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파키스탄 등 분쟁지역 무기수출 폭로되면서 영세중립국 위상 흔들… 아랍에미리트와의 장갑차 수출계약 전격 취소, 시민들도 반대활동 본격화
▣ 제네바=윤석준 전문위원 semio@naver.com
“스위스 연방정부가 해외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잉여 군사장비 가운데 장갑차 180대를 아랍에미리트 정부에 판매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장갑차들은 아랍에미리트를 거쳐 이라크로 재수출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해 여름 스위스 독일어권의 한 일간지가 폭로한 내용이다. 당시 이 거래는 이미 두 나라 사이에 계약이 모두 끝나고, 최종 승인 절차만 남겨놓은 상황이었다. 스위스 연방정부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마자 해명 자료를 발표했는데, 내용이 재미있다. “이 장갑차들은 분명 아랍에미리트로 판매되는 것이다. 설령 차후에 이라크로 재판매된다 하더라도 계약서에 따라 비군사적 용도로만 사용될 것이다.” 전쟁터로 가면서 ‘평화·재건만 하겠다’는 얘기나 비슷하게 들린다.
극우·좌파 의원들 한목소리로 반대 스위스 정부는 이 문제가 공론화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서둘러 ‘군사장비’ 수출을 최종 승인하려 했다. [%%IMAGE4%%] 그러나 “수출되는 장갑차의 최종 사용처나 용도를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느냐”는 언론의 집요한 문제제기가 이어지면서 승인 절차는 지연됐다. 이 과정에서 특히 아랍에미리트 정부가 지난 2004년에도 스위스에서 수입한 군사장비를 스위스 당국의 동의 없이 모로코로 재수출해 군사적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스위스가 아랍에미리트로 수출할 장갑차 역시 이라크로 재수출돼 군사적 용도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스위스 연방정부 안에서도 불협화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경제부와 국방부는 처음부터 스위스 군사장비 수출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여왔지만, 외교부는 내심 불만이 있었다. 영세중립국으로서 국제적 위상은 물론 평화유지, 개발지원 활동에 주력해왔던 그동안의 외교 성과들이 훼손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연방의회에서도 논란은 가열됐다. 연방의회에서 다수를 점하고 있는 중도우파 의원들은 “법적·제도적 문제가 없는데, 정치적 판단으로 (장갑차 수출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극우파와 좌파 의원들은 “스위스의 중립성이 훼손됨은 물론, 스위스가 새로운 테러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같은 우려와 논란에도 군사장비 수출 건은 결국 성사되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스위스 연방정부는 물론 연방의회에서도 찬성하는 쪽이 다수였고, 국민투표를 하지 않는 정치 이슈들은 크게 여론화되지 않는 스위스 정치문화의 특성상 여론의 압박도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결정적 반전은 그 이후에 시작됐다.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스위스의 군사장비 수출 사례들과 문제점들이 언론과 시민단체들에 의해 하나둘씩 밝혀지기 시작한 것이다. 스위스가 이라크뿐 아니라 여러 분쟁 지역에 군사장비 수출계약을 해왔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드러났다. 우선 스위스가 파키스탄과 인도로 군사장비를 수출했다는 점이 밝혀졌다. 스위스는 최근 파키스탄과 736대의 장갑차 수출계약을, 인도와는 대공 방어 시스템 수출계약을 각각 체결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카슈미르 지역을 둘러싸고 장기간 무력 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반도에도 무기 수출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스위스가 ‘국제법상 전쟁이 끝나지 않은’ 한반도의 남과 북에도 각각 군사장비를 수출해왔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프랑스어권 일간지인 <트리뷴 드 주네브>는 “스위스 연방정부는 남한은 물론 북한과도 미사일 관련 군사장비 거래 실적을 가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스위스는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지금까지 ‘중립국감독위원회’의 구성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한반도 분쟁을 중재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중립국가가, 바로 그곳에서 전쟁 당사국들과 어떠한 형태로든 무기 관련 거래를 해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스위스의 ‘전쟁 물자에 대한 연방법’ 규정을 보면 “분쟁 지역 및 전쟁 지역으로의 군사장비 수출을 금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물론 스위스 연방정부가 법률적인 검토를 면밀히 거쳤겠지만, 인도·파키스탄이나 한반도 등 분쟁 지역으로 군사장비를 수출한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또 다른 전문가들은 “설령 법리상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도덕적인 문제제기는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쿠르트 슈필만 취리히연방공대 교수는 “법률 문제를 떠나, 영세중립국으로서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중시해온 스위스의 도덕적 가치를 고려했을 때, 분쟁의 양 당사국에 각각 군사장비를 수출한 게 과연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강조했다. [%%IMAGE2%%] 이라크·파키스탄·인도·남북한 등 스위스가 분쟁 지역으로 군사장비를 수출한 사실이 하나둘씩 밝혀지면서, 국민의 관심도 점차 이 문제에 쏠리기 시작했다. 때마침 제네바 국제기구 밀집 지역에서 테러경보가 발령되면서 스위스 국민들은 이 문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한층 높였다. 결국 스위스 연방정부의 군사장비 수출 활동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우선 스위스와 아랍에미리트의 장갑차 수출계약이 전격 취소됐다. 스위스 연방정부는 향후 군사장비 수출시 제3국으로의 재수출은 물론 임대나 무상증여도 금지하는 등 계약 조항 강화를 준비한 뒤 수출 문제를 재추진하기로 했다. 스위스 연방정부는 냉전이 끝난 뒤 과거에 비해 국제적 역할이 축소된 제네바를 다시 세계 평화와 인권의 중심 도시로, 스위스를 세계 평화의 중심 국가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각종 계획을 최근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이미 제네바에 자리잡은 수많은 국제기구와 세계적 시민단체들에 이어 최근 새로운 유엔 인권이사회도 유치해 한층 기대에 부풀어 있다. 한편에선 전세계 분쟁 지역에 평화라는 가치를 수출하고, 다른 한편에선 이들 지역에 군사장비를 수출하는 스위스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생뚱맞다. ‘영세 중립국의 분쟁지역 무기수출’은 ‘좌파적 신자유주의’라는 표현만큼이나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의 조합이기 때문이다. ‘무기 없는 스위스를 위한 그룹’출범 지난 5월 스위스에서 군사장비 해외 수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시민사회 차원의 본격적인 움직임이 시작됐다. 주로 사회당·녹색당 등 좌파 정당을 지지하는 젊은이들이 중심이 돼 ‘무기 없는 스위스를 위한 그룹’(GSSA)이란 시민 네트워크를 출범시켰다. 궁극적으로 “스위스가 어떠한 군사장비도 수출할 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이들의 노력이 스위스의 ‘중립성’을 되살려줄지 지켜볼 일이다.
극우·좌파 의원들 한목소리로 반대 스위스 정부는 이 문제가 공론화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서둘러 ‘군사장비’ 수출을 최종 승인하려 했다. [%%IMAGE4%%] 그러나 “수출되는 장갑차의 최종 사용처나 용도를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느냐”는 언론의 집요한 문제제기가 이어지면서 승인 절차는 지연됐다. 이 과정에서 특히 아랍에미리트 정부가 지난 2004년에도 스위스에서 수입한 군사장비를 스위스 당국의 동의 없이 모로코로 재수출해 군사적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스위스가 아랍에미리트로 수출할 장갑차 역시 이라크로 재수출돼 군사적 용도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스위스 연방정부 안에서도 불협화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경제부와 국방부는 처음부터 스위스 군사장비 수출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여왔지만, 외교부는 내심 불만이 있었다. 영세중립국으로서 국제적 위상은 물론 평화유지, 개발지원 활동에 주력해왔던 그동안의 외교 성과들이 훼손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연방의회에서도 논란은 가열됐다. 연방의회에서 다수를 점하고 있는 중도우파 의원들은 “법적·제도적 문제가 없는데, 정치적 판단으로 (장갑차 수출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극우파와 좌파 의원들은 “스위스의 중립성이 훼손됨은 물론, 스위스가 새로운 테러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같은 우려와 논란에도 군사장비 수출 건은 결국 성사되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스위스 연방정부는 물론 연방의회에서도 찬성하는 쪽이 다수였고, 국민투표를 하지 않는 정치 이슈들은 크게 여론화되지 않는 스위스 정치문화의 특성상 여론의 압박도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결정적 반전은 그 이후에 시작됐다.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스위스의 군사장비 수출 사례들과 문제점들이 언론과 시민단체들에 의해 하나둘씩 밝혀지기 시작한 것이다. 스위스가 이라크뿐 아니라 여러 분쟁 지역에 군사장비 수출계약을 해왔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드러났다. 우선 스위스가 파키스탄과 인도로 군사장비를 수출했다는 점이 밝혀졌다. 스위스는 최근 파키스탄과 736대의 장갑차 수출계약을, 인도와는 대공 방어 시스템 수출계약을 각각 체결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카슈미르 지역을 둘러싸고 장기간 무력 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반도에도 무기 수출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스위스가 ‘국제법상 전쟁이 끝나지 않은’ 한반도의 남과 북에도 각각 군사장비를 수출해왔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프랑스어권 일간지인 <트리뷴 드 주네브>는 “스위스 연방정부는 남한은 물론 북한과도 미사일 관련 군사장비 거래 실적을 가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스위스는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지금까지 ‘중립국감독위원회’의 구성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한반도 분쟁을 중재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중립국가가, 바로 그곳에서 전쟁 당사국들과 어떠한 형태로든 무기 관련 거래를 해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스위스의 ‘전쟁 물자에 대한 연방법’ 규정을 보면 “분쟁 지역 및 전쟁 지역으로의 군사장비 수출을 금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물론 스위스 연방정부가 법률적인 검토를 면밀히 거쳤겠지만, 인도·파키스탄이나 한반도 등 분쟁 지역으로 군사장비를 수출한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또 다른 전문가들은 “설령 법리상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도덕적인 문제제기는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쿠르트 슈필만 취리히연방공대 교수는 “법률 문제를 떠나, 영세중립국으로서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중시해온 스위스의 도덕적 가치를 고려했을 때, 분쟁의 양 당사국에 각각 군사장비를 수출한 게 과연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강조했다. [%%IMAGE2%%] 이라크·파키스탄·인도·남북한 등 스위스가 분쟁 지역으로 군사장비를 수출한 사실이 하나둘씩 밝혀지면서, 국민의 관심도 점차 이 문제에 쏠리기 시작했다. 때마침 제네바 국제기구 밀집 지역에서 테러경보가 발령되면서 스위스 국민들은 이 문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한층 높였다. 결국 스위스 연방정부의 군사장비 수출 활동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우선 스위스와 아랍에미리트의 장갑차 수출계약이 전격 취소됐다. 스위스 연방정부는 향후 군사장비 수출시 제3국으로의 재수출은 물론 임대나 무상증여도 금지하는 등 계약 조항 강화를 준비한 뒤 수출 문제를 재추진하기로 했다. 스위스 연방정부는 냉전이 끝난 뒤 과거에 비해 국제적 역할이 축소된 제네바를 다시 세계 평화와 인권의 중심 도시로, 스위스를 세계 평화의 중심 국가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각종 계획을 최근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이미 제네바에 자리잡은 수많은 국제기구와 세계적 시민단체들에 이어 최근 새로운 유엔 인권이사회도 유치해 한층 기대에 부풀어 있다. 한편에선 전세계 분쟁 지역에 평화라는 가치를 수출하고, 다른 한편에선 이들 지역에 군사장비를 수출하는 스위스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생뚱맞다. ‘영세 중립국의 분쟁지역 무기수출’은 ‘좌파적 신자유주의’라는 표현만큼이나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의 조합이기 때문이다. ‘무기 없는 스위스를 위한 그룹’출범 지난 5월 스위스에서 군사장비 해외 수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시민사회 차원의 본격적인 움직임이 시작됐다. 주로 사회당·녹색당 등 좌파 정당을 지지하는 젊은이들이 중심이 돼 ‘무기 없는 스위스를 위한 그룹’(GSSA)이란 시민 네트워크를 출범시켰다. 궁극적으로 “스위스가 어떠한 군사장비도 수출할 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이들의 노력이 스위스의 ‘중립성’을 되살려줄지 지켜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