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고하게 목숨 잃고 ‘테러범’으로 포장되는 인도 카슈미르 민간인들… 인도군인의 일상적 행패로 16년새 7만~10만명 사망, 진보언론도 침묵
▣ 카슈미르=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프리랜서 penseur21@hotmail.com
“사진 찍지 말란 말이야!”
몽둥이를 들이미는 소년의 목소리는 거칠었다. ‘위협’하는 소년은 그래도 열서너 살은 되어 보이지만, 그의 ‘동료’들은 10살 안팎으로 보였다. 모두 예외 없이 ‘열두 살’이라고 했다.
파업을 선동 중인 열두 살 소년들 7월 초 카슈미르 주도 스리나가르의 여름은 평년 기온을 웃도는 땡볕 더위와 잇따른 무고한 죽음 소식에 숨이 가쁘다. “얘들아, 왜 막대기까지 휘두르며 상점 문을 닫게 하지?” “지난 밤 인도군이 우리 형제를 죽였기 때문에….”
소년들은 전날 발생한 한 시민의 죽음에 분노해 시장 상인들을 향해 파업을 선동하는 중이다. 지난 6월24일 스리나가르 외곽 팔할란에서 인도군의 발포로 학생 1명과 여성 1명이 숨진 사건의 후유증이 채 가시기도 전 또 다른 비극이 이어진 것이다.
그에 앞서 6월4일 통제선(LoC)과 인접 쿠파라 지구에서 발생한 코란 모독 사건과 10일 이에 항의하는 시위대에 발포해 한 학생이 사망한 사건도 여전히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리고 6월30일 음악가 이나얏툴라(30·이하 이나얏)가 또 ‘그냥’ 총을 맞았다. 일전에 인권 변호사 파르베즈는 “인권침해는 늘어가고 (온건파 지도자들이 나선) 평화협상은 한 알의 열매도 없는지라 강경파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고 나직이 말한 적이 있다. 그저 당연한 논리로 흘려들었던 그의 말이 소년 시위대와 맞닥뜨리며 의미심장하게 곱씹혔다.
사건은 6월30일 밤 9시50분께 벌어졌다. 3년 전 추락 사고로 잘 걷지 못하는 이나얏은 스리나가르 시내에서 그의 가족이 운영하는 빵집 문을 닫고 있었다. 그때 가게 건너편 중앙예비경찰군(CRPF) 제46대대 캠프 앞 초소 군인 하나가 그를 불렀다. 8m 정도 되는 간격을 힘겹게 다가가던 중, 군은 방아쇠를 당겼다. 목격자 빌라드(38)에 따르면 옆에 있던 다른 군인들도 가담했다. 총알은 정확히 7발. 이나얏은 쓰러졌고 군인들은 그를 초소 안으로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때 총소리를 듣고 나온 이나얏의 아버지는 아들의 참사를 보고 울부짖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당신들 내 아들을 잘 알지 않는가!” 군인들은 빵집의 단골손님이었다. 총에 맞은 아들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아버지의 울부짖음에 주민들이 하나둘 몰려들었고, 군인들은 총상을 입은 이나얏을 남겨둔 채 초소 옆 이크완 호텔 안으로 사라졌다. 이나얏은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이날 밤 12시께 과다출혈로 숨졌다.
“첫 번째 총을 쏜 놈은 술에 취한 것 같았어.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비틀거렸거든.” 현장을 목격하고 인근 경찰서- 지역 경찰은 카슈미르인들이다- 로 향했다는 칼라드 빌랄(43)의 말이다. “우리같이 생긴 게 아니라 당신처럼 생겼어. 아마 나갈랜드(인도 북동부)에서 왔을 거야.” 그는 덧붙였다.
이나얏의 삼촌 만조라 아흐메드(50)에 따르면 군인들이 ‘공짜 빵’을 요구하던 며칠 전부터 사건은 예고됐던 것으로 보인다. ‘빵 기부’를 거부한 이나얏의 아버지 레흐마툴라(55)는 사건 전날 인도 군인들이 “당신 꼭 테러리스트처럼 생겼다”며 키득거렸다고 말했다. 사실 이런 수준의 모욕은 카슈미르인들의 일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욕적 고함과 몸수색, 몽둥이질은 거리에서 심심찮게 목격된다. 폭탄이라도 한 번 터지고 나면 즉각적인 몽둥이 세례가 인근 상인들, 현장을 지나던 이들에게 영문 없이 쏟아진다. 카슈미르인들은 이렇게 반세기 점령에 지쳐 있다. 이나얏의 애꿋은 죽음이 촉발한 시위에서는 ‘자유’와 ‘반인도’ 구호는 물론 ‘친파키스탄’ ‘친무자헤딘’ 구호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걷지도 못하는데 달려와서 사살?
한편 이 사건에 대한 군 당국의 해명은 이랬다. “그가 초소 쪽으로 달려오기에, 우리 병사가 ‘멈추라’고 했다. 그런데 멈추지 않고 달려들었단다. 그래서 테러범인 줄 알았다고 하더라.”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이런 군의 발표에 “그는 제대로 걸을 수도 없는 반장애인”이라며 “달리긴 누가 어떻게 달린단 말이냐”고 어처구니없어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가짜 교전’이야. 그를 안으로 끌고 가서 무기 몇 개 몸에 숨겨놓고 무장단체 조직원을 죽였다고 하는 거지.” 지난 16년 동안 카슈미르에서는 이런 ‘가짜 교전’으로 7만~10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올 3월17일 구자라트주에서 무하마드 아윱(30) 등 2명이 사망한 사건 역시 ‘가짜 교전’의 전형적인 사례다. 당시 <카슈미르 타임스>는 이렇게 보도했다. “구자라트 경찰은 교전으로 숨진 2명이 파키스탄 무장세력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1kg의 폭발물과 CD 등을 그들의 은거지에서 찾아냈다. 이날 교전으로 경찰 5명이 다쳤다. 무장세력 중 1명은 펀자브주 출신으로 카슈미르 밸리에서 왕성하게 활동했으며….”
하지만 아윱 등은 카슈미르 남부 풀와마 지구 주민이었다. 보도가 나간 뒤 유가족들은 물론 잠무 카슈미르 경찰(JKP) 총경까지 나서 이들이 무장세력과 연루된 기록이 없다고 밝혔다. 풀와마 지구 로리 마을에서 과일농사를 짓고 있는 아윱의 가족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12월 첫째 주 사과 트럭을 싣고 뭄바이로 떠났고, 11일 뭄바이를 떠나기 하루 전 가족과 일일이 통화하며 8만루피(약 170만원)를 벌어들였다고 자랑하며 무슨 선물을 사갈지 묻기도 했다.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가족은 이후 사망 소식이 전해지기 전까지 “아윱의 행방을 묻는 정체불명의 전화를 여러 차례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대대적인 보안단속이 시작되면서 보안요원들이 들이닥쳐 아윱의 행방을 물었고, 이틀 뒤에는 군인들이 몰려와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그리고 3월17일 밤, 그의 가족은 지역 경찰에게서 “사람 몇 명이 구자라트에서 죽었는데, 혹시 아윱이 포함돼 있는지 확인해보라”는 전화를 받았다. 죽은 이들의 사진 속에는 아윱의 모습도 보였다. 가난한 그의 가족은 어렵사리 비행기표를 구해 구자라트주 아마다바드까지 날아가 가까스로 주검을 넘겨받았다.
지난 6월10일 힌두 극우단체인 라슈트리야 스와얌세바크 상(RSS) 나그푸르 본부에 대한 무장세력의 공격 역시 ‘가짜 교전’이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뭄바이 고등법원에서 활동했던 콜스파틸 판사와 시민단체 인사로 구성된 진상조사위원회는 최근 경찰 발표에 대해 22가지 의문을 제기했지만, 경찰은 지속적인 면담 및 답변 거부로 일관하고 있다. 위원회 쪽은 “무장세력 차량의 운전자가 교전 중 운전석에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움직일 수 없는 차량의 공격을 받은 경찰은 어떻게 서로 다른 세 각도에서 받은 총알 흔적이 발견될 수 있느냐”고 묻는다.
“교전 리허설 이뤄졌다”는 주장도
진상조사위원회는 또 “무장세력들이 파키스탄에 근거지를 둔 자살공격대이고, 그들의 이름과 연락처가 정리된 수첩을 발견했다”는 경찰 발표에 대해서도 “보통 자기 이름을 본인 수첩 연락처에 기록하지 않는 게 상식이며, 자살공격대 같은 엄청난 임무를 수행하는 이들이 신상기록을 수첩에 남겨놓는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새벽 4시15분께 발생한 이 사건의 목격자는 단 1명도 없다. ‘교전 중’ 사망한 ‘테러범’들의 주검은 사건 발생 직후인 새벽 5시께 기자들이 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치워졌다. 한편 일부 주민들은 사건 전 같은 장소에서 “교전 리허설이 이뤄졌다”고 증언했다.
‘휴전 없는 평화협상.’ 카슈미르 분쟁 해결을 위한 ‘대화’는 무고한 죽음과 일상적인 인권침해와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최소 60만 명으로 추정되는 종류도 다양한 군인들이 군 당국 발표로 ‘1500여 명’에 불과한 무장세력과 지금 ‘400 대 1’의 교전을 벌이고 있다. 피해는 무슬림에게만 가는 것이 아니다. 지난 5월1일 하룻밤에만 도다 지구에 사는 카슈미르 힌두인 35명이 무장괴한들에게 학살됐고, 6월20일엔 간더발 지역에서 힌두 순례자 버스를 겨냥한 폭탄 공격으로 5명이 다쳤다.
국제사회는 최근 몇 년 동안 평화회담 등 각종 분쟁 해결 방식을 카슈미르에 들이댔지만, 끊이지 않는 인권침해의 실상은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테러리스트의 만행’에 대해선 집중 탐사보도로 빛을 발하는 ‘진보 언론’도 60만 인도군이 저지르는 고문과 납치, 살해와 (집단) 강간, 실종 사건과 민간인을 총알받이로 활용해 교전을 벌이는 ‘인간 방패’ 전술에 대해선 침묵했다. 그리고 카슈미르인들이 도처에서 당하는 일상적 모욕에도 눈을 감았다.
스리나가르에 기반을 둔 지역 신문 몇 곳과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가 90년대 후반 내놓은 조사보고서를 빼고는 카슈미르 인권침해의 실상은 거의 알려진 게 없다. 그저 여느 분쟁 지역과 마찬가지로 ‘상식적’ 수준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게다가 인도 정부는 국제 인권단체들의 카슈미르 실태조사를 허용치 않고 있다. 최근에는 이슬람국가연합(OIC)의 진상조사위원회 방문도 거부했다.
“세상에서 군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
“스리나가르에는 그래도 당신 같은 언론인이라도 있고, 주민들이 시위를 벌일 용기라도 있지만 여기서는 모든 게 그냥 묻히고 만다.” ‘세상에서 군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으로 불리는 쿠파라 지구 한드와라 지역 주민의 말이 카슈미르가 처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거침없는 사회적 발언으로 유명한 작가 아룬다티 로이는 지난해 8월 카슈미르를 다녀온 뒤 이렇게 꼬집었다. “카슈미르에서 벌어지는 잔학상에 대해 토론하고, 이를 집중 조명하지 않는 한 우리(인도인)는 팔레스타인과 이라크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자격이 없다. 도대체 우린 무슨 말 같잖은 평화를 얘기하고 있단 말인가!”
카슈미르 분쟁은 인도군과 무장세력, 그리고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분쟁만이 아니다. 비무장 민간인을 상대로 한 인도 ‘점령군’의 감춰진 전쟁도 함께 벌어지고 있다. ‘가짜 교전’이라는 작전명으로.
파업을 선동 중인 열두 살 소년들 7월 초 카슈미르 주도 스리나가르의 여름은 평년 기온을 웃도는 땡볕 더위와 잇따른 무고한 죽음 소식에 숨이 가쁘다. “얘들아, 왜 막대기까지 휘두르며 상점 문을 닫게 하지?” “지난 밤 인도군이 우리 형제를 죽였기 때문에….”
시내에서 폭탄이라도 한 발 터지고 나면 인도군의 매질과 위협이 어김없이 인근 주민들에게 쏟아진다.
이방인의 카메라를 향해 몽둥이를 들이밀며 “사진 찍지 말라”고 외치는 카슈미르 소년.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인도군에게 7발의 총격을 당해 숨진 이나얏툴라의 어머니는 아들의 무고한 죽음에 오열과 분노를 오갔다(맨 왼쪽). ‘어디서 눈먼 파편이 날아와….’ 스리나가르 시내에서 폭탄이 터져 다리를 다친 어린이가 휑한 눈으로 병상에 누워 있다(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