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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잔지바르, 아름다운 것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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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3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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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을 통해 여러문화가 뒤섞인 섬, 노예로 팔려갈 흑인들이 대기했던 곳… 옥빛 바다와 수많은 생명들에 탄성 지르는 아이를 보며 새만금을 생각하다

▣ 구혜경 방송작가·세원, 윤재 엄마 hk21bh@hanmail.net

탄자니아는 탕가니카공화국과 잔지바르공화국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나라다. 1964년 두 나라가 합병해 탄자니아가 태어났다. 탄자니아 국기를 살펴보면 검은 띠 사선은 자원과 사람을 의미하고 상단의 녹색은 초원을 하단의 청색이 바다를 상징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초원과 바다가 재산인 나라가 바로 탄자니아다.

지천에 널린 성게, 어른 머리만한 불가사리


잔지바르는 탄자니아 동쪽에 위치한 섬이다. 우리가 사는 아루샤에서 경비행기로 약 2시간이면 닿는다. 이곳은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독특함을 지녔다. 높고 하얀 돌집과 모자이크 토대들, 길고 검은 덮개를 쓴 여인들과 정향(약용으로 쓰이는 정향나무의 꽃봉오리)으로 만든 비누 등 갖가지 물건들…. 탄자니아 내륙에서는 볼 수 없는 색다른 풍경들이 이어진다.

잔지바르의 옥빛 바다는 인도양에 면하고 있다. 100m를 나가도 바닷물이 깊지 않다.

이곳의 흙집은 내륙의 집들과 뭔가 다르다. 탄자니아에서도 ‘잔지바르 스타일’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독특함을 지닌 곳이다. 그래서 나 같은 여행객에게 잔지바르는 수수께끼 같은 곳이다. 잔지바르가 이렇게 독특한 스타일을 가진 이유는 과거의 역사에서 비롯된다. 아주 오래전부터 페르시아, 오만, 포르투갈, 영국의 무역상은 물론 해적들이 나타났던 곳이 바로 잔지바르이다. 많은 나라와의 무역을 통해 문물이 들어오고 사람이 오가면서 여러 문화가 섞여 잔지바르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한 듯하다. 아프리카의 한 섬이라고 하기보다는 인도나 아랍의 어느 나라에 왔다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잔지바르 중심 주택가의 저택들은 안뜰과 2, 3층 구조를 가진 집들로 인도와 유럽 스타일이 가미된 아랍식 구조다. 또 문에 박는 금속은 인도에서 코끼리를 쫓기 위해 사용했던 것이라고 한다. 지금도 잔지바르 중심부의 많은 상점들은 여전히 아랍 상인들 소유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슬림이다.

잔지바르는 아름답고도 슬픈 섬이다. 노예무역이 한창이던 때, 동아프리카 각지에서 백인들에게 잡혀온 흑인들은 이 섬에 갇혀 노예로 팔려갈 날을 기다려야 했다. 15∼19세기에 행해진 노예무역으로 팔려간 흑인은 1천만 명에 달한다. 불과 200년 전의 일이다. 가로 50m, 세로 30m가 채 안 되는 공간에 갇힌 수많은 노예들은 아름다운 인도양 바다를 바라보며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하고 어디로 팔려갈지 모를 자신의 운명을 한탄했을 것이다. 지금은 노예무역에 반대하며 성당이 들어서 있지만, 이런 아름다운 섬에 그토록 쓰린 역사가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아름다운 섬에는 늘 슬픈 이야기와 역사가 있게 마련인지.

아이들을 데리고 1주일을 잔지바르에서 머물렀다. 아루샤보다 더웠지만 아이들은 해변의 모래와 바다를 좋아했다. 한국에서 접했던 태평양 바다가 깊고 푸르고 차갑다면, 잔지바르의 인도양 바다는 옥빛의 투명함을 가진 따뜻한 바다였다. 게다가 100m쯤 걸어 들어가도 물 깊이가 어른 허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아마 대륙붕이 완만하거나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하다. 배를 타고 한참을 나가도 어느 지점에선 바닷물이 발목 정도까지밖에 오지 않는 곳이 있다. 깊은 바다에 익숙한 우리로선 신기할 뿐이다. 모래는 마치 흰 석고를 뭉쳐놓거나 밀가루를 뿌려놓은 듯 희다. 성게를 먹지 않는 듯, 바다에는 지천에 성게가 널려 있다. 아이들 머리통만 한 불가사리는 단단하고 붉은 빛이 너무도 아름다워 간직하고 싶어진다. 게다가 배를 타고 나가면 돌고래도 볼 수 있다.

탄자니아에게 배울 순 없을까

오직 파도와 모래뿐인 바다에서 아이들은 너무도 즐겁다. 파도가 오면 파도를 뛰어넘고, 모래성을 쌓고 부순다. 아이들은 모래만 가지고 놀아도 온종일 지치지 않는다. 더 놀고 싶다고 한다. 해가 저물어 숙소로 들어가려 하면 내일 또 놀 수 있냐고 다짐을 받는다. 심심하다고 칭얼대지도, 장난감이 필요하다고 조르지도 않는다. 독일의 한 유치원에서 장난감 없는 날을 만들고, 숲 속으로 나들이를 가는 날을 만든 이유를 알 듯했다. 자연이 정말로 훌륭한 장난감이자 선생님임을 다시 확인했다. 아이들은 잔지바르에 더 있고 싶어했다.

자연은 아이들의 최고의 장난감이다. 아이들은 잔지바르를 떠나고 싶지 않아 했다.

모래사장 의자에 앉아 있으니, 현지 아이들이 조개를 줍는 것이 보인다. 아마도 조개를 주워 근처 식당에 파는 듯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조개가 크지 않다. 손톱만 한 조개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열심히 모래를 뒤적인다. 우리처럼 성게를 먹는다면 훌륭한 벌이가 될 듯싶은데, 아무도 먹지 않는 듯 조개만 열심히 줍는다. 먹을 것도 없는 저 손톱만 한 조개를 주어서 하루에 얼마나 벌까 싶다. 그러고 보면 최근 물막이 공사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는 새만금 개펄은 얼마나 훌륭한가. 사람이 힘들여 일구고 보탤 것도 없이 그저 놔두기만 해도 자손만대가 먹고 살 수 있는 조개며 해산물들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아닌가. 그것보다 더한 경제적 가치란 어떤 것인지. 한국에 있을 땐 그저 흘려듣던 것들이 남의 나라에 와서 비교해보니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된다. 자연을 자연 그대로 둠으로써 전세계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탄자니아. 늘 개발과 환경 논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리. 그 어떤 논리보다 ‘자연 그대로’가 앞설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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