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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가난한 샤오왕의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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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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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부자는 참혹하게 살해되고 젊은이는 자살하는 ‘비정상적 죽음’의 원인은

▣ 베이징=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중국인 보모 샤오왕은 요즘 들어 자주 까닭 모를 분노가 치밀어오른다고 했다. 화병이 나지 않았나 싶다. 그는 지금 사회학자들이 흔히 얘기하는 ‘상대적 박탈감’에 따른 소외감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5년 전 남편과 함께 베이징으로 온 그는 고향 안후이에 두고 온 8살 아들의 ‘미래’를 위해 악착같이 돈을 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요즘 같은 심정이면 콱 죽어버리고 싶다”고 말한다.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과, 자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 ‘다른 세계’의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샤오왕이 본 ‘다른 세계’의 사람들 중에는 1년 소득이 100만위안(약 1억3천만원)이 넘는 사람도 있다. 예전에 일했던 집에선 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여주인의 연봉만 65만 위안(약 8450만원)이었다. 샤오왕은 자신의 한 달 월급 800위안(약 10만4천원)을 한 푼도 안 쓰고 평생 모은다 해도 여주인의 1년 수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며, 자신의 인생이 무가치하게까지 느껴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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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는 백화점에서 비싼 화장품을 사는 여성들을 무작정 들이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장 싼 화장품이 100위안(약 1만3천원)이 넘는 화장품 매장에서 잘 차려입은 젊은 여자 둘이 값비싼 고급 화장품을 아무런 주저 없이 사는 것을 본 순간, 갑자기 서글픔과 분노가 치밀어올라 막연한 적개심을 품었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 팔자는 누가 정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밑도 끝도 없는 신세 한탄을 늘어놨다.

지난 2003년 중국에선 ‘비정상적 죽음’이란 말이 유행어로 떠오르기도 했다. 중국의 대부호들이 줄줄이 피습을 당해 참혹한 모습으로 ‘비정상적’ 죽음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해 1월 산시성 하이신 강철그룹의 회장 리창하이가 집무실에서 총격을 받고 숨졌고, 2월에는 저장성의 부호 저우쭈파오가 집 앞에서 흉기에 여러 차례 찔려 목숨을 잃었다. 같은 해 7월에는 간쑤성의 부동산 재벌 류언첸이 총격을 당해 역시 ‘비정상적 죽음’에 이르렀다. 이 사건들은 중국 부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당시 언론은 연일 “부자들, 과연 안전한가”라는 제목으로 ‘비정상적 죽음’의 배후에 빈부격차가 커짐에 따라 함께 커지고 있는 부자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도사리고 있다고 떠들었다.

지난해 말에는 또 다른 ‘비정상적 죽음’이 화제가 됐다. 15∼34살 중국인들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꽃 같은 나이의 중국 젊은이들이 자살을 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뭘까? 사회환경의 급속한 변화와 그로 인해 개인들이 겪는 사회경제적 위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심한 좌절감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이런 좌절감이 분노를 유발했으며, 그 방향이 외부로 향하면 폭력을 낳는 반면 자기 내부로 향하면 자살이나 무력감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인들이 경험하는 좌절감과 무력감은 대부분 상대적 빈곤감에서 비롯된다. 샤오왕처럼 자신과는 ‘다른 세계’를 경험한 뒤 갖게 되는 상대적 박탈감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일부는 부자들에 대한 이유 없는 증오심에 사로잡혀 ‘복수’를 꿈꾸기도 하고, 그 반대로 생에 대한 일체의 희망을 포기하고 스스로 ‘비정상적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야마다 마사미쓰는 최근 낸 책에서 일본이 지금 ‘희망 격차 사회’로 들어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람과 절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로 나뉜 사회가 바로 희망 격차 사회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으면서 자살이 급증하고 각종 흉악한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상황은 다르지만, 중국도 어떻게 보면 희망 격차 사회로 향하고 있는 듯하다. 한 달 800위안의 월급과 연봉 100만위안의 소득 격차가 존재하고, 그로 인해 “죽어버리고 싶다”든지 비싼 화장품을 구매하는 여성들을 “들이받고 싶다”는 수많은 ‘샤오왕’들이 존재하는 한 중국 사회의 희망 격차는 좀체로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이런 희망 격차 사회에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언제나 ‘비정상적 죽음’에 노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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