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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백두산과 농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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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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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 분쟁은 ‘휘발성’ 민족 감정 대신 집요한 논리로 대응해야

▣ 상하이=우수근 전문위원 woosukeun@hanmail.net

중국 정부가 역동적으로 백두산(중국명 장백산) 개발에 나서고 있다. 한국에선 이를 두고 백두산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을 다짐으로써 동북공정의 기초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의 백두산 개발과 관련한 우리의 대응을 보면,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해 안타깝다.

한국에선 중국의 백두산 개발이 이제 막 시작된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사실 중국 정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백두산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중국 정부는 우리가 광주 민중항쟁으로 정신이 없던 1980년 유네스코에 백두산을 생물권보전지역(MAB)으로 지정해달라고 신청해 그대로 지정받은 바 있다.

중국의 백두산, 중국명 장백산 개발은 수십 년 전부터 이루어졌다. 남한의 관광객 역시 중국을 통해 한국의 영산을 볼 수 있다.(사진/ 연합 이옥현 기자)


또 군부독재 타도의 함성이 커지기 시작하던 1986년엔 백두산을 중국의 국가급 자연보호구로 지정하고, 옌볜 조선족자치구에 관할권을 둬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05년 8월 백두산 관할권을 다시 상급기관인 중국 지린성으로 이관하고 더욱 조직적인 관리 시스템을 갖췄다. 이런 과정의 대단원은 백두산 관할권을 중앙정부 차원으로 승격해 영토권의 강력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발표된 ‘장백산 보호 및 개발에 대한 총체적 규획’ ‘장백산 보호 규칙’ ‘장백산 토지 이용규획’ 등 국가 차원의 종합계획은 이런 추측을 가능케 하는 사전 포석이다.

이처럼 중국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백두산의 전략적 가치를 간파해, 영토권을 확보하기 위해 치밀한 움직임을 보여왔다. 중국 정부의 최근 행보는 이런 동향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왔다면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는 예정된 절차였다. 그럼에도 한국에선 이제야 허둥지둥 국가적 대책 마련을 운운하는 것이다.

씁쓸한 것은 백두산에 대한 이런 안일한 대응이 독도나 역사 교과서 왜곡 등 일본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문제에서 볼 수 있는 ‘휘발성 뒷북치기’ 행태와 흡사하다는 점이다. 일본은 한국전쟁으로 다른 사안에 신경쓸 겨를이 없는 한국의 비운을 절묘히 낚아채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미국을 움직여 우리 땅 독도를 영토분쟁의 소용돌이로 밀어넣었다. 이후 1965년 한일협정 체결 당시엔 국가 재건으로 정통성 위기를 돌파하려는 한국의 군사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미끼로 독도 영유권을 한-일 두 나라 사이의 영토 문제로 규정할 것을 요구했다.

이렇게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일본에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라는 ‘행운’이 찾아온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으로 막대한 외자가 필요해진 한국이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기점을 독도가 아닌 울릉도로 삼자는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인 ‘신 한-일 어업협정’(1998)을 체결한 것은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이에 따라 우리 땅 독도는 국제법적으로 해저 자원의 공동 관리가 이뤄지는 ‘중간수역’에 속하게 돼, ‘독도=영유권 분쟁지역’이라는 일본의 숙원이 이뤄지게 됐다. 우리의 불운은 종종 이웃나라의 행운이 된다. 국제사회는 이렇게 냉정하다.

독도와 백두산에 대한 일본과 중국의 야심은 이미 1950년대와 80년대 각각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국내 사안에 넋을 뺏긴 채 그 불씨를 키워오기만 했다. 우리가 ‘독도는 우리 땅’ ‘중국의 역사 왜곡 규탄’을 외치는 사이 일본과 중국은 세계 무대에서 자기들의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집요하게 논리를 개발하고 있었다. 그러니 남을 탓하기에 앞서 먼저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뼈아픈 자성을 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독도와 백두산 영유권은 분노와 성토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씨를 뿌리고 차분하게 꾸준히 가꿔나가는 농사꾼의 마음이 필요하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들끓어오르다 사라지고 마는 휘발성 민족 감정은 이제 그만~! 주변국과의 영유권 분쟁에서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은 ‘농심’(農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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