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의 신문·방송만을 보고 현지어를 배우지 않는 외국의 이방인들
▣ 브뤼셀=도종윤 전문위원 ludovic@hanmail.net
벨기에에 살고 있지만 한국 텔레비전을 본다. 주로 인터넷을 통해 한국의 저녁 뉴스를 본다. 신문도 본다. 컴퓨터를 켜면 제일 먼저 접속하는 곳이 한국의 각종 신문 사이트다.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지만 인터넷을 통해 한국에서 일어나는 소식을 속속들이 알 수 있다. 벨기에에 사는 한국인들은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거의 한국에 있는 사람 못지않게 빨리 알 수 있다. 인터넷이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한국의 신문, 방송 등을 쉽게 접하다 보니 실제로 현지 소식에는 잘 관심을 갖지 않는다. 심지어 어느 가족은 벨기에에 사는 몇 개월 동안 현지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주재원들이나 유학생들 중에 현지 소식을 제대로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많은 이들이 인터넷에 올라온 한국 신문이나 영어권 외신을 통해 유럽 소식을 접한다. 이는 한국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동네 구멍가게 인도인 주인은 하루 종일 인도 위성방송을 켜놓는다. 손님도 인도나 방글라데시인들이 대부분이다. 가게 안에만 콕 박혀 있으면 그곳이 바로 인도다. 또 다른 한 가지. 내가 아는 한, 벨기에의 한국 공관원이나 상사 주재원들 중에 현지어인 프랑스어나 플라망어, 독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한국에서 배운 외국어가 영어에 집중됐기 때문일 것이다. 영어권 국가가 아닌데도 영어로 그럭저럭 의사소통을 한다. 자녀들도 ‘국제학교’라고 부르는 미국 또는 영국 학교에 보낸다. 현지 학교에 보내는 이는 극히 드물다. 유학생도 예외는 아니어서 영어 강좌에 등록한 이들이 프랑스어나 플라망어 강좌에 등록한 이들보다 많다. 심지어 어느 고위 외교관은 한 인터뷰에서 “브뤼셀에서 영어를 하기에 불편함이 없다. 프랑스어를 몰라도 의사소통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글쎄, 과연 그럴까? 현지어를 모르면 현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벨기에 신문이나 방송을 보지 않으면 3개 언어권, 7개 정당이 모여 연정을 펼치는 벨기에 정치를 이해하는 것은 어림도 없다. 심지어 “공공운송 노조 파업으로 내일 전철이 다니지 않는다”는 뉴스가 나와도 홀로 전철역에 우두커니 서 있기 일쑤다. 시대의 흐름을 ‘세계화’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인터넷을 비롯한 통신수단의 발달과 영어(미국) 문화의 보편화가 그것을 가능케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인터넷과 영어는 중요한 도구다. 인터넷은 정보 유통의 시간과 공간을 단축시키며, 정보의 공유를 통해 민주주의의 발전을 촉진한다. 현대의 고급 지식은 영어로 작성된 경우가 많으며 영어 습득은 인터넷 등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인다. 그러나 영어를 통해 얻는 정보는 한 번씩 ‘걸러진 현실’인 경우가 많다. 특히 미국에 투영된 정보는 더 그렇다. 얼마 전 미국에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열렸을 때, 한국에서 방송된 9시 뉴스에서 한 기자가 “ <뉴욕타임스> 등 ‘세계 언론들’이 한국이 4강에 오른 것을 크게 보도했다”고 바보스런 소리를 하는 것을 봤다. 우리는 과 이 곧 세계 언론인 것으로 착각하고 산다. 한국은 ‘세계 4강’의 기적에 감격하고 있었지만, 유럽 언론에서 이 대회는 뉴스거리에 오르지도 않았다. 오히려 같은 기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영연방 체육대회’는 많은 유럽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몇몇 나라에서만 즐기는 야구와 달리 이 대회는 육상과 수영 등 범세계적인 종목들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문화를 영어로 수렴하는 것이 세계화는 아니다. 인터넷의 유용성은 타 문화권의 정보에 빠르고 넓게 접속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진정한 세계화는 현지의 것을 그대로 이해하고 그것을 세계적으로 조합했을 때 비로소 이뤄진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미국과 유럽이 긴장관계에 있을 때 정치학자 앤드루 모라비치는 “미국은 영국을 통해 유럽을 보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영어권 문화가 유럽 문화의 주류는 아니라는 의미다. 영어와 인터넷이 없다면 세상이 조금은 답답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어와 인터넷을 극복한 세상이 우리의 정신을 더 자유롭게 해주지는 않을지 생각해볼 일이다.

벨기에 브뤼셀의 한 길모퉁이 인터넷 카페. 인터넷과 위성방송이 넘쳐나는 시대, 한국 관련 소식에만 ‘접속’한다면 당신이 어디에 있든 그곳이 바로 한국이다.
인터넷으로 한국의 신문, 방송 등을 쉽게 접하다 보니 실제로 현지 소식에는 잘 관심을 갖지 않는다. 심지어 어느 가족은 벨기에에 사는 몇 개월 동안 현지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주재원들이나 유학생들 중에 현지 소식을 제대로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많은 이들이 인터넷에 올라온 한국 신문이나 영어권 외신을 통해 유럽 소식을 접한다. 이는 한국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동네 구멍가게 인도인 주인은 하루 종일 인도 위성방송을 켜놓는다. 손님도 인도나 방글라데시인들이 대부분이다. 가게 안에만 콕 박혀 있으면 그곳이 바로 인도다. 또 다른 한 가지. 내가 아는 한, 벨기에의 한국 공관원이나 상사 주재원들 중에 현지어인 프랑스어나 플라망어, 독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한국에서 배운 외국어가 영어에 집중됐기 때문일 것이다. 영어권 국가가 아닌데도 영어로 그럭저럭 의사소통을 한다. 자녀들도 ‘국제학교’라고 부르는 미국 또는 영국 학교에 보낸다. 현지 학교에 보내는 이는 극히 드물다. 유학생도 예외는 아니어서 영어 강좌에 등록한 이들이 프랑스어나 플라망어 강좌에 등록한 이들보다 많다. 심지어 어느 고위 외교관은 한 인터뷰에서 “브뤼셀에서 영어를 하기에 불편함이 없다. 프랑스어를 몰라도 의사소통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글쎄, 과연 그럴까? 현지어를 모르면 현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벨기에 신문이나 방송을 보지 않으면 3개 언어권, 7개 정당이 모여 연정을 펼치는 벨기에 정치를 이해하는 것은 어림도 없다. 심지어 “공공운송 노조 파업으로 내일 전철이 다니지 않는다”는 뉴스가 나와도 홀로 전철역에 우두커니 서 있기 일쑤다. 시대의 흐름을 ‘세계화’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인터넷을 비롯한 통신수단의 발달과 영어(미국) 문화의 보편화가 그것을 가능케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인터넷과 영어는 중요한 도구다. 인터넷은 정보 유통의 시간과 공간을 단축시키며, 정보의 공유를 통해 민주주의의 발전을 촉진한다. 현대의 고급 지식은 영어로 작성된 경우가 많으며 영어 습득은 인터넷 등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인다. 그러나 영어를 통해 얻는 정보는 한 번씩 ‘걸러진 현실’인 경우가 많다. 특히 미국에 투영된 정보는 더 그렇다. 얼마 전 미국에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열렸을 때, 한국에서 방송된 9시 뉴스에서 한 기자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