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되면 필요한 성냥과 초, 모기 물린데 바르는 약, 추운 밤을 달래줄 침낭… 정신적인 준비물이 하나 더 있으니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리는 법을 배울 것
▣ 김정미 여행전문가·지호,지민 엄마 babingga@hotmail.com
이곳에 정착한 지도 거의 6달이 되어간다. 이곳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예쁜 옷, 친구, 그마저도 아니라면 돈일까? ‘당신이 무인도에 갈 때 가져가는 세 가지’와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이곳에서 무엇을 꼽을까?
전기 나가면 찾아오는 낭만
첫 번째로 성냥과 초다. 며칠에 한두 번씩 꼭 나가는 전기 때문이다. 특히 건기를 보내는 요즘은 전력이 모자라서 잠깐밖에는 전력 공급이 되지 않는다. 자체 발전기가 없다면 피할 수 없는 이곳 일상의 한 부분이다. 발전기가 있어도 소음이 무척 심해 신경에 거슬린다. 우기에는 사정이 좋아서 그리 오래 전기가 나가지는 않는데, 저녁 시간에는 30분에서 1시간 정도 전기 공급이 끊긴다.
이제는 전기가 나가면 당황하지 않고 ‘곧 들어오겠지’ 하면서 사방에 포진시켜놓은 성냥을 그어 촛불을 켠다. 식탁에 3개쯤 불을 밝히고 따뜻한 진짜 불빛 아래 식사를 한다. 이젠 불편함이 아니라 낭만을 느끼게 됐고 전원 생활처럼 즐기는 여유도 생겼다. 특히 아이들은 정전이 되면 즐거워한다. 플래시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놀이마냥 즐거워하며 온 방과 마당을 비추며 뛰어다닌다. 한국의 개똥벌레가 있다면 더욱 멋지겠지만 대신 이곳은 당장이라도 쏟아질 듯한 하늘을 수놓은 까만 별과 달이 마당을 비춘다. 그리고 숨바꼭질하듯 호롱불을 들고 여기저기 물건을 찾는 정겨움이 있다.
두 번째는 모기 물린 다음 바르는 가려움 방지약이다. 한국을 떠나기 전 열대지방 최대의 공포 말라리아가 무서워 모기에 물리지 않으려고 별의별 모기 물림 방지약을 가져왔건만, 절대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받아들이게 됐다. 그리고 말라리아에 관해 잘 알게 되니 공포도 없어졌다. 내 주위에 말라리아 환자가 없다면 내가 걸릴 확률은 무척이나 낮아진다. 걸린 사람을 문 모기가 다른 사람을 물면 환자의 피가 옮겨져 그 사람 또한 말라리아에 걸리고 말기 때문이다. 밭이 있고 소나 돼지를 키우는 원주민들 집은 모기가 많으니 말라리아에 잘 걸린다. 말라리아에 걸리면 두통, 발열, 구토, 설사 등 독특한 증상이 있어서 다른 병과 구분이 쉽다. 증상이 의심되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병원으로 가서 손가락을 쿡 찔러 피 한 방울만 내어주고 한두 시간 기다리면 결과를 알 수 있다. 의료시설이 빈약한 이곳에서 최첨단이며 신속함을 자랑하는 것이 바로 말라리아 진단이다. 초기에 감기 같은 증세가 시작된 지 하루나 이틀 만에 진단되면 힘들이지 않고 치료가 가능한데, 이 시기를 넘기고 병원에 가면 자기 몸의 10% 정도 수분이 빠지며 쥐어짜는 듯한 아픈 고통을 겪으면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나도 약간의 설사와 복통 증세가 있어 병원에 갔더니 체할 때 따는 것처럼 피 한 방울을 가져가곤 한 시간 뒤 결과를 알려주었다. 수년 전 우리나라의 연예인이 이 병으로 죽었지만 그건 감기인 줄 알고 치료 시기를 놓친 것일 뿐, 이곳에서 말라리아는 치료가 잘되는 일반적인 병이다. 어떠한 말라리아 예방약도 말라리아를 완벽하게 예방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이 약에도 부작용이 있으니 말라리아 위험이 적을 때에는 가급적 약 복용을 피하라고 말하고 싶다. 단지 밤에는 모기장을 치고 자야 한다.
마지막 준비물은 이곳이 아프리카여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 바로 침낭이다. 1400m에 위치한 고원도시인 아루샤는 겨울이 춥다. 내가 도착한 7월, 이곳은 남반구여서 겨울이었다. 누가 이곳이 그리 추울 것이라 상상이나 했을까? 한밤중의 추위는 뼈 속을 스며 에고 이는 부딪혀 딱딱 소리를 저절로 냈다. 얼굴이 시리고 추워서 잠을 못 자 어깨를 움츠리고 한 달을 다녔다. 더욱더 춥게 느껴지는 이유는 어느 곳도 난방이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공해가 없어서인지 청명한 바람은 쨍하게 와 닿아 싸늘하다. 어릴 적 화장실이나 씻는 곳이 바깥에 위치한 탓에, 그 시리도록 차가운 물에 손 비비며 세수하던 때를 절로 떠올려준다. 다행히도 겨울은 길지 않고 7~8월 정도만 춥고 곧 따뜻해진다.
음식 주문하면 한 시간은 기다려야
중요한 정신적인 준비물이 하나 더 있다. 여기선 시간을 두 배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 시간이면 되겠지’ 하지만 절대 시간 안에 끝나는 적은 없다. 모든 것이 수동으로 진행되고 별도의 영수증 처리는 일일이 손으로 적는 수작업을 한다. 빠른 시간에 익숙해진 우리에겐 낯선 광경인데 가게에 물건을 사러가도 계산하는 데 급하지 않다. 은행에 가면 돈을 입·출금하는 데 하루를 소비한다. 물건을 주문해놓고도 항상 ‘케쇼’(내일이란 뜻) 하며 기다려야 한다. 아이들과 음식을 먹으려 주문하고 기다리면 안 나오는 것이 늘 한 시간이 넘는다. 큰아이가 말한다. “엄마, 여기는 음식이 먹고 싶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음식이 나와요.”
세상이 변해가는데 변하지 않는 이곳이 불편한 것인지, 편리한 것에 익숙해져버린 도시인의 배부른 투정인지, 문명인의 시각에서 내 것이 옳다고 느끼고 이들에게 잘난 척을 하고 싶은 나의 내면을 들키지 않으려고 무진 애도 써본다. 전기다리미를 쓰지 않고 숯을 달궈 인두다리미에 넣고 쓱쓱 다리는 우리의 지나간 세월이 남아 있는 이곳. 필요한 생활용품을 뭐든지 만들어내는 거리의 재봉틀. 텔레비전의 옛 드라마나 박물관에서 보는 것들이 아직까지 쓰이는 이곳은 조금은 불편하지만 공해도 없고 정겨운 생활이 남아 있어서 좋다.
첫 번째로 성냥과 초다. 며칠에 한두 번씩 꼭 나가는 전기 때문이다. 특히 건기를 보내는 요즘은 전력이 모자라서 잠깐밖에는 전력 공급이 되지 않는다. 자체 발전기가 없다면 피할 수 없는 이곳 일상의 한 부분이다. 발전기가 있어도 소음이 무척 심해 신경에 거슬린다. 우기에는 사정이 좋아서 그리 오래 전기가 나가지는 않는데, 저녁 시간에는 30분에서 1시간 정도 전기 공급이 끊긴다.

수레에 물통을 싣고 배달한 뒤 한 통씩 수거해가는 물장수. 아루샤는 우리 박물관에서 보는 것들이 아직까지 쓰이는 곳이다.

현지인이 사는 주택은 대부분 이런 흙집이다. 건기엔 잠깐밖에는 전력 공급이 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