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이스라엘’ 소재 벗어나 팔레스타인 내부 문제에도 비판의 붓을 들어야 하는데…
“이 수많은 삶의 비극들을 만화가 어떻게 다 해학적으로 표현하겠는가.”
동예루살렘의 대표적인 신문 <알쿠드스>의 시사만화가 카릴 아부 아라페는 웃었다.
이스라엘의 침략 아래 팔레스타인 사람도 만화도 큰 곤욕을 치렀다. 독자들이 반이스라엘 풍자 만화를 즐긴 만큼 이스라엘 군당국도 만화 같은 출판물을 호락호락 내버려두지 않은 탓이었다. 검열, 심지어 오랜 세월 동안 팔레스타인 깃발이 담긴 만화마저 금지당했다. 승리(victory)의 ‘V’자 이미지를 연상하는 팔레스타인 깃발이 반셈족(유대) 정서를 유포한다는 이유로.
만화만 그런 게 아니었다. 국제언론에 공인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라든지 모든 영어사전에도 올라 있는 인티파다(투쟁·봉기)니 반환(영토반환권에 대한 연상작용) 같은 단어들마저 예외없이 이스라엘군의 검열용 ‘푸른펜’에 난자당했다. 이러니 팔레스타인 만화가들이 사용할 수 있는 언어는 ‘상징’과 ‘은유’뿐이었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사이의 평화회담이 시작되면서 이스라엘군의 검열은 수그러들었지만 팔레스타인 만화가들에게는 또다른 장애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내부 비판에 관용을 보이지 않는 팔레스타인 당국과 언론들이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전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검열의 칼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를 꿈꿨던 시사만화가들은 또다시 ‘만장일치’와 같은 비이성적인 구조에 갇혀버렸다.
황색언론에 철학을 바쳐야 했던 비극
이건 팔레스타인 언론과 시사만화의 비극이었다. 이스라엘 당국이 휘둘렀던 검열의 예봉에 질렸던 팔레스타인 언론들이 자유를 찾아 이스라엘이 강점해 있는 동예루살렘에서 인쇄를 하는 얄궂은 상황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또한 신문용 시사만화는 압박을 피해 멀리 떨어진 런던이나 파리나 암만 같은 곳에서 팔레스타인 만화가들이 창작하는 것들을 수입하는 꼴이 되었다. 결국 팔레스타인 현지의 시사만화가들은 말초적인 주간지에 삶과 철학을 바쳤다.
이런 어두운 상황을 깨고 1980년대 초, 마침내 술레이만 만술 같은 이들이 등장했다. 유명한 조형예술가였던 술레이만은 이무렵 영자주간신문 <알 파즐>에 처음으로 예술적인 만화를 올리기 시작했다. 이 주간신문이 술레이만에 이어 카릴 아부 아라페 같은 시사만화가들에게 지면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팔레스타인 시사만화는 오래 전에 숨을 거두었을 것이다. 이때부터 많은 시사만화가들이 본격적으로 지면을 찾아나섰고 서서히 말초적인 주간지에서 일간지로 영역을 확대해 나갈 수 있었다.
결국 1991년 마드리드평화회담이 개최되면서부터 팔레스타인 만화가들에게도 숨통이 트였고 그들이 지닌 재능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기 시작했다. 이후 오슬로협상으로 화해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국제적으로 흩어져 있던 수많은 만화가들이 되돌아와 지역신문에 만화를 올렸다. 한 늙은 부부가 되풀이되는 분쟁의 나날 속에서 그날그날의 뉴스를 분석해 주는 바헤딘 부카리의 시사만화는 비판의 미학에 굶주렸던 시민들 사이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특히 바헤딘의 등장은 시사만화가 흑백에서 컬러로 변신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어쨌든 1994년 팔레스타인자치기구가 창설되면서 이스라엘 당국의 검열에 신음했던 어둠의 시대는 끝이 났다. 그러나 아직도 시사만화가들에게는 여전히 제한적인 표현의 자유만이 허락되고 있는 실정이다. 취약한 기반을 지닌 팔레스타인자치기구가 내부 비판을 매우 예민하게 여기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면, 면허권과 광고권을 쥐고 있는 자치기구에 밉보일 수 없다는 지역 언론들의 자발적인 ‘고양이걸음’이 작용하고 있는 탓이다.
안정된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 전에는…
사진/암살을 모의하는 이스라엘 내각회의를 풍자한 그림(위)과 팔레스타인을 태우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손.
이러니 팔레스타인 시사만화는 여전히 ‘전통적’인 소재에만 매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전통적인 소재, 이건 말할 것도 없이 아랍과 이스라엘의 지난한 분쟁이다. 그 가운데서도 유엔결의와 국제법을 어기며 평화회담에 비타협적인 이스라엘 정치지도자들을 들추는 데 사력을 다하고 있는 모양이다. 약간 벗어난 것이 있다면, 아랍 내부 세계 지도자들의 때깔없는 팔레스타인 지원이 비판의 소재가 되고 있는 정도다.
이스라엘의 검열이 끝나고 팔레스타인자치기구가 창설되면서 만화가들이 시사만화의 질을 향상시켜온 것은 사실이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팔레스타인의 시사만화가들이 분쟁과 관련된 반이스라엘 여론만 따를 것이 아니라 알량한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팔레스타인 사회 내부적인 문제나 정치에도 비판의 붓을 들 때 진정한 시사만화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공통적인 인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직하게 현실을 본다면, 이런 시사만화의 성취는 민주적이고 안정된 팔레스타인 국가가 창설되기 전에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팔레스타인 라말라=다우오드 쿳탑(Daoud Kuttab)/ 칼럼니스트

사진/팔레스타인 꼬마에게 겨눠진 이스라엘군의 총(위). 총으로 흥한 이스라엘은 결국 총으로 망하리라 예언하는 만화(아래).
황색언론에 철학을 바쳐야 했던 비극

사진/클린턴과 바라크의 흥정을 비꼬는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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