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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조선시대 섹시녀의 기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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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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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씬한 몸매가 이상형으로 뜬 건 일제시대에 연애가 강조되면서부터

규방에선 풍만한 여인을 선호했지만 기녀들에겐 ‘개미허리’ 기대하기도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중 하나는 바로 ‘통념’이 아닌가 싶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지배자들이 갈망해온 것은 그들의 이데올로기가 사회의 통념이 되어 ‘당연하게’ 들리게 되는 것이다. 아쉬운 이야기지만 그런 이념을 통념화하는 데 성공한 사례들은 부지기수다. 지나가는 미국인을 아무나 붙잡고 미국이 민주국가냐고 물어보면 열 명 중 아홉 명이 ‘그렇다’고 말하거나 당연한 이야기를 왜 물어보냐며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을 것이다.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는 ‘상박하후’(위는 박하고 아래는 후한)의 여성을 보여준다. 풍만한 하체는 조선 후기 양반 여성의 자랑이었다.


미국을 민주국가라고 부르는 것은 조선 왕국을 ‘인자한 성왕이 백성을 다스리는 인국(仁國)’으로 부르는 것처럼 지배집단의 명분과 현실이 헷갈린 것인데 이 사실을 아무리 설명해도 다수의 미국인들은 무슨 말인지 모를 가능성이 높다. 지나가는 한국인들에게 국제 경기에서 우리 팀이 이길 때 가슴이 뿌듯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하지”와는 다른 대답을 할 사람이 나타나려면 과연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태극마크를 단 이들이 마크 색깔이 다른 상대방보다 골을 하나 더 넣는다고 1년에 국내에서 생계 곤란과 비관, 빚쟁이 독촉 등으로 자살하는 이의 수가 줄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데도 왠지 가슴 뿌듯하고 행복해지는 것이다. 이 ‘왠지 절로’의 무서운 힘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이해하면 모순에 찬 계급사회의 지속의 비결을 알게 될 것 같다.

유방은 산아능력의 상징이었을 뿐

‘미국은 민주국가다’와 같은 통념들이 세계관을 만드는가 하면 기존의 지배 관계를 은근히 정당화하는 수많은 통념들은 행동 양식을 규정하기도 한다. 우리가 그 통념들을 정치적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가장 일상적인 이야기는 가장 정치적일 때가 많다. 예컨대 “살 빠졌다”는 어느새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예뻐졌다”와 동의어가 됐다. 2001년에 코미디언 이아무개씨가 “운동해서 36kg을 뺐다”는 선언을 했을 때 왜 이렇게 필사적으로 살 빼는 데 사력을 다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뿐이었으며 나머지에게는 ‘인간의 승리’로만 보였을 것이다. 처음에 그가 선전했던 다이어트 방법이나 뒤에 밝혀진 지방흡입 수술까지 대산업을 이루었다. 국내 다이어트 시장의 규모는 약 1조원, 즉 국가 총예산의 1% 가까이 된다. ‘뚱보’를 조롱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물론, 유아를 위한 동화책에서도 긍정적인 주인공은 보통 날씬한 반면 지능이 둔하거나 마음씨가 나쁜 인물과 동물들은 자주 뚱뚱하게 묘사된다. 젊은 남성이 살이 쪄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여성은 어떤가. 남성의 관능적인 시선을 끄는 날씬한 여성이 바로 이상적 여성형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남성들뿐 아니라 다수의 여성에게도 상식이 된 것은 비극이다. 자기 타자화의 함정에 빠진 자가 불평등한 지배 관계의 전복을 꿈꿀 수 있을까?

‘날씬한 여성의 매력’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에 대한 남성적 판타지가 사회 전체를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봉요’(蜂腰·개미허리)를 섹시함의 절대적 조건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키가 큰 편이고 운동·다이어트 등으로 날씬해 보이는 여성의 몸이 이상형이 된 것은 일제시대 이후인데, 그전에는 어떤 것이 ‘아름다운 몸’이었을까? 지금 우리에게 섹시해 보이는 몸매가 과거에도 섹시한 것으로 취급되지는 않았다. 예컨대 구한말에는 여성들의 유방을 아이를 가진 서민층의 어머니들이 자랑하듯 노출하고 다녔으며 가슴은 남성을 흥분시키는 섹시함의 상징이 아닌 산아·육아 능력의 상징이었다. 한국·중국의 고전 한시 중에서 유방의 섹시함을 찬미하는 시가 한 수라도 있는가? 중동에서 연애시의 주된 소재가 여성의 가슴이었지만 동아시아에서는 섹시함을 보는 눈이 달랐다.

일제시대의 매체를 보면 여성의 풍만을 보는 시각은 이중적이었다. 한편으로는 신문마다 “몸이 뚱뚱한 사람, 이렇게 고쳐라”(<중외일보>, 1930년 10월4일)와 같은 다이어트 이야기를 실어 ‘몸 마르는 방법’을 알리고, ‘뚱뚱보 조롱’(<별건곤>, 1933년 11월) 등으로 독자들을 즐겁게(?) 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근대적 신체와 다른, 약간의 자연스러운 풍만을 보이는 신체를 조선 재래의 미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미녀 그림, 한-중-일의 차이

식민지 시대 화가들의 눈에 비친 조선의 여인은 대개는 오늘날 이야기하는 각선미나 날씬한 몸매와는 거리가 멀었다. 예컨대 <별건곤>이라는 잡지에서 ‘화가가 본 조선 여자의 미’라는 글을 연재했던 화가 이상범(1897~1972)은 “조선의 얌전한 처녀”의 이상형으로 “꽃동 저고리와 주름 곱게 접힌 치마”를 입은 풍만한 체형의 여성을 제시했다. 오지호(1905~82)와 같은 인상주의적 화가의 <나부>(1928)나 <아내의 상>(1936)을 봐도 마른 근대적 여체의 미와 다른 여성의 외형에 대한 관점을 보여준다. 특히 ‘동양 전통’이 좀더 강조되기 시작한 1930년대 말기에는 조선 화가들이 여체의 풍만을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예컨대 서달진(1908~47)의 <나부>(1937)를 보면 ‘우리 재래’의 풍만한 여체의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추려 한 것 같은데 오늘날의 미관(美觀)으로 봐서는 그 모델은 가혹한 다이어트를 해야만 할 것이다. 1945년 이후의 남한에서는 날씬함을 거의 절대시하다시피 한 19세기 말 이후의 구미 여성미의 기준이 무소불위의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가 된다.

서달진의 <나부>(1937, 맨 왼쪽)에서는 풍만한 상반신이 인상적이다. 월북 화가 이쾌대의 식민지 시절의 <부녀도>(가운데)나 <부인도>(맨 오른쪽)는 하체가 풍만한 ‘전통 조선의 미’를 크게 강조했다

적당히 풍만한 여체는 전통 시대 기혼녀의 미 기준이었다. 매우 짧은(15~20cm) 저고리와 엉덩이를 한껏 부풀리는 아주 길고 폭 넓은 치마를 입는 것은 18~19세기 조선의 유행이었다. 더군다나 겉치마 밑에 너른바지와 다리속곳 등 7~8겹으로 속옷을 입었기에 하체는 더욱 풍성하게 보였다.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면 말 그대로 ‘위가 박해도 아래가 후한’(상박하후·上薄下厚) 인상을 준다. 재미있는 것은 조선은 후기로 갈수록 풍만한 여체를 더 선호했지만, 동시대의 일본이나 중국은 조금 야윈 체형을 미인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당나라 시대에 절세미인 양귀비(719~756)가 풍성한 몸매를 자랑하고 헤이안시대 귀족들의 사랑 이야기를 소재로 한 일본 최초 장편소설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11세기경)에서 가는 허리 이야기는 안 나오고 ‘보동보동 풍만한 여인’들이 주로 미녀로 묘사되지만, 10세기 이후의 중국이나 13~14세기 이후의 일본에서는 점차 ‘미인’의 키가 커지고 체형이 초췌해진다. 같은 문화권이지만 미의식만큼은 차이가 명확했다.

전통 시대는 여성이 신체 관리에 덜 신경써도 되는 시대였다고 해서 과연 ‘적당히 풍만한 여체의 미’는 여성의 자율적인 미관이었을까?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가정이 성애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연애 이데올로기를 가진 근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시각은 섹시미에 맞춰져 있지만, 규방이 대를 잇기 위한 곳으로 인식되었던 시대에는 산아·육아 능력이 있을 법한 풍만한 여인이 남성의 눈에 긍정적으로 비쳤다. 즉, 여성에게 요구되는 구체적인 외형은 달라도 남성이 자신의 욕구를 여성에게 강요한다는 것은 매한가지다. 그리고 전근대의 남성들도 성적 이용의 대상으로 생각했던 기녀, 유녀들에게는 “버들가지 같은 개미허리” “질끈 묶은 가는 허리”(이옥, 1760~1813: ‘일곱 가지 끊어야 할 일’)를 기대하기도 했다. 중국의 귀족 시인 사령운(385~433)이 ‘소요미골’(小腰微骨·가는 허리와 자그마한 뼈)을 미녀의 특징으로 주목한 뒤에는 동아시아 남성들에게 ‘가는 허리’는 하나의 성적 판타지가 됐다. 일본 유녀를 그린 에도시대 미인도들을 보면 이 부분이 눈에 띈다.

더 자연스럽게 살기 위하여

여성이 남성에게 사회경제적으로 억눌려 있는데다 남성의 이념이나 성적 욕구에 따르는 미의 기준까지도 내면화해 자기 신체를 알아서 뜯어맞춰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현실이다. 언뜻 보면 하찮은 일이지만 남성 본위의 획일적인 미 기준으로부터의 해방도 여성 해방의 일부분이다. 살 빼기는 ‘외모’가 아닌 건강의 문제나 이유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개개인의 주관적 관점이 다를 수 있고 사람마다 제각기 아름답다는 생각이 사회의 ‘통념’이 되어 여성이 남성적 시선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훨씬 더 ‘자연스럽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1. 장징 지음, 이목 옮김, <미녀란 무엇인가>, 뿌리와 이파리, 2004.

2. 이배용 외, <우리나라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 청년사, 1999.

3. 임찬수, <겐지모노가타리>, 살림, 2005.

4. 강명관,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온다>, 푸른역사, 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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