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러윈 다음날인 11월1일, 핼러윈 인기에 눌려 갈수록 시들해져
▣ 브뤼셀=글·사진 도종윤 전문위원 ludovic@hanmail.net
이미 한국에도 많이 알려졌지만, 서양에서 10월의 마지막 날은 ‘핼러윈 데이’다. 또한 핼러윈만큼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 다음날인 11월의 첫날은 프랑스어로 ‘투생’으로 불리는 가톨릭 축일이다. 핼러윈 축제의 ‘핼러윈’이 “모든 죽은 성인(聖人)들을 위한 전야”라는 의미라면, 핼러윈 다음날인 11월1일은 “모든 죽은 성인들을 위한 날”이다.
벨기에에선 핼러윈이 되면 동네 어린이들이 마녀나 마법사 같은 특별한 복장을 하고, 저녁 무렵부터 이집 저집으로 몰려다닌다. 그리고 ‘데 봉봉 우 데 보보’(프랑스어로 ‘사탕을 주지 않으면 몸이 아프리라’는 뜻)라고 외치며 사탕을 얻기에 바쁘다. 각 상점은 물론이고 일반 가정에서도 이날만큼은 호박, 거미줄, 마녀 인형 등을 장식해놓고 어린이들에게 줄 사탕을 준비하며 축제 분위기를 돋운다.
핼러윈과 투생의 역사는 제법 길고 복잡하다. 핼러윈의 기원은 고대 켈트족들의 축제 ‘삼하인’(Samhain)이라고 한다.
삼하인은 고대 아일랜드어로 가을걷이를 기리는 수확의 축제를 의미했는데, 계절이 계절인 만큼 ‘여름이 끝나고 겨울이 시작된다’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10월 말을 여름의 끝이라고 보는 전통은 아직도 남아 10월의 마지막 주말에 서머타임이 해제되고 동절기가 시작된다). 그런데 한 가지 재밌는 것은 켈트인들에게 여름은 ‘생명’을, 겨울은 ‘죽음’을 의미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름과 겨울이 갈리는 10월31일 밤은 삶과 죽음의 경계, 즉 귀신이 나오는 때라고 여겼다. 핼러윈의 역사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삼하인 전통은 시간이 지나면서 대륙의 가톨릭 전통과 맞닿게 된다. 기원 후 4세기경, 기독교도들은 순교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행사를 시작했는데, 그 날짜를 부활절 뒤 8번째 일요일로 정했다. 하지만 이 행사는 세월이 흐르면서 이교도들의 축제 삼하인과 연결됐고, 9세기에 이르러 교황 그레고리 4세 때는 11월1일로 옮겨져 투생이라는 가톨릭 축일로 굳어졌다(그러나 동방정교는 지금도 부활절 뒤 8번째 일요일을 투생으로 여긴다). 결국 투생은 가톨릭 전통에서, 핼러윈은 고대 켈트족의 무속 축제에서 출발해 지금에 이른 것이다.
기원이 그래서인지 핼러윈 행사는 켈트족에서 출발한 영어권 국가에서 활발하다. 핼러윈의 전설은 주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등의 전설이고, 요즘 핼러윈 행사가 크게 열리는 나라도 주로 미국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이다. 호박에 도깨비불을 담아놓는 핼러윈의 상징도 미국에서 출발했다. 지금은 유럽 대륙에서도 어린이들에게는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날이 됐지만, 불과 10~15년 전만 해도 벨기에에서 핼러윈 놀이를 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 놀이가 지금처럼 커진 데는 영미문화의 유입과 핼러윈 특수를 기대한 상업화가 한몫했다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벨기에에선 핼러윈보다는 투생이 더 뜻깊은 날로 여겨진다. 한국의 추석처럼 11월1일이 되면 벨기에인들은 온 가족이 모여 죽은 부모나 가족의 묘를 찾는다. 한국에선 벌초를 하고 성묘를 하지만 벨기에인들은 1년 동안 찾지 못한 묘소의 묘비를 깨끗하게 닦아내고 묘석 앞에 새 국화꽃도 꽂아준다. 죽은 이들을 기리는 작은 가족 모임을 열고 성당을 찾아 미사를 드리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은 핼러윈에 눌려 투생은 날이 갈수록 시들해지고 있다. 명절이 돼도 이런저런 핑계로 가족 모임에 빠지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듯, 벨기에에서도 투생에 가족묘를 찾는 젊은이들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핼러윈 때문이든 투생 때문이든 10월 말, 11월 초는 서양의 남녀노소 모두에게 큰 기대감을 준다. 젊은이들에게는 축제여서 그렇고 장년층에게는 죽은 가족을 만날 수 있는 날이어서 그럴 것이다. 이방인들도 다르지 않다. 이방인들에게는 하루 쉴 수 있는 휴일이 있어서 즐겁다.
“사탕을 안 주면 몸이 아플걸~!” 핼러윈 밤이면 동네 꼬마들이 마녀나 마법사 같은 특별한 복장을 하고 이집 저집 몰려다니며 사탕 얻기에 바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