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영화 고향을 찾은 관광객들을 위해 ‘꾸며진’ 벨기에의 호보켄
브뤼셀=글·사진 도종윤 전문위원 ludovic@hanmail.net
벨기에를 비롯해 가톨릭 전통이 남아 있는 몇몇 유럽 국가들은 아직도 가톨릭 축일을 공식 휴일로 지정해놓고 있다. 크리스마스는 물론이고 부활절, 성령강림일, 성모승천일 등이 바로 그런 날이다. 한국에선 광복절 휴일이던 8월15일이 벨기에에선 성모승천일 휴일이었다.
성모승천일은 벨기에와 색다른 인연이 있다. 바로 <성모승천>이라는 제목의 그림 때문이다. 플랑드르의 대표 화가인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가 그린 이 그림은 우리에게는 만화영화로 더 낯익은 동화 <플란다스의 개>에서 주인공 소년 넬로가 즐겨 감상하던 그림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안트베르펜 시내의 쇼핑가를 따라 죽 걷다 보면 대광장에 이르는데, 그곳에 루벤스의 동상이 우뚝 서 있고 바로 뒤에는 대성당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바로 넬로가 화가의 꿈을 그리며 즐겨 보았다는 <성모승천>과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다는 <십자가 내리기>가 걸려 있다.
이제는 제법 많이 알려졌지만 동화 <플란다스의 개>의 장소적 배경은 바로 벨기에다.
동화 첫머리에 보면, 넬로와 충직한 개 파트라슈 그리고 할어버지가 살고 있는 곳은 벨기에 안트베르펜 외곽 지역이라고 말하는데, 바로 이 일대가 동화의 제목이 된 ‘플랜더스’ 지방(지금의 벨기에 북서부, 프랑스 북부 일부 지역)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정작 벨기에 사람들 중에는 <플란다스의 개>라는 동화나 만화를 알고 있는 이가 드물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일본인이나 한국인들이 벨기에인들에게 <플란다스의 개>에 대해 워낙 자주 묻다 보니, 이곳에서도 ‘넬로’라는 이름과 ‘파트라슈’라는 이름을 아는 이들이 전보다 많이 늘어났다.
<플란다스의 개>를 찾아오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안트베르펜 인근 서남쪽 ‘호보켄’ 이라는 마을에서는 넬로와 파트라슈의 동상을 세워놓고 그곳이 바로 그들이 살았던 마을이라며 관광객을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호보켄에 가서 그들의 동상을 보면 만화 속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비쩍 마르고 초췌한 넬로와 애완견같이 생긴 파트라슈의 모습에 다소 실망하게 된다(필시 벨기에인들은 이 만화영화를 안 보았으리라!). 마을 여기저기에는 그곳이 넬로의 고향임을 강조하듯이 ‘넬로’(Nello)라는 이름의 초등학교와 ‘파트라슈’라는 이름의 레스토랑과 애견 용품점을 볼 수 있지만, 기대할 만한 추억은 없는 것이 아쉽다. 다만, 넬로가 여자친구 아로아와 함께 종종 언덕에 올라 그림을 그렸던 마을의 경치가 바로 이곳이려니 하는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새삼 정겨운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이 마을에는 또 하나의 사연이 있다. 바로 ‘호보켄’이라는 마을 이름에 얽힌 얘기다. 옛날 이 지역에서는 샌드위치를 사투리로 ‘보켄’(boken)이라고 불렀고, ‘멈춰’라는 말은 ‘호’(Ho)라고 했다 한다. 어느 날 한 어린이가 도시락으로 가지고 가던 샌드위치를 마을 옆에 있는 강물에 빠뜨리게 되었다. 그러자 소년은 순간 “멈춰(Ho), 샌드위치(boken)!”라고 외쳤고, 거기서 바로 마을 이름이 생겨났다는 이야기다.
벨기에를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한 번쯤 안트베르펜 대성당에서 <성모승천>과 <십자가 내리기>를 감상하기를 권한다.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만화 <플란다스의 개>를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넬로가 파트라슈와 할아버지를 따라 우유 배달에 나섰음직한 광장 앞의 트램길 옆을 따라 걷는 것도 좋겠다. <포켓 몬스터>나 <개구리 중사 케로로>에서는 누릴 수 없는 낭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좀더 부지런한 낭만주의자라면 호보켄에 방문해보는 것 또한 좋겠다. 거리 곳곳에서 진짜 ‘플란다스의 개’들을 볼 수 있다.
이제는 제법 많이 알려졌지만 동화 <플란다스의 개>의 장소적 배경은 바로 벨기에다.

벨기에의 안트베르펜 서남쪽 ‘호보켄’ 마을에 세워진 넬로와 파트라슈의 동상. 정작 벨기에 사람들 중에는 <플란다스의 개>를 모르는 이들이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