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페이지, 신문, 대표기구를 통한 독일 재소자들의 ‘스스로 권리찾기’
재소자 홈페이지, 재소자 신문, 재소자 대표기구. 독일 재소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만든 것들이다. 고질적인 교도소내 인권문제와 높은 재수감률을 해결하기 위해 재소자들이 ‘스스로 투쟁’에 나선 것이다.
베를린 북쪽 테겔에는 ‘혹성’이라 불리는 독일 최대규모의 교도소가 자리잡고 있다. 1675명의 수감자와 830명의 관련 교도관 및 공무원들로 이루어진 그들만의 세계, 고립된 혹성이다. 1998년 12월 이후에 최초의 ‘혹성탈출’이 감행되었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 나오는 것과 같은 은밀한 탈옥을 말하는 건 아니다.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재소자들이 시도하고 있는 자유로운 세상과의 교신 노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홈페이지, 정신적 부활을 위해
교도소 안의 컴퓨터에서 ‘www.planet-tegel.de’에 접속하면 “당신은 지금 혹성 테겔의 홈페이지에 들어왔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밝혀 주십시오”라는 첫인사를 대하게 된다. 사진들은 방탄철문과 빽빽한 창살에 둘러싸인 삼엄한 교도소 내부를 공개하고 있다. 재소자들이 쓴 글들은 그들의 고민과 외로움, 노동과 여가 등 교도소 안의 세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1675명의 재소자 중 선별된 15명으로 구성된 컴퓨터팀은 외부 웹디자이너들의 도움을 받아 독일 최초로 재소자 홈페이지를 탄생시켰다. 또한 이들은 일주일에 단 2시간이란 짧은 시간이지만, 이메일을 통해 외부세상과 대화를 나눈다. 컴퓨터팀에 속한 대부분의 재소자들은 교도소 안에서 처음으로 컴퓨터를 접한 이들이다.
지난 2월27일 오후 테겔교도소를 직접 찾아갔다. 이곳에서 먼저 컴퓨터팀원 중의 하나인 디트마를 만났다. 그는 사기 및 횡령죄로 11년형을 선고받고 8년째 복역중이다. 그는 “재소자들은 사람들의 차가운 시각과 혹독한 냉대에 시달린다. 사람들은 우리가 자신들의 세금을 낭비하며 호텔에서 지내듯 살아간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며, 자신들의 일차적 과제는 교도소의 삶을 있는 그대로 알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들에게 허가된 웹 상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은 일반인의 시각으로 보면 지극히 제한된 것이다. 사전검열 없는 홈페이지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할 자유는 있지만, 보고 싶은 것을 볼 수도, 또 찾고 싶은 것을 찾을 수도 없다. 온라인 작업이 전면적으로 금지되어, 홈페이지만을 재소자들만 볼 수 있게 오프라인상태로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디트마는 난생 처음 접한 ‘웹세상’을 통해 얻은 새로운 희망에 대해 말한다. “가장 두려운 것은 석방 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나 교도소 생활의 고단함이 아니라 고여있는 삶, 정신적으로 죽어 가는 삶입니다. 홈페이지를 통한 우리들의 작업은 바로 이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입니다.”
얼마 전 홈페이지의 위력을 확인시켜준 사건이 발생했다. 만기를 얼마 남기지 않은 슈테판이라는 34세의 장기수가 짧은 휴가기간 동안 숨진 채 발견되었다. 자살이라는 공식발표 후에도 사망 배경을 둘러싸고 많은 의혹이 제기됐다. 그가 한 여자 교도관과 내연의 관계를 맺어 왔으며, 이로 인해 10년간 모범수 생활을 해온 그의 감형결정 신청이 부당하게 기각되었다는 것이다. 현행 독일법에 따르면, 교도관과 수감자간의 성적인 관계가 드러날 경우 교도관은 그에 따른 법적인 처벌을 받지만, 수감자를 처벌하거나 불이익을 가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재소자 홈페이지는 교도소 당국의 행정권 남용여부 등의 의혹을 신속하게 올렸고, 이 사실이 여론에 알려지면서 검찰이 공식적인 수사에 착수하게 됐다. 디트마는 이 경험을 통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작은 투쟁의 가능성을 발견했다며, 희망이 담긴 목소리로 추진중인 계획을 설명했다. “토론 게시판을 만들어 교도소내의 마약, 성 문제 등도 다룰 계획이며, 공감대 확장을 위해 홈페이지를 영어로 제공하는 작업도 준비중입니다.” 12개월에 걸친 재소자 컴퓨터 교육프로그램도 현재 교도소 당국과 협의 중에 있는데, 그것은 장기적으로는 재소자들에게 컴퓨터 관련 분야의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한다.
이들은 일주일에 한두 시간만이라도 온라인 인터넷 접속이 허용되기를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교도소 당국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교도소장 랑게 랜굿은 “재소자들에게 인터넷 써핑을 허용한다면 이들이 극우적이고 인종주의적인 내용이나 아동포르노 사이트 등의 인터넷 범죄와 연결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정보통신 관련 교육이 재소자들의 재사회화에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주목해 “이를 위한 유럽연합 차원의 지원비를 신청해 놓은 상태”라고 덧붙였다.
재수감률 80%, 어떻게 해야
재소자의 재사회화, 특히 출감 후 사회적응을 위한 직업교육문제는 <리히트블릭>(Lichtblick)이 현재 가장 중점을 두고 다루고 있는 분야다. <리히트블릭>은 1968년부터 테겔 교도소 재소자에 의해 제작·판매되는 3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재소자자신문이다. “40%에 육박하는 재소자 실업률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우리 대부분은 창고에 갇힌 물건처럼 단지 여기에 ‘보관’되고 있을 뿐이죠. 보세요, 일을 가진 자도 하루 일당 11마르크밖에 받지 못해요. 이건 일반노동자들의 한시간 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죠.” 20년의 세월을 이곳에서 보낸 신문 편집장 볼프강의 얘기다. 그는 지난 15년 동안 쉬지 않고 일했지만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은 단돈 2천마르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반 노동자라면 누구에게나 보장되는 연금조차도 기대할 수 없는 그가 석방이 되더라도 과연 이 2천마르크를 가지고 정상적인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지는 매우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더구나 그들이 이곳에서 받는 목공, 칠, 신발 제작 등의 직업교육은 대부분은 시대에 뒤쳐진 것이어서, 이 기술을 가지고 취업을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망가져 버립니다. 사회적 관계는 물론이고 친구도, 가족관계도 다 깨져 버렸어요. 처음 이곳에 들어올 때 막 두돌을 지난 딸아이가 이젠 성인이 되었어요. 쉼 없이 일하면서도 단 한푼도 자식을 위해 쓰지 못했어요. 내가 뭘 기대하겠어요? 나중에 출감한다고 하더라도….” 그는 80%에 달하는 재수감 비율을 지적하면서, 이는 결코 놀랄 일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바깥사회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한계상황은 그들을 쉽사리 재범의 길로 유혹한다. 은행을 털어 성공한다면 돈을 얻게 될 것이고, 실패한다고 해도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교도소 안에서는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고, 지금까지 살아온 그들만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다만 한가지 절실한 것이 있다면 그건 일자리입니다. 우린 이곳에서도 일을 하고 싶고, 그 일을 통해 가족을 부양하고 내게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고 싶습니다.”
재소자신문은 이러한 문제를 재소자 스스로 토론하고 해결하도록 유도한다. 재소자들은 <리히트블릭>을 통해 출소후 계획을 이야기하고, 교도소 당국에 요구하는 바를 털어놓는다.
굴종인가, 몸부림인가
재소자신문과 더불어 독일 68운동의 시대적 배경으로 탄생한 것이 ‘재소자대표기구’이다. 재소자 30명당 1명의 대표를 뽑은 뒤 이들이 모여 선거를 통해 4명의 전체대표를 선출한다. 총 6개 동으로 이루어진 베를린 테겔 교도소는 각 동 대표와 4인 전체대표가 모여 재소자대표기구를 구성해 왔다. 이 기구를 중심으로 80년대에는 정치적 단식투쟁도 전개하면서 재소자 인권과 복지 개선에서 큰 역할을 해냈다. 우선 모든 재소자가 자신만의 방을 가지고, 그 공간을 자율적으로 꾸밀 수 있는 권리를 얻어냈다. 개인용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도 구비할 수 있게 되었고, 취향에 따라 화초를 키우는 기쁨도 맛보게 되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표기구의 성격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정부와 교도당국은 ‘감형’과 ‘휴가’ 등을 당근으로 삼아 재소자대표기구를 무력화시켰다. 이는 재소자 각 개인에게 굴종을 의미했다. “그 누구도 형을 감량해 주겠다는 달콤한 사탕을 뱉을 수 없었습니다.” 15년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체말의 설명이다. 그는 90년대 들어 대표기구가 ‘어용단체’로 전락했다면서 “감형제도는 재소자들을 온순한 양으로 만들기 위한 억압적인 통제수단일 뿐”이라며 흥분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재소자대표기구에 대한 컴퓨터팀의 디트마의 생각은 사뭇 다르다. “우리에게는 아무리 작은 발걸음이라도 소중합니다.” 그는 영치금 한도액을 50% 가량 확대시켰던 2000년의 성과는 대표기구가 시의회 및 사회단체들과 300통이 넘는 문서투쟁을 통해 얻어낸 결과물임을 강조한다. 법률과 제도가 말하는 재소자의 권리는 실제 그들의 삶과 너무도 다르다. 보장된 권리를 하나하나씩 찾아 나가는 재소자들의 ‘마이크로(micro) 투쟁’-디트마의 표현을 빌리자면-은 어쩌면 새롭게 찾은 혹성탈출의 길인지도 모른다.
베를린=강정수 통신원 jskang@web.de

사진/'혹성'이라 불리는 테겔 교도소 정문.

사진/테겔 교도소의 재소자들은 죄수복을 입지 않는다. 반바지를 입고 있는 재소자(위). 재소자 홈페이지의 첫화면.

사진/월간 6500부 발행되는 <리히트블릭>은 1천부 가량이 내부에서 소화되고 나머지는 모두 외부로 발송된다.

사진/신문제작은 대부분 외부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리히트블릭>이 교도소 내부에 자체 소유하고 있는 인쇄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