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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와일드월드] 콩 한쪽도 나눠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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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1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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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아시아미래학교에서 “나부터 불우이웃돕기”를 다짐하다

▣ 상하이=우수근 전문위원 woosukeun@hanmail.net

몇 년 전 러시아 모스크바를 다녀온 일이 있다. 거리를 질주하는 고급 승용차 틈바구니에서 오갈 데 없이 서성이는 집시들을 바라보며, 한때 ‘사회주의 종주국’이었던 러시아의 오늘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스파시바! 스파시바!” 낯선 동양인이 대수롭지 않게 건네준 약간의 루블화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지팡이에 늙은 몸을 의지한 외눈박이 집시 노인은 20여 분을 뒤쫓아와 연방 고개를 숙였다.

최고급 승용차가 즐비한 중국 베이징의 한 귀퉁이에서 손님을 기다리다 지친 가난한 자전거 인력거 기사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사진/ AP Photo/ NG HAN GUAN)


인도차이나의 수줍은 은자의 나라 라오스도 서서히 발전 대로에 들어서고 있다. 수도 비엔티안은 속속 들어서는 현대식 건물과 자동차 행렬이 유럽풍의 낡은 건물과 자전거의 물결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비엔티안의 중심가에도 거리에서 연명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띈다. 저녁식사를 하던 중 모자를 공손히 벗어 내미는 이에게 소액 지폐를 넣어주자 갑자기 손등에 입을 맞춘다. 모자 속 1달러짜리 지폐를 꺼내들며 어쩔 줄 몰라하던 그가 부르는 ‘환희의 찬가’는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이어졌다.

명실상부 전세계 최대의 국제도시로 발돋움한 상하이. 유학 시절부터 미국과 중국, 일본 등 25개국을 둘러봤지만, 상하이만큼 화려하고 벅적대는 도시를 본 기억이 없다. 하지만 이름 모를 최고급 승용차가 즐비한 상하이 중심가 한 귀퉁이에 아직도 자전거 인력거(런리처)가 남아 있다. 운동 부족을 느끼며 가능한 한 몸을 더 많이 움직이려고 노력하는 중이지만, 실천 가능한 ‘부의 재분배’ 차원에서 종종 인력거를 이용하곤 한다.

“어구구, 이런 고마울 때가, 복 많이 받도록 빌어드리겠습니다!” 상하이 택시의 기본요금(10위안) 거리도 되도록이면 이들을 이용한 뒤 택시 기본요금을 다 준다. 인력거 아저씨들에겐 한국 돈 1천원 정도의 이득이 돌아가는 셈이다. 몇백만원 하는 최고급 양주를 없어서 못 팔 정도로 흥청이는 상하이지만, 리무진이 즐비한 이곳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는 ‘뜻밖의 1천원’에 감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양극화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심훈의 <상록수>를 연상시키는 빈민가 어린이들을 위한 무료 학교인 캄보디아의 아시아미래학교(www.iloveasiafund.com)에선 1인당 1년 교육비로 한국 돈 약 10만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경제적 형편상 정규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이곳에 다니는 학생들은 월말고사 등에서 성적 우수 장학금(미화 5달러 내외)을 받게 되면, 그 가운데 ‘상당액’을 떼어내 자기들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위해 쓴다. 두 손 모아 공손히 나눌 줄 아는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신선한 감동이 밀려온다.

캄보디아에서 아시아미래학교가 설립될 당시, 한국에서 온 취재진 가운데 “우리 사회에도 아직 소년소녀 가장이 많고 빈부 격차도 심한데 왜 다른 나라까지 도와야 하느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이들이 일부 있었다. 딴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캄보디아나 라오스와 같은 곳에선 아무리 생각이 있고 실천하려 한들, 국가의 경제력이 그들 나라 빈부 격차의 아픔을 해소시킬 만큼 충분하지 않다.

이와는 달리 월드컵 4강에 경제력 세계 11위라는 대한민국의 빈부 격차는,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우리 사회 내에서 스스로 해결해낼 수 있다. 가진 자뿐 아니라 보통의 우리들도 형편에 맞게 주변의 아픔을 함께한다면, 우리 사회의 빈곤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해나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삐딱하게 앉아 남 탓만 하지는 말자. 다른 이들에게 의지하려고도 말자. 빈부 격차 문제를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고 해서, 언제까지 성토만 하고 있을 순 없다. 스스로 먼저 실천하자. 소주 한 잔 값부터 나눠보자. 우리 사회의 빈부 격차, 양극화의 아픔은 바로 이와 같이 콩 한쪽도 진짜로 나누는 내 작은 실천에서 비롯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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