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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쿠르드 ‘보트피플’ 상륙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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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2-2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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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해안에 상륙한 900여명의 난민들… 골머리 앓는 조스팽, 일단 임시체류증 부여

사진/21세기 신보트피플.900여명이나 되는 이라크의 구르드인들이 ‘평화’를 찾아 바다를 건넜다. 구조요원들이 부상자를 육지로 실어나르고 있다.
지난 2월17일 900여명의 이라크 거주 쿠르드인들이 ‘동해’라는 이름의 배를 타고 길고 험난한 항해 끝에 프랑스 남부 해안의 작은 도시 생-라파엘에 도착했다. 이들의 ‘의도적’인 조난에 프랑스사회는 전반적으로 긴장했다. 그동안 프랑스는 사담 후세인 정권의 통치를 피해 이주하는 쿠르드인들이 영국, 독일로 가기 위해 거쳐가는 길목이었을 뿐 최종 목적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상을 통한 집단적인 망명자들을 처음으로 맞이한 프랑스 정부는 이 문제를 처리할 행정적 사법적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강경대응에서 유화적 태도로

쿠르드 난민의 운명을 결정할 조스팽 정부 내에서부터 엇갈린 의견을 보였다.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비서는 “난민들에게 우리나라에 정착할 수 있다는 환상과 희망을 줄 필요는 없다”고 다소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불법난민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200여 중국인의 단식, 생-베르나르 성당 점거, 파리 8대학 점거 등 불법체류자들의 합법적 지위를 요구하는 투쟁들을 경험한 바 있는 프랑스 정부는 난민 문제를 가장 민감한 정치적 사안으로 다뤄왔다. 조스팽 총리는 “프랑스, 더 나아가 유럽의 범주에서 이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최근 유럽 국가들에서 난민 유입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음을 겨냥한 것이다.


정부 관계자들이 초반에 보인 이런 단호한 반응은 쿠르드인들의 ‘인간 비극’에 대한 인도주의적 언사를 기대하던 사람들의 반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도미니크 브아네 환경장관을 비롯한 여러 정치인들은 “이것은 고전적인 이민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망명의 문제”라고 쿠르드 난민의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인도주의적 차원의 해결을 강조하고 나섰다. 미국이 다시 바그다드에 대한 공습을 선포하고 사담 후세인 정부가 국민들의 운명을 더욱 옥죄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고통받는 쿠르드족의 망명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여론도 이들이 일단 프랑스 영토에 조건없이 정착하도록 허가할 것을 촉구하는 방향으로 정부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러한 압력 속에서 조스팽 정부는 쿠르드 난민에게 우호적인 입장으로 급격하게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정부는 이들에게 망명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고 프랑스 소재 경찰청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는 서류를 제출할 수 있도록 임시체류증을 부여하는 것으로 이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물심양면으로 이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은 많은 인권단체들은 일단 정부의 결정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르 파리지앙>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78%의 프랑스인이 쿠르드 난민을 받아들이는 데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샤를르 파스콰(RPF)는 “비싼 대가를 지불하게 될 기념비적 실수”라고 강도 높은 비난을 하기도 했다. 실제 이번 여론조사에서 결코 적지않은 숫자인 20%의 프랑스인들이 망명 불허 및 본국송환을 주장하고 나선 것은 실업난과 맞물려 난민증가 추세에 대한 여론의 반발도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프랑스 영토에 첫발을 디딘 쿠르드 난민들은 입을 모아 “평화롭게 살기 위해 유럽 어느 곳에든지 피난처를 찾기를 원했다”고 밝혔다. 터키, 이란, 시리아, 이라크 등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2500만명의 쿠르드인들은 해당국가에 자치권을 요구하는 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왔다. 1961년에는 이라크 북부지역에서 ‘쿠르드인에게 자치권, 이라크에 민주주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항쟁을 벌이기도 했다. 르 바스가 권력을 잡은 60년대 말에는 이라크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받았으며 자치구역과 제한된 권리, 쿠르드 언어의 사용도 보장되었다. 그러나 이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쿠르드인들이 중동지역의 긴장된 정세 속에서 평화롭게 살았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지난 88년 이란-이라크 전쟁 말기에는 쿠르드인에 대한 탄압이 더욱 심해져 이라크 군대가 쿠르드인 거주지인 할라브자 지역에 화학가스를 살포했을 정도였다.

‘악마 숭배자’라는 낙인 속에서…

사진/난민들은 대부분 부농,의사,변호사 등 궁핍한 계층은 아니었다. 배에서 내리고 있는 쿠르드인 가족들.
프랑스에 온 난민들 대부분은 이라크에서 행해지고 있는 쿠르드인에 대한 차별과 박해가 주요한 망명 동기였다고 밝혔다. 이라크의 유전지역인 모술 근처의 두 마을 출신이 대부분인 이들은 망명을 결심한 이후 집단적으로 그들이 소유한 재산을 팔아 여행경비를 마련했다고 증언했다. 부유한 농민, 의사, 변호사, 학생 등 이들의 직업적 구성을 보더라도 이들이 경제적으로 궁핍한 계층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담 후세인은 이 지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아랍화를 더욱 강요해왔으며 이는 개인에 대한 정치적 박해와 종교에 대한 탄압으로 나타났다고 이들은 증언했다. 한 의사의 경우 “러시아의 오뎃사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귀국했지만 이라크 정부에 협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개인병원을 열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 쿠르드인 변호사는 “간통을 했다는 이유로 이라크법정으로부터 코를 베어내는 선고를 받은 여인을 변호한 뒤 압력이 심해져 망명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한편 70%의 쿠르드 난민들은 자신들이 ‘야지디’의 신봉자임을 밝혔다. 이 종교는 쿠르드족의 가장 오래된 신앙으로 회교도 정통파로부터 “악마를 숭배한다”는 낙인이 찍혔다. 결국 이들이 이라크를 떠나야만 했던 정치적 동기는 충분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난민들은 ‘대기구역’이라고 명명된 임시 수용소에서 자신들의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면서 4일간의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프랑스 체류 허가가 곧 이들이 원하는 평화로운 삶의 기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까다롭고 복잡한 심사과정으로 유명한 ‘망명자와 무국적자 보호를 위한 프랑스 사무소’(OFPRA)에 개인별로 망명 지위를 요구하는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4만명(2000년 통계)의 망명 신청자들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자격을 확보하기까지는 많은 인내심이 요구된다. 신청자들은 대부분 서류가 심사되는 동안 재교부가 가능한 3개월 기한의 체류증을 받게 된다. 그러나 1991년에는 2개월이면 끝나던 심사과정이 요즘은 최소한 6개월, 길게는 3∼4년씩 걸릴 정도로 적체가 심한 실정이다.

이 기간 동안 취업이 금지된 신청자들은 프랑스 정부로부터 성인 1인당 1840프랑 남짓의 수당을 받아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난민 수용시설의 부족은 이들을 부랑자 생활로 나서도록 부추기고 있다. 그렇다고 기다림 끝에 확실한 미래가 보장돼 있는 것도 아니다. 실제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 경우는 신청자의 19.4%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라크에서 온 쿠르드 난민들에 대한 허가 비율(59.3%)이 다른 지역 출신(터키 18%, 이란 38.3%)보다 높은 것이 사실이지만 불안정한 조건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난민운송에 범죄조직도 개입

사진/구조요원들이 쿠르드 난민들의 상륙을 돕고 있다.
쿠르드 난민들의 탈출에는 범죄조직도 개입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중국인 50여명이 밀폐된 트럭 적재함을 타고 영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다 질식사 한 사건을 계기로 네덜란드, 영국, 벨기에 등에 밀입국을 주선하는 범죄조직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쿠르드 난민들은 이라크를 탈출해 터키의 해안에 당도해 배에 올라타기까지 개인당 500∼2천달러를 터키, 이탈리아, 시리아 등에서 활동하는 ‘인간밀매조직’에 대가로 지불했다. 항해 동안 난민들을 통제하던 사람들은 모두 복면을 쓰고 있었으며 도착 직전 배를 탈출했기 때문에 이들의 신분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길은 없다. 난민들이 지나온 지역이 터키에서도 군사주요지역으로 정부의 허가없이는 통과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난민을 대상으로 한 범죄조직이 예상보다 훨씬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며 광범위한 물적 수단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월8일과 9일 스톡홀름에 모인 유럽 15개국의 내무, 법무장관들은 마피아 수준의 이러한 조직들에 대한 투쟁을 우선적으로 벌일 것을 결의한 바 있다.

유럽연합은 그동안 난민 수용절차를 까다롭게 하고 혜택을 축소함으로써 쿠르드인들이 유럽을 망명지로 선택하게 하는 유인을 줄여보겠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사태는 유럽연합의 이런 발상이 그릇된 것임을 입증해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경제적인 목적이든 정치적 목적이든 불법이민 전반에 관해 일관된 수용 정책을 확정하는 것이 필수 불가결하다. 또한 국제적인 차원에서 쿠르드 문제에 대한 만족할 만한 정치적 해결없이는 또다른 비극을 피할 수 없음을 되새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파리=신순예 통신원 soonye.sin@libertysurf.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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