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선거에서 좌파 들라노에 당선… 우파의 아성 허물고 등장한 동성애자 정치인
“당신 누구야? 오늘 필립 스갱과 베르트랑 들라노에의 대담이 있는 날이라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으니 아무나 들어갈 수 없어.” “내가 바로 그 들라노에인데.” “당신이 들라노에면 나는 자크 시라크다!”
지난 2월28일 좌-우파 두 후보의 대담이 있을 케이블방송 <카날 플러스> 정문 앞에서 정장을 차려 입은 한 남자와 경비원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물론 실제로 벌어진 상황은 아니다. 이는 들라노에 파리시장 당선자의 ‘무명성’을 풍자하는 인형극 내용이었다.
사회당 정부의 체면 살리다
프랑스에서는 전국 3만5천여 도시에서 시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지방선거가 3월11일과 18일 두 차례에 걸쳐 실시되었다. 공화국연합(RPR)과 사회당(PS) 등 전통적 정당들이 현상유지를 한 가운데 녹색당의 성공과 중도우파인 프랑스민주연합(UDF)이 부상한 것이 이 선거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힌다. 각 언론에서는 좌·우파의 무승부였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좌파는 조스팽 정부의 장관 6명이 출마한 각 도시에서 대패를 하고 주요 지방도시를 잃어버림으로써 깊은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도인 파리와 프랑스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리용에서의 승리는 2002년 국회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좌파에게 매우 값진 선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1977년 이래 줄곧 우파의 아성이었던 파리에서의 승리는 들라노에 개인으로서는 자신을 과소평가해온 그간의 시각을 뒤집은 한판의 멋진 ‘복수’가 아닐 수 없다. 93년 이래 파리시 의회에서 소수를 점하고 있는 사회주의자 그룹을 진두지휘해온 들라노에는 우파의 시정운영에 맞서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하면서 ‘현실 정치’를 피력해왔다. 95년 선거에서 좌파가 6개의 구청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조직력과 정치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드러내지 않고 시장의 꿈을 키워온 들라노에는 사회당 내의 슈퍼스타들에 가려 그의 꿈을 펼쳐볼 기회를 좀처럼 갖지 못했다. 그에게는 “카리스마가 없다” “대중적 지지도가 없다” 등의 평가가 따라다녔고 사회당 내에서 파리 시장 후보가 거론될 때마다 순위는 항상 꼴찌였다. 그러나 일찍부터 후보 1순위로 점쳐오던 도미니크 스트라우스 칸 경제부 장관이 부패사건 연루혐의로 정치계를 잠정적으로 떠나면서 그에게 기회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주위에 당원들을 결집해온 들라노에와 그 지지자들은 사회당 공식후보경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었고, 마침내 들라노에는 사회당의 유일한 공식후보가 되었다. 게다가 공화국연합의 공식후보가 된 필립 스갱과 장 티베리 전 시장 사이의 분열은 그의 행보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파리 시장 선거는 1차 선거에서 50% 이상을 득표한 당선자가 없을 경우 10%가 넘는 후보들끼리 결선투표에 들어간다. 이에 따라 결선 투표에 나선 각 후보들은 서로 연합의 가능성을 모색하느라고 분주해진다. 이번 선거에서 분열된 우파는 결선투표에서 이길 수 있는 조건에 대한 판단을 서로 달리하면서 만족할 만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반면 1차 투표에서 31.31%를 획득한 들라노에는 12.35%를 얻은 녹색당의 이브 카농소와 연합전선을 펴기로 결정했다. 결국 18일에 열린 결선투표에서 좌파는 승리를 거두었다.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들라노에의 승리는 프랑스인의 의식변화도 보여준다. 지난 98년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들라노에는 정치인으로는 처음으로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선거과정에서 좌파의 선거전단에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속어인 ‘페데’라는 낙서가 발견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후보들의 가족 문제라든가 성적 경향에 좌우되지 않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파의 24년간 장기집권이 파리를 세계에서 가장 낙후된 수도로 만들었다고 비판했지만 과연 좌파가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해서 확신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들라노에는 파리시 운영의 ‘투명성’을 강조하면서 각 구의 사회적 문화적 특성에 맞는 자율적 경영을 보장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파리시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들- 교통, 교육, 주택, 건강 등-이 개선되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기도 했다. 그의 입성이 파리시에 진보적이고 실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에 모든 시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파리=신순예 통신원 soonye.sin@libertysurf.fr

사진/파리 시장으로 당선된 들라노에.그는 93년부터 파리시 의회에서 사회주의자 그룹을 진두지휘해 왔다. (SYGMA)
프랑스에서는 전국 3만5천여 도시에서 시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지방선거가 3월11일과 18일 두 차례에 걸쳐 실시되었다. 공화국연합(RPR)과 사회당(PS) 등 전통적 정당들이 현상유지를 한 가운데 녹색당의 성공과 중도우파인 프랑스민주연합(UDF)이 부상한 것이 이 선거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힌다. 각 언론에서는 좌·우파의 무승부였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좌파는 조스팽 정부의 장관 6명이 출마한 각 도시에서 대패를 하고 주요 지방도시를 잃어버림으로써 깊은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도인 파리와 프랑스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리용에서의 승리는 2002년 국회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좌파에게 매우 값진 선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1977년 이래 줄곧 우파의 아성이었던 파리에서의 승리는 들라노에 개인으로서는 자신을 과소평가해온 그간의 시각을 뒤집은 한판의 멋진 ‘복수’가 아닐 수 없다. 93년 이래 파리시 의회에서 소수를 점하고 있는 사회주의자 그룹을 진두지휘해온 들라노에는 우파의 시정운영에 맞서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하면서 ‘현실 정치’를 피력해왔다. 95년 선거에서 좌파가 6개의 구청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조직력과 정치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드러내지 않고 시장의 꿈을 키워온 들라노에는 사회당 내의 슈퍼스타들에 가려 그의 꿈을 펼쳐볼 기회를 좀처럼 갖지 못했다. 그에게는 “카리스마가 없다” “대중적 지지도가 없다” 등의 평가가 따라다녔고 사회당 내에서 파리 시장 후보가 거론될 때마다 순위는 항상 꼴찌였다. 그러나 일찍부터 후보 1순위로 점쳐오던 도미니크 스트라우스 칸 경제부 장관이 부패사건 연루혐의로 정치계를 잠정적으로 떠나면서 그에게 기회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주위에 당원들을 결집해온 들라노에와 그 지지자들은 사회당 공식후보경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었고, 마침내 들라노에는 사회당의 유일한 공식후보가 되었다. 게다가 공화국연합의 공식후보가 된 필립 스갱과 장 티베리 전 시장 사이의 분열은 그의 행보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파리 시장 선거는 1차 선거에서 50% 이상을 득표한 당선자가 없을 경우 10%가 넘는 후보들끼리 결선투표에 들어간다. 이에 따라 결선 투표에 나선 각 후보들은 서로 연합의 가능성을 모색하느라고 분주해진다. 이번 선거에서 분열된 우파는 결선투표에서 이길 수 있는 조건에 대한 판단을 서로 달리하면서 만족할 만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반면 1차 투표에서 31.31%를 획득한 들라노에는 12.35%를 얻은 녹색당의 이브 카농소와 연합전선을 펴기로 결정했다. 결국 18일에 열린 결선투표에서 좌파는 승리를 거두었다.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들라노에의 승리는 프랑스인의 의식변화도 보여준다. 지난 98년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들라노에는 정치인으로는 처음으로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선거과정에서 좌파의 선거전단에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속어인 ‘페데’라는 낙서가 발견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후보들의 가족 문제라든가 성적 경향에 좌우되지 않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파의 24년간 장기집권이 파리를 세계에서 가장 낙후된 수도로 만들었다고 비판했지만 과연 좌파가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해서 확신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들라노에는 파리시 운영의 ‘투명성’을 강조하면서 각 구의 사회적 문화적 특성에 맞는 자율적 경영을 보장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파리시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들- 교통, 교육, 주택, 건강 등-이 개선되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기도 했다. 그의 입성이 파리시에 진보적이고 실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에 모든 시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파리=신순예 통신원 soonye.sin@libertysurf.f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