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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기사 양반, 사자 찾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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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0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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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 우선 법칙’에 머리 숙여야 하는 탄자니아 사파리의 세계
상상을 뛰어넘는 스케일, 한국인 관광객은 여기서도 ‘국민성’보여줘

▣ 구혜경 방송작가·세원, 윤재 엄마 hk21bh@hanmail.net

사파리는 ‘여행’이란 뜻의 스와힐리어다. 지금은 동물을 찾아가는 여행을 의미하는 것으로 주로 쓰이는데 사파리에는 여행 이상의 것이 담겨 있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벗어나 자연을 만나는 순간이며, 대자연의 섭리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야말로 동물들이 사는 공간에 인간인 우리가 잠시 선을 보러가는 것이 사파리다. 드넓은 사바나 초원의 사파리 차량 안에 갇혀 자신들을 쳐다보는 인간들을, 동물들이 오히려 여유롭게 바라보는 게 사파리다.

국립공원 넓이가 경상북도…


땅덩이가 남한의 10배가 넘는 탄자니아에는 국립공원이 많다. 백두산 천지의 30배나 된다는 응고롱고로 크레타를 비롯해, 세렝게티·타랑기레·미쿠미·아루샤·킬리만자로 등 국립공원이라곤 그저 산 하나에 유적지 하나 달랑 있는 우리 식의 국립공원을 생각했다간 큰코다친다. 지역 특성에 맞는 각양각색의 야생동물들이 살고 있으며, 몇 년 전 한 방송사의 다큐멘터리로 잘 알려진 세렝게티 국립공원의 경우는 그 넓이가 우리나라 경상북도만 하다. 인구는 남한보다 약간 적은 3800만 명이지만, 땅이 넓다 보니 그 넓은 땅의 상당 부분을 동물에게 내준 나라가 바로 탄자니아다. 고궁과 옛 유적이 잘 보존돼 있는 서울이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도시라면, 탄자니아는 인간과 야생동물, 문명과 비문명이 공존하는 곳이라고나 할까.

사파리 차량은 정해진 길을 정채진 속도로 다녀야 한다. 길이 험해서 4륜 구동을 탄다. (사진/ 구혜경)

야생동물이 사는 공간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즐기는 여행이 사파리이기 때문에 사파리하러 가는 길은 험난하다. 그래서 거친 길을 달릴 수 있는 4륜 구동 ‘랜드로버’나 ‘랜드 크루저’ 같은 차를 탄다. 아루샤에서 응고롱고로까지, 개통한 지 채 1년도 안 된 새 길이 나기 전까지는 6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게다가 길이 험해서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새 길은 일본에서 기부해 만들었다. 덕분에 6시간 걸릴 거친 길을 2시간 만에 산뜻하고 날렵하게 갔는데, 언제나 경쟁심을 느끼는 이웃 나라 덕을 보고 가는 길이라 마음 한편이 시원치 않았다. 길을 안내하는 사파리 운전사가 침을 튀겨가며 일본이 기부한 것이라고 얘기하는데, 우리는 언제쯤 다른 나라에 기부하며 사나 싶기도 하고….

지금과 달리 초기의 사파리는 주로 사냥을 위한 ‘헌팅 사파리’였다. 숙박시설이나 이동수단도 좋지 않아서 대규모로 오랫동안 준비해서 떠났다고 한다. 지금도 야생동물 포획이 가능한 헌팅 사파리를 할 수 있는 ‘게임 리저브’라는 공간이 따로 있다. 새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조류 관찰 사파리는 물론,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낚시 사파리도 있다고 하니, 사파리라고 해서 단순히 차를 타고 야생동물을 보는 것만은 아닌가 보다.

과거에는 동물을 수집하는 사파리가 주를 이뤘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야생동물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헌팅 사파리에서 잡은 수많은 동물을 스미스소니언협회에 기증했단다. 약탈로 점철된 그네들의 박물관처럼 자연사박물관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지금 미국이나 유럽의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많은 야생동물 박제는 이런 헌팅 사파리를 통해 수집된 것이다.

사파리 기간에는 야생동물들이 사는 공간에 들어간 순간부터 ‘야생동물 우선 법칙’을 지켜야 한다. 정해진 길을 정해진 속도로 다녀야 하고, 동물과 만났을 때는 이동에 방해를 해선 안 된다. 모든 점에서 동물에 우선권이 있다. 한번은 사자 무리가 버펄로를 사냥해 맘껏 먹고 있는 모습을 봤는데, 사실 맘 같아서는 좀더 다가가고 싶었지만 20m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켜봐야 했다. 탄자니아는 사파리 룰이 강해서 원칙을 어긴 사파리 여행사는 벌금을 물거나 입장시키지 않는다.

심심찮게 사파리 도중 일어난 사고 얘기를 듣게 된다. 모두 사파리 룰을 지키지 않아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사자 사진을 찍다가 카메라를 떨어뜨렸는데, 안내인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괜찮겠거니 하고 살짝 차문을 열고 카메라를 줍다가 사고를 당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사파리를 하는 동안 차에서 내리는 일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나무 아래 가만히 앉아 있는 사자도 언제고 펄쩍 뛰어올라 사람을 덮칠 수 있기 때문이다. 풀 뒤로 몸을 숨긴 채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이는 표범도 언제 덮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현지인들에겐 ‘그림의 떡’

어떻게 보면 사파리 역시 잘 만들어진 여행 상품의 하나다. 자연 그대로를 접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구매하는 것이다. 정작 사파리 왕국의 주인인 현지인들에게 사파리는 ‘그림의 떡’이다. 하루 100달러가 넘는 숙박비며 차량 대여료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파리 지역에선 동물들에게 먹이를 줘선 안 된다. 야생의 본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구혜경)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에도 밤이면 총을 든 레인저들이 보초를 섰다. 바분 원숭이는 물론 밤이면 버펄로가 올라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머무는 숙소라 하더라도 어차피 야생동물들이 사는 국립공원 안에 지어진 곳이라, 낮에는 가젤(소과의 포유류로 사자의 주요 먹잇감이다.)들이 뛰어노는 것을 볼 수 있고 밤에는 하이에나나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사자를 볼 수도 있다.

함께 간 사파리 운전사가 한국인들의 사파리 스타일을 얘기해서 한참 웃었다. 야생동물을 보려면 동물들이 움직이는 이른 시간에 나서야 한다. 그런데 동물을 보러 와서는 밤새 술을 마시고 다음날 아침 일찍 사파리를 가서는 내내 차에서 잔다고 한다. 동물을 발견해 잠시 서 있으면, 찬찬히 관찰할 생각은 하지 않고 다 봤다며 빨리 다른 곳으로 가자고 난리란다. 심지어 사파리의 빅5인 사자, 코끼리, 표범, 코뿔소, 치타 중 자신이 보지 못한 것이 있으면 사파리 운전사에게 빨리 찾아내라고 윽박지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같이 웃긴 했지만 한국 사람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 씁쓸했다.

대자연 속에서 진정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시간, 사파리. 하지만 사파리 역시 부익부 빈익빈과 이른바 국민성이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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