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현, 그를 기억하며
등록 : 2001-02-06 00:00 수정 :
사진/한국에서 치러진 이수현씨의 장례식. 현재 일본에서는 그를 추모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가 계획되고 있다.(김진수 기자)
“당신의 26년의 삶은 500년을 산 사람보다 더 깁니다.”(이누카이) “구세주 같은 분입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에 새길 것입니다.”(이마노) “같은 또래의 아들 딸을 두고 있기에 다른 사람의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가슴이 아픕니다.”(스즈키, 사이타마현의 시오타 등). 일본 도쿄 신오쿠보 역에서 한 일본인을 구하려다 숨진 이수현씨를 추모하는 글들이다. 이 글은 일본에서의 장례식과 추도식을 마련해 주었던 아카몬카이 일본어학교에서 그동안 보내온 조문 편지와 팩스를 한데 묶어 펴낸 <이수현군의 용기를 격려하는 추도문집> 중 일부분이다. 추도글은 대부분 40∼50대 이상, 아들 딸을 둔 부모의 심정에서 쓴 글들이 많다. 하지만 비슷한 또래 젊은이들, 혹은 일가족 모두의 명의로 쓴 글들도 눈에 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총련계 나고야 조선 초급학교 학생들의 전보 내용이다. “이수현 형님의 용감한 모습에 감동했어요. 고이고이 잠드세요.” 우리 글의 발음 하나하나를 가타카나 표기로 해서 보내온 이 글은, 남북의 이데올로기도 아름다운 죽음 앞엔 한줌 모래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이수현씨의 죽음을 기리는 추모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재일동포 바이올리니스트 정찬우씨는 지난 1월31일 신오쿠보 역 구내에서 가곡 <가고파> 등을 연주했다. 그는 3월2일 도쿄 아카사카 산토리홀에서 추도콘서트도 열 예정이다. 이수현씨가 숨지기 직전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던 ‘PC방’이 있던 신오쿠보 역 부근 상가 사람들도 다양한 추모행사를 모색하고 있다. 이곳은 도쿄 최대의 한국인 상가가 밀집해 있는 지역. 하지만 이곳 상가 사람들은 조금은 조심스럽다. “아름답고 숭고한 것을 이용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순수한 추모행사는 인근 한국인 상가 사람들과 함께 현재 기획중”이라는 것이 이곳에서 대형슈퍼와 서점 등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광장 대표의 이야기이다.
일본인들도 이수현씨의 용기있는 행동을 기리기 위한 다양한 추모사업에 적극적이다. 아카몬카이 일본어학교 박시찬 이사장에 의하면, 도호쿠복지대학 아시카가 명예교수는 개가 사람을 구해 동상이 세워진 도쿄 시부야 역 앞 하치코 동상을 거론하면서, “하물며 사람이 사람을 구하려는 아름다운 뜻을 기릴 기념비 하나 없어서야 되겠느냐”라며 동상을 신오쿠보역에 만들기를 희망해오기도 했다고 한다. “매년 1월26일 신오쿠보 역을 찾아 꽃을 바치고 싶다”는 일본인들도 있다. 도쿄 고토구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마쓰이 등이 그들이다.
신주쿠 방면 뒤쪽에서 33m를 지나 50m 지점에 이르는 17m ‘마의 플랫홈’. 옆철로와의 사이엔 높이 1m짜리 철책이 있고, 플랫홈 발밑의 대피공간조차 막혀 있던 이곳에서 어찌할 수 없는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을 고 이수현씨. 그의 마지막 순간을 기리기 위해, 그가 딛고 뛰어내렸던 플랫홈의 발판에 그를 기리는 추도문을 새겨넣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이미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 지난 2월1일 나고야에서 한 고등학생을 구하기 위해 열차도착 방송이 난 상황에서도 선로로 뛰어들어 구해낸 사건이 그것이다. “사고가 난 순간, 신오쿠보 역에서의 사고가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낼 수 있었지요.” 그의 죽음을 늘 가슴속에 새기겠다는 일본인들의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도쿄=신명직 통신원
mjshin59@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