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시노스가 남긴 비디오테이프 잇따라 공개… 독재정권과 거래한 고위층의 부패 “오 놀라워라”
요즘 페루는 비디오 연속상영에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알베르토 후지모리 집권 10년 동안 정권의 2인자이자 정보총책이었던 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에게서 압수한 2004개가량의 비디오테이프가 잇따라 공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테이프 속에는 몬테시노스의 정치공작, 야당의원 매수, 이권개입 등 지난 시절 저지른 갖가지 치부들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의회와 특별재판부가 비디오테이프를 공개할 때마다, 페루 시민들은 “저 사람도 뒷구멍으로 거래를 해왔나!” 하며 분노 섞인 탄식을 하고 있다. 몬테시스노 테이프는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페루 정가의 폭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다음 테이프로 누가 죽을까
올 4월에 치러질 대통령선거전에서 1순위 후보로 꼽히는 알레한드로 톨레도(‘페루의 가능성’ 당수)마저 멀지 않아 비디오 파문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톨레도 후보는 “마약을 피운 채 부인이 아닌 여자와 야릇한 모습을 하고 있는 테이프가 나올지도 모르겠다”고 미리 밝혔다. 언젠가 정보기관에 납치돼 강제로 마약을 하고 여자와 함께 있었던 적이 있다는 게 톨레도의 해명이다. 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밝힌 문제의 테이프는 그러나 아직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지금껏 판독한 테이프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므로, 미확인 테이프 파일 속에 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11월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이 일본으로 도망가고, 그와 함께 페루 정치의 쌍두마차를 몰아왔던 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마저 수배자 반열에 오른 지금, 페루의 화두는 ‘다음 테이프로 누가 죽을까’이다. 알려진 바처럼, 몬테시노스가 야당의원을 매수하는 장면이 담긴 테이프 하나가 지난 9월 유출됨으로써 지금의 비디오 파문이 비롯됐다. 몬테시노스는 지난날 한국의 3공화국 시절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그랬듯,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상대방의 약점을 잡아왔다. 그러나 제 발등에 도끼를 찍은 꼴이 됐고, 마침내 후지모리 정권의 몰락을 불러왔다. 몬테시노스가 현재 어디 머물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난해 말 베네수엘라에 밀입국해 얼굴 성형수술을 받았다는 사실만 확인된 상태다. 페루국회의 추천으로 후지모리의 뒤를 이어 임시대통령에 오른 발렌틴 파냐과 과도정권은 4월로 예정된 차기선거를 준비중이다. 지난해 봄 말썽 많았던 대선에서 후지모리를 위협했던 톨레도를 비롯해 여러 후보자들이 대권고지를 향해 뛰고 있다. 이 가운데는 후지모리에게 정권을 물려주고 망명했던 알란 가르시아 전 대통령도 포함돼 있다. 그는 최근에 귀국해 대권고지 도전을 검토중이다. 문제는 몬테시노스 테이프가 지닌 폭발력이다. 어느 예비후보든 몬테시노스 비밀테이프에 얼굴이 비친 게 드러나면, 하루아침에 몰락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비디오에 등장하는 인물은 다양하다.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판·검사, 군 장성, 기업인, 언론인, 지식인…. 한마디로 페루사회에서 목에 힘깨나 주던 계층들이 모두 망라돼 있다. 그나마 비켜갈 수 있는 계층은 가톨릭 사제들 정도일 것이다. 이 비디오 파문으로 지금 페루사회는 제도권에 대한 불신과 회의를 넘어 냉소주의의 깊은 자괴감에 빠져드는 모습이다. 몬테시노스 비리 수사검사인 호세 우가즈 검사팀은 2월 초까지 70여편의 비디오테이프를 틀어본 상태다. 속도가 더딘 것은 몬테시노스가 잠적하기 앞서 예민한 부분이 담긴 테이프에 전기적인 충격을 가해 놓았기 때문이다. 손상된 화면과 소리가 지워진 부분을 복원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앞으로 한달 안에 모든 테이프 내용이 드러날 것으로 알려졌다. 불똥은 부정부패 조사팀까지…
지금까지 공개된 비디오에는 몬테시노스와 그의 협력자들이 전방위로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해왔음을 잘 보여준다. 국방부의 무기 구매, 외국회사의 광산채굴권 지분변경, 친후지모리 언론사에 대한 은행대출 압력에서부터 지난해 봄 대선에서 후지모리 3선을 위한 선거조작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개입해왔음을 보여준다. 우가즈 검사는 “몬테시노스가 페루의 모든 중요사항을 통제해왔음을 이 테이프들이 증언하고 있다”고 말한다.
2월 초 나온 우가즈 검사팀의 3개월 수사 중간보고서에 따르면, 몬테시노스 비디오에 바탕해 지금껏 현역의원 1명, 전·현직 군장성 8명, 전 각료 1명, 고위급 검사 2명, 시장 1명을 체포했다. 그리고 적어도 5명 이상의 정치인이 비리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으며, 이 가운데 1명은 미국 마이애미로 도망갔다. 사법부도 심상치 않다. 25명의 대법원판사 가운데 4명이 조사를 받은 가운데 3명은 직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조사대상은 날이 갈수록 늘어갈 조짐이다. 테이프와는 별도로 후지모리 정권의 부정부패 비리혐의와 관련해 후지모리를 포함한 200여명이 우가즈 검사팀의 수사대상에 올라 있다.
나름대로 약점을 지닌 페루 상층부는 도둑이 제발 저리듯 비디오테이프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건이 터졌다. 대법원판사 3명과 몬테시노스가 만나는 장면이 담긴 테이프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이 테이프에는 지난해 봄 대선에서 선거관리기구를 이끌었던 대법관 알피오 몬테스가 몬테시스노로부터 1만달러를 받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누가 이 테이프를 훔쳐갔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를 두고, “아직도 몬테시노스 일당의 촉수가 파냐과 임시정부 조사팀에까지 뻗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테이프 증발 사건이 있기 전에 이 테이프에서 오간 대화를 요약한 문서에 따르면, 몬테스 대법관이 “그 제안을 고려하겠다”고 말하자, 몬테시노스는 “당신이 생각할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맞받았다. 이들은 후지모리의 부정당선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어떤 안건을 놓고 대화를 나눈 것으로 보인다.
비디오 파문의 불똥은 후지모리 정권 부정부패 조사팀에게까지 튀었다. 페루의회는 지난 1월 몬테시노스의 해외계좌에 들어 있던(그래서 페루 정부의 요청으로 지금은 동결된) 8천만달러의 출처를 조사해오던 의회 소속 한 위원회를 잠정 해체했다. 위원회 소속 에르네스토 가마라 의원이 몬테시노스와 가까운 무기거래 상인으로부터 4천달러의 선거자금을 받아 챙기는 장면이 테이프를 통해 밝혀졌기 때문이다. 페루 시민들에게 충격적인 것은 문제의 가마라 의원(독립도덕전선 소속)은 후지모리 정권 내내 몬테시노스의 정보정치를 큰 목소리로 비판해온 정치인이었다는 사실이다. 테이프에서 오간 대화내용에는 몬테시노스 정보조직에 대한 조사를 완화해달라는 주문이 들어 있다. 가마라 의원이 속한 정당인 독립도덕전선은 몬테시노스 비디오 파문을 처음 폭로한 정당으로,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앙숙이자 이혼한 부인인 수잔나 히구치가 현역의원으로 있다. 이 당의 지도자 페르난도 올리베라 의원은 가마라 의원과 매우 가까운 사이로, 대권후보 1순위인 톨레도 후보에 이어 유력 대선후보군의 한 사람으로 꼽혀왔다. 비록 당사자가 돈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비디오 파문으로 흠집이 난 게 사실이다. 사건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올리에라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17%(2위)에서 11%(4위)로 급락했다.
감춰진 ‘폭탄’도 많아
그렇다면 몬테시노스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비디오테이프를 남겼을까. 현재 압수된 2004개말고 더 있을 가능성이 크다. 정보정치로 잔뼈가 굵은 몬테시노스가 민감한 내용이 담긴 테이프들을 따로 챙겨 앞날에 있을지 모를 흥정에 대비하고 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톨레도 후보가 앞서 스스로 밝힌 ‘마약-여인 테이프’도 몬테시노스가 챙겨간 것들 속에 들어 있을지 모른다.
대선 예비후보들을 포함한 페루 정치인들이 비디오에 신경과민이 돼 있지만, 딱 한 사람만은 예외다. 후지모리에게 정권을 물려준 알란 가르시아 전 대통령이다. 그는 지난 91년 망명을 떠나 후지모리 재임 기간 내내 바깥에 머물러왔기 때문이다.
몬테시노스 몰래카메라 소동으로 페루 텔레비전 시청률은 크게 높아졌다. 지금껏 공개된 비디오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 봄 내내 높은 시청률이 이어질 전망이다.
테이프가 모두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도 물론 배제할 수는 없다. “정치 일반에 대한 냉소주의를 더이상 퍼뜨리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는 페루 정치권의 묵시적 합의가 이뤄진다는 전제 아래서다. 그러나 그런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매우 희박하다.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사진/후지모리는 물러났지만 페루 고위층의 '검은 거래'가 계속 불거져 나오고 있다. 사진은 후지모리 하야를 주장하는 시위.(SYGMA)
올 4월에 치러질 대통령선거전에서 1순위 후보로 꼽히는 알레한드로 톨레도(‘페루의 가능성’ 당수)마저 멀지 않아 비디오 파문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톨레도 후보는 “마약을 피운 채 부인이 아닌 여자와 야릇한 모습을 하고 있는 테이프가 나올지도 모르겠다”고 미리 밝혔다. 언젠가 정보기관에 납치돼 강제로 마약을 하고 여자와 함께 있었던 적이 있다는 게 톨레도의 해명이다. 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밝힌 문제의 테이프는 그러나 아직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지금껏 판독한 테이프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므로, 미확인 테이프 파일 속에 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11월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이 일본으로 도망가고, 그와 함께 페루 정치의 쌍두마차를 몰아왔던 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마저 수배자 반열에 오른 지금, 페루의 화두는 ‘다음 테이프로 누가 죽을까’이다. 알려진 바처럼, 몬테시노스가 야당의원을 매수하는 장면이 담긴 테이프 하나가 지난 9월 유출됨으로써 지금의 비디오 파문이 비롯됐다. 몬테시노스는 지난날 한국의 3공화국 시절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그랬듯,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상대방의 약점을 잡아왔다. 그러나 제 발등에 도끼를 찍은 꼴이 됐고, 마침내 후지모리 정권의 몰락을 불러왔다. 몬테시노스가 현재 어디 머물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난해 말 베네수엘라에 밀입국해 얼굴 성형수술을 받았다는 사실만 확인된 상태다. 페루국회의 추천으로 후지모리의 뒤를 이어 임시대통령에 오른 발렌틴 파냐과 과도정권은 4월로 예정된 차기선거를 준비중이다. 지난해 봄 말썽 많았던 대선에서 후지모리를 위협했던 톨레도를 비롯해 여러 후보자들이 대권고지를 향해 뛰고 있다. 이 가운데는 후지모리에게 정권을 물려주고 망명했던 알란 가르시아 전 대통령도 포함돼 있다. 그는 최근에 귀국해 대권고지 도전을 검토중이다. 문제는 몬테시노스 테이프가 지닌 폭발력이다. 어느 예비후보든 몬테시노스 비밀테이프에 얼굴이 비친 게 드러나면, 하루아침에 몰락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비디오에 등장하는 인물은 다양하다.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판·검사, 군 장성, 기업인, 언론인, 지식인…. 한마디로 페루사회에서 목에 힘깨나 주던 계층들이 모두 망라돼 있다. 그나마 비켜갈 수 있는 계층은 가톨릭 사제들 정도일 것이다. 이 비디오 파문으로 지금 페루사회는 제도권에 대한 불신과 회의를 넘어 냉소주의의 깊은 자괴감에 빠져드는 모습이다. 몬테시노스 비리 수사검사인 호세 우가즈 검사팀은 2월 초까지 70여편의 비디오테이프를 틀어본 상태다. 속도가 더딘 것은 몬테시노스가 잠적하기 앞서 예민한 부분이 담긴 테이프에 전기적인 충격을 가해 놓았기 때문이다. 손상된 화면과 소리가 지워진 부분을 복원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앞으로 한달 안에 모든 테이프 내용이 드러날 것으로 알려졌다. 불똥은 부정부패 조사팀까지…

사진/야당의원을 매수하는 비디오테이프 장면.후지모리 사임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사진/몬테시노스가 남긴 비디오 테이프들이 국민의 관심을 끌고 있다.(SYG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