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헤딩사건, 해피 엔딩으로 접기엔 수많은 장폴과 메디가 맘에 걸리네
▣ 파리=이선주 전문위원 koreapeace@free.fr
‘메르시 지주!’(지단 고마워)
메디(10살)는 이다음에 커서 축구 선수가 되는 게 꿈이다. 좋아하는 축구 선수는 호나우두와 앙리 그리고 지단이다. 그들처럼 거침없이 골을 넣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 행복해진단다. 메디의 어머니는 아들의 고집에 못 이겨 새학년부터 메디가 축구를 정식으로 배울 수 있도록 축구클럽에 등록시켰다.
장폴(12살)은 지주(지단의 애칭)의 팬이다.
벌써 몇 년째 축구 클럽에서 일주일에 2~3번씩 훈련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장폴의 여가활동은 대부분 동네 친구들과 즐기는 축구다. 그래선지 중학교 1년생인 그는 유급당했다. 하지만 유급이 축구를 향한 그의 열정을 꺾지는 못할 것이다.
메디와 장폴은 프랑스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소년이다. 존경하는 사람과 장래 희망이 유명한 축구 선수인 그들은 그 선수들이 걸치는 메이커의 운동복, 신발을 1~2개씩은 가지고 있다. 주로 나이키 아니면 아디다스다. 게다가 축구를 할 때면 곧잘 선호하는 선수들의 흉내를 내거나 아예 그 선수의 이름으로 자신을 부르기도 한다. “‘앙리’가 골대 앞으로! ‘지단’이 1명을 제치고 2명도 거뜬히….”
이번 월드컵에서 메디와 장폴은 한 달 동안 프랑스의 우승을 애타게 기다렸다. 하긴 프랑스의 우승을 바라지 않은 프랑스인이 있었을까? 만일 우승했다면 샹젤리제에선 행복에 겨운 승리의 퍼레이드가 있었을 것이고, 그동안 정치·사회 문제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인기가 바닥에 떨어진 시라크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해 혁명기념일(7월14일)을 멋지게(?) 마무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은 행복한 가정으로 그쳤다. 결정적인 이유는 승부차기에서 실축한 다비드 트레제게…, 라기보다는 지네딘 지단의 ‘반칙’ 헤딩이다. 그동안 중요 경기 때마다 역전골을 넣으며 프랑스인들에게 희망을 줬던 게 지단의 ‘헤딩’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의 헤딩이 골대가 아닌 상대방 선수를 향했고, 이미 은퇴 선언을 한 지단이 마지막 월드컵 경기조차 마무리하지 못한 채 퇴장당하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역사에 남을’ 헤딩이 된 셈이다.
“상대방 선수가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화를 낼 만한 말을 했음이 틀림없다. 누가 뭐래도 지주는 최고의 선수다.”
“우승을 하지 못한 건 애석하지만 난 정말 지주를 이해한다. 그는 그동안 우리에게 꿈을 안겨준 선수다.”
“그럼 이해하고 말고. 나 같으면 헤딩이 아니라 목을 비틀어놓았을 거다. 하하.”
지단의 헤딩 사건에 대해 내가 던진 질문에 사람들이 보인 반응이다. 딱 1명이 “나는 모르겠다”고 해서 좀더 자세히 물었더니, 이탈리아 출신이라고 털어놨다. 유독 내가 만난 사람들 반응만 그런 게 아니다. 한 여론조사(CSA) 결과를 보니, 프랑스인의 70% 이상이 지단의 행동을 ‘이해’하고, 60% 이상은 ‘용서’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솔직히 말해 내가 프랑스에서 체류하는 동안 프랑스인들이 이렇게 쉽게 감정이입을 해 ‘이해’하고 ‘용서’하는 광경을 본 적이 없다.
그동안 지단에겐 ‘인간적’이란 단어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유명세에도 겸손한데다 자선활동을 많이 하는 평소의 생활 태도 탓이다. 이젠 ‘인간적인 지단의 인간적인 헤딩’이란 표현이 나올 판이다. 해서 너무나 ‘인간적인’ 지단은 국민들에게 용서도 받고, 이해도 받았다.
하지만 이렇게 해피 엔딩으로 접어두기엔 수많은 장폴과 메디가 맘에 걸린다. 축구를 하다가 그들의 영웅을 흉내내기라도 하면, 그래서 속상하다고 동료들에게 마구 헤딩을 해대기라도 한다면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아주 까다로운 설명이 필요할 게다. 이런 점을 잘 알기 때문인지 지단은 7월12일 한 인터뷰에서 “내 행동에 대해 개인적으론 후회하지 않지만, 아이들에게 특별히 미안하다”며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너무나 인간적인 지단.’ 겸손한데다 자선활동을 많이 하는 지단의 ‘인간적인 헤딩’을 프랑스인들은 쉽게 용서하고 이해했다. (사진/ AP/ FRANCK PREV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