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니아 다수계 마을 코소보 편입 바라는 과격세력… 서방국가들의 대답은 “현상유지”
3월24일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코소보전쟁에 개입해 밀로셰비치정권의 세르비아에 대한 공습을 시작한 지 꼭 2년이 되는 해다. 78일 동안의 공습이 이뤄진 다음 나토군이 코소보 안으로 진격해 들어갈 때, 마케도니아는 그 길목이었다. 이즈음 들어 마케도니아-코소보 접경지대 두곳에서 긴장이 높아가고 있다. 코소보전쟁의 경우도 한 무리의 알바니아계 무장세력이 밀로셰비치정권에 맞서 싸움으로써 불거진 전쟁이었다. 세계는 제2의 코소보전쟁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런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마케도니아와 세르비아에서 소수계인 알바니아인들이 그리는 큰 그림은 좀처럼 실현되기 어렵다. 알바니아 민족주의에 바탕, 대알바니아(Great Albania) 또는 대코소보(Great Kosovo)를 발칸반도 지도 위에 이룬다는 것이다.
“잘못된 그림이니 다시 그리자”
1998∼99년 사이에 벌어진 코소보전쟁 당시 알바니아 무장세력들은 코소보해방군(KLA, 알바니아 약어로는 UCK)이란 이름으로 세르비아 보안군과 경찰에 맞섰다. 마케도니아와 세르비아의 알바니아인들도 해방군을 뜻하는 UC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프레세보 부야노바치 등 세르비아 접경지역의 알바니아인들이 조직한 UCPMB는 1천에서 2천명의 무장력을 갖추고 있다. 세프켓 무슬류가 이끄는 UCMPB는 지난 2년 동안 5km에 걸친 코소보-세르비아 사이의 나토-세르비아 완충지대라는 이점을 활용해 잘 조직된 상태다. 이들 가운데 간부급 상당수가 UCK에서 싸운 전력을 지녔다. 마케도니아 북서부 지역의 민족해방군(NLA, 알바니아어 약어로는 코소보해방군과 같은 UCK)은 200명, 잘해야 몇백명으로 소수다. 그러나 정작 그들 스스로는 1천명을 넘는 것으로 주장한다. 마케도니아 남부 스트루가지역에서도 알바니아인들의 공기가 심상치 않다는 소식이다.
두 무장세력은 지금은 공식 해체된 코소보해방군 잔존세력들로부터 음으로 양으로 지원을 받아왔다. 일부 코소보인들도 이들의 투쟁에 가담하고 있다. 무기도 이들 코소보해방군의 무기 은닉처에서 가져온 것으로 알려진다. 코소보해방군이 나토군에 의해 공식 해체된 99년 10월, 많은 중화기들이 나토에 반납됐지만, 그뒤 여러 차례에 걸쳐 지역 코소보해방군들이 숨겨놓은 무기들이 대량으로 발견된 바 있다.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의 입장에선 무기를 숨겨놓는 데 도덕적인 망설임이란 게 있을 수 없다. 코소보전쟁 중 유럽에 나가 있는 동포들의 성금을 모아 어렵게 사모은 중화기들을 나토군에 넘겨주는 것보다는, 언제가 앞날에 다시 쓰일 날이 있으리란 예상을 당연히 하게 된다. 코소보 독립을 완전히 이루는 날까지 그들에겐 힘이 곧 실력이란 사실을 코소보전쟁을 통해 익히 체험한 바다. 이들이 주장하는 바는 단순하다. 지금의 정치체제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UCPMB는 그들이 살고 있는 세르비아 접경 마을들이 코소보쪽에 편입되길 바란다. 7만에 이르는 알바니아 다수계 마을에서 예전처럼 세르비아 경찰들이 위세 부리는 것을 못 봐주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가능하다면 마케도니아 서북부지역 테토보 등에 있는 알바니아 집단마을들도 코소보에 편입되길 바란다. 코소보가 지금은 유엔 보호령 같은 처지에 있지만, 언젠가는 세르비아로부터 독립될 것이란 기대감 아래서다. 한마디로 “유고연방으로부터 분리될 때 그려진 잘못된 그림을 일부 고쳐 알바니아계가 합쳐지는 쪽으로 다시 그리자”는 주장이다. 굳이 과격파가 아니더라도 많은 알바니아계 사람들은 지금의 마케도니아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인종은 마케도니안 슬라브(Macedonian Slav)로 보고 있다. 알바니아계는 소수인종이라서 차별을 받는다고 느낀다. 인구 200만의 조그만 나라인 마케도니아는 인종 구성비가 복잡하다. 이른바 마케도니아인(그리이스, 세르비아와 뿌리가 같은 종교인 마케도니아 정교를 믿는 슬라브족 계열)이 67%로 다수인 반면, 회교를 믿는 알바니아인은 23%로 소수다(나머지는 터키계 4%, 집시 2% 등이다). 지난해 여름 마케도니아 스코프예에서 만난 한 현지 언론인은 앞으로 몇 세대가 더 지나면, 코소보가 그러했듯, 인구지도가 달라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산아제한 개념이 없는 알바니아인들은 보통 5∼8명, 많게는 12∼14명의 아이들을 낳는다. 코소보도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세르비아계가 다수였다. 알바니아 정부는 불필요한 마찰 염려
마케도니아의 50만 알바니아인들은 세르비아 코소보 접경지역의 7만 알바니아인들보다는 응집력이 떨어진다. 마케도니아쪽 알바니아인들의 주장은 다소 엇갈린다. 헌법을 개정해 알바니아계와 슬라브계 마케도니아의 두 연방제 국가를 창설하자는 주장도 있고, 알바니아인들의 정치문화 교육의 권리를 보장하라는 주장도 나온다. 옛날 유고연방 아래 공산정권의 지배를 받던 때에 비해 직업선택과 교육에서 차별을 느낀다고 알바니아인들은 불평한다. 알바니아 젊은이들을 위한 대학 하나 없다는 불만의 소리도 들린다. 마케도니아 정부는 비교적 민주적으로 다인종국가를 이끌어온 것으로 평가된다. 지금의 보리스 트라코프스키 정권은 알바니아계도 참여한 연립정부다. 문제는 이 나라가 이렇다할 산업기반이 없어 가난하고 실업률이 너무 높다는 점이다. 1인당 GDP가 3800달러밖에 안 되고 실업률은 35%에 이른다. 발칸반도에서 알바니아보다야 낫지만, 빈국이다. 따라서 알바니아계가 주장하는 취업기회 차별은 설득력이 약하다. 아무튼 최근의 긴장으로 아르벤 자페리 같은 마케도니아 내 온건파 알바니아계 정치인들은 설자리가 좁아졌다.
그러나 이즈음 테토보 지역에서 무장활동을 펴고 있는 UCK 등 과격파들의 눈으로 볼 때 마케도니아는 91년 유고연방에서 분리독립되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국가일 뿐이다. 그들은 마케도니아 북서부 테토보 지역을 포함한 국토의 3분의 1가량은 알바니아계가 역사적으로 소유해온 땅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 지역에 대한 주권행사는 알바니아인들이 결정할 문제라는 주장이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세르비아의 UCPMB가 내거는 대코소보(Great Kosovo) 또는 대알바니아(Great Albania)로 합치고자 하는 꿈을 지니고 있다. 발칸 지역 알바니아인들은 코소보쪽에 더 마음을 쓰고 있다. 알바니아가 워낙 가난하기 때문이다. 미 CIA 자료로는 1인당 GDP 1650달러가 고작이다(1999년). 99년 필자가 알바니아 현지의 코소보 난민수용소에서 들은 얘기지만,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은 “우린 저쪽 알바니아인들과 다르다”라는 말들을 자주 한다. 언어와 종교가 같지만, 정서는 다르다는 얘기다. 가난한 알바니아인들을 낮추어보는 그들의 태도가 필자의 눈에는 일종의 지방색처럼 비쳐졌다.
알바니아정부는 마케도니아에서 일어난 긴장사태를 불편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마케도니아와의 불필요한 마찰을 염려해서일까, “영토변경과 관련한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필자가 보기에, 국제정치학의 기본개념인 힘(power)의 논리로 비추어 알바니아는 그럴만한 요구를 할 처지가 못된다. 2차대전 바로 직전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 체코와 오스트리아에 휘둘렀던 그런 힘과는 거리가 먼 게 알바니아다. 97년 금융 피라미드 붕괴로 비롯된 한바탕 준내전 상태의 정치경제 혼란을 겪은 후유증 탓에 알바니아는 지금도 제몸 하나 추스리기 어렵다.
‘인종청소’는 없을 것
마케도니아 정부군은 지난날 세르비아군이 그랬듯 알바니아인들에 대한 무자비한 살육과 인종청소를 감행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세르비아-코소보 접경지역의 프레세보 지역도 총격전이 아닌, 대화로 긴장을 가라앉힐 가능성이 높다. 세르비아 정부군이나 마케도니아 정부군이 이들 알바니아 무장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작전을 편다면, 그 모양은 코소보 전쟁 당시 세르비아보안군의 무차별 살상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 될 것이다. 그곳 알바니아 게릴라들이 기대하는 국제사회의 동정심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정부군들은 조심스레 움직일 것이다.
최근 코소보 접경 마케도니아-세르비아 지역의 긴장사태로 나토의 발칸 평화유지 업무가 재검토되는 분위기다. 3만5천명가량의 나토 주둔군(KFOR)이 코소보에 머물고 있는데도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분쟁을 쳐다만 보는 답답한 상황이다. 2년 전 유엔과 나토 등 국제사회는 세르비아계의 알바니아계 학살을 멈추기 위해 개입했었다. 지금은 알바니아계가 무력충돌을 일으키지 않도록 단속하는 입장이 됐다. 2년 동안 발칸에서 일어난 큰 변화다. 발칸의 알바니아 무장집단들은 국제사회의 눈길을 그들에게 향하도록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들로부터 긍정적인 대답을 듣기는 어려울 것이다. 보스니아전쟁을 끝마무리하기 위한 95년의 데이튼 회담처럼, 발칸의 국경선 재조정을 위해 어떤 모임이 열릴 가능성은 전혀 없다. 현상유지, 이것이 힘을 지닌 미국 등 서방세계의 발칸 지침이다.
김재명 분쟁지역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사진/폭격받고 있는 마케도니아의 알바니아 다수계 마을.(SYGMA)
두 무장세력은 지금은 공식 해체된 코소보해방군 잔존세력들로부터 음으로 양으로 지원을 받아왔다. 일부 코소보인들도 이들의 투쟁에 가담하고 있다. 무기도 이들 코소보해방군의 무기 은닉처에서 가져온 것으로 알려진다. 코소보해방군이 나토군에 의해 공식 해체된 99년 10월, 많은 중화기들이 나토에 반납됐지만, 그뒤 여러 차례에 걸쳐 지역 코소보해방군들이 숨겨놓은 무기들이 대량으로 발견된 바 있다.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의 입장에선 무기를 숨겨놓는 데 도덕적인 망설임이란 게 있을 수 없다. 코소보전쟁 중 유럽에 나가 있는 동포들의 성금을 모아 어렵게 사모은 중화기들을 나토군에 넘겨주는 것보다는, 언제가 앞날에 다시 쓰일 날이 있으리란 예상을 당연히 하게 된다. 코소보 독립을 완전히 이루는 날까지 그들에겐 힘이 곧 실력이란 사실을 코소보전쟁을 통해 익히 체험한 바다. 이들이 주장하는 바는 단순하다. 지금의 정치체제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UCPMB는 그들이 살고 있는 세르비아 접경 마을들이 코소보쪽에 편입되길 바란다. 7만에 이르는 알바니아 다수계 마을에서 예전처럼 세르비아 경찰들이 위세 부리는 것을 못 봐주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가능하다면 마케도니아 서북부지역 테토보 등에 있는 알바니아 집단마을들도 코소보에 편입되길 바란다. 코소보가 지금은 유엔 보호령 같은 처지에 있지만, 언젠가는 세르비아로부터 독립될 것이란 기대감 아래서다. 한마디로 “유고연방으로부터 분리될 때 그려진 잘못된 그림을 일부 고쳐 알바니아계가 합쳐지는 쪽으로 다시 그리자”는 주장이다. 굳이 과격파가 아니더라도 많은 알바니아계 사람들은 지금의 마케도니아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인종은 마케도니안 슬라브(Macedonian Slav)로 보고 있다. 알바니아계는 소수인종이라서 차별을 받는다고 느낀다. 인구 200만의 조그만 나라인 마케도니아는 인종 구성비가 복잡하다. 이른바 마케도니아인(그리이스, 세르비아와 뿌리가 같은 종교인 마케도니아 정교를 믿는 슬라브족 계열)이 67%로 다수인 반면, 회교를 믿는 알바니아인은 23%로 소수다(나머지는 터키계 4%, 집시 2% 등이다). 지난해 여름 마케도니아 스코프예에서 만난 한 현지 언론인은 앞으로 몇 세대가 더 지나면, 코소보가 그러했듯, 인구지도가 달라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산아제한 개념이 없는 알바니아인들은 보통 5∼8명, 많게는 12∼14명의 아이들을 낳는다. 코소보도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세르비아계가 다수였다. 알바니아 정부는 불필요한 마찰 염려

사진/알바니아 무장세력과 전투를 치르고 있는 마케도니아군.(SYGMA)

사진/야간에도 마케도니아의 코소보 접경지역은 폭격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인종청소’로 확대되지는 않을 것 같다. (SYG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