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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동구 노동자, 다시 어깨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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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3-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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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전역을 마비시킨 한달간의 파업… 대책없는 해외매각에 제동걸고 권익 찾아

사진/고속도로를 점거한 노동자들. 불가리아국기와 함께 플래카드에는 '굶주림'이란 글씨가 씌어있다.
지난 2월1일, 공장문을 박차고 나온 7천명의 바조프기계공장 노동자들은 5개월 동안 밀렸던 임금을 요구하면서 파업에 들어갔다. 불가리아 중부지역의 소폿시를 완전히 장악하고 바리케이드로 수도 소피아시와 흑해의 관문인 부르가스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를 차단해 사실상 불가리아 전국을 한달 동안 마비시켰던 파업투쟁은 결국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락한 정부와의 타협으로 막을 내렸다.

해방구가 된 소폿시

바조프기계공장은 불가리아에서 가장 큰 무기제조공장으로 동구권이 몰락하기 전에는 무기생산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오면서 바르샤바조약기구 국가들과 제3세계 국가들의 무기수요가 급락하면서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지난해까지 바조프공장이 짊어진 부채는 약 3500만달러로, 정부의 지원으로 겨우 지탱해왔다. 파업 전까지 생산이 지속돼왔지만 해외주문이 없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의 임금지불이 5개월 동안 미뤄졌다. 불가리아 정부는 지난해 3월부터 ‘산업사유화’ 정책의 일환으로 이 공장을 매각하기 위해 국제시장에 내놓았으나 국제자본가들로부터 거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정부의 대책없는 임금체불과 소극적인 협상태도에 노동자들은 전면파업으로 대응했다. 5개월 동안 밀린 임금을 한푼도 받지 못하면서 생존의 벼랑 끝에 몰렸던 노동자들은 전 가족을 동원해 파업시위를 시작했다. 이에 정부는 작업에 불응하면 공장폐쇄도 불사하겠다는 ‘채찍’과, 공장에 돌아가면 최저임금인 79레바(약 38달러)를 매달 지급하겠다는 ‘당근’을 제시했으나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민들이 거의 대부분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인 소폿시는 불가리아신문들이 표현한 것처럼 ‘소폿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정부의 통제와는 거리가 먼 ‘해방구’로 바뀌었다. 처음엔 노동자들의 파업시위만으로 시작됐으나 점차 그 열기가 확산되면서 가족이 합세하고 나중에는 자녀들까지 아예 파업현장으로 등교하는 사태로 치달았다. 파업투쟁위쪽은 아예 소폿시의 노동자지역인 카를로포지역으로 통하는 모든 도로들을 바리케이드로 완전히 차단시켜버렸다. 이 도로는 수도 소피아와 흑해의 항구도시인 부르가스시를 잇는 불가리아의 혈관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이곳을 오고가던 수출입품들이 발이 묶이면서 불가리아경제가 거의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정부쪽에서는 경찰을 동원해 파업을 물리적으로 깨려는 시도를 했으나 전혀 통하지 않았고 노동자들의 반발만 증폭시켰다. 여기에다 정부가 임명한 방송사 사장에 대한 항의로 수천명의 국립라디오방송사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면서 소피아시내는 연일 파업시위의 물결로 뒤덮였다. 바조프노동자들은 또한 파업기간 내내 방송국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슬로건을 앞세우면서 연대를 표시하기도 했다.

시위도중 2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자 수백명의 노동자들이 항의의 표시로 단식투쟁에 들어가면서 파업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발전했다. 국방장관은 담화문을 내어 노동자들의 파업이 “국가의 안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파업을 자제해줄 것을 당부했다. 바조프공장 사장인 이반 스토덴체프는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인 79레바에서 1레바(600원)가 오른 80레바를 월급으로 지급한다는 약속을 재차 강조하면서 노동자들의 파업중지를 회유했다.

회사쪽에서는 노동자들 가운데 폭력단을 조직해 강제로 노동자들의 파업을 중지시키고 일터로 복귀시키려는 책동을 하기도 했다. 이들은 회사정문 앞에서 시위중인 노동자들에게 위협적인 언사로 “공장문을 열 테니까 들어가라”고 협박했지만 오직 여섯명의 노동자들만이 열린 공장문 안으로 들어갔을 뿐 나머지 노동자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회사쪽에 협조적인 300여명의 노동자들을 매일 출근시켜 일은 시키지 않고 대신 일당을 지급해 파업중인 노동자들의 파업의지를 약화시키려는 시도도 계속했다.

온갖 술책이 먹혀들지 않아

사진/바조프공장 노동자들의 시위. 한 노동자가 불가리아국기를 들고 선두에서 행진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노조에 소속되지 않은 노동자들을 협상대표로 선정하여 여러 차례 협상을 시도했다. 노동자들을 두파로 갈라놓으려는 술책이었지만 이것 또한 수포로 돌아갔다. 보수언론을 통한 노동자들에 대한 악선전도 만만치 않았다. 보수언론들은 “노동자들이 일터로 돌아가지 않을 경우 공장은 파산선고에 직면할 것”이라는 정부쪽의 일방적인 주장을 실었으며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을 마치 임금인상을 위한 파업인 양 보도했다. 또한 협상이 되지 않는 이유를 노동자들이 불만만 터뜨리고 조직적으로 문제를 풀어가지 않기 때문이라고 악선전을 반복했다. 이에 파업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의지를 불가리아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시민불복종켐페인’을 벌일 것을 결의하고 5천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서명하는 단결된 모습으로 맞섰다.

시간이 흐를수록 궁지에 몰린 정부는 처음 파업 때 보였던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협상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먼저 카를로프시 시장에게 중재를 요청하여 협상재개를 시도했다. 그러나 노동자 대표들이 모임에 나타나지 않아 시장의 중재는 수포로 돌아갔다. 이어서 정부의 협상대표인 재무장관 무라베이 라데프와 노동자 대표들이 몇 차례 협상을 가졌으나 모두 노동자회의에서 거부됐다. 정부쪽에서 제시한 협상안은 정부에서 무이자로 550만레바를 지원하여 그동안 밀린 노동자들의 임금을 지불하고 남는 대금으로 원자재를 구매하여 생산을 정상화시킨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대신 기술적인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는 어떠한 이유에서도 생산을 방해하지 말 것”이란 협상내용이 문제가 되면서 노동자들은 협상안을 거부하게 된다. 노동자들은 후자의 안을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침탈하는 안으로 규정하고 이에 강력히 반발했다. 사실 노동자들은 지난해 10월부터 5개월 이상 임금을 받지 못하면서 계속 정부에 속아왔다는 사실에 분개해 있던 상태였다.

완전히 수세에 몰린 정부는 지난 2월27일 노동자들의 안을 대폭 수용했으며, 재무부 장관, 노동부 장관, 회사경영진과 파업노동자 대표들, 노조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협상이 타결됐다. 파업 초에 회사경영진에서는 작업에 복귀할 경우 한달에 최저임금인 79레바(약 6만원)를 지급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한달 파업 이후 타결된 협상안은 820만레바를 무이자로 정부가 지원해 5개월치의 밀린 임금을 완전지급하고 그동안 파행적으로 가동돼온 공장을 정상화시킨다는 쪽으로 내용이 완전히 바뀌었다. 무엇보다도 바조프기계공장을 부실기업으로 판정해 외국자본에 팔아넘기려던 계획에서 후퇴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직접 수주를 알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미 정부에서는 900만달러어치의 주문을 받은 데 이어 400만달러와 500만달러어치의 다른 두건의 주문도 협상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3월2일부터 노동자들은 일터로 돌아가 정상조업에 참가하고 있다. 사실상 이들의 요구조건이 완전히 충족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파업의 최초 동기였던 밀린 임금의 청산과 안정적인 생산활동에 대한 요구가 관철됐다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소비에트관료주의가 아직도 남아 있는 강력한 불가리아 정부에 대항해 벌였던 파업투쟁에서 정부의 양보를 얻어냈다는 사실 자체가 귀중한 경험이다.

동구권 노동운동의 새 지평 열다

소비에트체제가 붕괴된 뒤 동구권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전반적으로 엄청나게 악화되었다. 세계자본주의에 뒤늦게 편입되면서 대부분의 산업들이 경쟁력을 잃고 파산하거나 아니면 외국자본의 손에 넘어가고 있다. 사회주의체제에서 존속되었던 사회보장제도도 하나둘씩 무너져가고 있으며 임금은 더욱 하락하고 노동강도는 더욱 증가했다. 바조프노동자들의 파업기간 중 공장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은 최저생계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불가리아전국소비자연맹의 발표도 있었다.

더이상 물러설 수 없는 생존의 한계에 도달했던 바조프노동자들은 파업투쟁이라는 단 하나의 무기를 사용하여 과거 소비에트 시절 말로만 들어왔던 ‘잃을 것은 쇠사슬이요 얻을 것은 세계’라는 명제를 실감나게 경험하면서 동구권 노동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았다.

아테네=하영식 통신원 youngsig@otenet.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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