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경제위기로 자살 급증하는 터키… 깎인 임금으로는 생계조차 어려워
지난 2월21일 외환위기로 비롯된 갑작스런 터키의 경제위기는 터키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면서 사회적으로 급속한 일탈현상을 유발하고 있다. 14개월 전에 시작된 국제통화기금(IMF)의 환율안정프로그램이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다시 외환대란으로 인한 경제위기가 일어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살의 길로 들어서고 있어 터키사회에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자살을 죄악시하는 회교국가에서 자살률이 날로 증가하면서 터키는 경제위기보다 더 심각한 사회의 총체적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는 우려가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낙관적인 전망이 자살 불렀다
<터키매일신문>에서 다룬 한 소생산자의 자살이야기는 경제위기하의 터키의 상황을 잘 그려주고 있다. 터키의 최대도시 이스탄불에서 플라스틱제품들을 혼자서 생산해온 알파르슬란 부유코무르주(53)는 수백만명의 소생산업자들 중 하나였다. 침체된 경기로 인해 생산한 물건들이 창고 가득히 쌓인 지 벌써 1년이 지났지만 “봄이 오면 좋아지겠지”하는 희망 속에서 빚을 내어 원료를 사들여서 생산을 계속해왔다. 당연히 원료수입대금은 달러로 지불하기로 했다. 지난해 들어 정부에서 IMF구제금융으로 3년외환시장안정계획을 실행하는 중에 있었다. 그는 정부총리와 국립은행총재의 말을 믿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에서는 “봄이면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며 언론을 통해 계속 낙관적인 전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던 차였다. 알파르슬란 자신도 가끔은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미래가 좋아지리란 정부의 말을 믿고 싶었다. 봄이면 경기가 회복돼 빚도 청산하고 기계도 한대 더 구입해서 일꾼 한명을 고용해서 함께 일할 꿈을 꾸면서 계속 생산을 해나갔다.
그러나 갑자기 지난 2월21일 총리인 불렌트 에제비트는 대통령인 아흐메트 네스데트 세제르와 국가안전협의회(National Security Council)의 회담을 마친 뒤 회의내용을 공개하였다. 지난 14개월 동안 외환시장을 안정시켜온 정부는 외환보유고의 고갈로 더이상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 없으므로 외환시장을 자율에 맡긴다는 내용이었다. 이 발표는 지난 99년에 일어났던 지진보다 더 강하게 터키를 강타했고 시장은 혼돈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즉시 달러는 40% 이상 평가절상되면서 1달러에 67만터키리라에서 100만리라로 하루 사이에 환율이 하늘과 땅 차이로 바뀌었다. 이날 하루 동안 터키를 빠져나간 외화가 모두 50억달러에 이르렀다. 알파르슬란의 부채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40%가 늘어난 것이다. 이날 그는 스스로 목을 맸다.
2월21일의 발표가 있은 뒤 1주일 동안 벌써 11명이 알파르슬란과 같은 길을 선택했다. 이스탄불경찰국은 자살자가 1999년에 281명, 2000년에 367명이었다가 지난 6개월 동안에만 무려 495명으로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회교국가인 터키에서 자살은 종교적으로 죄악시되기 때문에 자살률이 미국이나 서구유럽국가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낮다. 그러나 자살률은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경제적 위기와 맞물려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아테네법대의 사회학교수인 니콜라 타치스 박사는 “회교국이 되기 이전의 터키를 비롯한 지중해국가들의 전통적 윤리가치의 토대 위에서는 사회적 동기가 자살로 이어지기 쉬우며 자살을 통해 심리적인 정당성을 획득하려는 문화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빚을 갚지 못한다는 것을 곧 사회적인 불명예로 여기는 사회적 의식이 사람들을 자살로 몰고 간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터키에서의 자살률의 증가원인을 ‘지구화’(globalization)에서도 찾을 수 있다며 “지구화는 전통적인 공동체를 해체시키면서 인간들을 개별화해왔는데 거대한 지구화에 맞선 개인은 전혀 방어수단이 없다는 사실이 자살률을 증가시키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대통령과 총리의 싸움질
1999년에 IMF로부터 110억달러의 구제금융차관을 들여와서 IMF의 외환안정프로그램을 받아들인 뒤 다시 경제위기를 맞은 터키 정부는 경제의 총책임자를 아예 세계은행(World Bank)의 부총재인 케말 더비스로 교체하면서 250억달러의 IMF구제금융자금을 들여오기 위한 개각을 단행하였다. 케말 더비스는 취임연설에서 “올 여름 초가 되면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많은 해고와 임금삭감도 있을 것이란 걸 알고 있다. 그러나 한 민족으로서 이것을 함께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더불어 미국과 계약했던 100억달러어치의 무기구매건도 재고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넌지시 밝혔다. 이는 아랍사회의 유일한 나토회원국이면서 미국과 영국에 공군기지(인쥐릭)를 제공하고 있으며 대이라크전의 유일한 아랍동맹자이기도한 터키의 군사전략적 가치를 다시 한번 이용해보자는 속셈이다. 특히 터키 정부는 미국의 정책에 언제나 강력하게 협조해온 아랍세계의 유일한 나라로서 군사전략적인 힘의 균형상 중동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인데다 엄청난 미국무기의 수입국이기 때문에 미국의 경제적 지원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상황판단을 내리고 있다. 따라서 IMF구제자금 끌어들이는 것을 아주 낙관하는 상태이다. 지금까지 터키에서 받아들였던 IMF자금의 대부분은 독일에 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현사태의 책임을 진 총리는 권력의 안팎에서 집중적인 비난을 받으면서도 사임을 완강히 거부하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터키의 권력은 민간각료들과 군부의 핵심들이 수십년간 운영해온 ‘국가안전협의회’(National Security Council)라는 기구가 장악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기구는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언제나 지탄의 대상이었으면서도 위기가 있을 때마다 힘의 우위에 선 군부는 무책임하게 빠지고 언제나 민간각료의 교체라는 형식을 통해서 권력을 유지해왔다. ‘외환대란’을 발표하던 날도 대통령과 총리가 이 기구의 회의에서 부정부패 문제로 서로 헌법책자를 집어던지면서 언쟁을 벌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럴 무렵에 신용등급평가회사인 ‘스탠더드&푸어스’사에서는 터키의 신용등급을 몽골과 파라과이와 같은 등급으로 판정했다.
현재 거리의 음식점에서는 미 달러화로 음식값을 요청하기 시작했으며 가게의 점원들은 신용카드 결제를 거절하고 있다. 또한 은행은 기업에 자금대출을 중지했고 자금대출을 받지 못한 중소기업들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지불정지한 상태이다. 그리고 갑자기 기름값이 인상된데다 주유소에선 더 높은 가격인상에 대한 기대로 한정된 분량의 기름만 팔고 있다. 지난 2주 동안에 벌써 13만명의 실업자들이 양산되었으며 해고자들은 계속 늘어가고 있다. 그나마 낮은 임금으로 가족을 부양하기에도 벅찼던 노동자들은 깎인 임금으로는 생존하기조차도 어려워진 현실에 대한 불안감에 떨고 있다. 현재 일반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한달에 약 150달러에 불과하다. 일에 따라서 차이가 있지만 여자빌딩청소부의 경우 한달에 50달러 정도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죽느냐 떠나느냐, 이것이 문제
외환대란이 있은 뒤 노동자들은 계속적으로 정부의 경제실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통해 자신들의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경제위기에 충격받은 많은 사람들이 정신과 의사들의 진료를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 상태이다. 이들은 주로 다시 갑작스럽게 닥친 경제위기로 자신들이 누려왔던 사회적 조건이 하락한 것을 도저히 정신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중간층의 사람들이다. 후진농업국가에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도시화와 취약한 중간층의 건설을 이뤄온 터키는 1999년부터 계속돼온 경제위기로 중간층 해체의 길을 급속히 걷고 있는 중이다.
정치경제적인 상황에 실망한 수 많은 터키의 젊은이들이 조국을 떠나 유럽으로 이주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현재 가까운 유럽에만 해도 수백만의 터키인 이민자들이 살고 있으며 독일만 해도 300만명 이상이 살고 있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는 것이 탈출의 한 방법이라면 상황에서의 탈출 또한 다른 방법이다. 그러나 탈출이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다. 타치스 박사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자살이 사회현상화하는 이유는 ‘대중적인 좌절’이 가장 큰 원인인데 이것을 극복하는 것도 대중적인 차원에서의 해결밖에는 없다”면서 “너와 나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는 작은 공동체운동들만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방어수단”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아테네=하영식 통신원 youngsig@otenet.gr

사진/이스탄불에서 가장 큰 시장.외환위기로 인한 물가인상으로 경기가 위축되고 있다.

사진/경제위기에 분노하여 정부와 IMF에 시위하는 노동자들. 플래카드에 ‘코타렐리가 총리이고 누가 조작하는지 다 안다’는 슬로건이 적혀있다. 코타렐리는 터키주재 IMF책임자다.

사진/터키총리 불렌트 에제비트의 연설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