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지 나무에 몸을 감춘 표범, 다리를 구부리지 못해 엎드려 물 먹는 기린…
여러 번의 사파리 끝에 야생을 이해하기 시작한 아이들은 비오면 동물 걱정 ▣ 김정미 여행전문가·지호, 지민 엄마 babingga@hotmail.com 동물 이야기를 좀더 해야겠다. 아프리카에서 동물 이야기가 없다면 김 빠진 맥주다. 더욱이 우리가 머물고 있는 아루샤는 전세계에서 온 많은 관광객이 사파리를 가기 위해 모이는 도시 아닌가?
아루샤를 벗어나 흙길로 5~6시간을 가면 끝없이 펼쳐진 초원이 나타난다. 답답한 도시에서 묶여 있었던 가슴은 한껏 시원해지고, 저 먼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내 머리를 흩날린다. 주위를 둘러보면 하이에나가 새끼를 키우려 파놓은 굴도 보이고, 하이에나가 떠난 굴에 다시 자리 잡고 사는 자칼도 눈에 띈다. 덩치는 산만 한데 겁은 왜 많니? 초원의 ‘약자’ 토끼도 자주 보이는데, 먹이가 넉넉지 않은 건기에는 ‘백수의 왕’ 사자도 체면 가리지 않고 잡으러 다니는 것이 토끼다. 하지만 토끼 사냥이 쉽지만은 않다. 잡으려는 사자도 잡히지 않으려는 토끼도 필사적이기 때문이다. 토끼는 짧은 앞발과 긴 뒷다리로 급회전을 하여 사자의 공격을 피한다. 사자는 덩치가 워낙 커서 급회전하는 토끼의 방향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오른쪽, 왼쪽… 토끼는 생명을 걸어 몸을 틀고, 사자는 큰 몸을 이끌고 헉헉대며 따라붙는다. 대여섯 번의 급회전 끝에 결국 사자는 토끼의 방향을 놓쳐버렸다. 신은 어느 누구도 절대 강자가 될 수 없게 만들었나 보다. 사파리에서 가장 보기 힘든 동물이 표범이다. 보통 나무 위에 머무는데다 개체 수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범을 본다면 그야말로 대박 터지는 날이다. 나도 이제껏 열 차례가 넘는 사파리를 다녀왔지만, 유독 이놈만 저 멀리서 한 번 봤을 뿐이다. 표범이 제일 좋아하는 나무는 소시지처럼 생긴 긴 열매를 매달고 있어서 일명 ‘소시지 나무’라 불리는 나무인데, 바분원숭이(개코원숭이)도 이 소시지 나무를 무척 좋아한다. 바분원숭이는 이 나무의 열매 맛에 반해 머물고, 표범은 꼬리를 늘어트리면 마치 소시지 열매가 늘어져 있는 것 같아 꼬리를 감출 수 있어서 이 나무를 좋아한단다.
두 동물이 같은 나무에서 마주친다면 언뜻 생각하기에 표범이 이길 것 같다. 하지만 표범이 바분원숭이에게 밀려 십중팔구 도망간다. 혼자 사는 표범은 단체생활을 하는 바분을 이길 수 없다. 바분은 작은 동물을 씹어서 부서트릴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턱과 이빨을 가지고 있다. 또한 잡식성이라 육식동물도 잡아먹는다. 무리와 함께 있다면 결코 표범도 겁내지 않는다.
기린은 좀 바보 같다. 덩치는 산만 한데 웬 겁은 그리도 많은지 가까이 다가오는 소리만 들려도 뛰기 시작한다. ‘슬로 모션’으로 도망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절로 웃음이 난다. 자신의 덩치가 커서 스치기만 해도 상대방을 쓰러트릴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기린은 작은 소리에도 놀라고 쳐다만 봐도 다른 곳으로 방향을 돌린다. 기린은 키가 너무 큰 탓에 바닥에 있는 풀은 먹을 수 없고 나무 꼭대기 잎과 가지만 먹는다. 물을 먹으러 강가에 간 기린은 무릎을 구부릴 수 없다. 그래서 네 다리를 바깥으로 쫙 펼친 뒤 엎드려서 물을 마신다. 기린은 목이 길어서 슬픈 것이 아니고 다리를 구부릴 수 없어 슬프다. 기린의 큰 눈은 더욱 슬퍼 보인다.
얼룩말 무늬에 반해 차를 색칠하다
동물을 계속 보다 보니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그중에서도 얼룩말을 최고로 치는데 내가 이제까지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문양이 얼룩말의 그것이다. 책 겉표지로 장식해도, 옷을 만들어 입어도, 가방 위에 덧입혀도 멋진 모습이 된다. 난 이 문양에 반해 18년 된 내 중고차도 얼룩말 문양으로 칠했다. 차 바탕에 흰색을 칠한 뒤 그 위에 검은색을 칠하는 수작업으로 진행됐지만, 모두 마치고 나니 썩 만족스러운 모양이 되었다. 얼룩말은 예민하고 눈이 밝다. 그래서 멀리 떨어진 약간의 움직임도 파악할 수 있어서 다른 동물에게 침략자의 출현을 알려준다. 시력이 나쁜 누는 멀리 있는 물 냄새도 맡을 수 있을 만큼 뛰어난 후각 때문에 무리의 길 안내를 한다. 누를 찾으면 얼룩말을 볼 수 있고, 얼룩말을 찾으면 누도 있다. 두 동물의 동거는 생존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
아이들은 부지런히 질문을 한다.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의 차이가 무엇인지 열심히 설명하는 나에게 뜨악한 질문을 한다. “엄마, 이 동물들은 누가 키워요?” 으악~ 거의 눈알이 튀어나올 만한 질문이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야생동물과 가축의 차이를 설명해주지만, 선뜻 와 닿지 않는 것 같다. 이젠 여러 번의 사파리 끝에 아이들도 점점 야생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동물들이 사는 곳에서는 소리를 질러선 안 된다는 것도 알고, 동물들이 사는 곳에 인간이 잠시 들르는 것임도 알게 되었다. 비가 오면 아이들은 심각해지며 걱정하기 시작한다. 들판의 바위 위에 있던 사자는 어디서 자는지, 나무 밑에서 더위를 식히던 치타는 무얼 하는지 궁금해한다. 그러다가 “그 많은 누들은 어디로 가서 자야 하지?” 하고 한숨을 쉰다. 환경이 달라지니 궁금한 것도 다르고 알고 싶은 것도 달라졌다. 아이들은 아프리카엔 겨울이 없어 눈이 내리지 않는다고 아쉬워하지만, 난 아이들이 아프리카를 느끼기 시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번의 사파리 끝에 야생을 이해하기 시작한 아이들은 비오면 동물 걱정 ▣ 김정미 여행전문가·지호, 지민 엄마 babingga@hotmail.com 동물 이야기를 좀더 해야겠다. 아프리카에서 동물 이야기가 없다면 김 빠진 맥주다. 더욱이 우리가 머물고 있는 아루샤는 전세계에서 온 많은 관광객이 사파리를 가기 위해 모이는 도시 아닌가?

뛰어난 후각을 가진 누는 물 냄새도 맡을 수 있을 정도다.
아루샤를 벗어나 흙길로 5~6시간을 가면 끝없이 펼쳐진 초원이 나타난다. 답답한 도시에서 묶여 있었던 가슴은 한껏 시원해지고, 저 먼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내 머리를 흩날린다. 주위를 둘러보면 하이에나가 새끼를 키우려 파놓은 굴도 보이고, 하이에나가 떠난 굴에 다시 자리 잡고 사는 자칼도 눈에 띈다. 덩치는 산만 한데 겁은 왜 많니? 초원의 ‘약자’ 토끼도 자주 보이는데, 먹이가 넉넉지 않은 건기에는 ‘백수의 왕’ 사자도 체면 가리지 않고 잡으러 다니는 것이 토끼다. 하지만 토끼 사냥이 쉽지만은 않다. 잡으려는 사자도 잡히지 않으려는 토끼도 필사적이기 때문이다. 토끼는 짧은 앞발과 긴 뒷다리로 급회전을 하여 사자의 공격을 피한다. 사자는 덩치가 워낙 커서 급회전하는 토끼의 방향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오른쪽, 왼쪽… 토끼는 생명을 걸어 몸을 틀고, 사자는 큰 몸을 이끌고 헉헉대며 따라붙는다. 대여섯 번의 급회전 끝에 결국 사자는 토끼의 방향을 놓쳐버렸다. 신은 어느 누구도 절대 강자가 될 수 없게 만들었나 보다. 사파리에서 가장 보기 힘든 동물이 표범이다. 보통 나무 위에 머무는데다 개체 수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범을 본다면 그야말로 대박 터지는 날이다. 나도 이제껏 열 차례가 넘는 사파리를 다녀왔지만, 유독 이놈만 저 멀리서 한 번 봤을 뿐이다. 표범이 제일 좋아하는 나무는 소시지처럼 생긴 긴 열매를 매달고 있어서 일명 ‘소시지 나무’라 불리는 나무인데, 바분원숭이(개코원숭이)도 이 소시지 나무를 무척 좋아한다. 바분원숭이는 이 나무의 열매 맛에 반해 머물고, 표범은 꼬리를 늘어트리면 마치 소시지 열매가 늘어져 있는 것 같아 꼬리를 감출 수 있어서 이 나무를 좋아한단다.

배고플 땐 백수의 왕 사자도 토끼를 쫓아다닌다.

하이에나가 잠들어 있다.

집단생활을 하는 바분원숭이는 표범도 무섭지 않다.

수컷 임팔라에게는 뿔이 있다.

얼룩말 문양은 초원에서 가장 아름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