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공포에 떠는 터키 감옥의 쿠르드인 정치범…‘F형교도소’ 이전 반대하다 목숨 잃기도
터키 감옥에는 현재 약 1만명의 쿠르드인들이 ‘정치범’이란 딱지가 붙은 상태로 감옥에 수감돼 있다. 터키 정부의 쿠르드족에 대한 정치적인 박해는 터키 남동부지역 쿠르드인들을 도시로 강제이주시키면서 더욱 심해졌다. 터키 정부는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지방에 사는 쿠르드인들을 민족독립을 위한 게릴라운동과 분리시키기 위해 통제가 용이한 도시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써왔다. 도시로 옮겨온 쿠르드인들의 경우 대부분 빈민가에 모여살기 때문에 정부의 통제는 더욱 용이하며 집중적이다.
선고가 끝난 뒤 변호사 접견하다
인구 4천만명의 쿠르드족 중 약 2천만명이 터키 내의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터키사회에서 최하층을 형성하면서 살고 있기에 꼭 정치적인 이유만이 아니더라도 감옥은 더 가까이 있다. 터키 감옥에서 정치범으로 15년간 복역한 뒤 그리스로 망명한 케말(40)은 “무슨 특별한 일을 해서 감옥에 가는 게 아니라 단지 쿠르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간다”고 말했다. 실제로 터키 정부는 쿠르드민족에 대한 차별정책을 구조적으로 시행해오고 있다. 쿠르드어 사용금지, 쿠르드어 교육금지, 쿠르드 언론에 대한 탄압, 쿠르드 정당에 대한 탄압 등을 위해 ‘반테러법’ 등 수많은 법들이 촘촘히 짜여져 있다. 따라서 “터키 감옥이 쿠르드 정치범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터키 정당들조차도 다른 문제로 정부를 비판하는 일은 용납돼도 쿠르드족에 대한 차별정책, 종교적 문제, 군부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금기사항’이다. 지난해 2월 터키 정부가 쿠르드 정당 중 하나인 하데프당(쿠르드민중민주당)에 소속된 세명의 쿠르드인 시장들을 구금한 사건은 세계여론을 들끓게 만들었다. 디야르바키르 시장인 페리두 젤릭, 시르트 시장 셀림 오잘프, 빙골 시장인 페줄라 카라슬란 등 세명은 5일 동안 외부와 완전히 고립된 채 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되어 가혹행위를 당했으며 교도소로 넘어가기 직전 ‘세계의 압력’으로 다행히 풀려났다. 특히 교도소에서 터키 병사들에 의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고문과 구타 등 인권유린사태와 이에 대응한 재소자들의 단식투쟁은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성역’이 돼버렸다. 아테네로 정치적인 이유로 망명한 메틴 닥(29)의 삶은 터키에서 쿠르드인들이 당하는 박해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쿠르드지역인 드라프바카에서 태어나 세살 되던 해 이즈미르시로 가족들이 모두 이주했다. 그뒤 1997년 어느 날, 하데프당의 당원이었던 그에게 경찰관들이 찾아와서 경찰서로 데려갔다. 그가 체포된 이유는 쿠르드 정당인 하데프당에서 활동을 했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하데프당은 합법적인 정당이다. 경찰서에 구금된 지 10일 뒤에야 변호사 접견이 이루어졌지만 이미 재판정에서 3년형의 선고가 내려진 뒤였다. 그가 수감됐던 곳은 이즈미르시(두 번째 도시)에서 150km 정도 떨어진 나질리 근방의 이덴 교도소였는데, 약 1천명 정도의 재소자가 수용된 이 교도소에는 약 300명의 무장군인들과 교도관들이 상주해 있었다고 한다. 가혹한, 너무나 가혹한 진압
이곳에서 3년을 지내면서 그는 교도소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여섯 차례의 단식투쟁을 벌였다. 복역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가족과의 면회가 있은 뒤엔 반드시 군인들의 폭행이 뒤따랐고 정말 몸이 아파서 의사의 치료를 요구할 때도 군인들이 거짓말한다고 폭행할 때였다”고 한다. 또한 “교도소에서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시간 이후에 교육시간이란 명분으로 항상 재소자들을 모아놓고 ‘세뇌교육’을 시켰는데 이것은 참을 수 없는 정신적인 고문이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군인들에 의해 자행되는 일상화된 폭력은 곧바로 재소자들의 단식투쟁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외부와 거의 차단된 상태에서 일어나는 단식투쟁은 재소자들 사이에서는 ‘죽음의 단식’이라는 용어로 불리고 있다. 좌익활동 혐의로 터키 감옥에서 5년6개월을 복역했던 일데림(37)은 “군인들의 폭력이 두려워서 샤워실에 가기도 거부했다”고 말했다. 고립된 곳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재소자들을 죽음의 공포 속에 살아가게 만들며 또한 극단적인 항거로 나가게 한다.
지난해 12월19일과 21일 사이에 터키에서 일어난 교도소 진압은 역사상 유래가 없는 무차별살상을 불러일으켜 약 30명의 재소자들과 두명의 진압군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이스탄불에 위치한 움라니예 교도소에서의 진압은 대표적인 사례로 세계에 알려져 있다. 군대가 교도소를 포위한 상태에서 불도저로 교도소 건물을 밀어버린 뒤 가스탄을 발사하고 항복하지 않는 재소자들에게 무차별적인 총격을 가하고 화염탄을 투척해 교도소와 함께 재소자들을 불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태는 터키 정부에서 정치범들을 ‘F형교도소’로 이전하려는 계획을 실행하려다 재소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자 재소자들의 투쟁을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일어났다. 당시 21개 교도소의 약 2천여명의 재소자들이 단식투쟁에 참가했다. 터키 정부는 단식투쟁중에 참가한 재소자들이 대부분 터키의 반테러법에 의해 구속된 무장투쟁조직의 단원들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재소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사태는 세계인권단체들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뉴욕에 본부를 둔 ‘인권감시’(Human Rights Watch)는 “1995년부터 군인들을 교도소 주변 경비 명목으로 배치하고서는 재소자들을 탄압하기 위해서 활용해왔다”면서 “이들 터키군인들은 교도소 업무를 위해 전혀 훈련을 받지 않았고 단지 15년간 남동부지역에서 있었던 쿠르드 게릴라들과의 분쟁에 참전한 병사들로서 이들은 교도소로 배치되면서 재소자들을 타격할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고 터키 정부를 비판했다.
이번에 수면 위로 떠오른 ‘F형교도소’는 지난 60년대 서독의 ‘흰감옥’이 모델이라고 한다. 당시 서독은 도시게릴라그룹인 RAF 단원들을 모두 흰색이 칠해진 좁은 독방에 수감하고 면회 금지, 바깥출입 금지, 24시간 전등이 켜진 상태로 장기간 지내게 하여 대부분의 수감자들이 정신병을 얻게 되는 ‘효과’를 보았다. 때문에 ‘흰감옥’은 특별히 정치범들을 위해 쓰이고 있는 감옥모델로 알려지고 있다.
공존의 길로 갈 것인가
터키 정부는 지난해부터 에디르네, 신잔, 코잘리카드라에 세개의 ‘F형교도소’를 완공하여 정치범들을 이곳으로 이전할 계획을 추진해왔다. 재소자들의 집단단식 사태는 고립된 감옥으로의 이전을 반대하면서 일어났는데, 이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고립된 상태에서 늘상적으로 빚어지는 재소자들에 대한 구타였다. 이에 대해 터키 정부는 “새 교도소는 유럽의 기준에 부합되며 재소자들이 ‘불안정’을 조장하는 것을 막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터키 교도소에서는 한방에 보통 10명에서 30명까지의 재소자가 함께 수용돼 있다. 그러나 ‘F형교도소’의 경우는 한방에 1명 내지 3명을 수용하고 외부와는 완전히 차단된 구조로 돼 있다.
지난해의 ‘교도소진압사태’가 있은 뒤 지금까지도 여전히 300여명의 재소자들이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하고 있고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그 등 유럽의 몇개 도시들에서는 쿠르드인들과 유럽인들이 동조단식투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전세계가 터키의 감옥 내의 인권상황과 쿠르드족에 대한 차별문제를 비판하고 있다. 더구나 갑자기 불어닥친 터키 경제의 위기는 유럽연합의 가입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으며 터키 정부를 선택의 기로에 서게 만들고 있다. 개혁을 통한 공존의 길로 나갈 것인지 강경정책의 고수로 고립의 길을 계속 갈 것인지를 세계는 주목하고 있다.
아테네=하영식 통신원 youngsig@otenet.gr

사진/단식투쟁을 하던 쿠르드인이 군인들에 의해 끌려가고 있다.

사진/재소자 아들의 사망소식을 듣고 오열하는 어머니.
터키 정당들조차도 다른 문제로 정부를 비판하는 일은 용납돼도 쿠르드족에 대한 차별정책, 종교적 문제, 군부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금기사항’이다. 지난해 2월 터키 정부가 쿠르드 정당 중 하나인 하데프당(쿠르드민중민주당)에 소속된 세명의 쿠르드인 시장들을 구금한 사건은 세계여론을 들끓게 만들었다. 디야르바키르 시장인 페리두 젤릭, 시르트 시장 셀림 오잘프, 빙골 시장인 페줄라 카라슬란 등 세명은 5일 동안 외부와 완전히 고립된 채 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되어 가혹행위를 당했으며 교도소로 넘어가기 직전 ‘세계의 압력’으로 다행히 풀려났다. 특히 교도소에서 터키 병사들에 의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고문과 구타 등 인권유린사태와 이에 대응한 재소자들의 단식투쟁은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성역’이 돼버렸다. 아테네로 정치적인 이유로 망명한 메틴 닥(29)의 삶은 터키에서 쿠르드인들이 당하는 박해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쿠르드지역인 드라프바카에서 태어나 세살 되던 해 이즈미르시로 가족들이 모두 이주했다. 그뒤 1997년 어느 날, 하데프당의 당원이었던 그에게 경찰관들이 찾아와서 경찰서로 데려갔다. 그가 체포된 이유는 쿠르드 정당인 하데프당에서 활동을 했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하데프당은 합법적인 정당이다. 경찰서에 구금된 지 10일 뒤에야 변호사 접견이 이루어졌지만 이미 재판정에서 3년형의 선고가 내려진 뒤였다. 그가 수감됐던 곳은 이즈미르시(두 번째 도시)에서 150km 정도 떨어진 나질리 근방의 이덴 교도소였는데, 약 1천명 정도의 재소자가 수용된 이 교도소에는 약 300명의 무장군인들과 교도관들이 상주해 있었다고 한다. 가혹한, 너무나 가혹한 진압

사진/교도소 이전을 반대하는 재소자 시위를 진압하다 부상입은 군인(위).움라니예 교도소의 재소자 단식투쟁은 잔혹한 진압으로 끝났다. 진압을 위해 건물 지붕 위에 올라간 군인들.

사진/삼엄한 경비를 하고 있는 움라니예 교도소 전경.(SYG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