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유럽은 지금 스도쿠 중독!

632
등록 : 2006-10-26 00:00 수정 :

크게 작게

매장의 전단지에도 스도쿠 게임을 연재할 정도로 즐기는 사람 넘쳐나

▣ 브뤼셀=도종윤 전문위원 ludovic@hanmail.net

벨기에에서 ‘스도쿠’(Sudoku) 놀이 열풍이 불고 있다. 가로세로 9칸의 바둑판 모양의 격자에 1부터 9까지 숫자를 겹치지 않게 배열하는 단순한 놀이가 벨기에는 물론이고 유럽을 온통 뒤덮고 있다. 지하철, 빨래방, 대합실 등 사람들이 무료하게 시간을 때워야 하는 장소에는 한손엔 볼펜을, 다른 한손에는 스도쿠 판을 들고 있는 사람이 어김없이 하나씩은 있다.

스도쿠는 스위스 출신의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가 ‘라틴 스퀘어’(N×N 형식의 숫자 배열) 형태의 퍼즐을 개발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이 놀이에 몇 가지 변형을 가해 1979년 하워드 가른이 ‘넘버 플레이스’라는 이름의 게임을 미국에 처음 소개했는데 그다지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스도쿠 마니아인 캐나다인 디아나.“스도쿠를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며 환히 웃는다.


그러다 1986년 니코리라는 퍼즐회사가 일본에 소개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고 이름도 ‘스도쿠’(숫자를 한 번씩만 써야 한다는 뜻)로 바뀌게 됐다.

스도쿠는 낱말맞추기처럼 81개의 격자 칸 중 일부에 미리 숫자가 주어지고 이 숫자들을 길잡이 삼아 나머지 칸을 채우는 놀이다. 난이도는 보통 2, 3단계로 나뉘는데, 그 기준은 얼마나 많은 숫자가 미리 주어졌는가보다는 주어진 숫자의 배열이 무엇인가에 달려 있다고 한다. 따라서 초급용 스도쿠나 고급용 스도쿠나 언뜻 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다.

유럽 중에서도 특히 영국에서 스도쿠의 인기가 높다. 2004년에는 일간지로는 처음 <더 타임스>에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데일리 미러>와 <인디펜던트> 등 다른 신문들도 잇달아 스도쿠를 싣기 시작했고 곧 전 유럽으로 퍼졌다. 2005년 여름에는 TV 방송으로는 처음으로 ‘스카이 원’에서 스도쿠 쇼를 선보였고, 올해 10월에는 ‘영국자폐아협회’ 주관으로 전국의 각급 학교와 직장에서 스도쿠 대회가 열렸다. 이런 스도쿠 열기는 세계로 번져나가 지난 3월에는 이탈리아의 루카에서 제1회 세계 스도쿠 대회가 열려 체코 출신의 야나 틸로바가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벨기에에서도 스도쿠의 인기는 대단하다. 처음 스도쿠를 하는 벨기에인을 본 것이 불과 1년도 채 안 됐는데, 그새 스도쿠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격월간으로 발간되는 10여 종의 스도쿠 잡지가 서점의 목 좋은 곳을 차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벨기에 한인회 소식지에도 스도쿠 게임이 실릴 정도다.

대형마트인 까르푸에선 사은행사로 매주 전단지에 스도쿠 게임을 연재하고 있다. 문제를 모두 풀고 먼저 제출한 사람에게는 25유로짜리 상품권도 준다. 벨기에에 온 지 2년 반 정도 되었다는 캐나다인 디아나(28)는 “시간 때울 일이 있을 때 스도쿠를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며 “워낙 자주 즐기다 보니 이제는 잡지에 실리는 가장 어려운 스도쿠도 척척 풀어낸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스도쿠의 장점은 낱말맞추기보다 훨씬 간단해 보이면서도 생각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낱말맞추기는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그냥 포기해버리고 말지만 스도쿠는 이리저리 숫자를 맞춰보며 끝까지 도전하게 되는 중독성이 있다. 또한 놀이의 특성상 사전이나 친구의 도움을 받기도 어렵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스도쿠라는 일본식 이름 때문인지, 이 놀이가 일본 문화를 배경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벨기에인들이 즐겨 찾는 한 스도쿠 인터넷 사이트는 아예 일본의 스모 선수를 놀이의 배경 그림으로 장식해놓았고, 일부 스도쿠 전문 잡지들은 일본 캐릭터를 표지 모델로 내세우기도 한다.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은 유럽인들에게 스도쿠는 이래저래 매력 있는 놀이가 아닐 수 없다.

요즘 같은 스도쿠 열풍이라면 한국에서 스타크래프트 대회를 TV로 중계해주듯이 스도쿠 경기를 벨기에 TV로 감상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조만간 휴대전화나 전자사전에서도 스도쿠가 테트리스를 대신할지도 모를 일이다.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