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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시스템 플레이로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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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2-2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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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공동작업으로 서로의 장점을 극대화해온 <푸차칸>의 ‘카민 & 반차’

사진/반차(왼쪽)의 카민의 캐리커처.
“전 총리 추안릭파이? 새부리 같은 입이나 삐쭉머리털이 괜찮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부드럽고 재미없는 인상. 만화용으로는 진기한 인상에다 다혈질인 차왈릿 용차이윳 전 총리가 역대 최고의 인물. 탁신 새 총리? 감정표현은 좋지만 너무 보통 인물로 생겨먹어서….”

시사만화가 카민(추키앗 자로엔숙). 그의 입에서 정치가들에 대한 인상론들이 줄줄이 흘러나온다. “만화를 그냥 만화로 볼 게 아니다. 그 인물들의 정치행태를 만화의 인상들과 곰곰이 비교해 보면 놀랄 정도로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기록 부재, 이게 고질적 문제다”


‘카민 & 반차’로 널리 알려진 <푸차칸>의 시사만화가. 이상한 이 이름의 정체는 두 사람이 함께 만화를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 것일 뿐이다. 타이 시사만화가 족보에서 2.5세대쯤으로 꼽을 만한 카민과 3세대인 반차가 함께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92년 방콕민주항쟁이 총성에 휩싸일 때였다. 당시 모든 신문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인쇄를 중단했을 때인데, 중산층과 사업가들을 주대상으로 삼고 있던 <푸차칸>만이 ‘놀랍게도’ 소식지를 시위현장에 뿌리고 있었다. 이 무렵 일손이 필요했던 카민은 반차라는 20대 중반의 청년 만화가를 조수로 고용했고, 그 인연으로 10년 가까이 둘은 함께 만화를 그리고 있다.

“반차가 만화를 더 잘 그리는데 내가 굳이 그릴 필요가 없지.” “예민한 정치적 감각과 지식을 지닌 카민 형이 필요하다.” 이 둘의 말에서 드러나듯, 지난 10년 동안 두 사람은 공동작업을 해왔다.

매일 아침 전화를 통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주제를 잡은 뒤, ‘카민 & 반차’는 한몸이 되어 독자들을 찾아간다. “정치적 감각과 지식, 창조적 경험과 기능, 이 모든 시사만화의 조건들을 한 사람이 지니기는 쉽지 않다.” 카민은 시사만화도 공동작업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 독자들에 대한 서비스라고 말했다. 이야기꾼을 따로 두는 전문적인 일반만화를 놓고 볼 때, 시사만화도 ‘시스템’과 ‘프로페셔널리즘’이 필요한 시점임을 강조한 말이다.

타이 시사만화계의 정점에 있는 ‘카민 & 반차’는 자신들의 계보가 이미 세상을 떠난 프라윤자니아옹을 제1세대로 해서, 현재 가장 폭넓은 독자층을 지닌 <타이랏>의 제2세대 시사만화가 차이랏차왓을 따르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기록 부재, 이게 타이사회의 근본적이고 고질적인 문제다.” 카민의 한탄이다. “신문사에도 기록보관소에도 도서실에도 시사만화는 없다.” 반차에게 들어보았더니 “그전 것들은 어디 처박혔는지 모르겠고, 최근 들어 하나씩 컴퓨터에 저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래서, 타이 시사만화가의 계보라든지 역사 같은 것들은 전무한 실정이다. 어쩌면 이 짧은 기사가 처음으로 타이 시사만화에 대한 기록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래도 한 가지 장점은 있다. 타이 시사만화가 비교적 큰 정치적 자유를 누려왔다는 점이다. 여느 아시아사회들과 비교해서, 정치적 박해라든지 검열 같은 것들로부터 자유로웠고 따라서 타이 시사만화의 ‘표현력’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카민의 말에는 도도한 자신감이 배어 있다. “일본 시사만화 수준? 그건 시사만화도 아니지….”

1930년대 입헌군주제를 채택한 뒤, 24번의 크고 작은 군사쿠데타로 얼룩진 타이 현대정치사 속에서도 비교적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만화, 이게 바로 현재 타이 시사만화의 저력이 되고 있는 셈이다.

왕실과 불교는 그 어떤 경우에도 금기

사진/탁신의 돈 앞에 줄 선 정치가들을 풍자한 만화(맨위). IMF 풍자(가운데). 지난 2000년 1월 버마의 “신의 군대”가 타이 랏차부리병원에서 인질극을 벌였던 당시, 공격성을 드러내지 않은 채 투항한 인질범들을 모두 살해해 국내외적으로 비난을 받던 당시 추안 총리를
“푸차칸신문사를 폭발시켜버리겠다.” 1992년 민주항쟁 당시, 카민 & 반차의 만화가 문제가 되었을 때 군부쪽에서 협박한 적이 있기는 하다. “그 정도야 흔한 일 아니겠어? 이 바닥에서 먹고살려면?” 카민은 웃어젖혔다. “아직 시사만화가가 정치적 탄압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의 말대로라면, 그동안 수많은 타이 기자들이 직·간접적으로 탄압을 받아왔던 사실과 큰 대조를 이룬다. “어려운 시절에는 어렵게 그려 적들이 이해하기 어렵도록 했지. 그저 적들은 욕을 해도 자신의 모습이 만화에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 흡족해 했으니….” 카민의 기억이다. “편집국에서도 사안에 따라 ‘좀 살살 때려라’ 정도의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지만 검열 같은 건 없었다. 타이사회에서 왕실과 불교를 건드린다는 건 어떤 경우에도 금기라는 사실쯤이야 이미 잘 알려져 있을 테고….” 자유로움이 몸에 밴 반차의 말이다.

국경없는 만화, 만화의 보편성 같은 것들을 끝머리에 이야기하던 반차는 돌연 심각해졌다. “일본만화, 세계화(globalism)의 첨병이지.” 반차가 바라본 일본만화다. “일본만화라고 문제될 건 없다. 다만 쉽게 번역해 대량으로 팔아먹는다는 데 본질이 숨어 있다. 자본이 열악한 타이 만화는 창작력을 키울 수 없고, 이미 자본으로 창작된 일본 만화가 판치는 세상이다. 문화의 ‘일본화’, 이건 상품의 일본화로 직결되고, 상품의 일본화는 정치의 일본화로….”

결국 “현재 타이에는 타이 만화가 없다”는 극단적인 발언이 카민으로부터 나왔다. “시사만화의 저변은 일반만화로부터”라는 출발과 “시장없는 만화는 창작없는 만화”라는 종착을 한꺼번에 고민하고 있는 카민과 반차. 남부럽지 않은 그 표현의 자유 속에서도 현재 타이 시사만화가들은 결코 밝지만은 않은 미래를 염려하고 있다.

사진/타이의 새총리 탁신의 부정을 풍자한 만화.

방콕=정문태/ 아시아 네트워크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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