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굶주림에 지친 난민들의 끝없는 유랑… 서방세계도 지원금 줄이고 빗장 걸어 잠궈
아프리카의 콩고에서부터 아시아의 동티모르까지 전쟁을 피해 살던 집을 떠나 있는 난민은 7월 말 현재 전세계적으로 줄잡아 2200만명. 그 가운데 800만명이 유럽에, 600만명이 아프리카에 몰려 있다. 1980년에 600만명, 1990년에 1500만명에 머물던 난민은 줄기는커녕 늘어만 가고 있다. 끊이지 않는 북한 난민 소식과 더불어 지금 우리는 난민위기의 시대를 사는 것일까.
지구촌 난민 가운데는 1948년 이래 50년 넘게 난민촌을 떠도는 비운의 사람들도 있다. 지난 7월25일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중재자로 나선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와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지도자 사이의 캠프 데이비드 중동평화회담이 15일 동안의 신경전 끝에 결렬되었다는 소식에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쉰 40만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 40만명이란 숫자는 국제연합난민고등판무관(UNHCR) 사무소쪽의 집계지만, 팔레스타인 난민의 정확한 통계는 재는 잣대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난민 숫자가 300만명을 넘는다고 주장한다. 가자 지구와 웨스트뱅크, 그리고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에 있는 난민수용소의 사람들만 합쳐도 얼추 100만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올해는 UNHCR 사무소가 문을 연 지 꼭 50년째 되는 해다. 바람 잘 날 없는 지구촌 곳곳의 분쟁지역에서 UNHCR 요원들은 난민들의 의식주 문제를 비롯해 생존의 벼랑에 선 이들에게 한줄기 생명의 빛처럼 일해왔다. 문제는 90년대 들어 이들의 손길이 더욱 바빠졌다는 것이다. 80년대 말 소련과 동구권이 무너진 뒤 이른바 탈냉전시대에 들어서자, 지난 냉전시대 동안에 쌓여왔던 내부적 갈등이 곳곳에서 봇물처럼 터져나온 탓이다. 세계의 화약고라 불리는 발칸반도, 아프리카 대륙은 말 그대로 90년대를 전쟁으로 지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런 국지적인 갈등 과정에서 지구촌은 넘쳐나는 난민들로 몸살을 앓아야 했다. 최근 1∼2년 사이에 벌어진 난민위기상황을 살펴보면, 지구촌에 얼마나 많은 난민들이 고난의 나날들을 보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인구 90%를 차지하는 200만 알바니아인들이 빼앗긴 자치권을 돌려달라고 싸우다 오히려 세르비아인들로부터 인종청소를 당했던 코소보 전쟁은 80만명이 넘는 국제난민과 60만명에 이르는 코소보 지역 내 난민을 낳았다. 99년 9월 인도네시아로부터의 독립을 둘러싼 투표 직후 급격히 악화된 동티모르 위기는 전체인구 60만명 가운데 4분의 3을 난민으로 만들었다. 99년 10월 러시아군이 분리독립을 원하는 러시아 남부 체첸인 15만5천명을 강제 이주시킨 것이나, 콜롬비아 내전으로 150만명이 강제 이주된 사실은 전쟁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을 비참하게 전락시키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보기다. 아프리카의 상황은 특히 처참하다. 수단에는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전쟁 때문에 피난온 39만명의 에리트레아 난민들이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수단 자체도 오랜 내전과 가뭄, 그리고 기근으로 만신창이가 된 곳이다. 1983년 내전이 일어난 이래 현재 37만5천명의 수단 난민들이 이웃나라 난민수용소에서 지내는 형편이다. 한때 나라이름이 자이레였던 콩고민주공화국도 땅 넓이에 걸맞게 대량 난민을 낳아온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분쟁지역 가운데 하나다. 이웃나라들이 너도나도 콩고 내전에 개입한 가운데, 수십만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고, 수만명이 피살된 것으로 알려질 뿐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구호의 손길 못 미치는 '지역 내 난민'
이런 만성적인 분쟁지역 콩고에도 이웃나라에서 많은 난민들이 와 있다. 그 지역의 앙숙인 후투족과 투치족 사이에 벌어진 피가 피를 부르는 처절한 싸움을 피해서다. 이웃 르완다에서 6만명이, 부룬디에서 2만명이 콩고 동부 밀림지역에서 극한상황에 맞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이 아프리카 내륙지역은 국제적인 난민구호의 손길조차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다. 이 와중에도 르완다와 우간다는 각기 자국 군대를 콩고에 보내, 로렌트 카빌라 정권을 뒤엎으려는 반군을 도와 콩고정부군에 맞서왔다. 한때 반군 출신으로 콩고의 오랜 독재자 모부투 정권을 뒤엎었던 카빌라는 앙골라, 짐바브웨, 나미비아 등으로 구성된 아프리카 다국적군의 도움으로 겨우 정권을 유지해 가는 형편이다.
문제는 상당수의 난민들이 국제적인 구호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에서, 말 그대로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는 점이다. 난민 관련단체들에 따르면, 전세계에는 750만명에 이르는 지역 내 난민들이 정부군이나 반란군의 총칼 앞에 살던 집을 떠났지만, 여전히 자국 내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전란을 피해 국경을 넘지 못한 채 분쟁지역 안에 갇혀 있는 난민들은 국제구호기관으로부터 엄격한 의미에서 난민 대접을 못 받고 있는 상황이다.
난민구호사업을 관장하는 UNHCR를 비롯한 국제구호기관들이나 관련 비정부기구(NGOs) 단체들에서는 국경을 넘지 못한 난민들을 ‘지역 내 난민’(Internally Displaced People, 약칭 IDPs)이라 부른다. 문제는 이들 지역 내 난민들만을 위한 어떠한 별도의 국제기구도 조직돼 있지 않고, UNHCR에도 이들을 위한 별도의 예산항목이 없다. 아프리카 앙골라의 경우 1998년 또다른 평화협정이 깨진 이래 150만명이 살던 집을 떠난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앙골라 인구의 15%에 이르는 수치다. 이 가운데 37만명은 국경을 넘어 ‘난민’으로 국제적인 도움을 받고 있지만, 100만명이 넘는 ‘지역 내 난민’은 구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UNHCR쪽은 최근 앙골라 3개 지역 내 난민 30만명을 돕기 위한 840만달러 모금에 나섰다. 그들을 위해 책정해놓은 예산이 없기 때문이다.
비맞고 자며 강간도 당해
아프리카 난민수용소의 상황은 처참함 그 자체다. 필자가 지난 4월 아프리카 내전지역인 시에라리온의 한 난민수용소를 찾았을 때, 그곳은 넘치는 난민들로 초과밀 상태였다. 12명 식구가 겨우 2평 남짓한 움막 같은 공간을 배당받아, 절반은 움막 바깥 맨땅에서 잠을 자는 형편이었다. 그때는 우기가 시작되기 전이라,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에 물리지만 않는다면 바깥마당에서 잠을 자도 됐다. 그러나 5월부터 11월까지 이어지는 우기엔 비를 맞으며 잠을 잘 도리밖에 없다는 게 그곳 난민들의 푸념이었다.
난민수용소는 힘센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는 ‘밀림의 법칙’이 그대로 관철되는 곳이다. 수용소 안에서의 강간 등 성범죄는 일상적이다. UNHCR 조사에 따르면, 파키스탄 탄자니아 케냐 기네아 등의 난민수용소에서 부녀자들에 대한 성폭력은 심각한 수준이다.
국제법에서 규정해온 좁은 의미의 난민은 ‘종족, 종교, 국적, 조직, 또는 정치적 견해로 인한 박해 때문에 나라 바깥으로 피신해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난민의 범주가 더 넓어졌다. 이웃나라와의 전쟁이나 내란 등 무력충돌, 기근, 그리고 재난을 피해 그동안 살던 마을을 떠났지만 나라 안에 그대로 머무는 사람들도 난민의 범주에 들어간다. 따라서 굳이 국경을 넘지 않더라도 생존의 위협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거처를 옮긴 이들도 광범한 의미에서 난민으로 불린다.
UN도 최근에 와서야 지역 내 난민 구호문제의 심각성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해, 한때 UNHCR과는 별도의 기구를 출범시키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지역 내 난민 문제는 일반적인 난민구호사업의 한 부분으로 처리가 가능하며 따라서 별도의 기구 설립은 불필요하다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진 상태다. 많은 경우 신변안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고립지역의 수많은 난민들을 돕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특히 지역 내 난민의 발생원인이 정부군 또는 반란군 자체에 있을 경우 접근 자체가 봉쇄되기 일쑤다.
뒷북치는 언론, 대책없는 잔학행위
미 워싱턴에 본부를 둔 부르킹스연구소와 미국난민위원회가 지난 1998년 말에 함께 발표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역 내 난민문제는 주요한 인권문제이며 전세계가 당면한 정치적인 주제”라는 시각 아래 미 정부로 하여금 지역 내 난민에 대한 효과적이고 일반적인 정책개발을 미 정부에 촉구한 바 있다. “국경선을 넘은 난민들과 바로 몇km밖에 안 떨어진 지역 내 난민들을 차별대우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이다. 유엔주재 미국대사 리처드 홀부르크도 99년 12월 아프리카 분쟁지역들을 돌아본 뒤 지역 내 난민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관심을 촉구한 바 있다.
통신수단의 발전에 힘입어 대중매체, 특히 과 같은 거대한 언론매체들이 나타남에 따라 지금 우리는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내 집 안방처럼 들여다보는 세상에 살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이 유고의 수도 벨그라드를 야간 공중폭격하는 모습이나,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리트리아 전쟁이 그대로 생중계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나 같은 언론 공룡이 지구촌의 음지에서 벌어지는 잔혹행위나 난민들의 고난을 샅샅이 보도하지는 못하는 형편이다.
특히 아프리카 내전의 경우가 그러하다. 안전문제와 지리적인 제한 탓이다. 전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고 평가되는 코소보 전쟁의 경우조차도 세르비아인들의 인종청소 현장이 생중계된 적은 없었다. 사후 보도일 뿐이었다.
난민구호 헌금도 '짠 소금'
한편으로, 국제적인 인권감시단체인 HRW(Human Rights Watch)가 한 보고서에서 지적한 것처럼, 언론매체들의 보도기능 확대가 곧 난민들의 고난을 더는 쪽으로 작용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많은 정부들이 난민들의 인권을 짓밟아왔고, 피난처를 찾는 난민들에게 문호를 열 것을 거부해왔다. 적지 않은 난민들은 국경선을 넘어간 다음 그곳 주민들로부터 인종적 혐오에 시달려야 했다.
난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국제적인 합의사항이다. 1951년의 ‘난민 지위에 관한 UN 협약’과 이를 보완한 1967년의 프로토콜이 문서로써 이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선언적인 의미를 지닐 뿐, 강제규정은 아니다. 전세계 난민들이 몰리는 서방세계, 특히 서유럽의 경우로 갈수록 문호를 닫아가는 추세다. 터키와 이라크의 박해로부터 피신해온 쿠르드족이나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의 유럽 관문격인 이탈리아는 이들 불청객들의 처리문제로 신경과민상태다. 그동안 난민들에 비교적 너그럽던 독일마저도 이즈음 들어 빗장을 걸어 잠그려는 태세다.
UNHCR의 쓰임새는 오로지 서방선진국들과 일본의 헌금을 바탕으로 짜여진다. 난민 입국 허용을 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와 맞물려, 선진국들의 난민구호를 위한 헌금도 갈수록 인색해지고 있다. 1994∼98년 기준으로 해마다 헌금의 25%쯤을 부담해온 미국이나 10%선을 웃돌던 일본도 헌금액수를 줄여가는 추세다. 이런 까닭에 UNHCR의 쓰임새는 93년 13억달러를 정점으로 갈수록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다. 올해 UNHCR은 9억6천500만달러의 헌금을 기대하고 있지만, 제대로 걷힐지는 두고볼 일이다.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kimsphoto@yahoo.com
2000년 1월1일 0시. 이른바 새천년(뉴밀레니엄)을 맞아 뉴욕 맨해튼 42번가 타임 스퀘어 일대에 100만명에 가까운 인파가 환상적인 레이저 쇼를 즐기며 환호성을 지르던 바로 그 시각, 지구촌 곳곳의 난민들은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의 하루하루는 굶주림과 질병, 그리고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날들이다. 2200만, ‘난민위기 시대’

(사진/코소보 국경마을 쿠커스의 난민수용소. 99년 6월 세르비아 세력이 나토 공습에 굴복, 코소보에서 물러날 때까지 이곳에는 7만5천명의 난민이 몰려들었다)
지구촌 난민 가운데는 1948년 이래 50년 넘게 난민촌을 떠도는 비운의 사람들도 있다. 지난 7월25일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중재자로 나선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와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지도자 사이의 캠프 데이비드 중동평화회담이 15일 동안의 신경전 끝에 결렬되었다는 소식에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쉰 40만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 40만명이란 숫자는 국제연합난민고등판무관(UNHCR) 사무소쪽의 집계지만, 팔레스타인 난민의 정확한 통계는 재는 잣대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난민 숫자가 300만명을 넘는다고 주장한다. 가자 지구와 웨스트뱅크, 그리고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에 있는 난민수용소의 사람들만 합쳐도 얼추 100만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올해는 UNHCR 사무소가 문을 연 지 꼭 50년째 되는 해다. 바람 잘 날 없는 지구촌 곳곳의 분쟁지역에서 UNHCR 요원들은 난민들의 의식주 문제를 비롯해 생존의 벼랑에 선 이들에게 한줄기 생명의 빛처럼 일해왔다. 문제는 90년대 들어 이들의 손길이 더욱 바빠졌다는 것이다. 80년대 말 소련과 동구권이 무너진 뒤 이른바 탈냉전시대에 들어서자, 지난 냉전시대 동안에 쌓여왔던 내부적 갈등이 곳곳에서 봇물처럼 터져나온 탓이다. 세계의 화약고라 불리는 발칸반도, 아프리카 대륙은 말 그대로 90년대를 전쟁으로 지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런 국지적인 갈등 과정에서 지구촌은 넘쳐나는 난민들로 몸살을 앓아야 했다. 최근 1∼2년 사이에 벌어진 난민위기상황을 살펴보면, 지구촌에 얼마나 많은 난민들이 고난의 나날들을 보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인구 90%를 차지하는 200만 알바니아인들이 빼앗긴 자치권을 돌려달라고 싸우다 오히려 세르비아인들로부터 인종청소를 당했던 코소보 전쟁은 80만명이 넘는 국제난민과 60만명에 이르는 코소보 지역 내 난민을 낳았다. 99년 9월 인도네시아로부터의 독립을 둘러싼 투표 직후 급격히 악화된 동티모르 위기는 전체인구 60만명 가운데 4분의 3을 난민으로 만들었다. 99년 10월 러시아군이 분리독립을 원하는 러시아 남부 체첸인 15만5천명을 강제 이주시킨 것이나, 콜롬비아 내전으로 150만명이 강제 이주된 사실은 전쟁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을 비참하게 전락시키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보기다. 아프리카의 상황은 특히 처참하다. 수단에는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전쟁 때문에 피난온 39만명의 에리트레아 난민들이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수단 자체도 오랜 내전과 가뭄, 그리고 기근으로 만신창이가 된 곳이다. 1983년 내전이 일어난 이래 현재 37만5천명의 수단 난민들이 이웃나라 난민수용소에서 지내는 형편이다. 한때 나라이름이 자이레였던 콩고민주공화국도 땅 넓이에 걸맞게 대량 난민을 낳아온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분쟁지역 가운데 하나다. 이웃나라들이 너도나도 콩고 내전에 개입한 가운데, 수십만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고, 수만명이 피살된 것으로 알려질 뿐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구호의 손길 못 미치는 '지역 내 난민'

(사진/코소보로 돌아가는 난민들. 그 숫자는 80만명에 이른다)

(사진/아프리카 난민수용소의 주거환경은 열악하기 그지 없다. 제한된 공간에 워낙 많은 난민들이 몰려드는 탓이다. 사진은 시에라리온 프리타운의 한 난민수용소)

(사진/알바니아 쿠커스 난민수용소의 코소보 난민들에게 배급될 빵들)

(사진/시에라리온 내전 과정에서 반군들에게 팔목을 잘린 사람들이 모여 사는 부상자수용소. 이들도 전란을 피해 정든 집을 떠난 난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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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유엔난민고등판무관 사다코 오가타 전세계 분쟁지역의 난민들을 돕는 유엔기구인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 책임자인 사다코 오가타는 일본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유엔기구의 최고위직에 오른 인물이다. 지난 10년 가까이 판무관으로 일해온 사다코는 올해 말로 퇴임할 예정이다. 다음은 7월22일 미국 공영TV방송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