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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지옥을 떠나 지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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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3-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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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국땅에서 억울하게 450여일을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 있다. 송영택(46)씨. 그는 97년까지만 해도 경기도 동두천에서 부인이 운영하는 문구점에 사진관을 함께 운영하며 40대 가장으로 그런대로 생활을 꾸리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해 겨울에 몰아친 IMF 한파에 이어 설상가상으로 98년 여름 동두천시를 절반가량 침수시킨 집중호우는 각박한 이 나라를 떠나고 싶은 마음을 품게 만들었다. 그 즈음에 외국에서 ‘잘나가는’ 친구의 생활을 듣고 바로 사진관을 정리했다.

필리핀의 타갈로어는커녕 영어도 안 되지만 든든한 친구를 믿고 낯선 땅에 도착한 것이 1998년 11월3일. 그러나 도착하면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친구는 갑자기 사업이 어렵다는 이유로 오히려 그에게 빌붙는 신세가 되었고, 외국인은 사업주가 될 수 없다는 현지법에 따라 필리핀인의 명의로 ‘그린 스튜디오’를 개업했지만 하필이면 빈민가에 자리를 잡았으니 장사가 될 턱이 없었다.

1999년 5월7일 아침, 송씨는 동사무소(바랑가이)에 불려갔다. 송씨가 사진관을 내면서 명의를 빌린 필리핀인 에딧이 사진관을 탐낸 나머지 “송씨가 여행비자로 체류하면서 내 가게에서 취업활동을 하고 있다”고 신고한 것이다. 덜컥 겁이 난 송씨는 평소에 알고 지내던 박아무개씨의 도움을 받아 그날 밤 사진관의 기계를 옮겼다. 그는 박씨를 통해 새로 알게 된 동업자 여아무개씨와 8월 중순께 다시 가게를 열었다. 장사가 어느 정도 되던 99년 12월10일 그는 에딧의 신고에 의해 절도혐의로 구속 수감되고 말았다. 에딧은 사진관의 명의가 자신 앞으로 돼 있는 것을 교묘히 악용해 사진관을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로부터 1년4개월 동안 송시는 형이 확정되지 않은 채로 계속 감옥에 갇혀 있다.

남편이 성공해 돌아오길 손꼽아 기다리던 부인 김선애(46)씨에게 송씨의 구속 소식은 날벼락이었다. 김씨는 지난해 1월23일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필리핀에 도착해 퀘존시의 구치소에서 송씨를 만날 수 있었다. 몸 하나 간신히 누울 수 있는 침상, 엄지손가락만한 바퀴벌레들이 날아다니는 지하감옥 7호(DOM7)에서 필리핀 죄수들과 뒤섞여 수감돼 있는 남편은 지하의 숨막히는 더위 때문에 생긴 피부병을 앓고 있었다. 어느 한곳 억울한 사연을 하소연할 곳 없는 인권사각지대에서 재판마저도 계속 연기되고 있어 그는 기약없이 감옥에 갇혀 있다.

부인 김씨는 남편의 옥바라지를 위해 뭔가를 해야만 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한국인이 운영하는 노래방에서 저녁 9시부터 새벽 4시까지 하는 주방 일이다. 한달 수입은 고작 55만원. 여기서 고국에 두고 온 두딸을 위해 15만원을 송금하고, 매일 면회를 하면서 남편에게 식대로 30여만원을 들여보낸 뒤 자신은 남는 돈으로 최소한의 생활을 꾸리고 있다.

이들의 딱한 사정을 알고 최근에는 동포들이 도움의 손길을 펼치고 있다. 구세군교회의 김종선 사관은 “재외동포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그들의 인권을 보호해줄 곳이 마땅치 않고 언어문제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통역자원봉사자를 구하기도 힘들다는 사실이 정말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는 이들의 구명을 위해 동포들의 서명을 받아 필리핀 정부에 탄원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했다. 다음 재판은 3월21일, 또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재판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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