드시 국회에서 인준해 멕시코 민중이 민주주의, 자유, 정의를 누리며 살 수 있게 하자고 호소했다. 사령관들의 연설이 끝나자 2층에서 지켜보고 있던 300여명의 원주민 손님들이 치아파스 원주민 형제들에게 열광적으로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 다음으로 멕시코 곳곳에서 살아가는 56개의 원주민 부족을 대표하는 전국원주민의회(CNI) 대표들이 단상에 올랐다. 둥그렇고 챙이 넓은 멕시코 농민 모자인 솜브레로를 쓰고 단상에 오른 원주민 노인 후안 차베스를 비롯해 세명의 원주민 대표들은 자기가 속한 부족 언어로 인사를 하고 연설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원주민 권리와 문화에 관한 법률’이 인준돼야 멕시코에 진정한 변화가 온다며 이를 헌법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원주민 권리와 문화에 관한 법률’을 화두로
국회의 초당적 기구인 ‘평화와 화해 위원회’가 제안한 ‘원주민 권리와 문화에 관한 법률’은 96년 제도혁명당 세디요 정부와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 사이에 체결된 산 안드레스 협정을 바탕으로 해서 기초된 법률안으로 원주민들의 자치권과 자기결정권이 그 핵심이다. 이 안에는 원주민들에게 일정 의석을 배분할 것, 원주민어 방송사를 설립하고 이중언어 학교를 세울 것, 국부에 대한 평등한 접근을 보장할 것, 농민들에게 토지를 분배할 것 등 제 권리들이 반영되어 있다.
연방의회 의원들이 원주민 대표들을 환영하는 연설을 하고 난 뒤, 국회의원들과 전국원주민의회 대표들간에 ‘원주민 권리와 문화에 대한 법률’을 둘러싸고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원주민 대표들은 원주민 공동체의 다채로운 문화, 관습, 언어가 법률로 보장되는 것이 바로 자율결정권이며 서로 다른 부족들끼리 외부의 간섭없이 대화를 나누고 의견을 조정해 가는 것이 자치권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원주민들은 나라를 분열시키는 것을 좋아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다고 말하면서 원주민들이 자치를 실현하고 원주민 공동체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것이 국가통치권에 대한 위협이냐며 분열세력이라고 매도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주장에 맞서 반문했다.
이렇게 장장 5시간에 걸친 원주민들과 국회의원들의 역사적인 만남이 끝났다.
원주민 대표들이 자신들이 누려야 할 권리들을 역설했던 연방의회 대회의장 단상 너머 정방형의 대리석 벽엔 국기에 수놓인 문양이 새겨져 있다. 선인장 위에 올라앉은 독수리가 날카로운 부리로 뱀의 목을 물고 있는 모습은 아스테카족이 멕시코시티에 수도를 정하면서 보았다는 전설 속의 장면으로 제국주의 국가들의 숱한 침략을 겪어온 멕시코인들의 전투적 민족주의를 상징한다. 이 대리석 벽 양옆에는 각각 두개씩 직사각형의 대리석 벽이 붙어 있다. 그곳엔 대스페인 독립전쟁의 지도자인 미겔 이달고에서부터 멕시코 혁명전쟁 지도자 에밀리아노 사파타까지 멕시코를 내외의 식민주의자들로부터 구하기 위해 사운 투사들의 이름이 황금빛으로 뚜렷이 박혀 있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듯 벽의 천장 바로 아래에 길게 가로로 누운 대리석 벽엔 “국가들 사이도 그렇듯이 개인들끼리도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 바로 평화!”라는 자유주의 대통령 베니토 후아레스의 경구가 적혀 있다.
의회에서 원주민 대표들이 연설을 하고 있을 때 연방의회 옆길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몰려와 멀티비전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사파티스타 대표단이 평화협상의 메시지를 전할 때 기뻐하며 환호했고, 집권당의 원주민 차별에 맞서 “국민행동당은 물러가라!”라며 분노를 표현하기도 했으며, 집권당 소속 상원의원 디에고 페르난데스 데 세바요스는 파시스트와 다를 바 없다며 그의 인형을 불태우기도 했다.
“멕시코 민중이여 감사합니다”
그뒤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 대표단과 전국원주민의회 대표단이 연방의회에서 나와 거리에 설치된 무대에 올랐다. 부사령관 마르코스의 얼굴도 보였다. 그들이 무대에 오르는 동안 멕시코의 유명한 가수 오스카르 차베스가 기타 선율이 부드러우면서도 경쾌한 노래를 부른다. “늘 내가 춤출 수 있기를 바라네! 늘 내가 노래할 수 있기를 바라네!”
이윽고 부사령관 마르코스가 연설을 시작했다. “세상에 태어난 지 18개월이 된 젖먹이 페드로는 이제 산에서 살지 않아도 됩니다. 그가 자기 마을인 과달루페 테페약(마지막으로 정부군이 철수한 원주민 거주지역)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곳은 ‘과달루페 테페약 라 사파티스타’로 불릴 것입니다.”
지난 2월24일 치아파스의 라칸도나 정글을 떠나 대행진에 돌입할 때 이들은 95년 정부군의 대공세 이래 버려진 땅이 되어버린 그곳으로, 연방군이 점령하고 있던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상상이라도 해보았을까?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를 마치 멕시코 농민들이 옥수수 낫으로 땅을 일구듯 개척해왔고 앞으로 개척해갈 사파티스타들. “멕시코 민중이여!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는 가방을 어깨에 걸고 정말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올 때처럼 빈손으로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승리의 V자로 떠나는 이들을 환송했다. 시민들이 힘차게 부르는 사파티스타 찬가는 아쉬움과 기쁨으로 어느새 촉촉이 젖어들었다. 버들가지처럼 생긴 에우칼립토 가지들이 봄바람에 짙푸르게 몸을 뒤척이는 에밀리아노 사파타 거리. 젊은 밴드는 이제는 랩과 레게음악을 연주한다. 그 거리에서 젊은 사파티스타 연인들이 뜨거운 키스를 나누고 나이 든 사파티스타 부부가 춤을 춘다. 하카란다 보랏빛 꽃잎이 화사하게 핀 멕시코의 어느 눈부신 봄날이었다.
멕시코시티=박정훈 통신원 jhpark2001@hotmail.com

사진/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에스테르 사령관의 연설이 끝난 뒤 연방의회 의원들이 기립박수를 치고 있다.(연합)
순간, 연방의회 하원 대회의장에 자리잡고 있던 연방의회 의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힘찬 기립박수로 원주민 사령관이 전하는 평화협상의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에 경의를 표했다. 사파티스타 대표단 23명은 오전 9시30분 멕시코시티 체류기간 동안 머물고 있는 멕시코 국립 인류학 및 역사학 대학(ENAH)을 출발해 10시35분 산 라사로 입법궁전의 정문으로 당당히 걸어들어왔다. 게릴라의 국회연설은 멕시코 의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며, 권력을 장악한 경우가 아닌 이상 세계 역사에서도 아주 드문 일에 속한다. 이 역사적인 연설의 장소인 연방국회 대회의장에는 100여명의 국회의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연방의회는 총 628석(하원 500석, 상원 128석)으로 전 집권당 제도혁명당(PRI·하원 211석, 상원 60석)과 현 집권당 국민행동당(PAN·하원 206석, 상원 46석)이 대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의석은 민주혁명당(PRD), 노동당(PT), 녹색당(PVEM) 등이 점하고 있는데 집권 국민행동당 의원들이 출석 보이콧을 선언했으며 보수적인 의원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연설회 도중 국민행동당은 비난여론을 의식한 듯 자기당 하원의원 25명이 참석하고 있다며 보도자료를 급히 배포했다. 여성사령관에 뒤이어 다빗 사령관이 초칠족 전통복장을 입고 연단에 올랐다. 그는 원주민 권리들을 보장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인준되는 것은 “이 나라에 원래 터를 잡고 살아온 원주민들에게 이 나라가 진 역사적인 빚을 더는 것”이라며 이 법안의 역사적 의미를 환기시켰다. 세베데오 사령관은 나직한 목소리로 원주민들이 권리를 주장하면 감옥에 가두고, 저항하면 살해하는 불합리한 멕시코 현행 법률의 문제점을 지적했으며, 타초 사령관은 힘찬 목소리로 모든 멕시코 민중이 함께 만든 원주민 권리 법안을 반드시 국회에서 인준해 멕시코 민중이 민주주의, 자유, 정의를 누리며 살 수 있게 하자고 호소했다. 사령관들의 연설이 끝나자 2층에서 지켜보고 있던 300여명의 원주민 손님들이 치아파스 원주민 형제들에게 열광적으로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 다음으로 멕시코 곳곳에서 살아가는 56개의 원주민 부족을 대표하는 전국원주민의회(CNI) 대표들이 단상에 올랐다. 둥그렇고 챙이 넓은 멕시코 농민 모자인 솜브레로를 쓰고 단상에 오른 원주민 노인 후안 차베스를 비롯해 세명의 원주민 대표들은 자기가 속한 부족 언어로 인사를 하고 연설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원주민 권리와 문화에 관한 법률’이 인준돼야 멕시코에 진정한 변화가 온다며 이를 헌법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원주민 권리와 문화에 관한 법률’을 화두로

사진/의회연설 뒤 열린 장외집회에서 마르코스가 마지막 연설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