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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천년고도 카이로는 지금 공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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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2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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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마다 땅 파헤쳐져 있고 건물마다 공사를 위한 철제 빔 즐비… 미국 지원 받은 ‘문화재 복원 프로젝트’, 주민들의 ‘생존권’과 충돌

▣ 카이로=글·사진 김동문 전문위원 yahiya@hanmail.net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는 그야말로 생동감 넘치는 활기찬 도시지만, 동시에 시간이 멈춘 곳이기도 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도시 자체의 외양에선 그리 큰 변화가 눈에 띄지 않았다. 요르단의 암만과 시리아의 다마스쿠스,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 할 것 없이 거의 대부분의 중동 도시들이 날이 갈수록 새롭게 변해가는 것과는 비교가 됐다. 그런 카이로가 최근 급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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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곳곳에서 대규모 공사가 한창이다. 카이로가 ‘공사 중’인 이유가 뭘까?


1차 복원 대상이 무려 450여곳

아랍권 최대 도시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카이로는 10세기 후반 파티마 왕조가 수도로 자리를 잡은 이래 이슬람 이집트의 천년고도다. 아랍문학의 상징인 천일야화의 무대로도 카이로는 등장한다. 이집트의 인사동 거리라 할 만한 1382년에 세워진 ‘칸 엘칼릴리’ 전통 시장을 비롯해, 970년에 세워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교육기관 중 하나인 ‘알아즈하르대학’ 등 이슬람 문명의 볼거리로 넘쳐난다. 골목골목마다 짧게는 수백 년에서 길게는 1천 년이 넘는 고대 이슬람 문화재들이 즐비하다. 게다가 한국의 인사동과 동대문, 남대문과 청계천을 모아놓은 것 같은 빼곡히 들어선 상점들 탓에 매일 이집트 안팎에서 찾아온 수만 명의 관광객들로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카이로 자체가 이슬람 문명의 흔적이 물씬 배어 있는 열린 박물관이자 민속촌인 셈이다.

나일강을 따라 동서로 나뉜 카이로의 ‘강동 지역’의 옛 시가지엔 이슬람 고대 문명의 흔적이 몰려 있다. 이 일대를 ‘카이로 이슬람 지역’이라고 부르는데, 과거 찬란한 문명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긴 하지만, 한편으로 열악한 주거 환경 탓에 이방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한다. 이슬람 지역 반경 4km 안팎의 넓지 않은 지역에만 모두 30만여 인구가 몰려 살고 있다.

그런데 요즘 이 지역의 번잡함이 더욱 심해졌다. 앞을 제대로 보지 않고 길을 걷다가는 머리를 다치기 십상이고, 땅을 보지 않고 걷다가는 넘어지는 게 다반사다. 건물마다 공사를 위한 철제 빔이 즐비하고, 땅을 파헤쳐놓은 곳도 적지 않다. 겉보기엔 낡은 주거시설을 보완하기 위한 재개발 공사나 철거작업이 한창인 듯싶지만, 사실은 대규모 문화재 복원 공사가 잇따르고 있다.

“압둘 라흐만 카트쿠다 사원과 샘. 사적 번호 40. 서력 1744년, 이슬람력 1107년 건설. 오스만제국 시대에 수피야 학교 터 위에 세워진 곳으로….” 복원공사가 진행 중인 한 건물 앞에 세워진 안내문의 일부이다. 복원 대상 건물의 유래와 복원 예상도까지 담겨 있는 이런 안내문이 건물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이슬람 지역의 중심 거리인 무에즈 엣딘 알라 거리를 따라가보자. 주변 지역은 고대 이슬람 유적들로 넘쳐난다. 주웨일라 문(11세기), 술탄 무아이야드 사원(1415년), 푸투흐 문(1087년), 위칼라 알고리 객사(17세기), 술탄 칼라운 학교와 영묘(1279년), 술탄 안나세르 영묘(1299년), 술탄 바르쿠크 학교(1386년), 알아크마르 사원(1125년), 베이트 제이납 카툰(1468년)…. 하나하나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주변에 사는 무슬림들이 기도를 위해 찾고 있는 낡은 사원은 물론이고 성벽과 성문, 고풍스런 이슬람 중세 가옥마다 온통 철제 빔이 둘러쳐져 있다. 현재 이 일대에서 복원작업이 진행 중이거나 향후 복원 대상이 될 만한 사적지는 모두 1천 개가 넘는다. 그렇게 많은 문화유산이 크지 않은 공간에 몰려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이집트 정부가 1차 복원 대상 유적지로 꼽고 있는 곳만도 450여 곳에 이른단다.

공사 책임자들이 흉기로 위협당하기도

이슬람 문화재 복원 공사는 ‘카이로 역사 복원 프로젝트’로 불린다. 지난 1998년 일찌감치 시작됐지만, 최근 그 규모와 속도에 탄력이 붙고 있다. 이집트 문화부와 종교재산부가 이 프로젝트를 주관하고 있는데, 실제적인 업무 추진은 유물 최고위원회(사무총장 자히 하와스 박사)가 떠맡고 있다. 복원작업을 위한 예산의 상당 부분은 미국을 비롯한 외국 고고학연구소와 민간재단 등에서 지원하고 있다.

2년 전인 2004년 5월 9만 평 면적의 알아즈하르 공원이 일반에 공개됐다. 이 지역의 복원과 개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었다. 공사기간 7년에 모두 3천만달러의 예산이 소요됐다. 그러나 공원을 찾는 지역 주민들은 매우 드물다. 오히려 복원공사 현장은 물론 공원 개발 공사 현장 같은 곳에선 공사 책임자들에게 돌을 던지거나 흉기로 위협하는 주민들도 적지 않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데 문화재 복원하는 데 그렇게 많은 돈을 쓰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게 그들의 볼멘소리다. 이 지역 문화재 복원 프로젝트 책임자인 하니 아탈라는 “지역 주민들의 협조를 얻는 것이 쉽지 않다”며 “주민들은 당장 자기들 삶이 나아지게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원작업 관계자들은 “결국 혜택은 지역 주민들 몫”이라고 강조한다. 단순한 문화재 복원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시설물을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사실상 재건축에 가까운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는 게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선 전기설비는 물론 상수도와 하수도 시설도 보완하고 있다. 복원공사로 지역 주민들 중 일부는 일자리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주변 환경이 좋아지는 걸 마다할 이유는 없지만, 산 사람을 우선하는 게 더 필요하지 않느냐”고 강조한다.

최근 복원공사가 한창인 카이로의 이슬람 지역은 중세 이슬람 도시의 전형으로 꼽힌다. 공사를 위해 설치해놓은 철제 빔 사이로 주민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사실 이 지역은 재개발 자체가 불가능하다. 워낙 골목이 협소하고 인구과밀 지역인데다 건물도 낡았고 상하수도는 물론 전기설비도 노후 정도가 심하다. 게다가 주거지역과 상가밀집 지역이 뒤엉켜져 있어 전력 소모량도 만만치 않은 지역이다. 화재가 발생해도 화재 진화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도 옛 사적 복원에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면서 정작 주민들의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이나 생활편의 시설 확충에 이집트 정부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좁은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대규모 복원공사를 벌임으로써 발생한 불편함은 고스란히 주민들 몫이 됐다.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주민들은 공사장 먼지 속에 한숨만

그렇게 카이로의 이슬람 거리 곳곳은 파헤쳐진 채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공사용 철제 빔은 여전히 도로를 가로막고 있고, 그 비좁은 공간에서 나귀가 끄는 수레와 주민들, 외국인 관광객들이 뒤엉켜 있다. 이슬람 유적들은 복원공사를 통해 속속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있지만, 낡고 열악한 주거·생활 환경을 자기들 힘으로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주민들은 공사장 먼지 속에 한숨만 내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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