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히드 하야 문제 놓고 분열된 이슬람 세력… 향후 정국의 가장 큰 변수로 작용
‘부패 대통령’ 하야의 돌풍이 필리핀에 이어 인도네시아에서도 일고 있다. 압두라만 와히드 대통령이 병참부 공금 350억루피아(약 360만달러)를 횡령한 ‘블록 게이트’와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으로부터 받은 기부금 200만달러를 챙긴 이른바 ‘브루나이 게이트’에 발목이 잡혀 3개월 동안 부패 조사를 받아오면서 와히드의 하야를 외치는 학생들의 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국민적 봉기가 일어났던 필리핀의 상황과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그중에서도 이슬람 세력의 내분은 인도네시아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 가장 큰 ‘주범’이다. 인도네시아의 이슬람 세력은 추기경부터 일치단결해 에스트라다 하야를 외쳤던 필리핀의 가톨릭 세력과는 달리 내부 의견이 엇갈려 와히드 하야를 요구하는 학생들과 시민사회운동 진영의 발목을 잡고 있다.
분열의 기원은 수하르토부터
지난 2월7일에는 인도네시아 동부 자바, 수라바야를 중심으로 와히드 대통령을 지지하는 약 2만여명의 주민이 칼과 몽둥이, 돌 등으로 무장한 채 가두시위를 벌인 뒤, 전 집권당인 골카르당 당사에 난입해 기물을 부수고 건물 일부에 불을 질렀다. 이날 수도 자카르타에서는 반대로 와히드의 하야를 외치는 학생 5천여명의 시위가 있었으며, 자바 서부지역에서는 이슬람 성직자들이 와히드 하야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의 이슬람 세력들이 극심한 분열상을 빚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2월11일, 와히드의 동생인 사라후딘 와히드(Salahuddin Wahid)가 와히드 대통령의 잔여임기 동안 부통령인 메가와티에게 대통령 권한을 넘기는 정치 타협안을 제시해 정국은 새로운 국면을 맡고 있다. 이런 정치 타협안은 이미 지난 2월9일, 대통령 자문기관인 최고자문평의회(DPA)가 와히드의 대통령 직함은 유지시키되 건강상의 이유를 내세워 대통령 권한을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부통령에게 넘기는 것을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제안은 그동안 와히드 지지를 외치며 시위를 주도했던 최대 이슬람 단체인 나들라툴 울라마(NU- ‘이슬람의 학풍을 일깨운다’라는 뜻)에서도 내부 동의를 얻은 것으로 확인돼 사태해결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어찌됐든 이슬람 내부가 이렇듯 심각한 균열을 보이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지금의 인도네시아의 정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인도네시아의 전통사회를 이끄는 자바(수도 자카르타가 있는 섬)의 이슬람 세력은 세 그룹으로 나뉘어 있다. 첫째, 이슬람 외에도 힌두와 불교 그리고 자바의 전통적인 신비스러움이 한데 모인 프리야이(Priyayi), 둘째, 원주민들을 중심으로 이슬람과 자바의 정령숭배 사상이 혼합된 아방간(Abangan), 마지막으로 자칭 전통적인 모슬렘이라 불리는 산트리(Santri) 그룹이다. 아방간 그룹은 전통적으로 사회주의 이념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사고를 가졌던 수카르노 전 대통령(현 메가와티 부통령의 부친)과 함께 기층민에 기반을 두었으며, 인도네시아공산당(PKI)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를 보였다. 이와 반대로 1965년 군사 쿠데타를 통해 등장한 수하르토는 산트리 그룹을 기반으로 좌익 세력을 철저히 초토화시키면서 자신의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다. 그리고 경제성장 논리를 앞세워 종교, 종족, 지역과 계급에 비정치적, 비이념적인 사회를 강요하는 한편 65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대대적인 좌익세력 초토화 작업을 벌여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수하르토는 자바섬을 중심으로 힘의 논리와 철학을 세워나가는 한편 서구 민주주의와 전통적 이슬람의 평등적 이념을 뒤로 하고 1984년부터는 모든 정치·사회조직에 자바인 중심의 새로운 이슬람 철학을 강요한다. 이른바 박정희 독재정권에서 보인 ‘한국식 민주주의’와 같은 이러한 신철학이념은 이슬람 내부사이에 깊은 갈등의 뿌리를 내렸을 뿐만 아니라 소수 인종과 타지역에 대한 배타적, 힘의 지배로 이어진다. 이슬람 세력 분열의 기원은 바로 수하르토인 것이다. NU에 도전하는 개혁파와 보수파
수하르토 독재정권이 물러난 지난 1998년까지 약 30여년간 뿌리내린 수하르토 이념은 동티모르, 아체, 말루크 등에 대한 무차별적 학살과 힘의 지배로 나타나기도 했다. 수하르토 집권기간 동안 이슬람 내부에서도 중산층에 기반을 두었던 산트리는 수하르토의 지원을 얻으며 다른 세력을 억눌렀다. 그리고 이러한 보수적인 전통이 정치세력화된 것이 바로 골카르당이다.
수하르토 정권이 무너지자 ‘아방간’을 중심으로 이슬람 제세력은 그간의 분열을 딛고 3천만여명의 회원을 가진 이슬람단체, 나들라틀 울라마(NU)를 만든다. 와히드가 정권을 잡는 데 가장 큰 기반이 된 이 단체는 자바, 특히 동부 농촌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나 전반적으로 볼 때 자바 중심의 보수적인 사고에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단체도 수하르토 독재에서 벗어난 지 2년이 지난 인도네시아에서 진보적인 민주사회와 개혁을 꿈꾸는 이들, 그리고 소수 개혁적인 이슬람 세력과 팽팽한 긴장을 조성하고 있다. 와히드는 사회개혁을 바라는 이들에게는 극보수적인 골카르당보다는 차선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집권 2년 동안 보여줬던 더딘 개혁에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이 오늘의 ‘와히드 하야’를 외치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반면 보수의 회귀를 꿈꾸는 골카르당의 입장에서도 더이상 호기일 수밖에 없는 ‘와히드 탄핵’을 통해 정치적 입지를 넓혀가려 하고 있다.
현재 계속되는 사회혼란을 안정시키기 위해 특별총회를 조기에 소집하자는 서명작업에 지금까지 국회의원 500명 중 200여명이 동의하고 있다. 이는 4개월간 두 차례에 걸쳐 해명요구서를 발부해 대통령이 부정부패 혐의에 대한 답변을 거부하거나 국회에서 해명에 동의하지 못할 경우에만 국민협의회(MPR) 특별총회를 소집토록 규정한 국회법을 따르지 말자는 주장이다.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는 와히드의 부정부패에 대한 입장이 단호하다. 부정부패 청산을 외친 그가 스스로 부패를 저지른 것에 대해서는 강도 높은 비판을 하고 있지만 골수 여당 골카르당의 정치술수, 군부의 재등장에 대해서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우리 운동의 고민이다. 우리 국민들에게 정말 불행한 것은 그가 개혁을 입으로만 하면서 아무것도 이루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도 현재 상황에서는 다른 누구를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물러난다고 할 때 군부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1998년 수하르토 퇴진운동 당시 가장 앞서서 시민사회운동을 이끌어왔던 와르다 하피스(49)의 고민스런 대답이다. 인도네시아 시민사회운동 내부에서 볼 때 와히드가 물러난 뒤 메가와티가 나으리란 보장도 없다. 더 큰 문제는 여전히 국민협의회 38석을 무임승차하는 군부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메가와티가 이끌고 있는 민주투쟁당의 상당 의원들은 와히드의 즉각적인 탄핵절차를 진행할 것과 동시에 그의 하야를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른 권력 공백을 메우기 위한 조처로 메가와티의 대통령 승계도 대비하고 있다.
왜 메가와티는 탄핵서명 못하게 했나
그러나 탄핵시기를 앞당기려던 인도네시아 국회의 움직임과 관련해 메가와티 부통령은 지난 2월6일 당 소속 의원들에게 탄핵을 위한 국민협의회 조기 소집과 와히드 대통령 사임을 요구하는 서명작업에 합류하지 말도록 지시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1998년 6월, 50여개 정당이 난무하는 가운데 많은 외신들은 골수 보수여당인 골카르당을 물리치고 민주화의 상징으로 불리는 민주투쟁당의 메가와티가 집권할 것을 점쳐왔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이같은 역사를 잘 아는 이들은 이슬람 내부의 단합이 어떻게 될지에 관심을 보였다. 선거일을 불과 며칠 나두고 이슬람 정파간에 정치적 단합이 이루어져 와히드가 당선된 것을 잘 알고 있는 메가와티는 이슬람 내부의 이해와 정치적 합의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탄핵이 돼도 이슬람 세력이 단결하여 와히드를 지지하면 메가와티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슬람 세력의 역관계를 자세히 살펴야 하는 메가와티로서는 필리핀의 아로요보다 더 복잡하고 힘든 길을 가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향후 정치 변수는 아직도 이슬람 내부에 있다.
마닐라=나효우 통신원 nahyowoo@hotmail.com

사진/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 하야의 가장 큰 걸림돌은 이슬람 세력의 분열이다. 최대의 이슬람 단체인 NU는 하야에 반대하는 반면, 소수 개혁파 이슬람 세력과 보수 골카르당은 하야를 주장하고 있다.(SYGMA)
지난 2월7일에는 인도네시아 동부 자바, 수라바야를 중심으로 와히드 대통령을 지지하는 약 2만여명의 주민이 칼과 몽둥이, 돌 등으로 무장한 채 가두시위를 벌인 뒤, 전 집권당인 골카르당 당사에 난입해 기물을 부수고 건물 일부에 불을 질렀다. 이날 수도 자카르타에서는 반대로 와히드의 하야를 외치는 학생 5천여명의 시위가 있었으며, 자바 서부지역에서는 이슬람 성직자들이 와히드 하야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의 이슬람 세력들이 극심한 분열상을 빚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2월11일, 와히드의 동생인 사라후딘 와히드(Salahuddin Wahid)가 와히드 대통령의 잔여임기 동안 부통령인 메가와티에게 대통령 권한을 넘기는 정치 타협안을 제시해 정국은 새로운 국면을 맡고 있다. 이런 정치 타협안은 이미 지난 2월9일, 대통령 자문기관인 최고자문평의회(DPA)가 와히드의 대통령 직함은 유지시키되 건강상의 이유를 내세워 대통령 권한을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부통령에게 넘기는 것을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제안은 그동안 와히드 지지를 외치며 시위를 주도했던 최대 이슬람 단체인 나들라툴 울라마(NU- ‘이슬람의 학풍을 일깨운다’라는 뜻)에서도 내부 동의를 얻은 것으로 확인돼 사태해결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어찌됐든 이슬람 내부가 이렇듯 심각한 균열을 보이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지금의 인도네시아의 정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인도네시아의 전통사회를 이끄는 자바(수도 자카르타가 있는 섬)의 이슬람 세력은 세 그룹으로 나뉘어 있다. 첫째, 이슬람 외에도 힌두와 불교 그리고 자바의 전통적인 신비스러움이 한데 모인 프리야이(Priyayi), 둘째, 원주민들을 중심으로 이슬람과 자바의 정령숭배 사상이 혼합된 아방간(Abangan), 마지막으로 자칭 전통적인 모슬렘이라 불리는 산트리(Santri) 그룹이다. 아방간 그룹은 전통적으로 사회주의 이념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사고를 가졌던 수카르노 전 대통령(현 메가와티 부통령의 부친)과 함께 기층민에 기반을 두었으며, 인도네시아공산당(PKI)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를 보였다. 이와 반대로 1965년 군사 쿠데타를 통해 등장한 수하르토는 산트리 그룹을 기반으로 좌익 세력을 철저히 초토화시키면서 자신의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다. 그리고 경제성장 논리를 앞세워 종교, 종족, 지역과 계급에 비정치적, 비이념적인 사회를 강요하는 한편 65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대대적인 좌익세력 초토화 작업을 벌여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수하르토는 자바섬을 중심으로 힘의 논리와 철학을 세워나가는 한편 서구 민주주의와 전통적 이슬람의 평등적 이념을 뒤로 하고 1984년부터는 모든 정치·사회조직에 자바인 중심의 새로운 이슬람 철학을 강요한다. 이른바 박정희 독재정권에서 보인 ‘한국식 민주주의’와 같은 이러한 신철학이념은 이슬람 내부사이에 깊은 갈등의 뿌리를 내렸을 뿐만 아니라 소수 인종과 타지역에 대한 배타적, 힘의 지배로 이어진다. 이슬람 세력 분열의 기원은 바로 수하르토인 것이다. NU에 도전하는 개혁파와 보수파

사진/와히드 하야를 외치는 학생들의 시위.(SYGMA)

사진/민주투쟁당은 즉각적인 탄핵을 주장하고 있다. 흰옷입은 여성이 메가와티.(SYG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