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레일리아 명문 사립학교, 학생들간 가혹행위 논란… 피해자는 주로 아시아계 유학생
지난 2월5일 시드니에 있는 버우드 소년법원 1호 법정. 오스트레일리아 사학 교육의 명성과 권위를 뒤흔드는 충격적인 지적이 사법부에 의해 제기됐다. ‘트리티니 그래머 스쿨’(Trinity Grammar School)의 기숙사에서 발생한 폭력사건에 대한 공판에서 존 크로퍼드 판사가 “약자에 대한 다수의 억압행위(bullying)가 일종의 문화와 관습의 형태로 존재한다”고 결론지은 것이다.
법원이 인정한 학원의 ‘억압문화’
문제의 트리니티 그래머 스쿨은 70년 전통의 성공회 계열 학교로, 오스트레일리아 최고의 사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오스트레일리아를 이끌어 가는 지도층 인사의 상당수가 이 학교 출신이다. 재학생은 약 1700명이며 기숙사 비용을 포함한 1년 학비가 2만4천달러에 이르러 웬만한 상류층 자제가 아니면 입학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비싼 학비임에도 엄격한 규율을 자랑하는 기숙사 제도와 귀족적인 수업내용, 그리고 전인적인 기독교 교육으로 오스트레일리아의 ‘이튼 스쿨’이라 할 만하다. 트리니티 그래머 스쿨은 남학생만 입학할 수 있고, 우리나라의 초·중·고등학교 교육이 합쳐진 형태로 모두 12년의 학제로 되어 있다.
트리니티 스쿨이 ‘선망의 대상’에서 순식간에 ‘폭력학교’라는 오명을 쓰게 된 것은 지난해 4월로 거슬러올라간다. 휴식시간에 기숙사로 책을 정리하러 가던 학생을 두명의 다른 학생들이 강제로 눈을 가리고 교복 넥타이를 이용해 침대 다리에 묶은 뒤, 일명 ‘아나콘다’라고 불리는 목조 기구로 성적 가학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아나콘다’는 가해학생들이 목공예 실습시간에 제작한 남자 성기 모양의 장난감이다. 피해자는 또 이들이 구두약과 치약 등을 얼굴에 칠한 뒤 모자를 덮는 등 가혹행위를 수차례 반복했다고 증언한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런 폭행 및 성추행 행위가 밀폐된 공간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만 발생한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사건 현장엔 다수의 학생들이 있었으나 이들은 가혹행위를 말리기는커녕 가해자의 행동 하나하나에 환호하며 오히려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 존 크로퍼드 판사가 ‘억압문화’라는 극단적인 용어를 사용한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적 증거를 중시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우려는 “왜 다른 학생들이 왜 이런 사건을 수수방관만 했는지 의아하다.… 이런 집단적 억압행위는 그 학교에서 오랫동안 이어진 관습이며 여타 학교들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크로퍼드 판사의 판결문에도 잘 드러나 있다. 이 사건으로 피해자는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으며 아직도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동자급으로 기소된 가해학생은 모두 4명으로 현재 1명에 대해서는 유죄가 인정됐으며, 다른 3명에 대해서는 ‘성폭행’을 비롯한 17건의 혐의에 대한 형사 재판이 진행중에 있다. 크로퍼드 판사가 지적한 ‘학원의 억압문화’는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교육계와 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던지고 있다. ‘누렁이’라 욕먹는 아시아계 학생들
첫째, 트리니티 스쿨을 필두로 기숙사를 운영하는 사립학교들이 학원폭력문제에 대해 안일한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트리니티 스쿨의 상담직원은 당시 폭행사건을 인지하고서도 사적인 문제로 학교당국에 보고를 미뤘으며 뒤늦게 보고를 받은 교장 역시 내부적으로 해결할 요량으로 쉬쉬했다는 지적이 있다. 형사처벌 대상인 심각한 폭력행위에 대한 학교의 미온적인 태도는 억압행위가 문화나 관습으로 용인되고 있음을 방증한다는 것이다. 물론 나중에 학교쪽이 정부당국에 이 사건을 정식으로 보고해 법정문제로 비화되긴 했다. 그러나 사건 초기에 트리니티 스쿨 교장인 밀론 쿠제스가 “다른 학교에서도 흔한 일인데 규정에 따라 당국에 보고한 우리 학교만 비판을 받는다”고 볼멘소리를 한 것처럼 학원 내 억압행위는 트리니티만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둘째, 억압문화의 희생자는 개인적인 약자라기보다는 사회적 약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다.
일반적으로 또래집단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소극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이지메’나 ‘왕따’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140개가 넘는 인종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사정이 좀 다르다. 주류인 앵글로색슨계가 아닌 소수민족 출신들은 항상 주류의 폐쇄적인 문화의 피해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미성년자에 대한 비보도 원칙으로 신원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피해학생이 <선헤럴드>와의 독점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은 사뭇 충격적이다.
“기숙사의 모든 신입생들은 최소한 한번은 ‘억압행위’(bullying)의 대상이 된다. 특히, 어린 아시아계 학생들은 ‘누렁이’(gooks)라고 놀림을 당하고 영어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욕먹고 얻어맞는다. 억압행위의 희생자들이 상급생이 되면 또 하급생들을 괴롭힌다.”
피해학생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오스트레일리아로 완전히 이민올 계획이었다고 밝혀 유학생 신분으로 추정된다.
이 증언으로 미뤄볼 때 소수에 대한 다수의 억압문화가 학원에 존재한다면 그 희생자는 유학생을 비롯한 소수민족, 특히 아시아계 학생일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언어, 문화, 신체적 조건 등 모든 부분에서 마이너리티일 수밖에 없는 이들 그룹이 집단 따돌림의 대상이 되는 건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따돌림의 양상이 트리니티 사건처럼 집단적인 폭력의 형태를 띠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폐쇄적인 기숙사 문화의 일부라면 실로 위험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크로퍼드 판사의 ‘억압문화’ 지적에 대해 트리니티 스쿨쪽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공판이 열린 날 학부모들에게 발송한 편지에서 밀론 쿠제스 교장은 “지난해 기숙사에서 발생한 불미스런 사건은 일부 학생에 의해 저질러진 파편적이고 돌출적인 사건일 뿐이며 집단적 억압문화가 존재한다는 건 법원의 추측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또한 ‘기숙사 사건’에 대한 학교쪽의 대응은 적절했으며 직원 중 누구에게도 책임추궁이나 징계를 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이에 대해 피해학생의 아버지는 텔레비전의 시사프로그램인 <7:30 리포트>에 출연해 “전인적인 기독교 교육이 이런 거냐?”고 반문하면서 사건발생부터 지금까지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는 학교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그는 “내 아들이 집단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의사를 통해 알았다”며 관리소홀 및 미온적 대처에 대한 학교의 공식사과를 요구했다.
정부도 개입할 듯
학교쪽이 여전히 사과할 만한 잘못을 저지른 것이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는 가운데 야당은 뉴사우스웨일스주의 사립학교, 특히 기숙사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학교들에 대한 정부의 특별감사와 대책수립을 촉구하고 있다. 노동당의 교육 대변인인 페트리카 포시스는 “트리니티 사건은 이미 학원 내 안전문제가 학교 자체에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판단된다”며 억압행위뿐 아니라 체벌과 전반적인 안전 문제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했다. 더불어 학원 내에 만연한 마약과 인종차별주의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경찰과 교육부가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해 대처할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도 곧 있을 사립학교에 대한 정기감사 때 이 부분을 중점 조사하겠다는 방침이다.
오스트레일리아가 별다른 인종간의 갈등과 분쟁없이 비교적으로 평화로운 다민족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백호주의라는 텃세에도 불구하고 ‘관용’(Tolerance)이라는 가치를 교육과정에서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트리니티 기숙사 사건처럼 또래집단에서 있을 수 있는 ‘이지메’나 ‘왕따’ 현상이 인종차별과 결부돼 폭력적 형태를 띤다는 것은 사회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교육계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뼈아픈 자성과 함께 학원에 만연한 억압문화에 대한 좀더 효율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시드니=정동철 통신원 djeo8085@mail.usyd.edu.au

사진/오스트레일리아 최고의 사학으로 평가받고 있는 트리니티 그래머 스쿨의 정문.
트리니티 스쿨이 ‘선망의 대상’에서 순식간에 ‘폭력학교’라는 오명을 쓰게 된 것은 지난해 4월로 거슬러올라간다. 휴식시간에 기숙사로 책을 정리하러 가던 학생을 두명의 다른 학생들이 강제로 눈을 가리고 교복 넥타이를 이용해 침대 다리에 묶은 뒤, 일명 ‘아나콘다’라고 불리는 목조 기구로 성적 가학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아나콘다’는 가해학생들이 목공예 실습시간에 제작한 남자 성기 모양의 장난감이다. 피해자는 또 이들이 구두약과 치약 등을 얼굴에 칠한 뒤 모자를 덮는 등 가혹행위를 수차례 반복했다고 증언한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런 폭행 및 성추행 행위가 밀폐된 공간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만 발생한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사건 현장엔 다수의 학생들이 있었으나 이들은 가혹행위를 말리기는커녕 가해자의 행동 하나하나에 환호하며 오히려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 존 크로퍼드 판사가 ‘억압문화’라는 극단적인 용어를 사용한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적 증거를 중시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우려는 “왜 다른 학생들이 왜 이런 사건을 수수방관만 했는지 의아하다.… 이런 집단적 억압행위는 그 학교에서 오랫동안 이어진 관습이며 여타 학교들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크로퍼드 판사의 판결문에도 잘 드러나 있다. 이 사건으로 피해자는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으며 아직도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동자급으로 기소된 가해학생은 모두 4명으로 현재 1명에 대해서는 유죄가 인정됐으며, 다른 3명에 대해서는 ‘성폭행’을 비롯한 17건의 혐의에 대한 형사 재판이 진행중에 있다. 크로퍼드 판사가 지적한 ‘학원의 억압문화’는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교육계와 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던지고 있다. ‘누렁이’라 욕먹는 아시아계 학생들

사진/문제의 가혹행위가 발생했던 기숙사 입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