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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특허권이냐, 생명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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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2-2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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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이즈 검진을 받고 있는 아프리카인들. 아프리카에서는 70년대 후반 이후 약 1700만명이 에이즈로 목숨을 잃었다.(SYGMA)
공중보건과 의료분야만큼 빈자와 부자, 빈국과 부국의 격차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분야도 드물다. 선진국 국민들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무병장수할 수 있는 조건이 구비된 환경에서 풍요로운 삶을 향유하고 있는 반면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의 가난한 사람들은 에이즈, 말라리아, 결핵 등에 희생돼 평균수명이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아프리카대륙에서는 지난 70년대 후반 이후 1700만명이 에이즈로 목숨을 잃었고 남부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에이즈바이러스 감염률이 20%를 육박해 보건·의료체계의 붕괴는 물론 경제발전도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제구호기구인 옥스팜(Oxfam)은 “다국적 제약회사들과 선진국들이 세계의 최빈국을 상대로 의약품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하며 의약품 특허규정을 개정해 저렴한 비용으로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허용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옥스팜이 ‘의약품 비용 인하’라는 구호를 내걸고 다국적 제약회사, 세계무역기구, 선진 각국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전개하고 있는 이유는 세계무역기구의 특허권보호 규정상 제약회사는 의약품에 대한 특허권을 20년간 보유해 높은 가격을 유지하기 때문에 이를 구입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제약회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은 저렴한 비용으로 의약품을 생산하고 있는 브라질, 타이, 인도 등을 상대로 법적소송을 제기해 이들 국가들이 의약품을 생산하는 것을 차단하려 하고 있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이처럼 개발도상국에서의 의약품 생산, 특히 에이즈 관련 신약의 생산을 지적재산권과 특허권을 침해한 ‘해적행위’로 규정, 법적소송으로 맞대응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적재산권과 특허권 보호는 신약개발을 고무하는 순기능도 있지만, 의약품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제3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이 약품을 구입하지 못하게 하는 역기능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선진국들이 정치적 의지를 가지고 약품을 구입해 저렴한 비용으로 빈국에 지원하거나, 의약품에 관한 지적재산권과 특허권 규정을 개정해 에이즈나 말라리아와 같이 빈국에서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의약품을 개발도상국에서도 생산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 옥스팜의 주장이다.

얼마 전 브라질 정부가 에이즈 관련 약품을 제조하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가격을 대폭 인하하지 않을 경우 자체 생산하겠다고 공표하자 미국은 의약품의 불법 생산은 특허권 위반임을 내세워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바 있다. 의약품에 관한 특허권 문제가 부국과 빈국, 제약회사와 환자들간의 싸움으로 치닫고 있는 양상인 것이다. 타이에서도 에이즈 관련 약품의 생산으로 미국과 통상마찰이 있었다.

일부 제약회사는 자사에서 생산하고 있는 의약품에 대한 지적재산권과 특허권이 철저히 보호되고 빈국에 제공된 의약품이 상업적 영리추구 목적으로 선진국에 재수입되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을 수 있는 보장이 있다면, 국제구호기구에 생산원가보다 조금 높은 수준에서 약품을 공급할 수 있다는 의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근원적인 해결책이 되기에는 아직 너무 부족하다. 유수의 제약회사들이 비아그라와 같이 돈되는 신약개발에 엄청난 투자를 하면서도 가난한 자들의 고통의 소리에는 귀를 막고 있는 모순된 현실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헨트=양철준 통신원 YANG.chuljoon@wanad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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