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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머릿속에 돌멩이가 굴러다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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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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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뒤 산사태에 2천여 명이 생매장된 필리핀 레이테섬 생존자들의 악몽
아로요의 비상사태 선포에 구호 손길도 뚝… 국제사회가 관심을 가져줄 때

▣ 귄사오곤=나효우 아시아NGO센터 운영위원장 nahyowoo@gmail.com

해마다 아시아에선 크고 작은 재난이 수없이 일어난다. 2004년 12월 인도네시아 반다아체 일대를 휩쓴 지진해일에 이어 지난해 10월엔 파키스탄에서 대지진이 벌어지는 참극이 이어졌다. 그리고 올 2월 필리핀 남부에서 대규모 산사태가 나면서, 기록 경신 경쟁이라도 하듯 수많은 인명 피해를 냈다. 특히 필리핀 산사태는 피해 규모가 컸음에도 사건 발생 직후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이 정국 불안을 이유로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정치 이슈에 눌려 구호의 손길조차 뜸해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코코넛 나무들이 쓰러진 뒤의 비극


라니냐의 영향으로 예년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인 지난 2월 이 일대에선 2주간 그칠 줄 모르고 비가 내렸다. 산자락을 가득 메운 코코넛 나무들은 뿌리가 깊지 않은 탓에 밑 둥지 속살들이 쉽게 드러났다. 2월17일 아침 필리핀 남부 레이테섬 일대에 가벼운 지진이 일면서 순식간에 굉음과 함께 코코넛 나무들이 쓰러졌다. 이어 산꼭대기에서 쓸려내린 흙더미가 산 밑자락 마을을 순식간에 덮쳤다.

최대 피해지역인 귄사오곤은 흙더미가 10m 이상 뒤덮으면서 마을 전체가 거대한 공동묘지로 변해버렸다. (사진/AFP/ JOEL NITO)

이 사고로 귄사오곤 마을을 비롯해 마을 7곳이 흙더미에 깔렸고, 마을 주민 2천여 명은 순식간에 생매장됐다. 필리핀 정부와 해외에서 급히 구조대를 보냈지만, 마을 전체를 10여m 이상 뒤덮은 흙더미와 계속 내리는 비 때문에 구조작업을 포기했다. 마을 전체는 거대한 공동묘지가 돼버렸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는 4월의 필리핀, 마닐라에서 항공기로 두 시간을 날아가 도착한 레이테섬 귄사오곤 마을은 형체도 없이 사라진 채 마른 흙먼지만 불고 있었다. 지난 4월2일 레이테섬 인근 세부시에 도착해 다시 2시간여 배를 타고 레이테섬 올목 항구에 도착했다. 항구에선 현장을 안내해줄 여성단체 회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을 이고 다시 차로 5시간여를 달려 귄사오곤 들머리에 섰다.

사고 직후 주검을 안치했던 마을회관을 먼저 찾았다. 현지 관계자들은 2천여 명의 실종자 가운데 97명의 주검만 발견했을 뿐, 나머지 주민들은 여전히 진흙더미에 묻혀 있다고 전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300여 가구 500여 명의 주민들은 인근 학교에 임시 수용돼 있었다. 가구 수에 비해 주민 수가 적은 것은 이재민들이 대부분 이번 산사태로 가족 일부를 잃었기 때문이다. 최대 피해 지역인 귄사오곤 마을뿐 아니라 세인트 베르나드군에 딸린 16개 마을 3850세대(약 1만8862명)가 이번 산사태로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었다.

산사태가 날 당시 남자들은 동네 밖에서 밭일을 하거나 읍내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탓에 피해자들 대부분은 어린이와 여성이었다. 루시(23·여)는 사고가 나던 때 두 아이와 함께 집을 지키고 있었다. 하늘에 구멍이 난 듯 쏟아지는 빗줄기는 벌써 여러 날째 지칠 줄 몰랐다. “갑자기 ‘쿠쿵’ 하는 소리와 함께 집이 약간 흔들렸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밭에서 일하던 남편이 황급히 집으로 오더니 ‘마을 밖으로 도망치라’고 말하더군요. 남편은 수업 중인 맏아들을 찾는다며 학교로 간다고 했고요.” 갓난아이를 안고 5살 된 아이의 손을 잡고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을 들머리 부근에서 진흙더미가 이들을 삼켰다. 숨구멍이 나 있는 모든 곳, 귓구멍까지 돌멩이와 진흙덩어리가 후비고 들어왔다.

12시간을 버티다 끝내 숨진 여동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이 대신 돌덩이를 안고 있었다. 5살 난 아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홀로 살아남은 어린 엄마의 마음엔 구멍이 뚫려 있었다. 맏아들을 데리러 간다며 학교를 찾았던 남편도 아이도 끝내 다시 보지 못했다. 그의 온 가족이 진흙더미 저 아래에 묻혀 있는 것이다. 그는 아직도 작은 돌멩이들이 머릿속에서 굴러다니는 것 같다며, 말을 하는 내내 머리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롤레이 피아(12·남)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산사태가 나던 날 그는 이웃 주민들의 도움으로 3살 어린 여동생을 진흙더미에서 구해냈다. 부모와 다른 형제들 모두 흙더미에서 끝내 빠져나오지 못했다. 병원으로 옮겨진 피아의 여동생은 코와 폐에 온갖 이물질이 가득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구조된 뒤 12시간여 동안 가쁜 숨을 쉬며 버티던 피아의 여동생은 혼자 살아남은 어린 오빠의 손을 붙잡고 숨을 거뒀다. 홀로 남은 것은 크리스천(11·남)도 마찬가지다. 산이 무너지던 날, 그는 아버지가 옆동네로 심부름을 보낸 탓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천행으로 목숨을 부지했음에도 그의 얼굴에서 웃음을 찾을 순 없었다. 또래 친구 대부분과 가족 모두를 잃었기 때문이다.

3월31일 필리핀 대부분의 학교에선 졸업식이 열렸다. 2천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귄사오곤에서도 졸업식이 치러졌다. 수업 중 산사태가 나면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목숨을 잃었고, 천행으로 살아남은 72명의 아이 가운데 10여 명이 이날 졸업장을 받았다. 하지만 현지 학교 관계자는 “졸업식은 열렸지만, 새 학기가 시작되는 6월에 입학할 아이들은 없다”고 전했다. 극적으로 살아남은 아이들도 대부분 부모형제를 잃은 상황이어서, 학교를 계속 다니고 싶어도 당장 살길이 막막한 상태다. 극단의 상황을 견뎌낸 아이들을 상대로 필리핀의 청소년 단체 ‘희망’ 활동가들이 상담 치료에 나섰지만, 전문 인력이 없어 효과는 미미한 상태다.

귄사오곤 마을 주민 앤서니 엔조(23)가 극적으로 구조된 한 살배기 아들에게 입을 맞추고 있다.(사진/ AFP/ JOEL NITO)

사건 발생 직후부터 현지에서 급식 프로그램을 운영해온 필리핀 여성단체 ‘진보하는 여성’ 관계자는 “이제부터는 먹고살 수 있도록 생계수단 지원이 필요하다”며 “지금이라도 읍내에 나가 쌀떡이라도 팔아 생계를 꾸려보고 싶다는 이들이 많지만 종자돈이 없어 애태우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 지원사업을 벌이는 시민단체 ‘행동하는 여성’ 활동가 알레리는 “필리핀에도 한류 열풍이 불고 있는데, 이렇게 어려울 때 한류 스타들이 관심을 갖고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희망의 웃음꽃은 언제 다시 필까

이미 ‘아시아NGO센터’와 ‘여성연합’을 비롯해 필리핀 여성이주노동자단체 등이 한국에서 성금을 모아 현지에 전달했다. 하지만 새로운 보금자리가 만들어지기까지 두 달 이상을 찌는 듯한 더위에서 버텨야 하는 이들에겐 외부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필리핀에선 지난해에만 440건의 자연재해가 나 모두 1040만 명이 피해를 입었다. 그럼에도 매년 전체 예산의 38%를 외채 탕감에 쏟아붓고 있는 필리핀 정부는 재난구제 기금으로 예산의 0.1%를 할당하는 데 그치고 있다. 악귀처럼 갑자기 덮친 흙더미에 부모와 형제를 잃은 72명 아이의 얼굴에 언제쯤 꿈과 희망의 웃음꽃이 다시 피어날 수 있을까? (지원 문의: 아시아NGO센터, 02-734-3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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